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슬블로어 - 세상을 바꾼 위대한 목소리
수잔 파울러 지음, 김승진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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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글을 읽는 동안 내내 속에서 천불이 일어났다고만 해두자.

세계 최강국이자 자유와 정의의 사도처럼 군림하던 미국이라는 나라의 민낯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버에 대한 내부고발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미국 사회 전반에 걸쳐져 있는 편견과 차별과 혐오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빠는 "세상 안에서 살아가되 세상의 일부가 되지는 말야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아빠는 그런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것,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말씀하셨다.

아빠는 다른 사람들처럼 되는 것이 훨씬 쉽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쉽다고 하셨다.

 

 

수전 파울러의 어린 시절은 <<배움의 발견>>을 읽는 거 같았다.

깡촌에서 가난한 백인으로 살아야 했던 시절의 이야기는 그녀가 어떠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헤쳐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던 거 같다. 그 안에는 가난했지만 단란하게 가정을 꾸려갔던 부모님의 모습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들의 길을 가고자, 자신들의 환경을 좀 더 좋게 바꾸고자 끊임없이 배움을 멈추지 않았던 부모님의 부단한 노력도 담겨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비록 학교에 다니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배우고자 노력했던 수전의 모습은 그녀가 훗날 겪게 되는 모든 부당함을 견뎌내는 힘을 기르기 위한 준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를 꿈꿨던 수전에게 그 대학이 어떤 식으로 그녀의 학위를 취소하고, 어떻게 그녀를 대했는지를 읽으며 대학에서조차도 만연해있는 차별과 부당함이 어쩌면 그녀가 이후에 치르게 될 험난한 일들의 전초전처럼 느껴졌다.





펜실베이니아를 떠나 실리콘밸리에 입성하고 첫 입사한 회사에서 그녀를 버티지 못하게 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었다.

여성 엔지니어에 대한 차별이 그렇게 심할 줄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영화나 소설 속에서 만났던 여주인공들의 삶은 역시 영화나 소설이니까 가능했던 것일까?

현실이 영화보다 훨씬 가혹하다는 사실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우버에 입사한 수전이 첫날부터 맞닥뜨린 건 상상의 성희롱이었다.

회사는 그녀의 고충을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한 실수라서 좋은 실적을 가진 그를 처벌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준다.


1. 그와 함께 팀으로 계속 일하기. 그러나 그가 인사고과 점수를 낮게 주어도 회사에서는 책임질 수 없다. 왜냐하면 너에게 선택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2. 다른 팀으로 옮기기.


이 어이없고 황당하고 코미디 같은 상황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차례차례 고위직으로 회사의 문제점을 고발하지만 더 강압적이고 교묘하게 그녀의 의견을 묵살함과 동시에 그녀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행태가 반복될 뿐이었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그녀와 같은 일을 반복적을 당했으며

상사들의 폭언은 그들의 자존감을 사라지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생각했고, 실제로 '자살'한 직원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의 아무도 잘못된 일을 바로잡지 않았다. 아무도.

 




우버의 투자자들은 이 상황을 내내 알고 있었는데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퇴사를 하고 우버의 일을 블로그에 남기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곳에서 받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이겨내기까지 많은 생각과 결심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우버에서 당한 자신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렸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조사의 발표가 있기까지 우버가 그녀에게 저지른 일들은 파렴치한 행동을 넘어서는 일들이었다.

미행과 감시, 사돈에 팔촌까지 탈탈 털어서 그녀의 자그마한 잘못이라도 알아내어 그녀를 흠집 내려 기를 쓰는 대기업의 행태가 영화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여기 실린 이야기는 내가 더 어렸을 때 누군가가 내게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너무 두려웠지만 그래도 스스로의 손으로 운명을 지어나가고자 하면서 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낸 젊은 여성의 이야기 말이다.

 

 

이 이야기의 이전과 이후는 분명 다를 것이다.

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낸 젊은 여성의 이야기가 이제 생겼기 때문이다.

수전 파울러 이전에도 있었겠지만 묵살되거나 사라진 이야기들이 이제는 수면에 떠올랐다.

그녀의 말처럼 이 일을 위해 그전의 부당함이 그녀를 준비시킨 거 같았다.

수면에 떠오른 이야기는 잊혀진 이야기들을 끄집어 낼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달라질 것이고, 달라져야 할 것이다.

 

 

아주 많은 이유에서 그것은 잘못된 결정이었고 그때 나는 그것이 잘못된 결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서워서 그냥 따르고 말았지만 두려움이라는 변명이 내 도덕적 책임을 면제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평생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가기 싫었던 그녀의 용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빛이 되었다.

세상이 또 한 번 나아지는 데 밑거름이 되는 일을 수전 파울러가 해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이러는데 우리나라는 어떨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직장 내 성희롱, 괴롭힘, 폭언, 부당함, 편견 안에 갇혀서 숨쉬기 힘든 분들에게 이 글이 자그마한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결국 누군가는 해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쉽지 않은 길을 가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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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체스트넛맨
쇠렌 스바이스트루프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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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스릴러 한 편이 가을과 함께 밤나무를 소재로 찾아왔습니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오리지널 시리즈로도 상영중이죠.

표지의 밤 인형이 독특하면서도 소름 끼치며 서늘해 보입니다.

 

인트로에서 독자는 범인을 알게 됩니다.

1989년 10월 31일 화요일에 벌어진 끔찍한 참사에서 독자는 범인을 마주하죠.

그리고 이어지는 10월의 살인 행각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여자들이 하나 둘 살해됩니다. 살아있을 때 손목이 절단되는 고통을 겪고 수없이 얻어 맞고 눈이 파인 채로 말이죠.

그리고 그 현장엔 범인의 흔적이 없습니다. 딱! 하나 있는데 밤으로 만든 인형입니다.

마치 유혹하듯, 수수께끼처럼 살인 현장에 놓인 밤 인형살인자의 표식이자 유일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밤 인형엔 1년 전 납치된 후 실종된 사회부 장관의 딸 크리스티네의 지문이 묻어 있습니다.

크리스티네의 사건은 범인이 자백을 해서 이미 종결된 사건이지만 시신을 찾지는 못했죠.

우리는 1989년에 일어난 사건 현장에서 범인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현재 범인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알 수 없기에 범인을 알 길이 없죠.

 

독자가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지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매력!

 

딸 레를 혼자 키우는 형사 툴린.

컴퓨터 전공인 그녀는 강력반에서 새로 신설되는 사이버 수사대로 전근하기 위해 반장의 추천서를 원한다.

하지만 반장은 자신의 부서가 축소되고, 그나마 실력 있는 인재를 사이버 수사대로 빼앗기고 싶지 않다.

그래서 유로폴에서 징계를 받고 좌천되어 잠시 머물게 된 헤스를 그녀에게 파트너로 붙인다.

그리고 첫 번째 사건이 터진다.





이 일에 매진하는 두 형사는 사실 사건보다는 자신들의 문제에 더 관심이 많다.

툴린은 딸아이와의 시간을 더 갖기 위해 전근하기를 갈망하고 헤스는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떠돌이 인생을 택했다.

그런 그들 앞에 끔찍한 연쇄 살인이 펼쳐지고, 1년 전 실종사건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헤스의 생각을 모두 부정한다.

하지만 툴린은 처음엔 미덥지 않았던 헤스에게서 다른 점을 발견하고 헤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만 보란 듯이 뒤통수를 맞는다.

결국 그들은 의기양양한 반장의 주도하에 모든 사건을 마무리하게 되는데...

 

범인의 모든 흔적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 이야기가 단순한 살인사건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뻔한 스릴러가 되었겠지만

살인사건을 통해서 아동학대와 사회복지 시스템의 허점을 이야기하기에 뻔한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의 거짓말을 만회하기 위해 열심히 역량을 다해 사회복지에 힘쓰는 로사 하르퉁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인간의 또 다른 속성을 보게 된다.

비극의 씨앗은 그녀의 거짓말에서 싹이 텄으니까...

 

<<예상하지 못한 범인과 만나게 되는 충격!>>

 

진짜 범인을 알아채는 순간 경악하게 되는 반전이 도사리고 있는 이 스릴러는

여러 번 독자의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사실 나는 이 이야기를 드라마와 병행해서 읽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 책보다 더 리얼하게 다가왔다.(배우가 연기를 잘해서인가?)

드라마는 원작에 거의 충실하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더 체스트넛맨 원작 소설에 담긴 인물들의 생각들과 심리와 디테일한 부분을 다 담아내지 못했다.

 

더 체스트넛맨.

이 이야기엔 사회문제와 살인사건과 반전과 로맨스가 함께 담겨있다.

그러나 치우치지 않고, 질척이지 않아서 색다른 매력을 준다.

이 이야기가 영미소설이었다면 어떻게든 삽입되었을 로맨스 부분이 과감하게 생략되었지만

묘한 여지를 남겨두어서 왠지 다음 편이 있을 거 같은 상상을 하게 한다.

헤스와 툴린의 캐미가 좋아서 두 사람의 발전된 이야기와 함께 시리즈로 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갖게 한다.

 

꼭두각시를 움직이는 줄이 천장에 계속 매달려 있는 느낌이다.

 

 

더 체스트넛맨의 분위기를 잘 짚어낸 문장이다.

그 줄을 타고 올라가서 조종자를 찾아내는 헤스의 '촉'

편한 삶을 바라지만 사건을 바라보는 '촉'이 누구보다 감각적인 툴린.

두 사람의 끈질김이 오래 자행되어 온 '살인의 행각'을 멈출 수 있었다.

 

이제 밤 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를 보며 가을을 느끼기는 글렀다.

그 밤송이들을 보며 나는 이 체스트넛맨을 떠올릴 테니..

 

체스트넛맨 어서 들어와요, 체스트넛맨 어서 들어와요.....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체스트넛맨의 반전 매력에 빠져보세요.

가을이 더 새롭게 느껴지실 겁니다.

덴마크 스릴러의 첫 맛이 매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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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수집노트 - a bodyboarder’s notebook
이우일 지음 / 비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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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우습고 만만한 바다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운동이라고는 전혀 소질 없이 반평생을 살아온 만화가 이우일.

그는 마흔 넘어 서퍼의 길을 부지런히 가고 있다.

스포츠와 자신을 전혀 상관없는 사이라고 선을 그은 탓에 서핑을 스포츠로 분류하는 것조차 반대한다.

 

아내 버전 #하와이하다 를 읽으며 하와이에서 보드를 타는 인생을 즐기는 두 사람을 먼저 만났다.

하와이하다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이유는 파도, 서핑, 서퍼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뭔가에 빠지면 다른 건 보이지 않는 사람의 모든 것이 담긴 책이다.





글 사이사이 시원한 그림들과 일기와 4컷 만화가 눈을 심심치 않게 한다.

그렇게 파도가 좋고, 서핑이 좋을까?

해보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은 이런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아무리 좋아도 겨울 바다에서 파도타기는 너무 위험해 보이지만 서퍼들에게는 문제 되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국내에 갇혀 있어야 했고, 덕분에 다른 바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바다를 느끼는 모습도 신선하다.

 

수영을 못하는 나로서는 영화 속에서만 보던 파도타기의 장관을 글로 접하려니 더 조마조마하다.

영화 속의 서퍼들은 전문 서퍼들이고 그들이 연출하는 장면은 맘 편히 볼 수 있지만

이우일 작가의 파도타기는 짠하고, 불안하고, 조마조마하고, 그러면서도 중독성 있다.





위험과 위험 사이에서 삶을 즐기는 것. 어쩌면 그것만이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장롱면허만 몇 십 년째 가지고 있지만 늦게 배운 서핑에는 진심인. 그래서 운전까지 하게 되는 사실 앞에서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는 것인지를 배우게 된다.

자신이 간절하게 원하는 게 있으면 그것을 위해 못할 것이 없는 게 바로 사람이다.

 

파도타기에 빠지면 안 되는 것이 '눈치'라고 한다.

눈치껏 좋은 파도를 골라서 잽싸게 타야 하는 것.

눈치가 없으면 좋은 파도도 놓치고, 사람들의 눈총만 받게 된다는 사실은 왠지 인간사를 축약해 놓은 거 같다.

 

눈치를 살피다 보면 일취월장하는 것이 파도타기란다.

눈치를 살피다 보면 성공하는 것이 인간사듯이.

 

4컷 만화에서 만나는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

그 만화를 보면서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 지금도 늦지 않았어. 너만의 취미를 가져봐.

- 이제라도 네가 빠져들 수 있는 뭔가를 찾아봐.

- 이렇게 살다간 미래에 재미없는 할망구로 남을 테니 각오해!

이런 꾸중이나 듣지 않을까?

 

뭔가에 빠질 수 있다는 건 열정적이라는 뜻이고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모습은 인생을 즐기면서 산다는 뜻인 거 같다.

이런저런 생각에, 이런저런 눈치에, 이렇고 저렇고 하는 남들 말 듣기 싫어서

아니면 스스로 나는 그런 열정이 없어. 라는 말로 자신을 주저 앉히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열정을 알리고 싶다.

 

파도타기는 인생타기와 마찬가지고

남의 눈치보다는 파도의 눈치를 봐야 하고

자투리 시간보다는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하고

순간의 파도를 즐기기 위해 죽음도 각오해야 하지만

그것이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그러기 위해 내가 나를 자꾸 담금질하게 되는 것이다.

 

멋지게 산다는 건

결국 멋지게 나이든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지를 고민할 시기에

이 책은 나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길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눈치'보기이다.

이 눈치는 나에 대한 눈치다.

남의 눈치만 살피느라 정작 나 자신의 눈치는 없는 나 자신에게

이제부터라도 내 눈치를 보라는 뜻인 거 같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보라는 것.

맘만 먹고 있다가 매번 나중으로 미루었던 일을 시작하라는 것.

뭔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건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킨 것.

시작했으면 열정을 쏟으라는 것.

 

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을 실천하게 만드는 용기를 주는 이야기였다.

내가 파도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올라타거나

부서지거나

 

어떤 것이 더 힘에 겨울지는 해봐야 안다.

그러니 생각만 하지 말고 그냥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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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친구 웅진 세계그림책 216
샬롯 졸로토 지음, 벵자맹 쇼 그림, 장미란 옮김 / 웅진주니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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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갈색 머리 친구가 있었다.

더없이 소중한...

우리는 수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함께 놀았다.

첨벙첨벙 개울을 지나고, 들꽃을 가지고 놀고, 노래를 부르고, 빗소리를 듣고,

책도 읽고,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갈색 머리 친구의 옆엔 다른 아이가 있었다.

갈색 머리 친구는 나와 하던 놀이를 다른 아이와 하고 있었다...

 

 

인간관계란 어디에서 어긋나고 어디에서 닿는 건지 이 나이에도 아직 모르겠다.

<<안녕, 내 친구>>라는 제목의 책을 펼쳐 읽기 전에는 '안녕'의 의미가 친구에게 하는 인사의 의미로만 해석됐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안녕'은 작별의 뜻이 되었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 '안녕'은 또 다른 인연이 되었다.

 

나는 친구를 잃은 이 아이가 어떻게 혼자 상처를 이겨낼지 궁금했고

이겨내지 못하고 아파하면 어쩌나 걱정했으며

이 아이의 이 상처가 나중에 다 자라 어른이 되어도 극복하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되면 어쩌나 하는 기우에 젖었다.(범죄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생긴 여파다.)

 

형제들이 많았던 옛날에는 이런 고민은 필요가 없는 얘기였을 거다.

성격이 다른 형제들 틈에서 이리저리 패를 가르다 보면 어제의 편이 오늘의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편이 된다는 걸 자연스레 습득하기 때문이다.

외동은 그래서 외롭다.

형제들 틈에서 자연스레 배울 수 있는 인간관계를 친구와 주변인의 관계를 통해서 습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외롭고, 고통스럽고, 서럽다.

 

안녕, 내 친구를 읽고 나서 든 생각은 내가 자랄 때 자연스레 익혀가는 관계의 법칙을

요즘 아이들은 책을 통해서 학습해야 하는 구나였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참 고마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마 그때쯤이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을 거예요!

 

 

갈색 머리 친구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겼듯

나에게도 새로운 친구가 생길 거고,

갈색 머리 친구가 다른 친구와 놀았듯이

나 역시 새로운 친구와 놀 테니

그때쯤이면 지금의 이 상실감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거라는 마음이 예쁘다.

 

멋도 모르고 책을 받고 마지막 페이지의 저 글을 읽었을 때 느꼈던 불안감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

책을 읽기 전에 저 글은 내게 친한 친구를 잃는(죽음을 생각했다.) 상처를 극복하는 의미로 읽혀서 너무 어두운 동화인데.. 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친구를 잃는 이야기지만 그 결이 다르기에 역시 책과 한국말은 끝까지 읽고 들어봐야 한다는 진실을 또 한 번 각인했다.

 

어른의 인간관계에서도 이 이야기는 좋은 교훈을 준다.

관계에 연연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걸 놓치게 된다.

그러니 나는 이 아이의 쿨함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자.

 

짧은 이야기는 짧아서 더 많은 해석이 가능하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을 나눌 꼬마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생각은 늘 어른들의 생각을 넘어서니까.

나에겐 어린 스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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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스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2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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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해리 보슈의 두 번째 이야기 블랙 아이스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저 위의 문장으로 압축된다.

블랙 아이스는 한 겨울 아스팔트에 살얼음이 얼어 있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보슈의 이야기에서는 신종 마약의 이름이다.

가장 새롭고, 가장 강력한 마약.

 

칼 무어 마약반 형사가 모텔에서 산탄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날려 버린 채로 발견된다.

모텔 방안엔 무어의 지문만 있고 아주 깨끗하다.

당직이었던 해리에게 가야 할 연락이 윗선을 통해 강력계로 넘어가고 무어의 사건은 자살로 결론지어지는 추세다.

하지만 해리의 촉은 자살이 아닌 것에 맞춰줘 있다.

또다시 모든 것을 거스르는 해리의 수사가 시작된다.

 

'난 내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무어의 유서라고 생각된 이 짧은 메모는 아주 많은 의미들이 담겨 있어서 책을 읽는 내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무어와 보슈는 결국 이 블랙 아이스를 통해서 자신들이 누군지 알게 되었으니까.

 

할리우드에서는 인간들 속에서 괴물이 유유자적하며 돌아다닐 수 있었다.

붐비는 고속도로 위에 자동차 한 대가 더 끼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항상 붙잡히는 놈들이 있는가 하면 항상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빠져나가는 놈들도 있었다.

 

 

해리의 상관 파운즈는 해리에게 새해가 오기 전에 실적을 올릴 수 있는 살인사건을 맡긴다.

그 살인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갑자기 은퇴를 하겠다고 하기에 사건이 해리에게 넘어온다.

해리는 자신에게 넘겨진 살인사건들을 조사하다 이 사건들이 모두 무어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게다가 무어는 자신에게 어떤 자료를 남겼다.

 

경찰 내부의 알력.

감쪽같은 위장.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어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출생의 비밀...

 

"해리 할러."

노인이 속삭였다. 화학 치료로 바싹 타들어간 얇은 입술에 잠깐 미소가 떠올랐다.

"그게 네 이름일 수도 있었는데. 헤세를 읽어봤니?"

 

해리에겐 탄탄대로의 길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

미키 할러 변호사의 배다른 동생.

해리 보슈의 진짜 태생이 알려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무어 역시 해리만큼의 태생의 비밀이 있었다.

 

블랙 아이스가 쫄깃한 이유는 해리의 선택 때문이다.

그리고 보슈는 예상 보다 일찍 홀레와 루터(영드 루터의 주인공 이름)의 대열에 합류한다.

아니.

어쩜 해리의 전례가 홀레와 루터의 길이 되었을 것이다.


 

우린 지금 완전히 다른 삶을 산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경찰과 마약조직 두목. 하지만 그들 사이에 뭔가가, 같은 동네 사람들의 유대감 같은 게 있었던 게 틀림없어.

 

 

정말 완벽한 범죄였는데.

하지만 끈질긴 형사 한 명이면 완전범죄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빙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지고

해리는 어디까지 가게 될지 벌써부터 고민스러워지는 블랙 아이스.

 

그리고 해리는 매번 로맨스를 날리는데 이번엔 무어의 전 부인 실비아다.

첫눈에 끌리는 두 사람

그 두 사람의 연애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내 생각에 보슈는 정착하고는 거리가 먼 남자인데 말이다...

 

"자네 말이 맞아, 보슈. 솔직히 말해서 자넬 잘 모르겠어. 그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그 말을 들으니 자네에 대한 걱정이 다시 고개를 드는군. 자넨 팀을 위해 일을 하지 않아. 자신을 위해 일하지."

 

 

어빙이 예리할 때가 있다니 참 다행이다 싶다.

어빙은 어째서 해리를 그렇게 눈에 가시처럼 여길까?

단지 그가 팀으로 움직이려 하지 않기 때문일까?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보슈의 이야기를 읽어 갈수록 어빙의 해묵은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가 궁금해진다.

 

해리는 무리에 있지만 언제나 혼자다.

그건 그의 숙명인 거 같다.

그렇기에 해리는 독자적인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이집 저집을 전전했고, 전쟁의 트라우마를 지닌 채 매일매일 살인사건을 보아야 하는 해리 보슈.

그는 살인범을 잡는 것에서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찾는 건지도 모른다.

그것마저 없다면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이 많으니까.

자신이 살기 위해 사랑하면서도 곁을 주지 않고, 끝까지 범인을 잡기 위해 원칙도 불사하는 해리 보슈.

그래서 점점이 그에게 빠져들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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