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허밍버드 클래식 M 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한에스더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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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다른 장르로 옮겨져 엄청나게 성공한 작품을 원작으로 만나보는 건 무척 즐거운 일입니다. 도대체 원작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하는 점을 주의깊게 보다보면 어느새 책 한 권 뚝딱이라니까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어마어마하게 성공했으니 아마 저처럼 뮤지컬로 먼저 접하신 분들도 많지 않을까요?


 뮤지컬과 원작 소설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다릅니다. 우선 뮤지컬에서는 지킬 박사의 서사를 따라가잖아요. 지킬이 왜 실험에 집착하는지, 왜 실험이 좌절되는지, 왜 자기 자신의 몸에다 실험을 하게 되는지, 왜 권력자들에게 복수를 하는지.. 뮤지컬에서는 거의 모든 장면이 지킬을 위해 사용되고 있어요. 하지만 원작은 뮤지컬에서는 조연에 가까운 지킬의 친구이자 조력자 '어터슨 변호사'를 화자로 내세웁니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소설을 처음 만났다면, 아마 미스터리 추리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무대 위에서 똑같은 배우가 1인2역을 하는 뮤지컬과 다르게, 소설 속에서는 지킬과 하이드는 얼굴이나 키, 몸매나 걸음걸이 같은 모든 부분이 전부 다 다르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지킬=하이드라고 연결 짓지 못하는 거구요.


 뮤지컬에서는 하이드가 지킬 실험에 반대했던 상류층 인사들 찾아다니면서 위선자라고 죽이고 다니는데, 정작 소설에서는 아주 교양있고 매너있고 친절한 신사를 그냥 냅다 후드려 패서 죽여버립니다. 왜냐면 그때 하이드는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는 중이었거든요. 이걸 저택의 하녀가 창문으로 목격하게 되는데, 그 하녀가 이 소설에 나름 비중있게 나오는 유일한 여성 캐릭터에요. 그러니까, 뮤지컬의 엠마/루시 같은 여주인공 위치의 인물은 소설에서는 아예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책 실물 보시면 아시겠지만, 상당히 얇아요.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이 모두 있다- 는 아이디어 자체에만 충실한 느낌입니다.


 저는 뮤지컬을 보면서도 '결국 지킬 내면의 악을 분리해낸 게 하이드니까, 하이드가 저지르는 악행들은 사실 지킬이 내심 원했던 거 아닌가? 그렇다면 지킬은 별로 좋은 사람 같지 않은데..' 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원작을 보니 그런 생각이 더 확고해졌어요! 심지어 소설은 지킬이 스스로 자기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엄청나게 극단적인 이중 생활을 하는 인물로 나와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둘로 쪼개서 악(惡)은 양심의 가책 없이 자유롭게 나쁜 짓을 하니 좋고, 선(善)은 양심의 가책을 안 느껴서 좋고, 윈윈이네? 같은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해내는 거예요!! 게다가 두 가지 본성 모두 자기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하이드가 저지른 악행들은 내가 저지른 죄가 아니니까~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별로 느끼지 않는 듯한 묘사도 있어서 헨리 지킬이란 인간이 너무 싫어져 버렸습니다-_- 


 결국 죄를 저지른 건 하이드였으니 지킬의 선한 면은 손상되지 않았고, 때로는 하이드가 저지른 악행을 보상하기도 했네. 따라서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지.

 내가 모른 척 했던 하이드의 악행에 관해서 구구절절 열거할 생각은 없다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저지른 죄라고 인정할 수 없거든. (p.110) 

  저기서 말하는 지킬이 보상한 하이드의 악행은, 길가던 어린 여자아이를 밟아서 비명을 지르게 하고 뭐 그런 일이었단 말이에요;;; 그런 짓을 해놓고 '그건 내가 아니라 하이드가 한 거야! 나는 잘못이 없어! 물론 하이드 역시 진정한 나의 한 조각이지만! 그래도 난 양심의 가책 안 느껴! 그건 하이드가 한 거니까!' 아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요? 지킬인 순간에도 솔직히 영 별로인 인간 아닙니까? 그 어린 소녀에게 너무 미안하네- 이 정도는 지킬로 돌아왔을 때는 느껴야 될 텐데.. 이건 뭐 뮤지컬 속에서 하이드가 때려죽이던 위선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뭣 같은 상류층 인간 수준..^^ㅗ 소설 보고 나니 역시 하이드를 만들어낸 건 지킬이다 싶어져요.


 허밍버드 클래식 시리즈가 손바닥만한 크기에 가벼운 종이를 사용해서 가지고 다니기 편하기도 하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분량이 짧기도 해서 굉장히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어요. 6장 창가에서 있었던 일 같은 경우는 페이지 수가 3페이지가 전부입니다. 그냥 잠깐 한 5분 안에 한 장 전체를 다 읽을 수 있는 거예요ㅋㅋㅋ 뮤지컬 좋아하셨던 관객이라면, 원작 소설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고전인데 딱딱하지 않고 꽤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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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허밍버드 클래식 M 2
메리 셸리 지음, 김하나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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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을 드디어 원작으로 만나봤어요!! 사실 그동안 다양한 장르, 다양한 작품을 통해 프랑켄슈타인을 만나왔지만 정작 원작은 읽지 않은 상태였거든요. 워낙에 유명한 소설, 유명한 괴담이다 보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읽지 않은 수많은 고전 중 하나였던 거죠. 읽어보니 확실히 고전이 왜 고전인지 알겠더라구요. 4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인데도 아주 그냥 술술 읽혀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괴담

 물론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는 데는 이미 캐릭터와 이야기를 대강 알고 있다는 점도 한 몫 했습니다. 어느 버전이든 상당히 많이 각색이 되긴 했지만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 애니메이션, 소설 등에서 만났던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분명하게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보신 분이라면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 아니라 창조자의 이름이며, 괴물은 따로 이름이 없이 크리쳐로만 불린다는 사실을 아실 거예요. 어릴 적에 영화 <프랑켄슈타인>이나 애니메이션 <두치와 뿌꾸> 같은 작품에서 머리에 나사를 박은 거대한 초록 괴물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소설 속 크리처의 키가 240cm나 되고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는 힘과 스피드와 체력을 가졌다는 걸 쉽게 납득하시겠죠. NT Live <프랑켄슈타인>이나 2014년 연극 <프랑켄슈타인>을 보신 분이라면 크리처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짝을 만들어달라고 빅터를 협박했던 내용을 아실 겁니다. 이런 식으로 그동안 다양한 곳에서 마주친 프랑켄슈타인의 조각들은 끝도 없죠! 이 모두가 원작을 빠르게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엄청나게 도움을 줍니다. 


 게다가 이번 허밍버드 클래식M 버전 같은 경우엔 1831년판 수정본이거든요. 그 말은 작가의 서문도 2가지 버전이고, 1818년 초판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을 작가가 수정한 내용도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는 거예요. 영화 <메리 셸리>를 만나본 저로서는 메리 셸리가 남편을 깎아내리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하면서도 본 소설은 온전히 자신의 창작물이라는 걸 밝히고, 남편은 (자기가 쓰지도 않은 소설을 자기 소설인 양 써놓은) 1818년 서문에만 크레딧을 가진다는 걸 은근슬쩍 흘렸다는 걸 눈치챘다는 뜻이기도 하구요! 소소한 설정들을 수정하면서 작품 내에서 약간의 설정 충돌이 일어나는 걸 지켜볼 수 있는 건 덤이죠ㅋㅋ


 프랑켄슈타인의 아이디어 자체가 괴담에서 시작되었던 만큼, 공포를 묘사하는 데 굉장히 충실하다는 느낌입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생각보다 크리처가 존재감에 비해서 정작 비중이 아주 적고, 굉장히 나~중에 등장하는데, 이건 결국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알 수 없는' 미지(未知)의 존재에게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아요. 프랑켄슈타인도 크리처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소설 절반이 지나가도록 알 수가 없고, 그래서 주인공만큼이나 독자도 겁에 질리게 되는 거죠. 크리처가 탄생하자마자 프랑켄슈타인은 그 기괴하고 흉측한 외모에 놀라 도망쳐버렸고, 이후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크리처가 사라지고 없었으니.. 프랑켄슈타인 입장에서는 크리처와 소통하거나 그의 정체(?)를 탐구할 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때문에 크리처가 뭘 원하고 무엇 때문에 복수심에 불타는지는 11장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알 수가 있어요.



나를 빌어 나온, 나와는 다른 존재

 메리 셸리가 여자 작가이기 때문에, 그리고 사실 작가의 성별을 빼놓고 봐도 창조자-피조물이라는 관계성이 있기 때문에<프랑켄슈타인>은 페미니즘 비평도 꽤 유명한 작품이잖아요~ 확실히 원작을 읽으니까 그런 부분도 잘 보이더라구요.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나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공포를 건드리니까요. 심지어 그렇게 나를 통해 생명을 얻은 존재가 이 세상에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잖아요. 도대체 어떤 존재가 탄생할지 우리는 모른다구요! 임신과 출산이 마냥 행복하고 축복을 받을 만한 일이 아니라 나를 평생 옭아매고 '노예'로 만들 (실제로 프랑켄슈타인이 크리처를 생각하며 이 워딩을 사용합니다) 일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프랑켄슈타인이 고민하다 결국 크리처에게 짝을 지워주지 않기로 결심하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입니다. 크리처에게 짝지워주기 위해 만들어낸 그 존재가 크리처를 거부하면? 크리처보다 더 악랄한 괴물이면?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에 자신을 빼고 맺은 협의을 거부하면? 그들이 자식을 낳으면? 그래서 괴물들의 신인류가 새롭게 시작되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창조물에 대한 공포에 더해, 창조물이 자신과 다른 사유와 추론의 능력을 지닌 존재라는 인식까지! 이건 정말 현대적인 관점의 이야기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은 계속해서 '나는 이 존재를 창조했으니, 이 존재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지만 그게 절대적인 건 아닙니다. 여성이 모성애를 타고난다고 강요받던 시대에, 이런 이야기를 써내는 작가라니! 정말 천재 아닙니까?!??? 너무 멋져요!!!


 프랑켄슈타인-크리처 모두에게 용서 없는 파멸을 준다는 점에서 결말도 완벽합니다. 이 둘은 어떻게 해도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운명이잖아요. 시작이야 어찌됐든, 자기 자신에게만 열중하면서 주변인들을 너무 많이 희생시켰어요. 크리처가 울부짖으면서 '나만 나쁘냐'고 광광댄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용서받을 수는 없죠. 크리처의 외모만 보고 배척한 사람들이 잘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게 살해당해도 마땅한 죄는 아니잖아요? 게다가 앙리나 엘리자베스까지 가보면, 그냥 상대를 고통에 빠뜨리려고 무고한 사람을 죽인 거니까요. 프랑켄슈타인은 또 어떻구요? 본인은 정작 자기 손에 피를 안 묻혔으니 OK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쥐스틴이 무고한 걸 알면서도 진실을 밝히지 않고 죽게 내버려둔 순간부터 살인범이나 마찬지인 거잖아요. 자기 자신만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줄 아는 이 못난 남자들에게 마땅한 처벌을 시원하게 내려주는 결말이라 좋아요ㅎㅎ



 이번에 허밍버드에서 뮤지컬-오페라 원작이 된 고전들을 특별히 엄선해서 시리즈로 내놓는다고 하는데, 공연을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하는 저로서는 라인업이 너무 만족스러워요! 게다가 책도 적당히 가지고 다니기 좋은 크기와 디자인이라 틈틈이 읽기도 편했구요. 후속작으로 나온다는 <오페라의 유령>이나 <두 도시 이야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이 시리즈로 구비하고 싶네요^^

당신은, 저의 창조주이신 당신은, 피조물인 저와 단단히 엮여 있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당신이나 저, 둘 중 하나가 죽기 전까지 끊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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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들어가 과학으로 나오기 - 사고 습관을 길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
리용러 지음, 정우석 옮김 / 하이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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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으로 들어가 과학으로 나오기>는 수학으로 시작해 물리 이야기를 거쳐 일상 생활 속에 스며든 과학 이야기를 하는 책입니다. 저는 '과학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입문서를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제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는 조금 더 수준이 높은 내용이었어요. 고등학교 정규과정 이상은 배웠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 있거든요. 수식이나 공식을 아예 모르는 기초자가 개념을 잡기엔 조금 부적절합니다. 그보다는 여러분이 예전에 배웠던 수학 공식이 사실은 이런 걸 계산하기 위한 거였어요~ 하고 다시 한번 짚어주는 것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예를 들어 루트라는 게 뭔지 알려주지 않고 냅다 공식에다가 루트를 집어넣는 식이랍니다. 미적분 얘기를 할 때도 아주 간단한 개념만 잡아주고는 바로 미적분 공식으로 넘어가는지라, 만약 로그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수학 공식을 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오히려 그런 만큼 수학-물리-과학상식에 대해 엄청 간략한 설명은 얻을 수 있어서 그런 용도로 책을 읽으시는 분들은 만족도가 높으실 것 같아요~ 저도 수학 파트에서는 공식 하나하나 이해하려고 하다보니 엄청 진도가 느리게 나갔는데, 미적분 나오면서부터는 그냥 전체적인 개념만 잡는다는 느낌으로 이해하고 넘어갔더니 책이 술술 읽히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수학] 파트에서는 페르마의 정리가, [물리] 파트에서는 블랙홀 개념이, [과학] 파트에서는 [별은 왜 흑백으로 보일까?] 하는 이론이 가장 흥미진진했습니다! 특히 페르마 같은 경우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전문이 아닌 아마추어 수학자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페르마의 정리를 설명해주는 책의 52~53페이지의 공식에 잘못된 점이 있었다는 겁니다. 2의 2의 n승이라고 적혀있어야 하는데 2의 2n승이라고 잘못 표기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아무리 읽어도 이해를 못 하겠더라구요ㅋㅋㅋ 2의 2의 5승, 즉 2의 32승이 되어야 하는 부분에서도 2의 3의 2승이라고 잘못 적혀 있어서.. 수학/과학을 다루는 책이니만큼 이런 공식상의 오류는 굉장히 치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2쇄부터는 빨리 수정이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블랙홀이라는 개념이 호킹 박사 생전에 증명된 적이 없었다니.. 이것도 처음 알았어요! 저는 너무 당연하게 '블랙홀'이라는 개념을 듣고 자라와서 당연히 우주 어딘가에 이런 구멍(?)이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얼마 전에 블랙홀의 존재를 관측했다고 전세계적으로 난리가 났던 게 비로소 이해가 되더라구요. 이전까지는 '빛조차도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절대적인 질량의 공간'이 우주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상정만 했지 증명되지 않았다는 게 정말 놀랍지 않나요? 질량이 너무나 크면 시간조차도 느리게 움직일 수 있다니, SF 단골소재가 영 틀린 헛소리는 아니었다는 거잖아요. (물론 증명되지 않은 이론들도 엄청 차용하긴 하지만요) 게다가 블랙홀 안에서는 시간은 양방향으로 흐르는지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데, 오히려 지금 현실 세계에서 자유롭게 오가는 공간은 블랙홀 안에서는 일방향으로밖에 움직일 수 없다니, 이런 모든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존재에 어떻게 매혹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최근 모든 과학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라는 게 이해가 갑니다.




 아무래도 아주아주 복잡하고 지금도 세계 과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다루기 때문에, 엄청나게 간소화되어 있다는 게 느껴져요. 제가 보기엔 충분히 복잡한 공식을 가져다놓고 '이건 하나도 안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복잡한 공식을 줄인 겁니다' 하고 설명하지 뭐예요?!?? 아마도 원래 공식은 칠판 하나를 빼곡히 채울 정도로 긴데 그걸 짧게 줄였기 때문에 과학자=수학자인 저자 입장에서는 아주 간소하다고 느껴지나 봅니다ㅎㅎ


 1장 수학, 2장 물리를 넘어서 3장 우리 생활 속의 과학이야말로 제가 이 책을 펼치면서 기대했던 부분일 텐데, 다 읽고 나니까 왜 이런 구성을 취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겠더라구요. 책 전체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A는 ~~~한 것이다> 하고는 앞장과 연관된 부분을 뒷장에서 설명하는 식이었습니다. 결국 앞부분을 소홀히 읽으면 뒷부분에서 진짜 흥미를 가진 내용이 나와도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재밌게 읽었던 '별을 왜 흑백으로 보일까?' 하는 부분에서는 블랙홀 문제에서 다루었던 <흑체복사>라는 개념이 나오거든요. 흑체복사가 뭔지 앞서 2장에서 이미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3장에서 나와도 연관해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간략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많은 설명들이 순서대로 촘촘하게 깔려있어서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으시길 권합니다. 

  

 최근 들어서 이런 이야기들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지는 게, 아무래도 실생활에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긴밀히 관련이 있는 '수학'과 '과학' 특유의 매력에 빠진 것 같아요! 관련한 서적들을 좀 더 읽으면서 이 책에서 다뤄진 수많은 소재들을 하나하나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은 넓고, 과학의 세계는 아직 무궁무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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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 은밀하고 뿌리 깊은 의료계의 성 편견과 무지
마야 뒤센베리 지음, 김보은.이유림.윤정원 옮김 / 한문화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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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솔직히 '우리는 병원에서 종종 무시당한다' 정도의 명제는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비단 여성만이 겪는 일이 아니라 남성분들도 많이 동의하시는 명제일 걸요? 저나 제 주변 사람들이 직접 경험한 적도 많고요.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쏟지 않죠. 게다가 요 몇년 동안 언론이나 SNS 등에서 '현대의학은 대부분 건장한 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는 들어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걸 페미니즘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니 또 다른 충격이네요. 정확한 수치와 함께 눈앞에 차별의 증거가 들이밀어지는데, 어떻게 이걸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는지 놀라워요! 읽는 내내 경악과 경악과 경악의 연속이었어요. 



이토록 명백한 무지와 무시 속에서

 이 책에선 여성 환자가 무시되는 의료계의 구조 자체에 주목합니다. 몇몇 의사들이 못 말리는 성차별주의자라서 여자 환자들이 고통을 받는 거라면 차라리 이야기가 쉽죠. 소위 '썩은 사과'만 골라내면 되니까요. 하지만 엄청난 양의 논문과 연구와 조사 결과가 말해주는 진실은, 의료계 시스템이 너무나 남성 편향적이라 자신들이 그렇다는 사실 자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많은 연구자들이 여성을 작은 남성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고수합니다. 남성, 특히 백인 남성만을 연구하고는 유색인종 여성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거라고 믿어버려요. 연구가 남성만을 대상으로 결론을 냈다는 사실을 은근슬쩍 숨겨버리죠. 그럼 어떻게 되느냐? 병원에서 백인 남성에게 알맞은 처방을 여성에게도 내려줍니다. 똑같은 정량을 처방하면 대체로 체중이 더 가볍고 남성과 신체적&호르몬적&신진대사적으로 다른 여성들에게는 약물을 더 많이 복용한 효과를 일으켜요. 2013년에 미국 식품의약국은 졸피뎀을 복용한 다음 날, 교통사고를 일으켰다는 700여건의 보고를 확인합니다. 왜냐면 여성의 몸에서는 8시간이 지나도 몸 속에서 약 성분이 빠져나가지 않아서 운전을 하면 안 되는 상태였거든요. 물론 그 전까지는 누구도 몰랐지만요! 세상에, 이게 2013년에서야 밝혀진 사실이라니까요!


 임상시험의 대상에 임산부가 배제되는 문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지라 읽으면서 반성이 되더라구요. 저도 막연하게 '검증되지 않은 약품은 태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임산부에게 실험을 하는 건 비윤리적이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자가 지적했듯이, 아픈 여성들도 임신을 합니다. 임신한 여성들도 아플 수 있고요. 현대의학은 그 여성들을 완전히 방치하고 어둠 속에서 혼자서 고통을 무조건 견디게끔 내몰고 있어요. 이미 고혈압이나 우울증, 관절염 같은 병으로 고통받는 여성이 임신을 했다면, 그 여성은 그동안 먹고 있던 모든 치료를 갑자기 중단해야 합니다. 약이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제대로 연구한 결과가 아무것도 없거든요. 이게 무슨 일이죠? 태아를 지키기 위해 임산부가 스스로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든가, 임산부의 건강을 위해 태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도박을 하든가, 둘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겁니다. 아무도 임산부를 대상으로 연구하지 않아서, 의사들조차 약물이 임산부와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에! OMG.. 이건 정말 너무나 불합리한 일이에요. 물론 지금까지 모든 사회규범은 언제나 임산부에게 '너는 태아보다 덜 중요한 존재니 참고 견디라'고 말해왔지만, 그게 옳은가요? 정말로?


 그런데 환자는 물론이고 연구자나 의사조차도, 자신들이 젠더 편향적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이들에게 성과 젠더에 따라서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고, 처방이 달라야 한다고, 우리가 편견을 가지고 환자들을 대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거든요. 예를 들어 여성도 심장병에 걸립니다. 여성도 폐암에 걸리고, 여성도 뇌졸중에 걸려요. 하지만 이들의 처방은 남성과는 달라야 한다고 보는 의대생들은 거의 없습니다. 교과서나 시험에서 그런 부분은 알려주지 않거든요. '여성 건강'이라는 과목이 있을 때도 있지만, 대개 가정폭력이나 산부인과 임상 실습 같은 교육만 몇 시간 받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의학교과서나 의사 시험에서 젠더 편향성과 그게 따른 차이를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해요. 성인지 과학은 아직까지도 의료계에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에 따른 비용은 사회가 다같이 치르고 있구요.



나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의료계가 여성을 잘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보다 더 문제인 건 여성 환자를 믿지 않는다는 겁니다. 내가 아무리 아프다고 말해도 아니라고, 너는 안 아프다고 하는 거예요! 이 책의 70% 정도는 수많은 여성 환자들이 고통을 호소했음에도, 의사들이 그 말을 믿어주지 않아서 몇 배는 더 절망하고 외롭게 싸워왔던 과정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신체적으로, 생리학적으로, 분명히 고통을 느끼는 데도 의사가 "환자는 정상이에요. 모든 건 환자분이 스스로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겁니다. 마음을 편하게 가져보세요." 같은 소리나 지껄이고 있는 사례들이 정말 끝도 없이 나열되어 있어요. 이것은 아주 유구한 역사로서, 서양의 아주 초기 의학 문헌에서부터 히스테리 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주목받거나 동정받거나 정신적 문제를 가진 여성이 자신이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다고 계속 우긴다는 거죠;;; 이 편견은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을 거치면서 더욱 단단하게 고정되어 아직까지도 표현만 다를 뿐 '너의 정신적인 문제가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거야' 같은 소리를 하는 의사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고 해요.


 개인적으로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지점 중 하나는, 간혹 역사와 인식의 변화 속에서 헛발질을 하는 페미니즘 진영의 모습 또한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는 겁니다. 2세대 페미니스트조차 가부장제와 싸우는 과정에서 '히스테리'라는 건 자율성과 주체성을 가진 여성을 견디지 못한 의사들이 꼬리표를 달았던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해요. 히스테리는 19세기의 새로운 마녀사냥이었다는 거죠. 하지만 저자는 거기에 대해 '진실의 조각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 해석이 대부분의 여성들이 실제로 아팠다는 사실은 간과했다고 지적합니다. 여자들은 실제로 아팠습니다. 지금도 계속 아프고 있구요. 


 2세대 페미니스트들이 히스테리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는 것을 망설이는 것도 이해는 간다. 결국 수세기 동안 의학은 '여성은 아프며, 선천적으로 아프게 되어 있고, 이 점이 여성의 열등한 사회적 지위를 정당화한다'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여성이 아프다는 첫 번째 주장을 수용하기 위해 두 번째와 세 번째 결론까지 인정할 필요는 없다. 여성의 건강이 나쁘다면 여성을 치료하는 의학 체계의 폐단 때문일 것이다. (p.107)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호소해도 '그건 마음이 만들어낸 거예요' 같은 소리를 들으면서 아무 조치도 없이 방치되고 있다뇨! 거짓말 같죠? 그러나 저자는 통계를 통해 이것이 사실임을 아주 차근차근 확인시켜줍니다. 검사 결과가 아주 명백하게 나오는 심장질환 같은 병조차도 그래요. 여성의 심장마비는 남성의 심장마비와 양상이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사들조차도 잘 모르고, 그래서 수많은 여성들이 '검사를 받고도'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하고 그냥 방치됩니다. 어떤 논문에서는 심장질환을 앓는 여성의 44%가 의료진으로부터 스트레스나 우울증, 걱정 때문에 통증을 느끼는 거라는 식으로 자신의 증상을 폄하하는 말을 들었다고 해요. 징후가 명백하게 나타나고, 검사 결과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질병이 아니면 상황은 더 심각해집니다. 자가면역질환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고, 검사도 까다로우며, 의사들도 잘 모르는 희귀병들은 격차가 더 극심해져요.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은 유전병인데, 남성은 보통 진단까지 4년이 걸리지만 여성은 16년이 걸린대요. 세상에! 여성은 12년을 더 고통받고 나서야 자기 병명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건 단순히 희귀병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둘의 시간 격차를 좀 보세요!


 "환자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질병을 진단하는 의사의 능력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성보다 여성의 진단에서 엄청난 진단 지연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다. 남성의 진단 시간이 더 빠르다는 점은 의사에게 진단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p.217)

 의사들은 대개 자신이 정확한 진단을 내렸다고 생각하고는 ("음, 당신의 마음이 당신을 아프게 하네요.") 다음 환자로 넘어갑니다. 하지만 정작 잘못된 진단으로 해결되지 않은 고통과 함께 남겨진 환자들은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걸 알아줄 다른 의사를 필사적으로 찾아 헤매거나, 혹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의료 체계 속에서 조용히 사라집니다. 대부분의 만성질환 or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가진 환자들이 부유한 백인 여성들인 것도 이걸로 설명할 수 있어요. 부유하지 못하고 백인도 아닌 여성 환자들은 자신들의 병명을 진단받을 때까지 의료 시스템 안에 버틸 수가 없는 것이죠. 환자들은 내가 미쳐서 아픈 게 아니라는 걸 알아요. 내가 아프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걸 의사에게 납득시키려고 하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입니다. 당신이 만약 여성이고, 유색인종이고, 가난하면 더 그렇죠. 내 마음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아픈 것 때문에 마음이 병들어가고 있어요! 사람은 아프면 당연히 우울해지고, 불안해지고, 스트레스가 많아지잖아요. 그런데 의사들이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고는 오진을 해 고통 속으로 되돌려보내는 환자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너무 충격적이에요.



우리는 나아간다 너무나 느리고 고통스럽지만, 어쨌든

 물론 지난 몇십년 동안 상황은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임상시험에도 여성을 포함시키라는 권고가 내려오고 (강제는 아닙니다) 의료진들도 조금씩 젠더가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아요. 수많은 환자들이 여전히 자기가 아프다는 걸 믿지 않는 의사들에 대항해 인터넷을 뒤져 자기 병명을 '발견하고' 스스로 진단해야 합니다. 이 책에 소개된, 정신병으로 분류되다가 결국엔 실제 병으로 인정받은 사례들 중 상당수가 환자들이 스스로 조직을 결성하고 국회를 압박하고 연구비를 펀딩하며 학회를 열어 의료진들을 지원했다는 사실은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그건 바꿔 말해서, 그 정도의 조직력이 없는 희귀병은 아직까지도 어둠 속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니까요.


 의사들은 환자가 말발굽 소리를 들었다고 하면 제일 먼저 말을 떠올려야 하는 사람입니다. 검사 결과 말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얼룩말을 의심해봐야 하는 사람이죠. 하지만 많은 환자들이 얼룩말 단계까지도 가지 못하고 막혀버린다면, 그게 한두명이 아니라 수십명 수백명 수천명 수만명이라면, 그게 보통 여성 환자들이 대다수인 질병에서만 반복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면, 그건 구조의 문제고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의료 시스템에 사각지대가 있고 우린 그걸 인정해야만 해요.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거죠. 세상 모든 질병이 이제는 완벽하게 밝혀졌다고 믿는 게 아니라면, 의학이 앞으로 더 밝혀낼 미지의 영역이 없다고 믿는 게 아니라면, 지금의 의학으로는 진단하지 못하는 질병이 있을 수 있고 놓치는 환자가 있을 수 있어요. 환자의 말에 귀기울이고 환자를 믿어줘야 해요. 설령 환자가 '그저 꾀병이나 부리는 히스테릭한' 여성 환자라고 할 지라도 말이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 환자들에게 의사의 권위와 맞설 수 있는 힘이 생겼기 때문에, 예전에는 그저 '전문가의 말이 맞겠거니' 하고 포기하고 체념했던 문제를 '아냐 의사가 틀렸어! 난 정말 아프다고!' 하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점점 더 이런 젠더 편향성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건 정말 다행한 일입니다. 아픈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있었잖아요. 하지만 요즘은 더 많은 여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기 상태를 말하고, 자기 경험을 공유하고, 자기 의사가 틀렸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죠. 덕분에 정말 너무나도 느리고 고통스러운 전진이긴 하지만, 아주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요. 아픈 사람이 없고 누구나 고통받지 않는 세상이 BEST겠지만 그건 정말 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니까요. 적어도 아프다면 자기가 왜 아픈지, 어디가 아픈지, 이 아픔을 어떻게 치료하고 다루어야 하는지, 남성 환자만큼 여성 환자도 똑같이 존중받고  세상에서 살고 싶네요. 아직까진 요원한 일이지만요.


 



 물론 이건 미국의 의료 시스템 속의 이야기지만 한국이라도 다를까요? 글쎄요.. 저 역시 생리 불순이나 염증 문제로 의사를 찾아갔을 때 "이건 스트레스 때문이에요. 흔한 거예요."라거나 "원인을 모르겠네요. 일단 알레르기 반응인 것 같긴 한데.." 같은 소리를 듣고 별 효과도 없는 치료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젠더 편향적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쪽이 더 놀라울 것 같네요ㅋㅋㅋ  사실 읽는 내내 '이런 일이 언제든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심과 '누구도 이런 일을 당하면 안 되지' 하는 분노가 차올라서 엄청 집중해서 읽게 됩니다. 서문의 추천사부터 본문의 꼭지 하나, 페이지 하나도 빼놓을 것이 없는 책이예요! 500여 쪽으로 꽤 두꺼운 편인데, 의학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인데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읽을 수 있었어요. 몇몇 어려운 의학용어만 빼면 오히려 술술 잘 읽히는 편입니다. 꼭 한번쯤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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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은 현재의 기술로 관찰할 수 있고, 알려진 생리 기전으로 설명할 수 있는 질병만 ‘진짜‘ 질병으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히스테리가 심인성 질병으로 몰리자 어떤 증상이든, 특히 여성에 발병하며 의학이 아직 관찰하거나 설명하지 못하는 증상은 잘 알려지지 않은 무의식‘ 탓으로 돌렸다. 의학이 지식의 한계에 도달할 때 아무렇게나 갖다 둘러댈 수 있는 이론이었다. 이는 객관적인 증거로 입증되기 전까지 여성의 주관적인 증상에 대한 보고를 의사가 계속 불신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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