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즐거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거의 비슷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한 사람은 희망 속에서 명랑하게 살아가고, 다른 한 사람은 근심 속에서 짜증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희망 속에서 명랑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앞길이 펴가고, 짜증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그만 앞길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짜증스러운 삶으로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슬픈 눈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정없이 밝습니다. 슬픔을 알고 있는것 만큼, 밝음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둔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밝은 해의 은혜를 즐길 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속담도 있습니다. ˝비관은 좁은 길이지만, 낙관은 넓은 길이다.˝

어떤 교도소의 같은 감방에 두 사람의 죄수가 들어 있었답니다. 이 감방에는 높은 벽 위에 조그만 창 하나가 뚫려 있었습니다. 그 창으로 밖의 푸른 하늘이 내다 보였습니다. 죄수중의 한 사람은 그 조그만 창으로 내다보이는 푸른 하늘을 보고 ˝야, 참 아름답구나, 저 창 밖에는 끝없는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겠구나. 앞으로 교도소에서 나가게 되면 그 푸른 하늘 아래에서 마음껏 즐겁게 살아야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야지하고 날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하며, 그 창밖으로 하늘을 내다보며 희망에 차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 죄수는 그 사람과는 반대로 ˝아, 답답해! 바늘 구멍만한 창문이 겨우 하나 있는 이런 따분한 감방에 갇혀 있다니!˝하면서 웅크리고 앉아 감방의 방바닥이 아니면 벽만을 바라보며 비관에 차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다 형을 마치고 교도소에서 풀려났습니다.

희망에 차 있던 사람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올바른 사람이 되어 잘 살았습니다. 그러나 늘 비관에만 젖어 있던 사람은 또다시 죄를 짓고 다시 교도소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낙관은 많은 것을 얻을 수가 있지만, 비관은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어떤 마을의 랍비가 그 마을에 사는 코헨이란 사람이 매을 밤부터 아침까지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말을 들었습니다. 낙관적인 이 랍비는 눈을 번득미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가! 그건 잘 했군. 한번 밤을 새울 수가 있게되면, 이번에는 ´성경´의 공부와 하나님을 찬미하는 일에 밤을 새울 수가 있을 테니까말야.˝

낙관은 너그러운 이해이기도 합니다. 낙관에는 남의 허물을 감싸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낙관은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에게도 넘어졌을 때에 다시 일어서는 힘과 나갈 길을 밝혀 주는 등불입니다.

유대인이 어떤 가혹한 박해에도 굴복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자기를 잃지 않는 것은 낙관할 만큼의 힘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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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의 사람들은 지식과 지혜가 다르다는 것을 잊고 있는 듯합니다. 100년전 500년전 1000년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사람이 지니고 있는 지식의 양은 말할 수 없이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지혜에 있어서는 오히려 옛날 유대 나라의 고전을 읽어 보아도 오늘날의 지혜가 뒷걸음질을 친 것 같습니다. 유대인의 가정에서는 1주일에 하루 있는 안식일에는 가족이 모이고, 아버지는 자녀에게 ´성경´이나 ´탈무드´를 가르칩니다. 사업가도 이 일에 지장이 없도록 여행을 합니다. 유대인은 교육이라고 하면, 학교라는 공공으 특별시설교육보다도, 가정 교육이 더 생각나게 합니다. 그만큼 가정에 있어서의 교육을 중요시 합니다. 그 까닭은 어린이들은 학교에서는 지식을 배우지만, 가정에서는 지혜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의 생활의 중심은 가정에 있습니다.

아랍나라에 돈으로 팔렸던 일본의 테러분자인 오까모도라는 자가 로드 공항에서 난사 사건을 일으키고 붙잡혔을 때,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일본인 청년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틀림없이 대학에서 지식만 배우고 지혜는 배우지 못한 모양이군´

지혜가 ´탈무드´를 태어나게 하였으며 지식이 핵탄두를 단 대륙간 유도탄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지식은 진보해도 지혜는 옛날과 변함이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5천년 이상이나 되는 옛날의 ´성경´과 ´탈무드´를 존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식을 쓴 책과 지혜를 쓴 책은 뚜렷이 구별됩니다. 따라서 지식의 책과 함께 지혜의 책도 읽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의 고전은 책으로 읽기보다는 부모가 자녀에게 전해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을 배우는 학교 교육 보다 지혜를 배우는 가정 교육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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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내가 모든너에게

이 눈꼬리가 올라간 수염 긴 친구가 사랑을 깨닫지 못한 조그만
친구에게 하는 속깊은 넋두리는 그냥 내가 그냥 너에게 말하고픈 것이기도 하지..

˝ 넌 내게 아직 수많은 소년들과 별로 다를게 없어. 그래서, 난 네가 없더라도 괜찮아. 너도 내가 없어도 괜찮을 거고, 너에게 난 수많은 남자와 다를게 없으니까.

그러나, 네가 나를 기르고 길들이면 우린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돼. 넌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이 되고 난 너에게 둘도없는 친구가 될 테니까.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내 생활은 해가 돋는것처럼 환해질거야. 어느 발소리하고도 틀리는 발소리도 알게 될거고, 다른 것이 들리면 난 굴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거야. 그러나, 너의 발소리를 들으면 음악이라도 들은듯 굴밖으로 뛰어 나오게 될거야.

언제든지 같은 시간에 오는 것이 좋을거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해.
그러다가 4시가 되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행복을 느께게 돼.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게 될거란 말이야.

그러나 만일, 네가 무턱대고 아무때나 찾아오면
난 언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지 모르니까....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막은 아름다와...
사막이 아름다운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해.

지금은 슬프겠지만 그 슬픔이 가시고 나면(슬픔은 가시는 거니까)
넌 언제까지나 내 동무로 있을거고,
나와 함께 웃고 싶어 질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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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꼭 버려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사는 동안에 그것은 빛나는 생활응 위한 강렬한 감정일 뿐입니다.
슬픔은 어떤 행복도 따라잡을 수 없는 나름대로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슬픔의 밤 위엔 언제나 기쁨의 신새벽이 깃드는 법!
우리 사는 동안에 진정으로 슬퍼해야 할 일은.. 슬픔을 단지 슬픔 그 자체로만 받아들여 결코 일어서지 못하고 허물어져버리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슬퍼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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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는 방법은 한 가지가 있다. 내일 할 일을 오늘 하고, 오늘 먹을 것을 내일 먹는 것이다.*

일을 한다는 말은 돈을 번다는 말과 같습니다. 또 먹는다는 것은 돈을 쓴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속담은 열심히 돈을 벌고, 쓰기를 더디하라는 뜻입니다. 내일 일을 오늘 한다는 것은 오늘 할일을 다 하고, 내일 일까지 하는 것이니, 두 곱의 돈을 번다는 뜻이고, 오늘 먹을 것을 내일 먹는다는 말은 돈을 되도록 적게 쓴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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