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들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다 - 세상 끝에서 경이로운 생명들을 만나 열린 나의 세계
나이라 데 그라시아 지음, 제효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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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펭귄들의 생태를 조사하며 그들과 함께 성장해간 젊은 생물학자의 성찰기.

 

남극의 신사라는 별칭으로 친근하게 다가온 펭귄.

뒤뚱뒤뚱 거리는 걸음걸이와 두 발로 서있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당당하기도 한 동물 펭귄.

최근 들어 펭수 때문에 한층 더 친근해진 펭귄의 서식지 남극에서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생태를 조사했던 생물학자의 이야기가 이토록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내가 느낀 재미는 겉핥기 식으로만 알고 있던 펭귄 조직(?)에 대해

남극의 자연에 대해 그 안에서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그리고 열정 가득한 젊은 생물학자의 성찰에 대한 것이다.

 

쉽게 읽히는 글이 일기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해서 그가 들려주는 남극에서의 6개월이 내게는 마치 입동 준비 중에 하나 같았다.

겨울맞이 겨울 이야기랄까.





이야기는 총 4부로 나뉜다.

펭귄이 알을 낳고,

그 알을 깨고 나온 새끼 펭귄들을 맞이하고

무리 짓기에 들어가는 펭귄들을 살피고

성장해서 바다로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그린다.

 

똑같아 보이는 펭귄의 특성을 알아보고 구분하게 되는 과정

암컷과 수컷을 알아보고, 털갈이를 하는 성체와 털갈이를 마치고 바다로 돌아가는 성체를 알아보게 된다.

펭귄을 그저 남극의 동물로만 보던 시선에 그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

 

각성이나 인식은 그런 것이다.

무의미했던 것들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

펭귄도 그저 동물로 치부했을 때는 다 똑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들도 저마다의 개성이 있고, 저마다 다 다르게 생겼다.

인간 역시 그저 동물로 치부했을 때는 다 똑같은 인간이다.

하지만 인간 역시 저마다의 개성이 있고, 다 다르게 생겼으며 각자의 민족이 다르다.

 

간단한 것이지만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에게는 그저 하찮은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저자처럼 그들을 동일시하는 시선을 갖게 되면 인간의 오만함이 보인다.

 

이 냉혹한 섬에서 야생의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고, 이따금 자신의 냉혹한 본질과 마주한다.

 

 

남극의 특별한 자연환경 속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동안 고립된 외로움은 무엇으로도 달랠 길이 없다.

그 과정을 이겨내고 그곳에서 느꼈던 감정들과 사실, 그리고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펭귄들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다>

 

인간의 욕심이 지구를 파괴하는 줄도 모르고 파괴하는 요즘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우리가 우려해야 하고, 미래를 위해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글솜씨가 좋은 생물학자의 글은 한 편의 다큐 속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펭귄들이 조약돌로 집을 짓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마음에 드는 조약돌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어린 펭귄들의 사체가 발견됐을 때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울적했다.

부모의 보살핌으로 성체가 되어 바다로 간 그들은 물범의 먹이가 되었다.

알에서부터 성체가 되어 바다로 나갈 때까지 그 개체수를 세고 그들의 성장을 지켜봤던 연구원이 수백 마리의 사체를 마주한 장면은 내게 압도적인 슬픔으로 다가왔다.

자연의 냉정함을 또다시 느꼈던 장면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없었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의 글이 전혀 생소했던 현실을 내 앞에 가져다 두었다.

생태계는 살아있다.

안온한 인간의 눈에나 잔인한 것이다...

인간 자체의 생태계는 그것보다 훨씬 잔인하다.

 

지구 안 모든 생물들이 서로 공존하며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의무이자 권리라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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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의 밤 안 된다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청미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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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의 단편이 담긴 <폭포의 밤>은 '안 된다'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로 미치오 슈스케의 신작입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었다가 뒤통수를 세게 맞았네요~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은 <폭포의 밤>이 처음이라서 이 작가의 스킬을 몰랐기에 놀라움은 한층 더 컸습니다.

일본 문학상 그랜드슬램의 작가라더니 정말 이 체험형 미스터리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네요^^

 

별개의 사건처럼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모두 얽히고설키게 되는 과정은 읽으면서도 믿을 수 없었어요.

가쿠레이 산, 묘진 폭포, 모란꽃 축제, 요메가 숲. 이 장소들은 4편의 이야기에 공통의 배경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사건들은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고오리시의 유명 관광지인 이곳의 지명들은 모두 불길함을 품고 있죠. 그래서 자꾸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요?

그리고 각 이야기 마지막에 담긴 사진은 이야기의 중요한 장면을 보여주는데 독자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합니다.





<묘진 폭포에서 소원을 빌어서는 안 된다>

 

첫 번째 이야기의 함정을 저는 두 번째 이야기에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읽었네요.

실종된 언니의 흔적을 찾아 간 모모카가 발견한 게 언니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음ㅠ.ㅠ

 

<머리 없는 남자를 구해서는 안 된다>

 

남자아이들이 생각해낸 담력 시험은 뜻밖의 재난 상황으로 이어지고 그 상황은 오래된 기억을 되살리게 하죠.

과거의 일로 목소리를 잃어버린 삼촌.

그 삼촌의 무언가를 건드렸다고 생각한 조카.

그러나 서로의 생각이 닿지 않아서 벌어진 일은 가슴이 아플 따름입니다...

 

 

 

<그 영상을 조사해서는 안 된다>

 

아들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자신이 죽였다고 자수한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의 진술은 어딘가 신비성이 없어 보이고, 그날의 범죄 기록이 남은 자동차 블랙박스의 영상을 찾아낸 경찰은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시체가 없으면 사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날 지기씨의 집에서는 진짜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소원 비는 목소리를 연결해서는 안 된다>

 

요메가 숲에서 시체가 발견됩니다.

그 시체가 이 책에 담긴 모든 이야기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은 정말 놀랍습니다.

엄청 영리한 작가인 거 같습니다. 미치오 슈스케는.

 

이런 연결고리를 짜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을까요?

이야기에 나오는 형사 구마지마는 묘진 폭포에 사건을 해결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신은 다시 말을 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고, 모모카는 언니를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이들의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불길한 이름을 가진 폭포의 신은 불길한 기운으로 그들의 소원을 들어 줍니다.

그래서 묘진 폭포에 소원을 빌지 말라고 했나 봅니다.

한자로 이름을 가진 고유 명사는 그 뜻을 잘 헤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처음 맛보는 체험형 미스터리.

전작도 읽어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나올 이야기도 기다리고 싶네요.

 

색다른 이야기가 고픈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추리에 자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

이 이야기는 맞춰도, 못 맞춰도 대놓고 흥미로운 이야깁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들을 모두 찾아 읽어 봐야겠습니다.

이 작가의 작품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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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의 여자 - 뮤리얼 스파크 중단편선
뮤리얼 스파크 지음, 이연지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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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모욕을 참지 않아!"

 

 

리제라는 인물은 만나는 순간부터 날 당황케했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캐릭터.

너무 많은 색채를 지닌 화려한 옷차림으로 휴가를 떠난 리제.

그녀의 독특함은 그녀의 발길마다 선명한 자국을 남긴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를 뿌려 놓는 것처럼 그녀는 스치는 모든 사람들을 목격자로 만든다.

 

 

내일 아침 그녀는 다수의 자상을 입고 손목은 실크 스카프로, 발목은 남성용 넥타이로 묶인 채, 현재 14번 탑승구에서 탑승 중인 비행기를 타고 도착할 낯선 도시의 공원 안 텅 빈 저택의 장원에서 시체로 발견될 것이다.

 

 

 

이 문장에서 모든 것을 짐작한(?) 나.

그러나 상황은 내 예상대로 벌어지지 않는다.

종잡을 수 없는 리제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결국 마지막에서야 깨닫는다.

 

스파크의 세계는 우리의 상식을 저버린 세계라는걸.

 

처음 본 여자에게 친절을 베풀고, 함부로 무릎에 손은 얹고 친한 척하고

아주 젠틀한 척해대는 남자들이 모두 잠재적 범죄자임을 리제는 고발한다.

 

당하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설계하는 리제.

어쩜 이미 죽은 뒤의 영혼이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타인이 아닌 스스로 주도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친절한 문장들 틈에서 리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수없이 되풀이되어 공식처럼 느껴지는 스릴러의 현실을 이미 다 알아 버린 여성 여행객의 자신만만한 자기 죽음 알리기

내게 <운전석의 여자>는 그렇게 해석되었다.






<아버지와 딸들>, <관람 개방>

 

아버지의 명성은 사라지고 점점 쪼들려가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자존심은 지켜주고 싶었던 도라.

어린 남자와 결혼한 이유는 그 역시 아버지의 추종자이기 때문이다. 그들 사이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죽고 그들은 예전보다 나아진 경제력을 가졌지만 진정한 결혼생활은 끝났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혼해 주지 않는 남편과 아버지의 집을 박물관으로 꾸미고 싶은 도라는 몇 년이 지나도 자신들의 계획을 실천하지 못한다.

작가 캐슬메인의 딸과 사위는 그 이름의 그늘 아래서 서서히 변화해 간다.

자신들의 인생을 위해 그들이 택한 방법은 무얼까?

 

<하퍼와 윌턴>

 

당신은 이야기를 내팽개쳤어요. 당신을 찾으러 다닌 지 좀 됐어요. 우리에게 실체를 부여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유령으로서 당신을 괴롭히겠어요.

 

 

언젠가 썼던 단편 소설의 주인공들이 갑자기 찾아온다면?

그들에게 옳은 결말을 써주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솜방망이 처분을 받은 사시 청년은 여전히 누구를 바라보는지 모르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핑커튼 양의 대재앙>

 

"여자들이란, 아시잖아요! 언제나 알고 보면 다 여자들 탓이죠. 우리는 술을 몇 잔 했어요."

 

 

모든 게 여자들이 말하면 신빙성이 떨어진다.

조지와 핑커튼 양이 같이 비행접시를 봤어도 핑커튼 양의 말은 좀체 믿어주지 않는 분위기다.

그래서 그녀는 술을 마셨다고 말한다. 그들의 믿음에 굳건함을 주듯이 말한다.

"여자들이란!"

 

<이교의 유대 여인>

 

 

나는 할머니가 너무나 영리했으므로 아름다울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걸 알았다.

 

 

현명한데다 이쁘기까지 하면 반칙이지..

못생겼지만 잘생긴 어린 남자와 결혼에 성공한 할머니의 뚝심.

갑자기 우리 외할머니가 생각나네...

울 외할머니도 못생기셨지만 아주 잘 생기고 연하인 외할아버지와 결혼하셔서 평생을 큰소리 빵빵 치고 사셨다지~

 

11편의 단편들을 읽는 내내 고민스러웠다.

이 이야기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이제까지 읽었던 이야기들과는 결이 달라서 장르를 구분할 수 없었다.

장르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었지만 그 어디에도 출구가 없었다.

 

무언가를 보았지만 보았다고 말하지 못하고 <검은 선글라스>를 써야 하는 여자.

하지만 이 이야기 속 여자들에겐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그건 그녀들의 중심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의 폭풍 때문이다.

뮤리얼 스파크의 세계에서 여자들은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이다.

그러니 마음을 비우고 스파크의 리듬에 맞춰야 한다.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진 가혹함을 벗어나려고 맹렬하게 애쓴 작가의 모습이 여기저기에 투영되어 있으니까.

그 시대 보다 조금 더 나아지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그 시대 그 여인들.

그들의 그 '광기'가 있었음에 지금 우리가 우리로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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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레스토랑의 비밀
김창순 지음 / KONG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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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같은 평범한 아침,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피곤함과 허기짐을 느꼈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

같이 밥을 먹을 가족이 없음을 절감하는 하루.

 

 

맛있는 향기를 따라간 그곳에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행복한 모습으로 가득한 사람들 틈 구석진 자리에 앉아 뭔가 대단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웨이터가 가지고 온 접시엔 콩만 네 개 담겼습니다.

실망스럽지만 한 개를 먹어 봅니다..

 

콩안에는 어떤 맛이 숨겨져 있을까요?

 

 

평범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

온기라고는 느낄 수 없는 무채색의 방.

향기를 따라 밖으로 나온 그의 앞에 온갖 색채의 기운이 그를 반깁니다.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한 레스토랑 구석진 자리에서 혼자 음식을 먹는 그에게 어떤 일이 생길까요?

 

4개의 콩 안엔 비밀이 숨겨있습니다.

하나의 콩을 맛볼 때마다 남자에게는 작은 변화들이 생기죠.

 

무채색의 세상이 다양한 색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맛으로 표현하고 있네요.

잊고 있었던 맛에서 무기력한 삶이 화려한 색을 입게 됩니다.

잊고 있던 감각이 깨어나는 시간..

 

행복이라는 게 결국

멀리 있는 게 아니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편안한 옷을 입고, 잠을 잘 잘 수 있는 시간.

 

먹고, 입고, 잠드는 것이 별거 아닌 거 같고, 늘 할 수 있는 거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잘 수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사라진다면

아무리 많은 걸 가지고 있어도 행복하지 않죠..

 

우리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는 하루하루를 쌓아가요..

행복한 미래는 바로 이 세 가지를 잘 챙기는 것에서 옵니다.

 

저에게 위로가 필요해 보여서 책을 보내주신다는 공 작가님 말씀처럼

이 그림책을 보면서 감각을 벼려봅니다.

 

저도 그림을 보며 4가지 콩의 감각을 느껴봤어요.

옛말에 배부르고 등 따시면 행복하다는 말이 있죠.

무기력함에 가장 빠른 자극을 줄 수 있는 건 바로 맛있는 음식인 거 같습니다.

맛으로 무채색의 세상에 색을 입히는 순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어딘가

비밀을 품고 있는 레스토랑이 있을 것만 같네요.

무뎌진 입맛을 찾아주는 비밀 레스토랑.

여러분만의 레스토랑을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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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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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 눈은 그가 모르는 어떤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사실 그는 여자들을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었다, 여자들은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들이 알려주지도 않고 분명하게 말해주지도 않는 어떤 것을, 말로는 드러낼 수 없는 것이므로

 

 

이야기는 마르타의 출산으로 시작한다.

올라이와 마르타에겐 딸이 있다.

그들은 딸로 만족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아이가 생겼다.

아들이라고 올라이는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는 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요한네스.

 

생명을 세상에 내어 놓는 마르타의 고통의 외침과 초조하게 기다리며 태어날 아이에게 지어 줄 이름을 생각하는 올라이의 모습이 이 소설의 첫 번째 이야기다.

 

남자들은 절대 알지 못할 순간이자

여자들에겐 온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는 순간이다.

생명의 탄생은 고통과 함께 희열을 뿜어낸다...

 

 

 

 

오늘도 여느 아침처럼, 모든 것이 여느 때와 같아 보였다, 정말 그랬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어딘가 달라졌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요한네스는 아침에 일어나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담배와 커피. 그리고 산책.

유난히 가뿐한 몸으로 시작한 하루는 그에게 과거의 인물들을 만나게 해준다.

 

쉼표와 물음표가 마침표보다 많은 문장은 요한네스의 이상한 하루를 표현해 준다.

열심히 일했고, 아이들도 잘 자랐고, 친한 친구도 있었고, 사랑하는 아내도 있었던 삶.

친구가 먼저 떠나고, 아내가 떠나고, 막내딸이 가까이에 살면서 그를 챙겨주는 삶.

 

세상에 태어나 우렁차게 울어대던 아이.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아이는 이제 할아버지만큼의 나이를 먹었다.

 

죽으면 어디로 갈까?

모든 인간의 물음표인 죽음.

욘 포세는 <아침 그리고 저녁>에서 그것을 말해준다.

상상할 수 있지만 말로도 글로도 표현되지 않는 죽음.

 

요한네스의 이야기를 읽으며 따스한 위안을 얻는다.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삶에 준비 없이 찾아오는 죽음.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호한 느낌. 방금 죽은 망자의 혼란함을 먼저 간 이들이 이끌어 준다.

그에게 가장 친숙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그를 데리러 온다.

 

요한네스의 하루는 그렇게 따스한 여름날 한가롭고 평화롭게 흘러갔다.

현실인 듯 꿈인 듯...

 

그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만난 딸 싱네는 추운 겨울의 쌀쌀함을 품고 그를 보지 못하고 관통해 지나간다.

그럼에도 그는 알지 못한다. 어째서 딸이 그를 못 알아보는지...

 

책을 읽으며 나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지만.

엄마를 생각했다.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를 그날을 마주하게 되면 요한네스가 생각날 거 같다.

그처럼 우리 엄마에게도 누군가가 마중을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 엄마가 혼란스럽지 않게.

페테르가 요한네스를 이끌어주듯이...

 

맙소사, 담뱃갑이 거기, 아버지가 저녁이면 늘 두는 자리에 있네, 아버지는 매일 저녁 담뱃값과 성냥갑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담배 한 대를 피운다, 오랜 세월 그래왔다, 그러고 나서 한 대 더, 커피를 마시며 또 한 대나 두 대, 아침마다 그러시는데, 싱네는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은 아버지가 담배에 손댄 흔적이 없고 재떨이는 말끔히 비워져 있다. 맙소사,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무엇을 남길지 궁금했다.

가지런한 담뱃갑과 성냥갑을 보고 싱네는 아버지의 죽음을 직감한다.

마치 내가 그 장면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다.

 

갓 태어난(?) 망자를 따라가다 보면 죽음이 슬프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하나의 과정처럼 느껴진다.

언젠가는 통과해야 하는 과정...

 

<아침 그리고 저녁>을 통해서 체험한 그 순간들이 살아가는 동안 문득 떠오를 거 같다.

그 길은 두렵지도, 고통스럽지도, 외롭지도 않을 것이라는 작가의 위로가 위안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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