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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아들 3 - 제1부 아카데미 편
박새날 지음 / 마루&마야 / 2009년 3월
평점 :
글 중에서 가장 최악의 글은, 성의가 없는 글이다. 그것이 소설이 됐건, 어떤 장르가 됐건 상관없이. 자신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글을 그냥 얼렁뚱땅 무마시키는 것은 글쟁이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선택일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이 그렇다.
1.
일단 공작 아들은 아카데미에서 시작된다. 공작의 아들이지만, 아버지 없이 어머니 품 안에서 오냐오냐자라 나이값도 못하는 '못난이'인 아들을 정신 차리게 하기 위해 공작은 그를 아카데미로 보낸다. 만약 거기에서 '공작의 아들'임을 밝히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으면 자신의 혈육으로 인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내친다는 으름장과 함께. 여기까지만 보아도 내용은 뻔하다. 초반은 찌질대다가, 정신을 차릴 거고, 강해지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작위를 계승해 멋진 모험을 보여줄 것이다. '공작 아들'이라는 소설은 이 이상의 기대를 할 수 없는 글이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기대를 하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시작은 재밌었다. 작가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신경도 안 쓰고 그냥 읽기 시작했는데, 표현들이 참 일반적인 먼치킨에 비해서 다듬어져 있고 조금 동글동글하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나름 재밌었다. 그런데 이게 갈수록 거슬렸다. 자꾸만 등장하는, 야오이 소설 속에서나 나올법한 BL적인 상황묘사도 무척 거슬렸지만, 그보다는 그 '공작 아들'이 강해지는 그 과정이, 무척이나 심하게 '생략'되어 있었다는 것. 그들이 전투를 하거나 싸우는 과정도, 머리 속에서 그 광경이 그려지듯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얼렁뚱땅' 지나가거나, '모호하고 둥글둥글'하게 그냥 그렇게 주변만 멤돌다 끝난다. 그래도 2권까지는 괜찮았다.
작가가 전투 묘사를 '매우 힘겨워하는 것'이 갈수록 짙어지긴 했지만, 그나마 견딜 만 했다.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기에. 그저 머리 속에서 알 수 없는 이미지 덩어리만 형성하게 해주는 버거운 묘사도 참고 넘길만 했다. 그런데 3권을 보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알았다. 이 작가는 더이상의 글 쓰기를 '포기'해버렸다는 것을.
1,2권에서는 그래도 묘사하려고 노력했던 전투의 순간이나 단련의 순간들은 그냥 지나가버린다. 그 순간의 땀도, 열기도, 고민도, 무엇도 느껴지지 않고, 보여지는 것은 오직. 그 '생략된' 시간들을 통해 단련되어 '겁나 강해진 것 [같은]' 주인공의 모습일 뿐. 주인공의 열기와 땀과 노력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얘는 열심히 노력해서 강해졌대요.' 이 말로만 떼우기에 급급하다. 언제 강해진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간에 강해졌으니까 그렇게 알아먹어. 라는 식이다. 작가 본인이 했던 아카데미에서의 이야기는 3권으로 끝낸다는 말을 지키기 위해서였을까? 얼렁 뚱땅 얼렁 뚱땅, 이런 태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막판에 이르러서는 정말 어이를 놓게 만든다. 얼렁뚱땅도 정도가 있지, 내용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게 책으로 '출판'되는 것이라는 것을 까먹은 것인지, 인터넷에서, 그것도 완전 개쓰레기 허접떼기 글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알 수 없는 대사들과 짧은 지문들의 연속으로 '난 글 쓰기 싫으니까 이것만으로 대충 알아들어'라는 글이라니. 그러고도 끝에, <4권에 계속>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2.
능력이 없으면 책을 내질 말던지. 끝까지 노력할 수 없으면 글을 쓰지 말던지. 습작으로 끄적이다가, 조금 인기를 얻고, 출판사의 눈에 띄어 출판해서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자신이 쓴 글에 대해서 [책임]은 져야하는 게 아닌가? 어떻게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내는 책을, 이 따위로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1권부터 죽 느껴왔던 '역량의 딸림'이 한계에 부딪힌 것은 알겠는데, 다시 반복하지만, 그러면 책을 내질 말았어야지.
양산형 판타지, 황제의 검 같은 말도 안되는 먼치킨소설이 난립하면서, 마무리도 제대로 안 짓고 허접하게 끝내는 책들 때문에 열받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건 더하다. 그래도 그 전의 글들은 거의 마무리 즈음에 허접하기라도 했지, 이건 이제서야 겨우 초반을 벗어났는데 벌써 허접이다.
별을 달아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나를 달 뿐, 마이너스를 달려도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