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구판절판


 나는 다케오가 나간 후에도 울부짖지 않았다. 일도 쉬지 않았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살이 찌지도 야위지도 않았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긴 시간 수다를 떨지도 않았다. 무서웠던 것이다. 그 중 어느 한 가지라도 해버리면 헤어짐이 현실로 정착해번디. 앞으로의 인생을, 내내 다케오 없이 혼자살아가야 한다니, 나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16쪽

 밖에서 부르는 노래는 서글프다. 다케오가 하나코와 같이 있을때는 더더욱.
나는 맨발을 난간 사이에 집어넣고, 난간을 잡은 두 손에 힘을 꽉 주고 몸을 앞뒤로 흔들흔들 흔든다. 가벼운 두통이 느껴지면서, 약간 속이 울렁거린다.
 그러고 보니, 나는 둘만의 장소까지 잃어버리고 말았다.-57쪽

 바란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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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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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지갑을 꺼내서 반
짝반짝 빛나는 물고기를 샀다 반짝
반짝 빛나는 여자도 샀다 반짝반
짝 빛나는 물고기를 사거 반짝반짝
빛나는 냄비에 넣었다 반짝반짝 빛
나는 여자가 손에 든 반짝반짝 빛나
는 냄비 속의 물고기 반짝반짝 빛나는
거스름 동전 반짝반짝 빛나는 여
자와 둘이서 반짝반짝 빛나는 물고
기를 가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동전
을 가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밤길을
돌아간다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밤하늘
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물을 흘리
며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를 울었다

 - 이리사와 야스오 - -8쪽

커피를 따르면서 무츠키가 말했다. 나는 도너츠를 입에다 꾸역꾸역 집어 넣는다. 엷은 커피는 뜨겁고, 건포도는 부드럽고 달콤하다. 기름과 설탕맛이 나, 나는 또 울고싶어졌다.-90쪽

"곤 씨가 무츠키 애기 낳아주면 좋을 텐데."

어처구니 없는 말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그리고 금방 어머니한테서 걸려 왔다는 전화의 내용을 짐작했다.

"어머니가 한 말 , 신경 안 써도 돼."

쇼코의 표정이 점점 절박해진다.

"지난번에 미즈호도 아기 낳으라고 그랬었어. 아주 당연한 거라고. 문어 의사도 그랬고. 하지만 그런 말은 결혼할 때도 했어. 정말 다들 이상해."

왜 모두들, 애기애기 하는 건지.
예상과는 달리, 쇼코는 울지 않았다.-104쪽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필사적인 얼굴이라, 수긍하는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까까지는 그렇게 당당하던 옆얼굴이 볼품 없이 일그러져 있다. 하얗고, 조그맣고, 연약하다. 다림질을 하러 침실로 들어가는 쇼코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녀를 궁지에 몰아 넣고 있는 것은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너무 슬펐다.-106쪽

"아버지, 은사자라고 아세요? 색소가 희미한 사잔데 은색이랍니다. 다른 사자들과 달라 따돌림을 당한대요. 그래서 멀리서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한다는군요. 쇼코가 가르쳐 주었어요. 쇼코는 말이죠, 저나 곤을, 그 은사자 같다고 해요. 그 사자들은 초식성에, 몸이 약해서 빨리 죽는다는군요. 단명한 사자라니, 정말 유니크하죠, 쇼코의 발상은."

나는 웃었다. 웃으면서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한테 이러니저러니 압력을 받는 편이 훨씬 낫다.
아버지는 웃지 않았다.
" 너희들 일은 잘 모르겠다만."
바보처럼 주절거리는 아들을 빤히 쳐다보고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하지만 나한테는 며늘아기도 은사자처럼 보이는구나."
라고 말하고, 또 조용히 웃었다.-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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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유용주 지음 / 솔출판사 / 2002년 9월
절판


길에는 땀이 묻어 있다 배개에 침이 묻어 있고 벽에는 흙탕이 묻어 있다 말에 뼈가 묻어 있다 바람에 비가 묻어 있고 풀잎에 이슬이 묻어 있고 나무에는 불이 숨어 있다 산에는 구름이 묻어 있고 하늘에는 별이 묻어 있고 감옥에는 피가 묻어 있다 사람들 가슴속에는 칼이 묻어 있다-12쪽

초심을 잊지 말자 .-19쪽

개는 못 먹는 것이 없다. 사람이 먹는 음식이면 무엇이든 따라 먹고 사람이 먹지 못하는 가래침도 먹고 똥도 먹고 풀도 먹고 흙도 먹는다. 상하고 썩은 음식도 먹고 심지어 약 먹고 죽은 까치나 꿩도 먹는다. 먹고 난 다음에는 아무 데서나 잔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지만 몰려오는 잠은 물리칠 수 없었다 보다. 방울이(시골집에서 기르던 개)가 죽었다. 잠자듯이 죽었다. 이젠 사람들이 몰려들어 개를 먹어치울 차례다.-22쪽

발자국에 때가 묻으면 신발이 무거워지고 신발이 무거우면 몸이 무겁고 몸이 무거우면 영혼 또한 무거워 지는 것이니, 걷는 일도 반성하라. 거을면서 반성하라, 네 발자국 소리를 잘 들어라.-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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