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버드 박스
조시 맬러먼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버드 박스>의 장르적 성격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일종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입니다. 장르물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SF장르 중에서도 세계종말을 소재로 한 장르를 아포칼립스라고 하고, 세계종말 그 이후의 삶을 다루고 있는 작품을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이라고 해요. '세계의 종말 하면 디스토피아물이 아니냐?'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텐데,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의 반대로서 지극히 통제된 사회 하에서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때문에 보통 유토피아처럼 보이는 통제사회에 대한 비판 위주로 과학이 발달한 미래사회를 그리는 경우가 많아요. <버드 박스>는 결코 좀비물도, 뱀파이어물도, 외계침공물도, 자연재해물도 아니지만 종종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는데, 특히 소수의 생존자들이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로 개개인의 능력과 준비에 따라 살아남는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한마디로 <버드 박스>의 공포는 미지의 존재로 인한 세계종말의 시대에 그저 개개인이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공포인 셈이죠.
메두사 모티브
인간은 원래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를 더 많이 느끼는 존재입니다. 왜인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에 대해 어떠한 대책도 세울 수가 없잖아요. 알면 피할 수 있습니다. 알면 대처할 수도 있죠. <버드 박스>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는 것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무도 그 정체를 본 적이 없는 '어떤 것'을, 단지 보기만 해도 미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기 자신까지 죽여버리기 때문입니다. 작가소개에서 이 소설이 메두사의 영감을 받아 쓰여졌다고 하는데, 사실 작가소개를 읽기 전까지는 짐작도 못했었답니다. 메두사라는 유명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소재에서 '보면 안 된다'는 단순한 격언만을 뽑아내어 창의적으로 재조립하다니, 역시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가봐요.
"죽기 직전에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보았다"는 단 하나의 사실만 빼고 그것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인공인 맬로리와 생존자들 이외에 독자들도 마찬가지에요. 그것이 생물일 것이라는 것도 결국은 가설에 불과하고, 그것을 보면 왜 미치는지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맬로리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이 극의 가장 주된 서스펜스일 겁니다. 그리고 저에게 있어서는 꽤나 성공적이었어요. 맬로리와 아이들이 어떻게 됐을까.. 자꾸 걱정되고 궁금해져서 제일 마지막 장을 펼쳐보고 싶은 욕구가 몇 번이나 들었거든요. 잘 만든 공포물이나 미스터리물은 항상 알면서도 뒤가 궁금해져요ㅋㅋ
<버드 박스> 세계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시력을 포기하고 스스로 어둠 속으로 침잠합니다. 인간은 전체 감각의 70프로 정도를 시각에 의지하고 있다고 해요. 그런 '시각'의 제한은 생각보다 사람들을 더 무섭게 만듭니다. 그저 바람소리일 뿐이었어도,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였어도, 상상력은 언제나 무한히 뻗어나가고 사람들은 현실보다 더욱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죠.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 바로 <버드 박스>입니다. <버드 박스>는 어떤 움직이는 존재가 가까이 다가오면 더 시끄럽게 우는 새들을 이용해 작중에서 집을 지켜주는 일종의 경고창으로 활용됩니다. 그리고 맬로리와 아이들이 타고 있던 조그마한 배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해요. 태어났을 때부터 시각을 가리고 청각에 예민하게 훈련이 된 아이들은 미소와 눈물을 잡아낼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합니다. 아이들은 그녀가 노를 젓고 있는 동안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를 '듣고' 그녀에게 위험을 알려줘요. 세 사람이 무사히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말이죠.
지켜야 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
<버드 박스>는 교차 진행 형식을 취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소설의 절반 정도는 이 모든 '종말'이 나타나기 전부터 안전 가옥의 생존자들과 만나고 함께 삶을 꾸려나가는 맬로리를 보여줍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나'를 맬로리의 시각에서 함께 겪어나갈 수 있는 부분이죠. 나머지 절반은 맬로리가 혼자서 두 아이에게 더 나은 삶, 그저 생존하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입니다. 으스스하고 뭔가 터질 것 같이 불안불안한 분위기는 전자가 단연 앞서지만, 절망과 고독과 외로움과 책임감이 뒤범벅된 후자의 이야기가 좀 더 마음에 와 닿았어요. 맬로리가 얼마나 더 주도적으로 이야기의 전개에 개입하느냐 하는 차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맬로리가 엄마로서 느끼는 책임감과 죄책감을 아직은 4살밖에 안된 어린 아이들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감동적이었어요. 보이가 말없이 맬로리 혼자서 젓고 있는 노를 잡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울컥 하는 심정이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맬로리는 놀라울 정도로 용감한 여성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의 매력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는 인간의 생명력'이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에 있다면, 맬로리는 단연 이 장르물의 히어로가 되기에(히로인이 아닙니다!)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모든 종말적인 징후가 나타나기 전, 아이의 아버지가 곁에 있든 없든 뱃속의 아이를 낳기로 한다거나, 이제는 혼자라는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바로 눈을 감은 채 차를 몰고 안전 가옥을 무작정 찾아간다거나, 의지할만한 이가 없는 순간에 자신을 해칠 수도 있는 자와 대면하기로 결정한다거나,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갓 태어난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눈을 감은 채로 30Km를 넘게 노를 젓고 간다거나 하는.. 실로 다 이루 말할 수도 없이 소설 속에 나타나는 그녀의 모든 결정들은 실로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저라면 절대 이렇게까지 하지 못했을 거예요.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사람은 지켜야 할 누군가가 있을 때 정말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 같아요. 예전에 온갖 아포칼립스물 설정들을 놓고 '이 중에 하나만 고른다면 당신은 무엇을 고르겠느냐?' 하는 설문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어린 아이들을 지키는 보호자가 오로지 나밖에 없는 상황'을 뽑았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보통 사람이라서.. 다른 종말적인 상황에서는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차라리 죽음으로 도망가고 말 것 같은데, 만약 100% 저에게 의지하는 어린 생명들이 있다면 억지로 무리해서라도 살아남으려고 발악할 것 같았거든요. 맬로리도 마찬가지에요. 사실 보이와 걸이 아니었다면, 맬로리가 이렇게까지 용감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무섭더라
개인적으로 <버드 박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지의 존재'가 무엇이건 간에, 제가 그것들을 맬로리만큼 두려워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왜냐면 맬로리를 비롯한 극 중 사람들은 인간의 가장 큰 감각인 시각을 이미 잃은 상태지만, 독자인 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단지 상상만으로는 어둠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극심한 공포가 잘 느껴지지 않아요. 그 일부분의 죽음의 공포라면 몰라도 말이죠. 제게 더 생생하게 다가왔던 것은 '미지의 존재'가 아니라 '사람'이 가져오는 공포였습니다.
가장 긴장하고 몇 번이나 손에 땀을 쥐면서 봤던 장면은 멜로리가 극중 등장하는 어떤 인물을 의심하고, 그의 물건을 몰래 확인하고, 그와 맞서려고 결심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그와 맞서는 그 순간들이었습니다. 단지 돌아다니기만 할 뿐 직접적으로 이 세계의 인물들에게 손을 대지는 않는 크리처들보다, 당장 나쁜 마음을 먹고 맬로리를 해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무서웠어요. 소설 중에서도 나오지만 크리쳐들은 주변에서 움직이고 끊임없이 돌아다니면서도 직접적으로 인물들을 공격한다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미치게 만든 것 뿐이죠.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크리처들의 잘못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저 크리처들과 인간이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종(種)인 것 뿐일수도 있죠. 하지만 명백한 악의를 가진 사람은 다릅니다. 언제든 타인을 해칠 수 있고, 직접적으로 손을 댈 수도 있고, 간접적으로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크리처들보다는 훨씬 위협적입니다.
제가 <버드 박스>에서 가장 의문을 품었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맬로리가 혼자서 보호해야 할 어린 두 생명을 그러안고 있었을 때, 그전까지 맬로리에게 악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어떤 인물'이 맬로리를 그냥 내버려두었다는 겁니다. 맬로리가 아마 안전 가옥을 다시 정비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을 텐데, 도대체 왜 그녀에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까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해칠 수 있었을텐데, 맬로리를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 괴롭히고 싶었던 것이라면 (굉장히 역겨운 일이지만) 아이들의 안대를 벗겨내서 그녀 자신보다 더한 죽음을 안겨줄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죠. 맬로리도 그가 사라진 직후부터 게속해서 그를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데,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어요. 작가가 후속편을 위한 떡밥으로 남겨둔 걸까요?
<버드 박스>는 출판하기 전에 이미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영화라는 장르가 소설보다도 이 내용에 더 어울리는지 아닌지 사실 좀 헷갈립닙다. 속도감이나 '모두가 일부러 눈을 가리고 있다'는 광기어린 상황, 맬로리의 고군분투 등등 이미지적으로 보여주는 게 더 어울리는 장면도 있지만, 이런 부분은 어떻게 묘사를 할까 싶은 장면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크리처가 바로 맬로리의 입술 근처에 닿았다가 멀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크리처를 화면에 잡아내지 않으면서 (그게 더 효과적인 공포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중 인물과 마찬가지로 관객들도 크리처의 진짜 모습을 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맬로리가 그때 느낀 공포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이런 점에서 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네요.
암튼 간만에 순식간에 읽었던 장르물이었습니다. 속도감이 있어서 술술 읽히네요. 꽤 재미있으니 한번쯤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
144페이지의 한 문장이 눈에 탁 걸립니다.
"맬로리는 소파에 앉아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녀와 맬로리의 육아서는 산모와 태아 사이에 '스트레스 고리가 있다고 했다."
저 그녀와를 빼던지 아니면 '그녀와 올림피아의 육아서'라고 해야 앞뒤 문장이 말이 되는 것 같은데.. 이 부분은 뭔가 오류가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