우리들 가운데 간헐적 단식 등등 자발적 ‘굶음‘이 아닌 말 그대로 ‘굶주림‘이라는 말이 지닌 절망과 공포를 느껴본 이가 얼마나 될까영상과 이미지릍 포화 상태로 만든 먹방과 먹거리 가득한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굶주림은 너무나 비현실 아닐까 그럼에도 먹방을 보느라 못보는 세계 곳곳 아니 당장 여기 한국의 어느 동네 어떤 방에선 진짜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다거의 반미치광이로 보여 읽는 내내 조마조마 하게 하면서 동시에 울화통 터지게 하는 소설속 주인공 덕분에 이 소설은 재미 있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는데 인상적인 캐릭터였다읽는 내내 굶주림이라는 현상이 피부에 와닿게 상상 되었다 실직이나 기타의 상황으로 인해 주인공처럼 수중에 동전 한 푼 없게 되었을 때 그려지는 진풍경이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그에 비하면 소설속 상황은 다소 익살스런 면이 있다 어쨌든 주인공은 굶어 죽지는 않으니까 솔직히 굶어죽는 결말을 내심 바랬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너무 일차원적이려나언젠가 쓰기를 죽음을 처리해줄 사람이 없는 경우 괜히 주변 사람에게 민폐 되지 말고 어디 깊은 산속에 들어가 굶어 죽든지 얼어 죽는게 깔끔한 거라고 했다그런 완료형 굶주림이 아닌 현재진행형 굶주림을 겪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다소 황당스러울 수 있지만 함순의 출세작이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그때 어떤 꽂힘이 있었을 것이다 그게 뭔지는 기억에 없고 강남 교보인가 까지 가서 사왔다는 확인할 길 없는 기억만 남았다 당장 손에 쥐어야만 할것 같은 조바심 하지만 그후 오랫동안 방치처절하게 굶주리는 작가의 모습이겠거니 하는 것 때문이지 않았을까 아니면 극한으로 몰린 사람의 굶주림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싶었을지도˝이봐, 하느님, 이건 숫제 미친 지랄이 아닌가!˝134주인공은 지역 신문에 실릴지 말지 알 수 없는 글을 써서 겨우겨우 살아가는 작가다 너무나 대책이 없는 무명 작가 하루 이틀 굶기는 여사인데 돈 한 푼 없으면서 거리에서 만나는 누군가에게 몇 푼 주지 못해 울기도 하다가 또 웃기도 하고 굶주리다 못하면 길가의 대팻밥을 주워 씹으면서도 돈을 빌려 그 돈을 또 거의 그냥 줘버리는, 이걸 착하고 선량하다고 해야하는지 어떤 것인지 곧 죽어도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는 또 못하는 인간, 어쩌면 우리는 쉽게 저버릴 수 있는 인간이라면 기본이 아니냐 할 모습에 마냥 미친놈이라 할 수도 없다 일본어 중역이라고 하던데 곳곳에 보이는 오자와 번역이 아쉽다 범우사 판이 아닌걸 골랐어야 했나 싶다ㆍ
간추려진 출판 관련 기사를 보다가 올해 한국일보문학상 최종 본심 10편이 무엇인지 읽어봤다 그 기사에 대해 지인과 통화하다 각자 누구를 유력 수상자로 찍을거냐는 이야기를 했다그래도 지나간 한때는 열심히 국내 소설들과 작가들을 따라 읽긴 했는데 언젠가부턴 더는 그런 열심이 쏟아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이젠 작가 이름을 들어도 대부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들이다 후보 가운데 그나마 읽지는 않았지만 이름은 익숙한 김멜라를 나는 1순위로 찍었고 그 다음으로 정지돈을 꼽았다 지인은 김멜라의 작품을 이미 읽어봤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며 일독을 권했다 그리하여 출간된 소설집 두 권을 빌려 왔다 도서관 책꽂이 앞에서 나란히 꼽혀 있던 두 권을 꺼내 먼저 작가의 말을 읽어보았다 두 권 작가의 말 모두 작품과는 상관 없는 말이었지만 이런 작가의 말을 쓰는 작가라면 뭔가 내 취향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었다 우선 먼저 출간된 ˝적어도 두 번˝에 실린 등단작 ‘홍이‘부터 읽었다 그리고 먼저 읽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같은 ‘호르몬을 춰줘요‘와 ‘적어도 두 번‘ 순으로 읽었다 지인이 말하길 퀴어 소설을 내가 어떻게 읽을지 모르겠다며 형 취향에 과연 맞을까 하는 뉘앙스의 말을 했는데 틀리지 않은 염려였다퀴어라고 일부러 멀리하거나 그런건 아닌데 그렇다고 딱히 찾아 읽을 것까진 아닌듯 하다는걸 읽으며 깨달았다 이게 퀴어기 때문인지 아니면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십대 때 즐겨 듣던 음악을 평생 듣는 걸 보면 문학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어떤 공감되는 정취랄지 그런 지점이 있어야 계속 따라 읽을텐데 그런 점이 없다보니 언젠가부터 젊은 작가들을 안읽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중견 작가들을 또 열심히 읽었냐 그것도 아니었고 그냥 국내 소설들이 심드렁했기 때문이었다 두번째 소설집에서는 ‘제 꿈 꾸세요‘와 ‘나뭇잎이 마르고‘를 읽었다 김멜라라는 이름은 들어 알만큼 많이 호명되는 작가인것 같으니 뭘 어떻게 쓰는지 궁금함때문에 읽는 것이라 수록 작품 모두를 읽으려 한건 아니었다 등단작을 비롯 단편 5편의 작품들을 읽어본다면 그 작가의 작품 느낌은 대충 이렇겠구나 정도는 알 수 있다 김멜라의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작은 장편 ˝없는 층의 하이쎈스˝다신문 기사 때문에 예상에도 없던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는게 수확이라면 수확 하지만 딱 거기까지ㆍ바람이 무섭지 않은 낙엽처럼, 떨어진 이후를 걱정하지 않는 눈송이처럼제 꿈 꾸세요_296
어떤 인스타 계정을 보면 셀피로만 도배한 계정이 있다 본인 얼굴을 수없이 찍고 올리는 그런 계정그 얼굴이 그 얼굴인데 자신의 얼굴을 수없이 올리는 행위를 나는 이해 못한다 그런 계정의 피드를 하나하나 보는 것은 고역이다그렇듯 이소호의 시집이 주는 인상이 그렇다세번째 시집을 보다보니 솔직히 반 이상을 넘어가니 셀피만 가득한 피드를 휘리릭 넘기듯 시집을 넘기고 끝냈다끊임없이 ‘이소호‘를 호명 해댄다 이런 시인이 지금껏 있었던가 싶다 그런 점이 주목하게 만든건지 모르겠다만 셀피로 도배된 계정이 주는 지루함이라 해두자 내 시를 시라고 부르지도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89p 나도 그 사람들에 속하게 된 것 같다고명하신 평론가님들이나 관계자분들이 보기엔 뭘 모르는 독자 나부랭이겠지만 요즘 시 세계에 지금 가족이 나오는 것은 조금 자가 복제처럼 느껴져요86p 실제 독자가 보낸걸 옮긴 건지는 모르겠으나 나 역시 언제까지 이 가족 이야기 지인 이야기를 읽어야할까더는 이 시인을 읽을 일은 없다는건 자명해졌다그게 이 독서의 유일한 수확이다 아 씨발 존나 질기네48p 같은 건 또 언제까지 봐야하나 세번째 시집까지 여전한거보면 기본이 그런거 같고‘씨발 가-족같네‘ 라고 누가 쓸줄을 몰라서 안쓰나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싶은 읽을 거리들 굳이 읽어야 하나 싶은 특히 주석에서 장황하게 설명하는 외국 어느 작가나 작업방식 어쩌구 하며 그런 방식으로 이소호와 시를 읽어야 한다는... 하 스럽다 진짜 각 예술은 각각의 형식이 있는데 그것은 그 형식이 전달하려는 바를 전달하기에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회화는 그림으로 음악은 소리로 문학은 글로문학은 글일때 그 전달의 하는 바가 있다고 나는 본다글이 아닌 사진 한장 덩그러니 그리고 각주 또는 타이포 그라피적으로 배치된 글자들물론 글의 한계는 있다 글은 사진도 그림도 음악도 아니기에글의 한계가 있다고 글이 아닌 다른 형식을 자꾸만 들이대겠다면 화가를 하거나 음악가를 하면 된다어찌되었든 글이라는 형식 안에서 끝장을 본다는 자세가 맞다고 본다이런 점에서 나는 이소호의 어떤 시도가 그닥 별로다본문보다 각주가 더 많은 것 포함시로 쓰지 못할것 같다면 그건 쓰이지 못할 것이었다이렇게 말하면 형식미에 갇힌 고루한 노땅이라 하겠지만 내 입장은 그렇다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흔히 하는 말로 ‘일기는 일기장에‘이소호의 시집에서 보여지는 탈형식은 이미 앞선 시인들의 시집에서 봐왔으니 특별날 것도 없다 그래서 그것이 주는 파격미도 없고 전달의 효과 역시 모호하고 그저 시인 자신만의 자족이라 생각한다물론 어떤 시는 페이지의 모서리를 접어둘만하기도 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탈형식적 페이지들이 어쩔수 없이 눈에 거슬릴밖에 나와 같은 불만이 어딘가 있었던지 시인의 그 누군가의 불만 리뷰로 보이는 걸 옮겨와 시집에 박제해 놓기도 하였다나와 같은 눈 어둔 독자들의 별점 테러와 상관없이 내로라 하는 문학 출판사 3사가 시집 출간을 해준다는 것은 그들만이 보는 이소호 시에 대한 뭔가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데페이즈망을 설명하는 각주에서 ‘창작자 말고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글‘이라고 하고 시인 역시 이소호의 시들은 ‘관심과 무관심으로 나뉠 뿐‘이라고 하는데 너무나 무식이 철철 넘치는 반면 공감과 동감 능력 제로인지라 나는 앞으로 무관심 하기로 할 것이다읽을수 있는 시집과 시인들은 널리고 널렸으니 굳이 스러운 것이다ㆍ
유튭에서 노출시킨 영상이 알고보니 시인 이소호 채널의 영상이었다 그 이유로 이소호 시집을 도서관에서 빌려 왔다 에세이와 소설도 있었으나 몇 장씩 훑어보니 내 취향이 아니었다 캣콜링이 2018년불온하고... 2021년홈 스위트... 2023년 시인 자신은 ‘아무도 읽지 않을 버러지 같은 시‘라고 했지만 세 시집 모두 2쇄 이상이 찍힌걸 보니 일정 수 이상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실비아 플라스, 김혜순, 김언희 또는 시에서 말하듯 최승자와 같은 시인들의 시를 읽어본 독자라면 이소호의 거친 표현으로 이루어진 시가 그리 낯설거나 당황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시는 다분히 치기어려 보인다‘자기 전시‘는 어디까지가 예술일까 그런 생각도 든다저 유명한 말 ‘경험한 것만 쓴다‘는 것도 일종의 자기 전시라 보면 예술이 맞긴 하는가 본데 그것도 정도껏 그리고 예술적 승화?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지만 별 볼 일 없고 예술이 뭔지 뭣도 모르는 독자가 감히 건드릴 건 아니겠지 아니다 싶음 던져버리면 그만인 일이니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다분히 ‘관종 끼‘가 있고 관종 끼가 없다면 예술가가 안되기도 하는게 맞는데 그걸 어디까지 봐줄수 있느냐는 감상자 개인의 범위에 달렸을 것이다 눈물 젖은 두만강 카셋테이프를 듣던 아버지가 서태지를 좋아할 수 없듯 올드한 독자의 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