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점수 매기는 원칙

알라딘 서재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광고꾼이 된다. 서재가 상술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겠지만, '기분 좋게 속이라'는 마케팅 원칙에 입각해서 보자면 알라딘의 상술은 상술이면서도 역시 기분 좋은 상술에 해당하겠다. 어떤 책을 읽다보니 중산층은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에 나서면서 보람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 정치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자족하는 삶이 주는 여유와 자신의 삶에 위험이 되지 않는 선에서 적정한 사회참여를 보람으로 여기는 탓이리라. 그렇다면 나의 서재질은 역시 나의 중산층 의식의 발로일까? 냉정하게 살피면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중요한 것은 200여개가 넘는 리뷰를 올리면서 나름대로 무원칙 속에서 원칙 같은 것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로빈슨이란 사람은 책 읽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해두고 있다.
이른바 학습독서법(SQ3R)이란 것인데, SQ3R은 다음의 약자이다. Survey, Question, Read, Recite, Review.

서베이(Survey) 란?
대충 훑어보는 단계를 말하는데 어떤 글을 자세히 읽기 전에 큰 제목부터 시작해서 소제목, 목차, 삽입된 이미지들, 글의 처음과 끝 부분 등 글 전체를 훑어보고 그 대강의 내용을 짐작해 보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주마간산식 독서라 할 수 있다.

질문(Question)이란?
그렇게 훑어본 내용을 통해 저자가 강조하고자 한 부분들을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읽어보는 것이다. 훑어보는 것과 질문은 사실상 거의 동시에 이루아진다.

읽기(Read) 란?
읽기부터 본격적인 독서라 할 수 있는데, 내용을 확인하고 파악하면서 이전 단계에서 품었던 의문, 궁금증을 해소해가는 단계이다. 이때 포스트 잇이나 밑줄 긋기, 중요한 맥락은 메모하기 등을 한다. 

되새기기(Recite) 란?
감상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읽은 내용들을 자신의 마음 속으로 정리하고, 저자의 동기와 목적, 이 글이 추구하는 바와 핵심은 무엇이었는가를 머리속으로 정리하는 단계이다.

다시 보기(Review)란?
우리가 서재에 올리는 글을 통칭 리뷰라고 하는데, 이는 자신이 읽은 텍스트 전체의 내용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하는 단계를 말한다. 자신이 읽은 텍스트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보태어 새로운 한 편의 글을 만들어냄으로써 내용을 보다 잘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한다. 다시 보기란 비판적 독서의 마지막 단계라 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나의 리뷰는 다음의 요소들에 의해 좌우된다.

1. 나에게 정보와 지식을 주는가?
2. 저자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해석했을 때, 그의 관점에 얼마나 동의할 수 있는가?
3. 저자의 책을 읽음으로 나는 새로운 경험을 얻었는가?
4. 얻었다면 그 경험은 나에게 얼마나 유익한가?
5. 책을 읽은 뒤 나의 감상은 얼마나 새로운 경지에 이를 수 있었는가? 그런 이끌림을 얻었는가?
6. 책을 읽은 뒤 나는 어떤 종류의 즐거움을 얻었는가?
7. 이 책을 타인에게 권할 수 있는가?
8. 책을 읽은 뒤 느낀 단점, 미비한 점들은 이 책의 장점과 비교해 얼마나 상쇄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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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누군가 리뷰를 읽은 뒤 불만이나 궁금한 점을 이야기할 때 나는 얼마나 논증가능한가?
10. 책의 장정이나 편집 등의 분야에서 불만은 없는가?

앞의 1에서 8까지 책의 내용에 대한 것으로 별 점수 주기에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면 뒤의 두 가지 물음은 별 점수 주기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다음은 그냥 재미삼아 올린 별 점수 주기 이야기인데, 별 다섯을 준 책이라고 해서 아래 말한 이야기에 전적으로 해당하는 것도 아니고, 별 넷이라고 해서 특별히 문제가 되는 책도 아니다. 다만, 별 다섯과 별 넷, 별 셋은 나름대로 확실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별 셋 미만은 누가 돈 주고 시키면 몰라도 굳이 시간 버려가며 리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책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별 셋 미만으로 서평 올린 적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별 다섯 *****
-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을 만큼 풍부한 정보와 지식을 준다.
- 아, 거의 전적으로 동감한다. 동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이해는 할 수 있다.
- 새로운 시야를 얻었다. 유익한 경험이었다. 넌 날 미치게 하는구나.
- 고럼고럼, 유익하고 말고...
- 더욱 성장한 기분이 든다.
- 여러 복잡한 종류의 즐거움을 얻는다.
- 읽고 별로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화날 것 같다. 누군가 이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경험일 것 같다.
- 앞으로 100년 후까지는 몰라도 10년 후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읽고, 읽은 뒤엔 보탬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별 넷 ****
- 누구에게나 권할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구나 똑같은 경험을 못할 수도 있겠다.
(너무 전문적이거나 사전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어려울 수도, 쉬울 수도 있겠다.)
- 동감하는 부분이 크기는 하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게 된다.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
- 새로운 시야이지만 미진하거나 다소 익숙한 관점이다.
- 유익하게 읽었다. 새롭지는 않더라도 진부하지는 않다.
- 어느 정도는 성장한 기분이 든다.
- 즐겁게 읽었다.
- 권할 수 있다. 읽고 별로였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 지금 당장은 확실히 좋은 책이다. 그러나 10년 뒤에도 여전히 읽을 사람은 읽겠지만 고전이 되리라거나 그렇게 되길 희망하는 것은 여러 다른 요인들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별 셋 ***
- 읽고 싶은 사람들이 읽는 건 말릴 수 없다.
- 비판적으로 읽는 것이 좋겠다.
- 동감하긴 어렵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 부분적으로 새로운 부분이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익숙한 이야기들이다.
- 뭐 나름대로 유익했다.
- 아쉬움이 남는다.
- 거참, 읽고 싶은 사람들은 읽으시라니깐.
- 한 때 유행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나 오래갈지는 미지수다.

별 둘 **
- 정말 읽고 싶어?
- 비판할 의욕이 들까?
- 동감이라니 섭섭하네.
- 야, 또 그 소리를 하고 있니.
- 시간이 아깝다.
- 권하면 욕먹는다.
- 출판사 사장이랑 친구지?

별 하나 *
- 읽지 말라고 소문내고 다니고 싶다.
- 비판이라니 그것도 아깝다.
- 동감이라고? 어, 안녕히 가세요.
- 이건 반동이얏!
- 흑흑, 이건 천천히 자살하는 거라구.
- 목숨걸고 말려야지.
- 돈 주고 출판했지. 이거 교정본 친구가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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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11-12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갑자기 굉장히 부끄러워집니다.

제 별의 기준은 오직 하나, "얼마나 내 맘에 들었나?" 이건만....^^;

물만두 2004-11-12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조건 추리 소설을 읽게 하고 싶은 소녀는 어찌하오리까. 흑...

갈대 2004-11-12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하게 정리를 해주셨네요. 앞으로 별점 매기는 데 유용한 기준이 될 것 같습니다.

뭐, 그래도 제 별점은 별로 믿을 만한 것이 못 되지만요^^

마태우스 2004-11-12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큰 도움이 될 듯 싶어요
질문이 있습니다. 이런 건 어떻습니까?

<월든>; 아주 힘들게 읽고나서 "이제 이 책 읽었다고 자랑해야지!"란 마음이 들었어요.
즉, 읽고나서 무지하게 뿌듯했는데, 그 이유가 다른 것일 때...
<위대한 개츠비>: 명성이 자자한 책인데 그 명성에 걸맞는 감동을 못느꼈을 때, 물론 이건 제가 모자라서지만요.

바람구두 2004-11-12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우맘님의 원칙과 제 원칙은 궁극적으로 같은 것이죠. 제가 잡다하게 늘어논 말을 진우맘님은 한 마디로 압축해버리네요. 흐흐. 물만두님! 그럴 때는 추리소설을 추천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갈대님! 본인의 원칙만 있다면 괜찮은 거 아닌가요? 제 원칙 역시 지극히 사적인 것이니까요. 마태우스님! 월든을 읽고 이 책 읽었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자랑하면 되지요. 그 이유가 다른 것이라는 건, 그 이유가 뭔지 모르는 한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긴 한데, 난 이런 책도 읽는다구란 차원에서라면 그런 차원에서 자랑할 만한 일이구요.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엔 명성에 걸맞는 감동을 못 느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물론 그건 마태우스님이 모자른 탓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거지만 본인이 모자라서 그렇게 느낀다고 자책하고 싶다면 그걸 누가 말리겠습니까? 흐흐... 저는 각자 자신의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할 따름입니다.

바람구두 2004-11-1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한 마디 더 하자면 "위대한 개츠비"는 저도 별로 였답니다. 흐흐... 역시 제가 모자란 탓이지요. 마태님과 저는 그런 의미에서 동지로군요.

하얀마녀 2004-11-12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야... 이거 재밌네요. 저도 리뷰쓸 때 참고해야겠습니다. ^^

비연 2004-11-12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저는 '느낌'으로 하는데...그냥 읽고 나서 드는 느낌. 육감. 흠..

매우 주먹구구 배추장수 방식이라는 생각이...ㅜ.ㅜ 부끄...

mannerist 2004-11-12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헤... 제 분류와 다소 비슷하신듯요.



열광 앤드 환장 *^o^*

제값보다 비싼 ^_^o-

본전치기 -.-

그돈으로 딴거할걸 T_T

폐간 및 폐반 권고 -_-+



위대한 개츠비. 왜 양놈들이 여기에 환장했나 연구중입니다;;;;

sweetrain 2004-11-18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그리고 제가 주로 쓰는 화장품 리뷰에 있어 별 다섯개는 거의 없고(워낙에 화장품이라는 게 개인차가 있거든요...) 별 네 개(적어도 두 개 이상 같은 제품을 사서 쓴 것, 꾸준히 잘 썼던 제품이고 누구한테나 무난하게 맞을 듯 싶은 제품) 별 세 개(그냥 한번 사서 써 볼 만은 하나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제품) 별 두 개(너무 비싸거나 트러블이 있거나 그리 마음에 들지 않은 제품..) 별 한 개(이 제품 절대 사지 말라고 목 놓아 외치고 싶은 제품) 입니다...음 책 리뷰는 저도 진우맘님과 비슷한 기준이네요.^^

마냐 2004-11-22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