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의 위기 - 화이트칼라는 자본주의로부터 어떻게 버림받고 있는가?
질 안드레스키 프레이저 지음, 심재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내가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97년 외환위기가 한국에서 발생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화이트칼라가 된다는 것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며 한국사회에서 중산층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화이트칼라들의 삶은 어떠한가? 그들은 언제나 쫓기며, 미래를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중산층 이상의 삶을 바라는 대부분의 우리들 역시도 그런 사회현실의 변화 앞에서 언제나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보다 먼저 신자유주의 개혁이 이루어졌던 미국에서의 화이트칼라들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이 책은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프레이저는 <뉴욕타임스>나 <포브스>와 같은 유명한 언론에 비즈니스 기사를 기고하는 칼럼니스트로서 화이트칼라들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였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은 사회적 변화를 통해서 노동자의 삶의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을 많이 닮았다. 물론 리프킨의 그 책은 기계의 발달과 그로 인해 노동력의 필요가 감소하는 블루칼라를 좀 더 중점적으로 다루었다면 이 책은 기계의 발달이 화이트칼라의 삶을 어떻게 기업에 종속시켰는지를 보여준다. 화이트칼라는 발달된 통신기계의 덕택(?)으로 출근한 상태이든, 퇴근한 상태이든 언제든지 회사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가정과 직장의 구분선을 뭉개버리기에 충분하였다. 7/24 즉 일주일에 7일을 일하고, 하루에 24시간을 일하는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극단적으로 효율적인 상태가 되게 되는 것이다. 즉 과거에 한 명의 노동자가 일주일에 5일 하루에 8시간밖에 일을 하지 못했다면 지금은 과거 노동자 3~4명이 하던 일을 한 명의 노동자가 과도하게 떠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많은 화이트칼라들이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대량해고 당하고 그 해고의 물결 속에 휩쓸리지 않기 위하여, 즉 생존을 위하여 각각의 화이트칼라들은 자신의 여가는 고려하지 않은 채 기업에 충성하는 충견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화이트칼라들의 삶은 마치 고대 노예의 삶과 다를 바가 없어지게 되었다. 고대 노예들이 쇠사슬에 묶여 매를 맞으면서 일을 했다면, 현대의 화이트칼라들은 핸드폰과 노트북 등 통신시설에 묶여서 호출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기업들이 보다 더 많은 이윤추구를 위하여 기존에 화이트칼라에게 제공되던 수많은 혜택들 예컨대 복지혜택이라든지, 퇴직금이라든지 다양한 것들을 폐지하고 임금상승을 억제시키는 등 화이트칼라들은 구조조정이라는 서바이벌의 장 속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그 서바이벌의 장은 더욱더 좁아지고만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처해 있는 화이트칼라와의 인터뷰들은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만 같아 숨이 너무나 갑갑해졌다.


이 책의 부제는 ‘화이트칼라는 어떻게 자본주의로부터 버림받고 있는가?’이다. 그러나 저자는 다양한 화이트칼라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들의 삶이 어떻게 피폐화 되어지는 데에만 초점을 맞출 뿐, 그런 현상이 왜 나타나고 있는지 원인에 대해서는 별 설명이 없다. 그나마 있는 설명이라고는 미국의 경제상황 악화라는 너무나도 단선적인 인식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은 있다며 마지막 장에서 자위한다. 경영자들이 지금의 이러한 시스템이 기업에 큰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노조가 활성화 된다면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너무나도 파편적인 인식에 불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읽는 동안 사람의 숨을 막히게 만들었다. 이 책 속에 나와 있는 그들의 삶이 결국 내 미래의 모습이 아닐지, 아니 그러한 삶조차 영위하지 못하고 그런 삶을 갈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닐지 수많은 두려움이 내 마음 속을 어지럽혀 놓았다. 그렇지만 언제나 모순에 의해 세상이 변해가는 것처럼, 이러한 모순이 또 다른 세상을 펼쳐낼 것이라고 생각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상을 다시 그리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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