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막스 갈로 지음, 임헌 옮김 / 푸른숲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독일에 있다가 혁명의 불길이 샘솟는 폴란드 바르샤바로 달려간 로자는 괴물일까 인간일까.심장의 힘찬 박동을 느끼며 행동의 가장 선두로 나가 서는 이 인간, 자신의 감정을 느낀 그대로 표현하고 주저없이 행동하는 이 인간, “혁명은 장엄하다. 나머지 모든 것은 시시할 뿐이다!”고 말하는 이 인간은 인간일까 괴물일까. 숭고함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걸까. 정치라는 바알신,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의 재물이었던 걸까.
“나 자신과 내 심장을 현기증나게 만들기 위해, 나는 곧 소용돌이 속으로 온몸을 던질 것이다. 그것만이 나에게는 유일하게 합당한 것이다.”


그러나 
로자는 묘비에 ‘츠비-츠비’라는 두 음절을 새겨주기를 바란다. “그건 검은 박새들의 울음소리예요. 내가 그 소리를 그럴듯하게 흉내내면 새들은 금방 날아오르곤 하지요.”
라고 말하기도 했단다. 너무 많은 것들을 한 몸으로 끌어안았던 인간.
“내게 남아있는 얼마 안 되는 생의 날들과 아직도 배워야 할 수많은 것들을 생각할 때면, 나는 두렵다.”
“요컨대, 만사를 크게 보고 웃으면서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 이별 그리고 향수. 삶이란 그런 게 아니던가. 그리고 늘상 있어온 문제들이 아니던가. 삶을 전체적으로 볼줄 알아야 한다. 동시에 그 무엇도 빠뜨림 없이, 삶이 제시하는 모든 것 속에서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아니면 그녀의 수많은 콤플렉스가 그녀를 그렇게 이끈 걸까. 여자에 유대인, 절름발이라는 콤플렉스. 그러나 그녀는 삶을 이 모든 흔적을 떼어놓은 채 살아간다.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낭만주의의 뿌리』에서 이사야 벌린이 독일에서 낭만주의가 태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말한 것과 같이 콤플렉스가 그녀를 이상주의자로 만든 걸까.
“나는 본래 이상주의자이며, 이상주의자로 남기를 원한다.”

대체 인간이란 무엇이며 역사란 무엇일까. 나는 아직도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책에 나오는 교과서 같은 이야기-인간성, 희생, 연대-는 단순히 교과서일 뿐이며 어떤 선을 지키기 위한 안간힘 같은 것인지도. 어느 때가 되면 이 선을 끊고 나와 먹고 먹히는 사회로 편입되어야 하는지도. 그곳에서 인간성이란 달콤하고 따뜻한 단어는 합리화를 위해 필요한 전설 같은 건지도.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데도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어떤 중요한 행동을 이루려는 조급함과 주의력 부족으로 방어할 힘도 없는 가엾은 사람을 뭉개버리는 인간들은 누구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런 말들은 그저 그들에게만 허용되는 말일지도. 거인들. 너무 많은 눈물이 세상에 흘러넘치는데, 이 작은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만 될 뿐인 전설. 우매한 대중이 그 역사의 현장에서 나치즘 쪽으로 기울어졌던 데 대해, 이 대중의 우매함에 대해 무엇이라고 할까.

그러나 로자가 이상주의자일 뿐이지 않았다는 것은 그녀가 정치 투쟁의 현장에 뛰어들고 자신이 택한 사회주의 노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쓴 여러 편의 논문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이것도 그저 안간힘이었던 걸까. 그녀는 인간과 역사에 대해 알고 있었으므로. 인간의 잔인함과 이기심에 대해, 또한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이 자연의 법칙 속에서는 한갓 아무것도 아님을. -물론 후기의 글이다
“압제, 폭력, 불의, 가난, 그리고 절망이……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영혼을 형성한다.”
“나는 모든 것이 결산되지 않으리란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절망으로 두 주먹을 움켜쥡니다……. 현재의 모든 죄악들은 결산되지 않은 역사의 계산서 더미 속에서 잊혀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과정만이 있을 뿐인가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는 유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 전부를 운명의 큰 저울 위에 유쾌하게 던질 줄 알아야 한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끝이 어떻게 되든, 우리는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삶은 그 자체로서 기쁨의 원천이며,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따라서 과연 모든 것이 잘 해결될까 라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우리는 기억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혁명 혹은 역사와 몸을 같이 하다보면 역사가 흘러가는 방향 쪽으로 먼저 몸이 가있기도 할까 라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길 그 앞자리에 이미 몸이 가있기도 할까. 그러니까 이성이나 지성이 아니라 몸이 그 방향으로 말을 유도하고 사고를 유도하여. 로자 룩셈부르크를 보면 그래 보인다, 완전히 역사 속에서 흠뻑 젖어서 먼저 물살의 흐름을 가늠하는 어부처럼.
“우리는 역사에 대해서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흔히 운명론자에게서 볼 수 있는, 지나친 자기 본위의 무기력한 인내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온힘을 다해 부딪치는, 결코 쓰러지지 않고 화강암이라도 물어뜯을 것 같은 인내 말입니다. 역사라는 이 용감한 두더지는, 빛에 도달할 때까지 밤낮으로 파헤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는, 그런 인내심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가능성의 끝까지 가려 한다. 항상 행동하고, 또한 행동을 꿈꾸며.


책을 다 읽었지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인류애, 연대, 평화라는 것은 말뿐인 공허함이며 실은 인간은 이기적이고 오직 자신 혹은 좀더 나아가 자신의 집단만을 생각할 뿐인가? 아니면 저 말들이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장벽 같은 게 있을까, 그나마 불안하게라도, 아슬아슬하게라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 법, 끊임없이 낙관하는 법, 아니 차라리 자신의 믿음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걸까.

거대한 시대에 대해 말하는 로자, 그녀의 말대로 그 시대는 거대했고 거대한 선 대신 거대한 악이 출현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시절은 수상하고 그리하여 곧 무엇이 출현할까.


마지막으로 로자와 레오의 관계는 흥미롭다. 스위스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던 1889년부터 무수한 다른 연인들을 거쳐가며 죽음에 이르는 1919년까지 서로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로 남는다. 폴란드 사회 민주당에서 스파르타쿠스단까지, 소수파 당의 선두로서 그들은 정치적 입장을 같이 한다. 또한 인간적으로, 마치 또 다른 자기를 대하는 듯한 두 사람.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 받는다.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 하다보니 대화의 내용이 아니라 대화의 결을 이해할 수 있는 사이이므로 서로가 떼놓을 수는 없게 되어 버린 듯. 그들은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만나는 대신 글로 의사소통을 하곤 했다. 그래서 1910년에는 90통의 편지를, 1911년에는 60통의 편지를 주고받는다. 그들은 편지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마치 수신자가 추상적 존재인 듯, 로자는 페이지마다 호칭은 단 한마디도 없이 글을 썼다. 레오와 관련된 개인적인 문제를 말할 때에도, 빙 돌려서 말하거나 아예 인칭을 생략해버렸다.

-“매번 나를 고문하는 것, 그건 이런 생각이에요. ‘그건 어떤 삶이었는가? 저 사람이 살다 갔다는 것, 그게 무슨 도움이 되었는가? 나에겐 이 질문보다 더 끔찍한 건 없어요. 일단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역사의 교훈…… 그것은 스스로 불쌍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누구든지 조용히 앉아서 숙고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부유한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진정 놀랍다는 것을 느껴요. 내가 ‘놀랍다’고 말하는 것은 수많은 문제들을, 사상을 날카롭게 만드는 위대한 문제들을 무더기로 제기하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독일 작가 그라베의 극작품 제목을 인용하자면, ‘비판과 아이러니와 깊은 의미’의 문제를 던지는 시대라는 말입니다. (중략) 우리 시대는 수많은 거대한 것들, 예컨대 거대한 범죄들(공허한 정부), 거대한 실패(공허한 ‘두마’), 거대한 어리석음(공허한 플레하노프 상회)을 낳는 시대입니다.”

-“선량하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그저 단순하게 선량하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다 아우릅니다. 이것은 어떤 지성보다도, 옳다고 주장하는 우쭐함보다도 더 우월한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인다. “진정한 부유함은 내면적인 자유입니다. 언제나 자연스런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정열을 통해서 스스로에게 충실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인간의 겉을 둘러싸고 있는 유리를 깨뜨릴 만큼 강렬한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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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kangda 2008-08-18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합~ 그렇군요...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