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아이들 1부 : 동굴곰족 1 대지의 아이들 1
진 M. 아우얼 지음, 정서진 옮김 / 검은숲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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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지의 아이들>은 미국에서 1980년에 출간되어 60여개국에서 4500만부 이상 판매된, 초대형 베스트셀러 시리즈입니다. 총 6편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는 완결에만 거의 30년 가까이 걸렸다고 하는데, 저는 이번에 검은숲의 출간으로 처음 그 존재를 알게 되었네요. 개인적으로 애정을 가진 인물들을 오래오래 만날 수 있는 장편소설 시리즈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런 제 기호에도 딱 맞게 6부작이나 되다니.. 앞으로 읽어야 할 책이 아직 한참이나 더 남아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선사시대를 이렇게 정교하게 그려낸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역시 해외의 장르소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폭넓구나 하는 생각에 부러워졌어요.


 일단 현생인류인 크로마뇽인과 같이 공존했던 네안데르탈인을 같이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것에 놀랐습니다. 두 인류가 공존한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는데, "네안데르탈인 부족 사이에 거둬진 크로마뇽인 여자 아이"라니! 너무 세련되면서도 의미심장한 구도에요. 주인공 에일라는 결국 멸종해간 인류와 대비되는 살아남은 인류이면서, 동시에 전통적이고 반복되는 것에 대항하는 새롭고 혁신적인 것의 상징이며, 또한 남자에게 복종하는 여자라는 구도에서 탈피하는 진정한 의미의 신여성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에 매혹되어 딸의 이름을 에일라로 지었다는 독자의 반응은 정말이지 수긍할 만 합니다. 저도 제 딸이 에일라처럼 "넌 여자니까 안돼"라는 소리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는걸요!


 극중에서 에일라는 인종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아주 못생긴" 아이입니다. 게다가 "여자다운 구석도 없"고 "너무 강한 토템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의 짝이 될 확률도 아주 낮은 여자 아이죠. 남자에게 무조건 순종하고, 무조건 복종하고, 남자를 잘 보필하는 것만이 여자가 해야 할 일인데 그 너머의 일, 남자만의 일인 사냥을 욕심내기까지 해요. 게다가 만약 자신의 능력을 들킨다면 당장 부족에서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하게 될 테니, 아무도 모르게 조심조심 자신의 기술을 연마합니다. ...자,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나요? 우리는 지금도 수없이 많은 에일라들의 고군분투를 보고 살고 있으니까 말이에요. 지금으로부터 몇만 년이나 전의 이야기를 읽고 있지만 사실상 오늘날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요. 씁쓸한 일이죠.


 이자-에일라-크렙-우바로 이어지는 어떤 가족의 형태에는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이자와 크렙은 한 어머니 밑의 자식들이기 때문에 사실상 짝이 될 수 없는 운명이고, 에일라는 길에서 주워온 아이, 우바는 다른 사내의 아이입니다. 결국 씨족 사회의 평범한 가족과는 거리가 먼 이 네 사람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그 누구보다도 가족의 의미를 보여줘요. 1권을 통틀어 가장 사랑스러웠던 부분은 늘 다정하게 대해주던 크렙이 혼을 내자 에일라가 서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마는데, 슬플 때 울지 않는 습성의 네안데르탈인 크렙은 당황하며 "아이가 어디 눈병이 난 것 같다"고 안절부절하다 이자를 불러 치료해주라고 한 장면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종족의 특성 때문에 웃기면서도, 울고 있는 에일라의 마음이 이해가 가서 귀엽고, 또 당황하며 에일라가 병에 걸린 건 아닌가 걱정하는 크렙은 따뜻해요. 아 정말 이 가족들이 앞으로도 내내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근데 1권 마지막에 너무 큰 사건이 터져버리고 끝났어요...... 에일라.. 왜 그랬어ㅠㅠㅠ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원래 선사시대나 공룡시대에 대한 관심이 좀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 알거나 그쪽 분야에 해박하지는 못하거든요. 딱 다른 사람들이 아는 그 수준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어요. 그런 제가 읽어도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걸 보니 작가가 정말 쉽고 단순하면서도 재미있게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1권을 딱 덮자마자 "아니, 그래서 도대체 이 뒤가 어떻게 되는 거야?!" 하고 절로 탄성이 나왔을 정도라니까요! 얼른 2권을 읽고 에일라의 운명에 대해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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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citly5 2016-04-17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처음 소개된 것은 아니고 여러 번 출간된 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동서문화사 판의 에이브 시리즈로 읽었었고요, 그 뒤로도 몇 차례 다른 제목으로 출간되었었어요. ;;;

봄봄 2016-04-17 01:23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전 이번에 처음 소개되는 시리즈인 줄 알았어요.. 지적 감사합니다

tacitly5 2016-04-17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자명만 눌러보셔도 우선 절판된 정신세계사 판과 현대문화센터 판이 검색되네요.

봄봄 2016-04-17 01:43   좋아요 0 | URL
제가 검색하기 전에 책을 먼저 읽고 리뷰를 바로 써서 몰랐습니다. 불쾌하신 것 같으니 최대한 빠르게 수정할게요
 
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
모리 아키마로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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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로맨스 클럽》의 표지는 언제 봐도 정말 멋있습니다. 저는 애시당초 표지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블랙 로맨스 클럽>의 세계에 발을 디디게 된 케이스라서, 언제나 표지의 아름다움과 적절함과 우아함을 찬양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특성이 있는데요. 특히나 제 마음을 사로잡은 건 언제나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겉표지를 한꺼풀 벗겨내면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속표지가 있다는 겁니다. 겉표지가 '밖으로 보여지는' 소설의 이미지라면 속표지는 '등장인물 내면을 보여주는' 표지 같아서 정말 좋아요! 겉표지를 보고 집어들었다가 속표지를 보고 속으로 짜릿함을 느끼는 재미가 항상 있답니다~ㅎㅎ <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의 속표지 역시 근사했어요. 제가 느낀 '봄에 읽는 청춘소설'에 부합하는 이미지라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실물로 확인해보시길..^^)




"여긴 추리연구회죠?"

"보시다시피, 여긴 취리연구회지."


 주인공 사카즈키 조코는 한때 유명한 아역 배우였으나 본인이 원해서 선택한 일이 아니었기에 어느 순간 그 일을 내던져버리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에 도망치듯 진학한 학생입니다. 어머니가 원하는 배우의 길도, 아버지가 원하는 주조장의 가업을 잇는 길도 전부 싫지만,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은 건 없어서 방황하는 중이에요. 아역이었던 시절을 숨기고 싶어 두꺼운 뿔테안경과 앞머리로 철저히 자신을 가리며 평범하고 흔한 소녀로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그녀가 단 하나 좋아하는 게 있다면 바로 미스터리! 유서 깊은 추리동아리 '추연'에 가입하기 위해 방황하던 그녀는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신비로운 선배에 놀라 '취연'이라는 동아리에 실수로 가입하고 맙니다. (둘의 일본어 표기는 똑같다고 해요) '취연'은 추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오로지 취하기 위해서 마신다는 모토를 가지고 있는 이상하고도 엉뚱한 동아리인데, 주조장 딸이었던 사카즈키 조코에게는 굉장히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운명적인 것 같은 곳이죠. 그렇게 1년을 보내면서 아무리 술에 마셔도 절대 취하지 않는 체질인 주인공이 서서히 다른 모든 것들에 취하는 이치를 깨닫게 돼요.


 사실 이 책 같은 경우는 《블랙 로맨스 클럽》에서 나왔기 때문에 로맨스로 분류한 거지, 그냥 일반 일본 미스터리 장르로 나왔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을 것 같아요. 일본에서는 미스터리 장르가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세세한 미스터리 하위장르들로 갈래가 나뉘어져 있거든요. 그 중에서도 일상 미스터리라고 하면, 소소한 일상의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될 법한 그런 미스터리들, 시체가 나오지도 않고 거대한 사건도 없지만 그냥 신경쓰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쳐버렸을 법한 사소한 비밀들을 다루는 장르입니다. <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 역시 일상 미스터리의 형식을 띄고 있어요. 몰라도 상관없지만 알게 되면 묘한 쾌감이 있는 이야기들이죠.


 청춘소설로 읽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아요. 모든 순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눈이 부시고, 싱그럽거든요. 어찌된 일인지 그냥 바닥에 축 늘어져 있다가 좀비처럼 꿈틀꿈틀 일어나는 동아리 회원들의 모습까지도 낭만에 젖어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빡빡하고 좁은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대학생활을 해서인지, 아니면 현재 대한민국에선 이렇게 여유로운 대학생활이 가능한 사람이 없다고 느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뭔가 현실에서는 쉽사리 볼 수 없는 낭만이 숨쉬고 있어요. 몇번이나 출석을 하지 못해 1학년에 재학중인 전설의 선배라든가, 낯선 사람들과 금세 의기투합해 다같이 술에 취해 뻗는 모습이라든가, 우연히 만난 할아버지가 알고보면 상당한 실력자라든가, 이런 말도 안되고 엉망진창인 것 같으면서도 신기한 모습들이 장마다 널려있습니다. 부러워요, 그 반짝거림이~




사실은, 취해 있던 거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주제에, 취해 있었다

 

 <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 같은 경우 총 5편의 단편소설들이 연작소설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각 꽃/공/해변/달/눈에 취하는 로직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어요. 제목의 '이름 없는 나비'는 주인공 조코를 의미합니다. 아직 뚜렷한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그저 마구 달리는 중인" 청춘이지요. 조코는 사실 아무리 마셔도 절대로 술에 취하지 않는 체질인데, 그것을 '아직 취하지 않아' 라고 표현한 것 역시 의미심장하고도 멋집니다. 이 소설이 결국 "어떤 술에도 취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든 취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1년의 이야기인 셈이니까요. 꽤 시적이지 않나요?


 그 중에서도 제1장 꽃에 취하는 로직은 이 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분위기와 정서를 담아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미키지마 선배는 조코 자신도 몰랐던 조코의 체질에 얽힌 비밀을 쨘 하고 풀어냅니다. 사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오호' 하고 새삼 미키지마 선배의 숨겨진 관찰력과 추리력에 감탄했습니다. 앞서 자연스럽게 미스터리와 힌트들을 함께 흩뿌려 뒀는데, 저로서는 조코의 체질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거든요. 봄에다, 벚꽃에다, 신입생 환영회에다, 술판에다, 신비로운 눈을 가진 낯선 선배와의 독대에다, 달에다, 첫키스에다.. 아주 그냥 싱그럽고 반짝거리는 청춘의 향기가 책에서 배어나오는 것 같은 1장입니다. '꽃에 취하는 로직'을 읽다가 저도 꽃에 취해버렸나 봐요ㅋㅋ


 로맨스의 주인공은 (당연히) 주인공인 조코와 (예상대로) 조코를 매의 눈으로 낚아채 취리연구회에 가입시킨 미키지마 선배입니다. 이 둘은 시종일관 간질간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일본 특유의 별거인 듯 별거아닌 별거같은 관계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이 관계가 정말로 천~~~천히 쌓여가기 때문에 때론 좀 답답하기까지 해요. 독자인 나는 이미 눈치를 챘는데!! 둘은 이미 쌍방인데!! 짝사랑 좀 고만하고 얼른 고백하라고 이 바보야!!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들어가곤 합니다. 하지만 역시 남의 연애란 쌍방이 짝사랑일 때 답답하면서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법이죠. 선배가 넌지시 흘려주는 힌트들을 분명히 받고 있으면서도 확신이 없는 조코는 썸타는 우리네 모습과 다르지 않아서 사랑스럽습니다. 조코의 마음을 분명히 눈치채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좀 야속하기까지했던 미키지마 선배도 마지막 장에서 순정남의 면모를 드러내며 캐릭터를 완성합니다. 사실 끝까지 모른 척하면서 조코 애를 태웠으면 많이 얄미웠을 거예요!!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런데 일본 소설이라 그런지 확실히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5장 눈에 취하는 로직을 보면 주인공 조코가 집으로 돌아가보니 아버지가 가업을 이으라며 결혼 상대를 정해놓고, 결혼 날짜까지 잡아놓고, 심지어 상대방 일가친척들까지 다 불러놓고(!!) 당장 식을 올리라고 억지를 부리는 장면이 나와요. 물론 조코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반항의 정도 같은 게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확실히 떨어진달까요. 심지어 '내게 이렇게 온화한 사람과 결혼해 차분하게 일생을 보내는 선택지도 있다'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물론 진짜로 결혼하지는 않지만, 미키지마 선배만 없었어도 어, 어, 하고 등떠밀려서 저도 모르게 결혼했을 것 같은 느낌이라 좀 놀라웠어요.


 그리고 이건 아마 일본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처음 만난 여성이 갑자기 조코의 얼굴에 드롭킥을 날려서 조코가 복도 미닫이문을 뚫고 붕 날아가서 눈 속에 털썩 떨어지는 일이 있거든요. 일방적으로 엄청나게 얻어맞은 거죠!!!!! 그리고 그 여성은 사과 한 마디 없이 사라져 버려요. 물론 이것 역시 수수께끼에 얽힌 일이었고 나중에 무슨 사정인지 다 밝혀지기는 했지만, 정말 생각할수록 황당하고 어이없고 무례한 경우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도 화를 내지 않는 조코가 너무너무 신기하고도 걱정됐습니다. 이대로 살아도 이 사람, 정말 괜찮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밖에도 일본 역사에 얽힌 일화라든가, 일본 대학 내에서 야구라는 스포츠가 가지는 위상 같은 것이 수수께끼 풀이에 영향을 미치는지라, 일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잘 읽힐 것 같기는 합니다. 저 역시 일본 소설을 꽤나 많이 읽고 일본 역사에 대해 그래도 남들보다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이런 게 있었구나 싶어서 약간 공부하는 기분으로 읽기도 했어요. 아 물론 이 책은 결국 로맨스소설이니까, 이거저거 다 빼고 조코와 미키지마 선배 위주로만 읽는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들이지만 말이죠^^




 요즘 《블랙 로맨스 클럽》에서 로맨스를 가장한 장르소설을 많이 내줘서 정말 좋습니다. 한 가지 장르에 충실한 소설도 재미있지만, 이렇게 여러 장르가 뒤섞인 책들은 여러 가지 감각을 동시에 만족시켜줘서 왠지 체감상 더 만족도가 높은 것 같아요. 공포물에다, 동화에다, SF에다, 판타지에다, 이제는 미스터리까지!! 로맨스가 이토록 다양한 장르에서 꽤나 잘 버무려지고 있다는 건 독자로서 행복한 일이네요. 앞으로 또 어떤 장르의 로맨스가 나올지 기대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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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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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가지 블랙 로맨스 클럽의 신작 <엔더스>가 출간되었습니다. 에전에도 극찬한 적이 있지만 중요하니까 다시 한 번 말하겠습니다. 블랙 로맨스 클럽 표지는 이쁩니다!!!! 정말 이쁩니다!!!! 이거 매우 중요합니다!!! 왠지 소장욕구가 팍팍 드는 디자인입니다!!! 지난번 <푸른 수염의 다섯번째 아내>와 마찬가지로 트위터에서 처음 출간소식을 접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표지에 덕통당해서 한눈에 사랑에 빠졌습니다. 시리즈물인 것도 뒤늦게 알게되서 부랴부랴 <스타터스>를 구입했는데, <스타터스>와 <엔더스> 이 두권을 나란히 놓고보면 각자 디자인이 다른데 통일성이 있으면서 존예라 그저 흐뭇합니다. 블랙 로맨스 클럽 표지가 다 이 정도 퀄러티라면 전권 소장하고 싶어요~


 <엔더스>를 읽기 위해 <스타터스>를 읽으면서 깜짝 놀란 건, 리사 프라이스가 굉장히 SF감각이 뛰어난 작가였다는 겁니다. "신체 강탈"이라는 SF의 고전적인 모티브를 가지고 이만큼 긴장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건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이 세계가 생화학 무기로 인해 스타터(10대 미성년자)와 엔더(70대 이상의 노인)를 제외한 미든(중장년층) 대부분이 사망했다는 극단적인 설정을 읽을 때만 해도, 주인공인 캘리가 부모를 잃고 거리로 내몰렸을 때만 해도, 그리하여 병든 동생을 위해 신체 대여 회사인 프라임으로 걸어갈 때까지만 해도, 저는 이 소설이 '어디서 많이 읽어본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신체 대여를 하던 도중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스타터스>는 굉장한 흡입력을 보여 줍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건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도대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로맨스 소설이라면서 로맨스보다는 디스토피아 영울물에 가까운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한장한장 넘기기 아깝던 <스타터스>를 끝내고 나서 <엔더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엔더스>는 뭔가 작가가 너무 욕심을 부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반전이 너무 많은 느낌이에요. 사실은 ~였어, 근데 이쪽도 사실은 ~였단다, 그리고 이쪽도 사실은 ~였고, 이것까진 몰랐겠지만 사실 ~이야,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반전을 주려는 게 글을 읽는 입장에서 좀 피곤했어요. 그렇다고 그 반전들이 1권에서만큼 임팩트가 있지도 않았구요. 물론 여전히 스토리는 긴장감이 넘쳤고, 캘리가 도대체 이 위기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어딘가 강력한 한 방이 없는 게 아쉽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로맨스 소설의 남자주인공이 딱히 멋있지가 않아서 문제였어요. 여주인공에 이입해서 한껏 사랑에 빠지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 저는 그것이 아무리 선량한 의도에서 시작한 일이라고 해도, 남자주인공이 중간 과정에서 행한 그 모든 결과물들을 놓고 봤을 때 도저히 "쟤도 사실은 착한 아이야" 논리에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인간이거든요. 목적과 수단이 모두 정당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가끔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이 다소 과격할 필요가 있다는 걸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이 지나칠 정도로 컸잖아요. 그리고 언제든지, 정말로 언제든지 잘못될 가능성이 차고 넘쳤단 말이죠. 스스로는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그 중 단 하나라도 삐끗했다면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거대한 악의 제국에 손끝 하나 대지 못한 채 자멸했을 겁니다. 그걸 알면서도 "끝이 좋으니 다 좋은 것"이라고 퉁치고 넘어갈 수가 없어요ㅠ 

 캘리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이며, 애정이 넘치는데다, 정의롭고, 똑똑하기까지 한 여성입니다. 렌탈(신체 대여자) 지원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아름다우면서 사격에 능하기까지 하죠. 이런 그녀가 차라리 혼자서 당당하게 살아남아서 앞으로 멋진 남정네들을 실컷 만날 수 있었으면 차라리 좋으련만!!! 보통 로맨스 소설은 남주인공에게 굉장히 공을 들이고 여주인공 캐릭을 엉망으로 내버려두는 것과 달리, <엔더스>는 그 반대로 여주인공에 온갖 애정을 쏟고 남주인공은 부차적으로 만들어낸 것 같이 보여요. 두 사람의 교감이 운명이라면 운명이겠지만, 왠지 후일담이 3부작이 되어서 나온다면 남자주인공은 역시나 중간에 말썽을 일으킬 것 같은 이미지에요.

 마지막 마무리는 좋았습니다. 3편이 나올 수도 혹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엔딩이에요. 아예 미들을 발간하셔서 3부작 완성하시는 것도 괜찮을 듯한 느낌입니다. 미성년자들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자본주의 빅 브라더 세계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앞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암시- 그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디스토피아 SF에서 완벽한 해피엔딩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니까요.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이 그렇듯이요. 그리고 리사 프라이즈는 훌륭한 SF작가답게, 멋진 문장으로 이 모든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결국 스타터는 미들이 될 것이고 엔더가 될 것이며, 새로운 세대에는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커다란 구멍이 남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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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 블랙 로맨스 클럽
제인 니커선 지음, 이윤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 소설의 내용과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고싶지 않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트윗에서 우연히 보게 된 표지에 한눈에 반해(!) 읽게 된 책.

 이토록 아름답고, 고혹적면서도, 화려하고, 고독해보이는 일러스트라니!! 전체적으로 금빛을 테마로 사용해서 고급스러워보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이 표지에 대해서라면 몇 문단에 걸쳐서 칭찬을 해도 부족합니다. 한꺼풀 벗겨낸 표지안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새장 밖에서 그 새장의 열쇠를 물고 있는 새가 한 마리 있는데, 펜화로 그려진 그 그림 역시 전체적인 책 내용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밖으로 보이는 표지가 주인공 소피아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면, 가려진 표지는 주인공 소피아의 내면을 표현하는 셈이 되어서 은유적으로도 매우 멋진 상황이 되죠. 표지의 기능이 '독자가 내용을 궁금해하게 만든다'는 것에 있다면 그 의무를 100% 충실하게 이행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황금가지 블랙 로맨스 클럽의 디자인이 추구하는 방향이 이런 쪽이라면 아주 매우 몹시 격하게 환영하는 바입니다. 간만에 수집하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르는 컬렉션이 될 듯 하네요.

 

 

공포의 그 이름, 푸른 수염

 아마도 많이 알고 계시리라 생각되지만, 푸른 수염은 유럽권에서는 아주 유명한 동화입니다. 동화라기엔 상당히 잔혹하고 끔찍한 내용이긴 한데, 많은 동화들이 알고보면 부적절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으니 별로 특이한 일은 아니죠. 귀족인 푸른 수염은 결혼을 할 때마다 아내가 실종되어 홀로 남겨지는 수상한 귀족입니다. 다들 그 사실을 알고 그를 두려워하는데, 그 와중에 또다시 청혼을 해서 어느 집의 귀중한 막내딸을 아내로 맞게 됩니다. 그는 '성 안의 모든 방은 열어도 되지만, 딱 한 방만은 열어서는 안된다'는 규칙을 알려 줍니다. 하지만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는 법, 결국 막내딸은 금지된 방을 열어보고 푸른 수염의 아내들이 피투성이 시체가 되어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방을 열지 말라는 자신의 말을 어겼기 때문에 푸른 수염이 살해한 것이죠. 금기를 어긴 막내딸이 살해당하려는 찰나, 방문하기로 되어 있던 오빠들이 들이닥치며 푸른 수염으로부터 동생을 구해냅니다.

 

 사실 개인적인 애정장르는 로맨스보다는 미스터리 쪽입니다. 로맨스 소설을 폄하하거나 읽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학창시절에 꽤나 로맨스 소설에 심취했던 시절이 있었더랬죠. 다만 요 몇 년 사이 서점이나 도서관에 갔을 때 고르는 책이 대개 미스터리/추리/SF/서스펜스 쪽인 인간인지라, 간만에 잡은 로맨스 소설이 흥분되기도 하고 '내 취향이 아니면 어쩌지'하고 걱정반 기대반이었습니다. 세상엔 멋진 로맨스 소설이 물론 많을 테지만, 작가별로 편차가 큰 장르 중 하나이다보니 조심스러웠어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제 취향에 가까운 소설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서스펜스의 비중이 아주 높은 로맨스 소설이더라구요. 중간 정도까지는 사실상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읽었고, 후반부는 공포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읽었던 것 같아요. 중간중간 '여러분 잊지마세요. 이것은 로맨스 소설입니다' 하는 장면장면이 없었다면 그냥 미스터리 장르라고 해도 믿었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고백하건데, 푸른 수염 모티브라는 점 때문에 저는 이 소설의 주요 전개가 '나쁜 남자' 혹은 '위험한 남자'에게 끌리며 그를 변화시키는 한 여성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매력적이지만 어딘가 비밀이 많은 남자주인공의 세계에 여자주인공이 폭 하고 떨어지면서 그 비밀을 밝히고 둘은 이후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하는 식의 전개일 거라고 예상했어요.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는 그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나쁜 남자는 변하지 않습니다. 위험한 남자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를 상대로 동등한 게임을 펼칠 수 있다는 건 순진한 착각에 불과하죠.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않아

 여주인공의 캐릭이 인상적입니다. 예쁜 옷과 화려한 장신구를 좋아하며 자신의 후원자를 남몰래 흠모하던 철없는 꼬마아가씨에서, 점점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며 어떻게서든 을 돕고 스스로를 도우려 애쓰는 멋진 레이디로 변해가는 과정이 세세하게 잘 그려져있어요. 독자들은 소피아에게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거라 두근두근하는 그녀의 어리고 순진한 마음은 사랑스럽고, 노예 제도에 반대하며 사람들을 사고팔거나 함부로 대하는 방식에 불편함을 느끼는 모습은 기특하고, 후원자의 전(前) 아내들의 흔적을 찾아내어 그녀들의 모습과 인생을 상상해보는 그녀의 모습은 따뜻합니다. 그 중에서도 소피아의 매력이 단연 최고조로 빛나던 부분은 흑인 노예들을 위해 남몰래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장면들이었습니다. 사실상 집에 얹혀사는 손님이기 때문에 그녀는 실질적인 권한이 전혀 없어요. 하지만 그녀는 일하는 사람들을 노예가 아니라 알아가는 친구처럼 대하고, 사랑하는 두 흑인 연인이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해방운동을 하는 흑인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몰래 경고를 해주기도 합니다. 소피아는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는 입장의 사람이었어요. 오히려 그런 노력들이 그녀를 위험하게 만들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소피아는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왜냐면 그녀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 소피아가 조금씩 버나드 씨에게서 위화감을 느끼며 거리를 둘 때마다 저도 어찌나 불안하던지요. '어? 이게 아닌데? 어? 이러면 안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더라구요. 아까도 언급했지만, 저는 푸른 수염이라는 모티브를 사용해 결국에는 버나드 씨가 '알고보면 비밀을 간직한 좋은 사람'이라거나 '이랬던 개차반을 소피아가 변화시켰답니다'하는 소설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무서워지는 겁니다. 버나드는 너무나 교묘하고 권위적이며 강압적이었어요. 그가 알고보면 착한 사람이라거나 사랑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건 순진한 망상같아 보였습니다. 갈수록 소피아는 지금 엄청난 위험에 처해있고, 그녀가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게 확실해졌어요. 도대체 그녀는 어떻게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것인가?!! 저는 그 해답이 푸른 수염 동화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그녀의 가족들이 그녀가 처한 상황을 알아채고 도와주러 오겠거니 싶었어요. 그래서 제발 얼른 그녀의 오빠들과 언니가 버나드의 집에 도착하기를 빌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소피아의 가족들이 오긴 왔는데.. 버나드의 위장에 다들 홀라당 넘어가버린 겁니다!! 책은 점점 끝나가는데 소피아가 빠져나갈 구멍은 보이지 않고, 그녀를 구하러 온 것이라고 생각했던 가족들은 오히려 소피아를 더욱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넣고.. 소피아가 가족들을 위해 사실상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는 장면에서는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아무도 그녀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아주지 않는거야?!!!!!

 

 

오직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전개가 옳았던 것 같아요. 소피아가 자신과 '자신의 분신들'의 인생을 위해 스스로 행동할 수 있게 만들어줬으니까요. 소피아는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기다리는 동화 속 공주님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며 자신을 구하는 주인공이었던 거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록 동화 속 왕자님처럼 쨘 하고 나타나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은 없었지만, 푸른 수염이 흩뿌려놓은 악행의 씨앗들로 인해 불행해진 '소피아의 분신'을 위해 노력하고 행동하며 도움을 준 사람도 있었구요. 결정적으로, 이런 전개가 아니었다면 다들 "도망쳐!"라고 한 목소리로 외쳐준 그 '존재들'의 선량함이 이토록 와닿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비록 나는 불행해졌지만, 너까지 그러면 안 되잖아. 도망쳐 소피아! 여기서 도망치라고!!

 

 네 명의 여성을 소피아의 눈과 상상력을 빌려 등장시켜준 부분이 정말이지 무척 좋았습니다. 빅투아르, 타티아나, 타라, 아델.. 다들 나쁜 사람이 아니었잖아요. 다들 악마를 보았고, 눈치챘고, 빠져나가려고 애썼고, 그러나 실패한 소피아 이전의 소피아들이었죠. 소피아가 처음부터 그 사람들을 연적이나 '내 남자의 여자' 정도가 아니라 포용력있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믿지 않을 뿐더러,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여자의 자매애가 얼마나 위대한지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모든 여자들이 그렇게 질투심과 경쟁심에 불타오르는 것은 아니잖아요~

 

 후반부까지의 흥미진진하고 긴장감넘치는 전개에 비해, 최종 마무리가 살짝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모든 일이 완벽하게 술술 풀리다니, 어쩐지 거짓말 같은 느낌이랄까요? 직전까지 어떻게 될까 마음졸이고 걱정했던 게 바보같을 정도로 싱겁게 휙 지나가 버리잖아요. 조금 더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 자세하게 나왔으면 좋을텐데, 아니면 차라리 후일담을 빼고 기디언과 만나 손을 잡으며 마지막 환영(?)을 함께 보는 걸로 끝냈어도 좋을텐데, 지금은 어쩐지 절정까지 마구 내달렸던 작가가 급 의욕을 잃고 마무리를 그냥 대충 쓴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소설의 장르가 로맨스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그렇게까지 트집잡을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거나 로맨스 소설- 달콤하고, 행복하고, 풍요로운 결말을 위해 달려가는 과정이니까요. 결말의 처리 과정에서도 소피아가 자신을 잃지 않았다는 점도 마음에 들구요. 보통은 남자주인공에 의해서 여자의 행복이 결정되기 마련이라면, 소피아는 이제 자기 자신의 인생의 주도권을 자신이 쥐었다는 느낌이거든요. 남자가 곁에 없어도, 가족들이 곁에 없어도, 든든한 하녀나 마음을 주었던 친구가 곁에 없어도, 앞으로 그녀의 일생은 내내 행복할 겁니다. 아마도.

 

 

 이 책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로맨스 소설을 읽는 기쁨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역시 주인공이 행복해지는 건 좋군요. 저까지 행복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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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박스
조시 맬러먼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버드 박스>의 장르적 성격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일종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입니다. 장르물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SF장르 중에서도 세계종말을 소재로 한 장르를 아포칼립스라고 하고, 세계종말 그 이후의 삶을 다루고 있는 작품을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이라고 해요. '세계의 종말 하면 디스토피아물이 아니냐?'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텐데,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의 반대로서 지극히 통제된 사회 하에서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때문에 보통 유토피아처럼 보이는 통제사회에 대한 비판 위주로 과학이 발달한 미래사회를 그리는 경우가 많아요. <버드 박스>는 결코 좀비물도, 뱀파이어물도, 외계침공물도, 자연재해물도 아니지만 종종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는데, 특히 소수의 생존자들이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로 개개인의 능력과 준비에 따라 살아남는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한마디로 <버드 박스>의 공포는 미지의 존재로 인한 세계종말의 시대에 그저 개개인이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공포인 셈이죠.

 

메두사 모티브

 인간은 원래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를 더 많이 느끼는 존재입니다. 왜인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에 대해 어떠한 대책도 세울 수가 없잖아요. 알면 피할 수 있습니다. 알면 대처할 수도 있죠. <버드 박스>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는 것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무도 그 정체를 본 적이 없는 '어떤 것'을, 단지 보기만 해도 미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기 자신까지 죽여버리기 때문입니다. 작가소개에서 이 소설이 메두사의 영감을 받아 쓰여졌다고 하는데, 사실 작가소개를 읽기 전까지는 짐작도 못했었답니다. 메두사라는 유명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소재에서 '보면 안 된다'는 단순한 격언만을 뽑아내어 창의적으로 재조립하다니, 역시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가봐요.

 

 "죽기 직전에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보았다"는 단 하나의 사실만 빼고 그것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인공인 맬로리와 생존자들 이외에 독자들도 마찬가지에요. 그것이 생물일 것이라는 것도 결국은 가설에 불과하고, 그것을 보면 왜 미치는지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맬로리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이 극의 가장 주된 서스펜스일 겁니다. 그리고 저에게 있어서는 꽤나 성공적이었어요. 맬로리와 아이들이 어떻게 됐을까.. 자꾸 걱정되고 궁금해져서 제일 마지막 장을 펼쳐보고 싶은 욕구가 몇 번이나 들었거든요. 잘 만든 공포물이나 미스터리물은 항상 알면서도 뒤가 궁금해져요ㅋㅋ

 

 <버드 박스> 세계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시력을 포기하고 스스로 어둠 속으로 침잠합니다. 인간은 전체 감각의 70프로 정도를 시각에 의지하고 있다고 해요. 그런 '시각'의 제한은 생각보다 사람들을 더 무섭게 만듭니다. 그저 바람소리일 뿐이었어도,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였어도, 상상력은 언제나 무한히 뻗어나가고 사람들은 현실보다 더욱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죠.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 바로 <버드 박스>입니다. <버드 박스>는 어떤 움직이는 존재가 가까이 다가오면 더 시끄럽게 우는 새들을 이용해 작중에서 집을 지켜주는 일종의 경고창으로 활용됩니다. 그리고 맬로리와 아이들이 타고 있던 조그마한 배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해요. 태어났을 때부터 시각을 가리고 청각에 예민하게 훈련이 된 아이들은 미소와 눈물을 잡아낼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합니다. 아이들은 그녀가 노를 젓고 있는 동안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를 '듣고' 그녀에게 위험을 알려줘요. 세 사람이 무사히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말이죠.

 

 

지켜야 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

<버드 박스>는 교차 진행 형식을 취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소설의 절반 정도는 이 모든 '종말'이 나타나기 전부터 안전 가옥의 생존자들과 만나고 함께 삶을 꾸려나가는 맬로리를 보여줍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나'를 맬로리의 시각에서 함께 겪어나갈 수 있는 부분이죠. 나머지 절반은 맬로리가 혼자서 두 아이에게 더 나은 삶, 그저 생존하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입니다. 으스스하고 뭔가 터질 것 같이 불안불안한 분위기는 전자가 단연 앞서지만, 절망과 고독과 외로움과 책임감이 뒤범벅된 후자의 이야기가 좀 더 마음에 와 닿았어요. 맬로리가 얼마나 더 주도적으로 이야기의 전개에 개입하느냐 하는 차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맬로리가 엄마로서 느끼는 책임감과 죄책감을 아직은 4살밖에 안된 어린 아이들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감동적이었어요. 보이가 말없이 맬로리 혼자서 젓고 있는 노를 잡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울컥 하는 심정이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맬로리는 놀라울 정도로 용감한 여성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의 매력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는 인간의 생명력'이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에 있다면, 맬로리는 단연 이 장르물의 히어로가 되기에(히로인이 아닙니다!)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모든 종말적인 징후가 나타나기 전, 아이의 아버지가 곁에 있든 없든 뱃속의 아이를 낳기로 한다거나, 이제는 혼자라는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바로 눈을 감은 채 차를 몰고 안전 가옥을 무작정 찾아간다거나, 의지할만한 이가 없는 순간에 자신을 해칠 수도 있는 자와 대면하기로 결정한다거나,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갓 태어난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눈을 감은 채로 30Km를 넘게 노를 젓고 간다거나 하는.. 실로 다 이루 말할 수도 없이 소설 속에 나타나는 그녀의 모든 결정들은 실로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저라면 절대 이렇게까지 하지 못했을 거예요.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사람은 지켜야 할 누군가가 있을 때 정말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 같아요. 예전에 온갖 아포칼립스물 설정들을 놓고 '이 중에 하나만 고른다면 당신은 무엇을 고르겠느냐?' 하는 설문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어린 아이들을 지키는 보호자가 오로지 나밖에 없는 상황'을 뽑았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보통 사람이라서.. 다른 종말적인 상황에서는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차라리 죽음으로 도망가고 말 것 같은데, 만약 100% 저에게 의지하는 어린 생명들이 있다면 억지로 무리해서라도 살아남으려고 발악할 것 같았거든요. 맬로리도 마찬가지에요. 사실 보이와 걸이 아니었다면, 맬로리가 이렇게까지 용감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무섭더라 

 개인적으로 <버드 박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지의 존재'가 무엇이건 간에, 제가 그것들을 맬로리만큼 두려워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왜냐면 맬로리를 비롯한 극 중 사람들은 인간의 가장 큰 감각인 시각을 이미 잃은 상태지만, 독자인 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단지 상상만으로는 어둠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극심한 공포가 잘 느껴지지 않아요. 그 일부분의 죽음의 공포라면 몰라도 말이죠. 제게 더 생생하게 다가왔던 것은 '미지의 존재'가 아니라 '사람'이 가져오는 공포였습니다.

 

 가장 긴장하고 몇 번이나 손에 땀을 쥐면서 봤던 장면은 멜로리가 극중 등장하는 어떤 인물을 의심하고, 그의 물건을 몰래 확인하고, 그와 맞서려고 결심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그와 맞서는 그 순간들이었습니다. 단지 돌아다니기만 할 뿐 직접적으로 이 세계의 인물들에게 손을 대지는 않는 크리처들보다, 당장 나쁜 마음을 먹고 맬로리를 해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무서웠어요. 소설 중에서도 나오지만 크리쳐들은 주변에서 움직이고 끊임없이 돌아다니면서도 직접적으로 인물들을 공격한다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미치게 만든 것 뿐이죠.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크리처들의 잘못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저 크리처들과 인간이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종(種)인 것 뿐일수도 있죠. 하지만 명백한 악의를 가진 사람은 다릅니다. 언제든 타인을 해칠 수 있고, 직접적으로 손을 댈 수도 있고, 간접적으로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크리처들보다는 훨씬 위협적입니다.

 

 제가 <버드 박스>에서 가장 의문을 품었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맬로리가 혼자서 보호해야 할 어린 두 생명을 그러안고 있었을 때, 그전까지 맬로리에게 악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어떤 인물'이 맬로리를 그냥 내버려두었다는 겁니다. 맬로리가 아마 안전 가옥을 다시 정비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을 텐데, 도대체 왜 그녀에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까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해칠 수 있었을텐데, 맬로리를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 괴롭히고 싶었던 것이라면 (굉장히 역겨운 일이지만) 아이들의 안대를 벗겨내서 그녀 자신보다 더한 죽음을 안겨줄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죠. 맬로리도 그가 사라진 직후부터 게속해서 그를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데,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어요. 작가가 후속편을 위한 떡밥으로 남겨둔 걸까요?

 

 

 <버드 박스>는 출판하기 전에 이미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영화라는 장르가 소설보다도 이 내용에 더 어울리는지 아닌지 사실 좀 헷갈립닙다. 속도감이나 '모두가 일부러 눈을 가리고 있다'는 광기어린 상황, 맬로리의 고군분투 등등 이미지적으로 보여주는 게 더 어울리는 장면도 있지만, 이런 부분은 어떻게 묘사를 할까 싶은 장면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크리처가 바로 맬로리의 입술 근처에 닿았다가 멀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크리처를 화면에 잡아내지 않으면서 (그게 더 효과적인 공포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중 인물과 마찬가지로 관객들도 크리처의 진짜 모습을 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맬로리가 그때 느낀 공포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이런 점에서 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네요.

 

 암튼 간만에 순식간에 읽었던 장르물이었습니다. 속도감이 있어서 술술 읽히네요. 꽤 재미있으니 한번쯤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

144페이지의 한 문장이 눈에 탁 걸립니다.

 "맬로리는 소파에 앉아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녀와 맬로리의 육아서는 산모와 태아 사이에 '스트레스 고리가 있다고 했다."

저 그녀와를 빼던지 아니면 '그녀와 올림피아의 육아서'라고 해야 앞뒤 문장이 말이 되는 것 같은데..  이 부분은 뭔가 오류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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