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로부터의 유산
국제정치경제연구회 엮어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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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파시즘세력과의 반파시즘세력의 전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이 종전하자마자 전 세계는 전쟁 아닌 새로운 전쟁인 냉전에 휘말리게 된다. 이 책의 1부는 냉전시대 자본주의 진영의 국제경제질서를 설명한다. 고전적 자유무역체제와 브레튼우즈를 통한 미국의 패권적 지배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한 새로운 국제경제질서를 설명함으로서 변화의 궤적을 쫓고 있다.

 2부에서는 국가 내부에서의 정치경제의 변동을 설명하고 3부에서는 1부의 국제정치경제와 2부의 국내정치경제를 혼합하여 설명하고 있다. 70년대 초까지 자본주의가 호황기를 맞았으나 70년대 오일쇼크의 충격으로 기존의 이윤율 저하의 경향이 급격하게 나타나게 되고 국제경제의 적신호가 켜짐으로써 금태환을 보장하여 기축통화로서 달러가 존재할 수 있었던 브레튼우즈체제의 종말이 고해졌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4부는 1, 2, 3부에서 보여준 20세기로부터의 유산을 통하여 21세기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었다.

 이 책의 저자가 국제정치연구회로 되어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연구회원들의 논문들이 묶여 출판된 것으로서 완벽한 통일성이 있지는 않지만 하나 같이 좋은 논문들이라고 여겨 진다^^. 특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정진영 경희대 교수나 이성형 서울대 교수의 글은 특히 마음에 들었다.(너무 편애하나 ㅋ) 20세기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역사를 훑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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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그랜드 펜윅 시리즈 1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6월
절판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벨기에 사람이나 아일랜드 사람, 혹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아무런 가책도 없이 작은 나라들에게 파괴를 자행하는 한, 이 세계는 여전히 문명화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겁니다. 각 나라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힘 없고 가난한 시민들 또한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지원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는 한 문명이란 단지 이름뿐이거나, 아니면 진정한 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문명이 없다면 어떠한 개인도 안전하지 못하며 어떤 국가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또한 그렇게 된다면 세계 자체도 안전하지 못할 것입니다."-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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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그랜드 펜윅 시리즈 1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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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 만에 책을 보면서 크게 웃었던 것 같다. 너무나 억지스러운 우연들이 맞아들어가지만 결코 거북스럽지 않았다. 약소국 그랜드 페윅이 뉴욕을 침공해 미국에게 전쟁에서 승리해 약소국들이 중심이 된 세계평화체제를 수립한다는 이 기막힌 발상은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우습지만 또한 결코 우습지 않은 책이다.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은 냉전시대이다. 미국과 소련의 대립 속에서 핵이라는 무기는 이 세상이 언제 한 줌의 재로 변할지 모르는 공포의 시대로 만들었다. 아마 저자가 이 글을 쓸 당시에는 이 공포의 시대는 결코 끝나지 않는 긴 어둠의 터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냉전이라는 이름 속에서 각 진영에서 강대국들이 벌인 횡포는 많은 약소국들의 정치적, 경제적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이었으며, 약소국인 아일랜드 출신의 저자로서는 그런 현실이 너무나 싫었을 것이다. 강대국들은 UN을 만들어 모두의 이익을 실현시키는 것처럼 속였지만 결국 이사회에 포함되어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언제나 강대국이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약소국들이 중심이 되어 두 진영을 대표하는 미국과 소련을 감시-감독 할 수 있는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는 이 책의 내용은 획기적이었고, 너무나도 즐거운 상상이었다.

 지금은 냉전이 끝났고 미국 중심의 세계자본주의체제가 황혼에 접어든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냉전시기에 저자가 펼쳤던 이러한 상상력이 다시금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상상이 단지 상상에 그친다면 안 되겠지만, 어디까지나 구체적 내용은 추상적 구상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신자유주의가 몰아치는 비문명적이고 야만적 천민자본주의의 시대에 보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문명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즐겁고, 유쾌한 상상을 시작해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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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비판사회이론의 흐름
현택수 외 지음, 김호기 엮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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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사회이론은 김호기 교수가 정리한데로 “협의로는 기존의 방법론과 사회이론의 ‘정통적 합의’에 대한 비판을 뜻하며, 광의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현대성에 대한 비판을 함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비판사회이론은 마르크스주의 사회이론의 전통을 계승하며 또한 그것을 넘어서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비판사회이론가들은 좌파적(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근대적이라며 그것을 거부하는 자도 있지만)이라고 평가받고 있으며 책에서는 월러스틴, 라이트, 기든스, 홀, 하비, 푸코, 부르디외, 투렌, 하버마스, 오페, 안데르센이 소개되고 있다.


개괄적 소개서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책은 각각의 인물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쉽게 여러 학자들의 주요 주장들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단점으로는 그들의 그런 주장들이 어떤 배경에서, 그리고 각각의 주장들이 어떤 상호연계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이라는 점일 것이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내 수준이 부족해서인지 글이 어려운 것인지 몰라도 이 책에서 처음 접하는 학자들 예컨대 에릭 올린 라이트나 데이비드 하비 그리고 요스타 에스핑 안데르센의 대한 소개 글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이나 앤서니 기든스 그리고 미셜 푸코, 피에르 부르디외, 위르겐 하버마스 등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학자들이 펼쳤던 근대성과 탈근대에 대한 논의들은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생각된다. 특히나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수많은 논의들이 이들의 이론적 기획에 의해 구성된 사회이론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했을 때 이들의 주장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우리에게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이론에 대한 간략한 이해를 돕는데 꽤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며 나 같은 하수들이 한 번 쯤 읽어 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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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칼라의 위기 - 화이트칼라는 자본주의로부터 어떻게 버림받고 있는가?
질 안드레스키 프레이저 지음, 심재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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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97년 외환위기가 한국에서 발생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화이트칼라가 된다는 것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며 한국사회에서 중산층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화이트칼라들의 삶은 어떠한가? 그들은 언제나 쫓기며, 미래를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중산층 이상의 삶을 바라는 대부분의 우리들 역시도 그런 사회현실의 변화 앞에서 언제나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보다 먼저 신자유주의 개혁이 이루어졌던 미국에서의 화이트칼라들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이 책은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프레이저는 <뉴욕타임스>나 <포브스>와 같은 유명한 언론에 비즈니스 기사를 기고하는 칼럼니스트로서 화이트칼라들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였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은 사회적 변화를 통해서 노동자의 삶의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을 많이 닮았다. 물론 리프킨의 그 책은 기계의 발달과 그로 인해 노동력의 필요가 감소하는 블루칼라를 좀 더 중점적으로 다루었다면 이 책은 기계의 발달이 화이트칼라의 삶을 어떻게 기업에 종속시켰는지를 보여준다. 화이트칼라는 발달된 통신기계의 덕택(?)으로 출근한 상태이든, 퇴근한 상태이든 언제든지 회사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가정과 직장의 구분선을 뭉개버리기에 충분하였다. 7/24 즉 일주일에 7일을 일하고, 하루에 24시간을 일하는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극단적으로 효율적인 상태가 되게 되는 것이다. 즉 과거에 한 명의 노동자가 일주일에 5일 하루에 8시간밖에 일을 하지 못했다면 지금은 과거 노동자 3~4명이 하던 일을 한 명의 노동자가 과도하게 떠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많은 화이트칼라들이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대량해고 당하고 그 해고의 물결 속에 휩쓸리지 않기 위하여, 즉 생존을 위하여 각각의 화이트칼라들은 자신의 여가는 고려하지 않은 채 기업에 충성하는 충견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화이트칼라들의 삶은 마치 고대 노예의 삶과 다를 바가 없어지게 되었다. 고대 노예들이 쇠사슬에 묶여 매를 맞으면서 일을 했다면, 현대의 화이트칼라들은 핸드폰과 노트북 등 통신시설에 묶여서 호출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기업들이 보다 더 많은 이윤추구를 위하여 기존에 화이트칼라에게 제공되던 수많은 혜택들 예컨대 복지혜택이라든지, 퇴직금이라든지 다양한 것들을 폐지하고 임금상승을 억제시키는 등 화이트칼라들은 구조조정이라는 서바이벌의 장 속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그 서바이벌의 장은 더욱더 좁아지고만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처해 있는 화이트칼라와의 인터뷰들은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만 같아 숨이 너무나 갑갑해졌다.


이 책의 부제는 ‘화이트칼라는 어떻게 자본주의로부터 버림받고 있는가?’이다. 그러나 저자는 다양한 화이트칼라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들의 삶이 어떻게 피폐화 되어지는 데에만 초점을 맞출 뿐, 그런 현상이 왜 나타나고 있는지 원인에 대해서는 별 설명이 없다. 그나마 있는 설명이라고는 미국의 경제상황 악화라는 너무나도 단선적인 인식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은 있다며 마지막 장에서 자위한다. 경영자들이 지금의 이러한 시스템이 기업에 큰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노조가 활성화 된다면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너무나도 파편적인 인식에 불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읽는 동안 사람의 숨을 막히게 만들었다. 이 책 속에 나와 있는 그들의 삶이 결국 내 미래의 모습이 아닐지, 아니 그러한 삶조차 영위하지 못하고 그런 삶을 갈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닐지 수많은 두려움이 내 마음 속을 어지럽혀 놓았다. 그렇지만 언제나 모순에 의해 세상이 변해가는 것처럼, 이러한 모순이 또 다른 세상을 펼쳐낼 것이라고 생각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상을 다시 그리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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