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허밍버드 클래식 M 2
메리 셸리 지음, 김하나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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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을 드디어 원작으로 만나봤어요!! 사실 그동안 다양한 장르, 다양한 작품을 통해 프랑켄슈타인을 만나왔지만 정작 원작은 읽지 않은 상태였거든요. 워낙에 유명한 소설, 유명한 괴담이다 보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읽지 않은 수많은 고전 중 하나였던 거죠. 읽어보니 확실히 고전이 왜 고전인지 알겠더라구요. 4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인데도 아주 그냥 술술 읽혀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괴담

 물론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는 데는 이미 캐릭터와 이야기를 대강 알고 있다는 점도 한 몫 했습니다. 어느 버전이든 상당히 많이 각색이 되긴 했지만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 애니메이션, 소설 등에서 만났던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분명하게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보신 분이라면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 아니라 창조자의 이름이며, 괴물은 따로 이름이 없이 크리쳐로만 불린다는 사실을 아실 거예요. 어릴 적에 영화 <프랑켄슈타인>이나 애니메이션 <두치와 뿌꾸> 같은 작품에서 머리에 나사를 박은 거대한 초록 괴물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소설 속 크리처의 키가 240cm나 되고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는 힘과 스피드와 체력을 가졌다는 걸 쉽게 납득하시겠죠. NT Live <프랑켄슈타인>이나 2014년 연극 <프랑켄슈타인>을 보신 분이라면 크리처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짝을 만들어달라고 빅터를 협박했던 내용을 아실 겁니다. 이런 식으로 그동안 다양한 곳에서 마주친 프랑켄슈타인의 조각들은 끝도 없죠! 이 모두가 원작을 빠르게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엄청나게 도움을 줍니다. 


 게다가 이번 허밍버드 클래식M 버전 같은 경우엔 1831년판 수정본이거든요. 그 말은 작가의 서문도 2가지 버전이고, 1818년 초판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을 작가가 수정한 내용도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는 거예요. 영화 <메리 셸리>를 만나본 저로서는 메리 셸리가 남편을 깎아내리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하면서도 본 소설은 온전히 자신의 창작물이라는 걸 밝히고, 남편은 (자기가 쓰지도 않은 소설을 자기 소설인 양 써놓은) 1818년 서문에만 크레딧을 가진다는 걸 은근슬쩍 흘렸다는 걸 눈치챘다는 뜻이기도 하구요! 소소한 설정들을 수정하면서 작품 내에서 약간의 설정 충돌이 일어나는 걸 지켜볼 수 있는 건 덤이죠ㅋㅋ


 프랑켄슈타인의 아이디어 자체가 괴담에서 시작되었던 만큼, 공포를 묘사하는 데 굉장히 충실하다는 느낌입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생각보다 크리처가 존재감에 비해서 정작 비중이 아주 적고, 굉장히 나~중에 등장하는데, 이건 결국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알 수 없는' 미지(未知)의 존재에게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아요. 프랑켄슈타인도 크리처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소설 절반이 지나가도록 알 수가 없고, 그래서 주인공만큼이나 독자도 겁에 질리게 되는 거죠. 크리처가 탄생하자마자 프랑켄슈타인은 그 기괴하고 흉측한 외모에 놀라 도망쳐버렸고, 이후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크리처가 사라지고 없었으니.. 프랑켄슈타인 입장에서는 크리처와 소통하거나 그의 정체(?)를 탐구할 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때문에 크리처가 뭘 원하고 무엇 때문에 복수심에 불타는지는 11장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알 수가 있어요.



나를 빌어 나온, 나와는 다른 존재

 메리 셸리가 여자 작가이기 때문에, 그리고 사실 작가의 성별을 빼놓고 봐도 창조자-피조물이라는 관계성이 있기 때문에<프랑켄슈타인>은 페미니즘 비평도 꽤 유명한 작품이잖아요~ 확실히 원작을 읽으니까 그런 부분도 잘 보이더라구요.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나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공포를 건드리니까요. 심지어 그렇게 나를 통해 생명을 얻은 존재가 이 세상에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잖아요. 도대체 어떤 존재가 탄생할지 우리는 모른다구요! 임신과 출산이 마냥 행복하고 축복을 받을 만한 일이 아니라 나를 평생 옭아매고 '노예'로 만들 (실제로 프랑켄슈타인이 크리처를 생각하며 이 워딩을 사용합니다) 일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프랑켄슈타인이 고민하다 결국 크리처에게 짝을 지워주지 않기로 결심하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입니다. 크리처에게 짝지워주기 위해 만들어낸 그 존재가 크리처를 거부하면? 크리처보다 더 악랄한 괴물이면?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에 자신을 빼고 맺은 협의을 거부하면? 그들이 자식을 낳으면? 그래서 괴물들의 신인류가 새롭게 시작되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창조물에 대한 공포에 더해, 창조물이 자신과 다른 사유와 추론의 능력을 지닌 존재라는 인식까지! 이건 정말 현대적인 관점의 이야기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은 계속해서 '나는 이 존재를 창조했으니, 이 존재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지만 그게 절대적인 건 아닙니다. 여성이 모성애를 타고난다고 강요받던 시대에, 이런 이야기를 써내는 작가라니! 정말 천재 아닙니까?!??? 너무 멋져요!!!


 프랑켄슈타인-크리처 모두에게 용서 없는 파멸을 준다는 점에서 결말도 완벽합니다. 이 둘은 어떻게 해도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운명이잖아요. 시작이야 어찌됐든, 자기 자신에게만 열중하면서 주변인들을 너무 많이 희생시켰어요. 크리처가 울부짖으면서 '나만 나쁘냐'고 광광댄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용서받을 수는 없죠. 크리처의 외모만 보고 배척한 사람들이 잘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게 살해당해도 마땅한 죄는 아니잖아요? 게다가 앙리나 엘리자베스까지 가보면, 그냥 상대를 고통에 빠뜨리려고 무고한 사람을 죽인 거니까요. 프랑켄슈타인은 또 어떻구요? 본인은 정작 자기 손에 피를 안 묻혔으니 OK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쥐스틴이 무고한 걸 알면서도 진실을 밝히지 않고 죽게 내버려둔 순간부터 살인범이나 마찬지인 거잖아요. 자기 자신만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줄 아는 이 못난 남자들에게 마땅한 처벌을 시원하게 내려주는 결말이라 좋아요ㅎㅎ



 이번에 허밍버드에서 뮤지컬-오페라 원작이 된 고전들을 특별히 엄선해서 시리즈로 내놓는다고 하는데, 공연을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하는 저로서는 라인업이 너무 만족스러워요! 게다가 책도 적당히 가지고 다니기 좋은 크기와 디자인이라 틈틈이 읽기도 편했구요. 후속작으로 나온다는 <오페라의 유령>이나 <두 도시 이야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이 시리즈로 구비하고 싶네요^^

당신은, 저의 창조주이신 당신은, 피조물인 저와 단단히 엮여 있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당신이나 저, 둘 중 하나가 죽기 전까지 끊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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