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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수집노트 - a bodyboarder’s notebook
이우일 지음 / 비채 / 2021년 9월
평점 :
지구상에 우습고 만만한 바다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운동이라고는 전혀 소질 없이 반평생을 살아온 만화가 이우일.
그는 마흔 넘어 서퍼의 길을 부지런히 가고 있다.
스포츠와 자신을 전혀 상관없는 사이라고 선을 그은 탓에 서핑을 스포츠로 분류하는 것조차 반대한다.
아내 버전 #하와이하다 를 읽으며 하와이에서 보드를 타는 인생을 즐기는 두 사람을 먼저 만났다.
하와이하다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이유는 파도, 서핑, 서퍼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뭔가에 빠지면 다른 건 보이지 않는 사람의 모든 것이 담긴 책이다.
글 사이사이 시원한 그림들과 일기와 4컷 만화가 눈을 심심치 않게 한다.
그렇게 파도가 좋고, 서핑이 좋을까?
해보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은 이런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아무리 좋아도 겨울 바다에서 파도타기는 너무 위험해 보이지만 서퍼들에게는 문제 되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국내에 갇혀 있어야 했고, 덕분에 다른 바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바다를 느끼는 모습도 신선하다.
수영을 못하는 나로서는 영화 속에서만 보던 파도타기의 장관을 글로 접하려니 더 조마조마하다.
영화 속의 서퍼들은 전문 서퍼들이고 그들이 연출하는 장면은 맘 편히 볼 수 있지만
이우일 작가의 파도타기는 짠하고, 불안하고, 조마조마하고, 그러면서도 중독성 있다.
위험과 위험 사이에서 삶을 즐기는 것. 어쩌면 그것만이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장롱면허만 몇 십 년째 가지고 있지만 늦게 배운 서핑에는 진심인. 그래서 운전까지 하게 되는 사실 앞에서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는 것인지를 배우게 된다.
자신이 간절하게 원하는 게 있으면 그것을 위해 못할 것이 없는 게 바로 사람이다.
파도타기에 빠지면 안 되는 것이 '눈치'라고 한다.
눈치껏 좋은 파도를 골라서 잽싸게 타야 하는 것.
눈치가 없으면 좋은 파도도 놓치고, 사람들의 눈총만 받게 된다는 사실은 왠지 인간사를 축약해 놓은 거 같다.
눈치를 살피다 보면 일취월장하는 것이 파도타기란다.
눈치를 살피다 보면 성공하는 것이 인간사듯이.
4컷 만화에서 만나는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
그 만화를 보면서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 지금도 늦지 않았어. 너만의 취미를 가져봐.
- 이제라도 네가 빠져들 수 있는 뭔가를 찾아봐.
- 이렇게 살다간 미래에 재미없는 할망구로 남을 테니 각오해!
이런 꾸중이나 듣지 않을까?
뭔가에 빠질 수 있다는 건 열정적이라는 뜻이고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모습은 인생을 즐기면서 산다는 뜻인 거 같다.
이런저런 생각에, 이런저런 눈치에, 이렇고 저렇고 하는 남들 말 듣기 싫어서
아니면 스스로 나는 그런 열정이 없어. 라는 말로 자신을 주저 앉히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열정을 알리고 싶다.
파도타기는 인생타기와 마찬가지고
남의 눈치보다는 파도의 눈치를 봐야 하고
자투리 시간보다는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하고
순간의 파도를 즐기기 위해 죽음도 각오해야 하지만
그것이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그러기 위해 내가 나를 자꾸 담금질하게 되는 것이다.
멋지게 산다는 건
결국 멋지게 나이든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지를 고민할 시기에
이 책은 나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길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눈치'보기이다.
이 눈치는 나에 대한 눈치다.
남의 눈치만 살피느라 정작 나 자신의 눈치는 없는 나 자신에게
이제부터라도 내 눈치를 보라는 뜻인 거 같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보라는 것.
맘만 먹고 있다가 매번 나중으로 미루었던 일을 시작하라는 것.
뭔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건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킨 것.
시작했으면 열정을 쏟으라는 것.
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을 실천하게 만드는 용기를 주는 이야기였다.
내가 파도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올라타거나
부서지거나
어떤 것이 더 힘에 겨울지는 해봐야 안다.
그러니 생각만 하지 말고 그냥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