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더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황금가지 블랙 로맨스 클럽의 신작 <엔더스>가 출간되었습니다. 에전에도 극찬한 적이 있지만 중요하니까 다시 한 번 말하겠습니다. 블랙 로맨스 클럽 표지는 이쁩니다!!!! 정말 이쁩니다!!!! 이거 매우 중요합니다!!! 왠지 소장욕구가 팍팍 드는 디자인입니다!!! 지난번 <푸른 수염의 다섯번째 아내>와 마찬가지로 트위터에서 처음 출간소식을 접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표지에 덕통당해서 한눈에 사랑에 빠졌습니다. 시리즈물인 것도 뒤늦게 알게되서 부랴부랴 <스타터스>를 구입했는데, <스타터스>와 <엔더스> 이 두권을 나란히 놓고보면 각자 디자인이 다른데 통일성이 있으면서 존예라 그저 흐뭇합니다. 블랙 로맨스 클럽 표지가 다 이 정도 퀄러티라면 전권 소장하고 싶어요~


 <엔더스>를 읽기 위해 <스타터스>를 읽으면서 깜짝 놀란 건, 리사 프라이스가 굉장히 SF감각이 뛰어난 작가였다는 겁니다. "신체 강탈"이라는 SF의 고전적인 모티브를 가지고 이만큼 긴장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건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이 세계가 생화학 무기로 인해 스타터(10대 미성년자)와 엔더(70대 이상의 노인)를 제외한 미든(중장년층) 대부분이 사망했다는 극단적인 설정을 읽을 때만 해도, 주인공인 캘리가 부모를 잃고 거리로 내몰렸을 때만 해도, 그리하여 병든 동생을 위해 신체 대여 회사인 프라임으로 걸어갈 때까지만 해도, 저는 이 소설이 '어디서 많이 읽어본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신체 대여를 하던 도중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스타터스>는 굉장한 흡입력을 보여 줍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건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도대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로맨스 소설이라면서 로맨스보다는 디스토피아 영울물에 가까운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한장한장 넘기기 아깝던 <스타터스>를 끝내고 나서 <엔더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엔더스>는 뭔가 작가가 너무 욕심을 부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반전이 너무 많은 느낌이에요. 사실은 ~였어, 근데 이쪽도 사실은 ~였단다, 그리고 이쪽도 사실은 ~였고, 이것까진 몰랐겠지만 사실 ~이야,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반전을 주려는 게 글을 읽는 입장에서 좀 피곤했어요. 그렇다고 그 반전들이 1권에서만큼 임팩트가 있지도 않았구요. 물론 여전히 스토리는 긴장감이 넘쳤고, 캘리가 도대체 이 위기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어딘가 강력한 한 방이 없는 게 아쉽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로맨스 소설의 남자주인공이 딱히 멋있지가 않아서 문제였어요. 여주인공에 이입해서 한껏 사랑에 빠지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 저는 그것이 아무리 선량한 의도에서 시작한 일이라고 해도, 남자주인공이 중간 과정에서 행한 그 모든 결과물들을 놓고 봤을 때 도저히 "쟤도 사실은 착한 아이야" 논리에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인간이거든요. 목적과 수단이 모두 정당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가끔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이 다소 과격할 필요가 있다는 걸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이 지나칠 정도로 컸잖아요. 그리고 언제든지, 정말로 언제든지 잘못될 가능성이 차고 넘쳤단 말이죠. 스스로는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그 중 단 하나라도 삐끗했다면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거대한 악의 제국에 손끝 하나 대지 못한 채 자멸했을 겁니다. 그걸 알면서도 "끝이 좋으니 다 좋은 것"이라고 퉁치고 넘어갈 수가 없어요ㅠ 

 캘리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이며, 애정이 넘치는데다, 정의롭고, 똑똑하기까지 한 여성입니다. 렌탈(신체 대여자) 지원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아름다우면서 사격에 능하기까지 하죠. 이런 그녀가 차라리 혼자서 당당하게 살아남아서 앞으로 멋진 남정네들을 실컷 만날 수 있었으면 차라리 좋으련만!!! 보통 로맨스 소설은 남주인공에게 굉장히 공을 들이고 여주인공 캐릭을 엉망으로 내버려두는 것과 달리, <엔더스>는 그 반대로 여주인공에 온갖 애정을 쏟고 남주인공은 부차적으로 만들어낸 것 같이 보여요. 두 사람의 교감이 운명이라면 운명이겠지만, 왠지 후일담이 3부작이 되어서 나온다면 남자주인공은 역시나 중간에 말썽을 일으킬 것 같은 이미지에요.

 마지막 마무리는 좋았습니다. 3편이 나올 수도 혹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엔딩이에요. 아예 미들을 발간하셔서 3부작 완성하시는 것도 괜찮을 듯한 느낌입니다. 미성년자들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자본주의 빅 브라더 세계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앞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암시- 그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디스토피아 SF에서 완벽한 해피엔딩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니까요.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이 그렇듯이요. 그리고 리사 프라이즈는 훌륭한 SF작가답게, 멋진 문장으로 이 모든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결국 스타터는 미들이 될 것이고 엔더가 될 것이며, 새로운 세대에는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커다란 구멍이 남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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