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단어의 결정적 뉘앙스들 영어의 결정적 시리즈
케빈 강.해나 변 지음 / 사람in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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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에서 나고자라 영어를 공부한 지 대략 10년이 넘어가다 보면, 아무리 영어를 못한다고 해도 단어나 독해는 어느 정도 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주입식으로 달달 외운 탓인지 비슷비슷해 보이는 단어들이 참 헷갈려요. 국어도 마찬가지고, 모든 언어가 그렇겠지만, 영어에도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뉘앙스를 가진 말들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비영어권에서 캐치하기가 참 힘들더라고요. 영화나 드라마, 각종 컨텐츠를 보면서 그냥 '감'으로 때려맞출 수밖에 없죠. 그런 고민을 요즘 하고 있었던지라 이 책이 참 반가웠습니다. 제목부터 맘에 쏙 들어요ㅎㅎ

 


 중요도와 격식에 따라 1~4 챕터로 나누어져 있는데, 저는 특히 섬세하게 단어를 구분해야 하는 챕터 1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사실 중고등학교 수준을 뛰어넘을 정도로 어려운 고급 단어도 없거든요. 보면 다 아는 것들인데 미묘하게 어감이 차이가 나는 부분을 짚어줘서 좋았어요. 예를 들자면 Belive와 Trust는 둘 다 '믿다'라는 뜻이 있는데, 각각 어떨 때 쓸 수 있을까? 신을 믿는다고 할 때는 둘 중에 어떤 걸 써야 할까? 하는 거요.


 위에 크게 써져 있는 제목을 보고 본문을 보기 전에 잠깐 한 10초 정도 멈춰서 짐작해보면 더 재밌더라고요. 콕 짚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미묘하게 차이를 느끼고 있던 단어들도 있었습니다. 워낙에 달달 외워놔서 용례가 입에 붙어버린 단어가 있잖아요. 'TV를 보다'고 할 때 자연스럽게 see 대신 watch를 쓰지만, 왜 그런지 설명할 수는 없었죠. 근데 그 이유를 설명해주니까 명확해져서 한결 더 쉽게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각 장마다 오른쪽 위를 보시면 QR코드가 있어서, 해당 장에 나오는 단어와 예문들이 어떻게 발음되는지 들어볼 수 있어요! 


 챕터 2~4는 헷갈리는 유의어인 만큼, 각 페이지마다 헷갈리는 상황에서는 이 단어부터 먼저 써라! 하고 아예 큼직하게 표시해줘서 좋았습니다. 뉘앙스를 캐치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에서 따라잡기 힘들 때가 많잖아요. 은근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뒷쪽에 인덱스도 있어서 책에 나오는 단어를 찾기 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심심할 때 사전 뒤져보듯이 or 그냥 잡지에 실린 꼭지 기사 읽듯이 내키는 대로 하루에 몇 장씩 꾸준히 읽어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이 책을 펼쳐보면서 내심 있겠거니~ 하고 기대했던 단어가 있는데 없어서 좀 아쉬웠습니다. 제가 마침 딱 궁금해하고 있던 단어였거든요. '의심하다'는 뜻의 doubt와 suspect의 차이! 왜 드라마에서 용의자를 의심하면서 doubt라고는 안 할까 궁금했거든요. 아마 생각만큼 자주 쓰이는 단어가 아니라서 책에는 빠졌나봐요. 결국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doubt는 ~하지 않을 거라고 의심하는 거고, suspect는 ~했을 거라고 의심하는 거래요. 보통 드라마에서는 범죄를 했을 거라고 의심하기 때문에 suspect가 되는 거죠! 이건 책이랑은 전혀 상관없지만 혹시 저랑 비슷한 의문을 가지신 분이 계실까봐 달아둡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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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수학 - 수학이 판결을 뒤바꾼 세기의 재판 10
레일라 슈넵스.코랄리 콜메즈 지음, 김일선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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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에 선 수학>의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수학이 판결을 뒤바꾼 세기의 재판 10'. 하지만 이건 상황을 아주 거칠게 요약한 것이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수학을 알았다면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세기의 범죄 10' 정도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제일 첫 장에 나와있는 폰지 사건의 경우 수학이 판결을 뒤집었다기보다는, 수학을 알았다면 애초에 그런 다단계 사기에 걸려들지 않을 수 있었다는 쪽에 가깝거든요. 다른 장에서도 어떤 사건의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주 명백하지만, 어떤 사건의 경우는 수학을 알고 정확한 확률을 계산해도 여전히 의문점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책 홍보를 위해 문구를 부러 강렬하게 선정한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지?

 제가 읽으면서 가장 신기했던 건 2장 UC 버클리대학교 성차별 사건에 나왔던 '심슨의 역설'이었어요. 모든 인종의 학생 성적이 높아졌는데, 전체적으로는 평균이 그대로 계속 유지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뒷부분을 읽기 전에 왜 그런지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역시나 잘 모르겠더라고요. 언뜻 생각했을 때는 전혀 말이 안 되는 일이 왜 벌어지는 걸까요?


 2002년 SAT 독해 부문의 평균 점수는 1981년과 똑같았다. 그러나 평가 위원회가 분류한 인종별 점수는 동일 기간 동안 백인 8점, 흑인 19점, 아시아계 27점, 푸레르토리코계 18점, 미국 인디언계 8점씩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어떻게 각 집단의 점수는 향상되었는데 전체 평균은 21년간 변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 p.42


 책에 소개된 재판으로 바꿔 말하자면, 뽑을 수 있는 모든 학과에서 여학생을 많이 더 많이 뽑고 있는데  어떻게 전체적으로 여학생 합격률이 현저하게 더 낮을 수가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통계를 내 접근하려고 하다 보니까 오히려 그 계산 안에 미처 넣지 못한 외부의 요소를 놓친다는 지점이 흥미로웠어요. 수학은 결코 만능 열쇠가 아니고, 모든 요소를 제대로 다 고려하지 않으면 엉뚱한 결론으로 우리를 안내할 수밖에 없다는 증거잖아요. 그리고, 만약 그런 맹점을 잘 알고 있는 누군가가 중간에서 교묘하게 장난을 친다면, 심지어 완전히 왜곡된 결과를 '팩트'로 믿게 될 수도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고요.


 '생일 문제' 같은 확률론은 은근히 많은 대중수학서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이라 알고 있었는데, 그걸 뒤집으니까 또 새로운 문제가 되어서 재밌었습니다. '생일 문제'는 사람이 여러 명 있을 때, 생일이 같은 사람이 있을 확률이 50퍼센트가 되려면 도대체 몇 명이 모여야 할까? 하는 고전 수수께끼에요. 많은 사람들이 365명이나 그 절반인 183명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23명만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직관이 사실 수학적으로는 어긋나는 대표적인 사례인데, 정작 생일 문제를 알아도 그 비슷한 현실 사례를 가져오면 저도 모르게 잘못 생각하게 되는 게.. 정확하게 생각하는 훈련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됐어요.



직관은 정답이 아니다

 '생일 문제'를 뒤집은 건, 특정 날짜를 지정해놓고 - 1월1일이나 12월25일 같은 임의의 날짜 - 이 사람과 생일이 똑같을 확률이 50퍼센트인 사람이 방 안에 있으려면 몇명이 필요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생일 문제'의 정답이 23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작은 숫자였다면, 반대로 이건 23은 물론이고 183보다도 더 큰 253이 정답이에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아무 날짜나 생일이 같은 두 사람과, 특정한 날짜를 가진 생일이 같은 두 사람은 이렇듯 확률적으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이걸 현실에 적용한 게 바로 DNA 문제였어요. 범죄자의 DNA가 어떤 사람과 일치했을 때, 그 정확도는 얼마나 될까? 하는 문제요!


 과연 어느 쪽이 옳을까? 범인이 아닌 무고한 사람의 DNA를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할 때 결과가 일치할 확률은 110만분의 1인가, 3분의 1인가? 핵심은 이 확률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있다. 둘 다 논리적이긴 하지만 어느 쪽도 푸켓이 범인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알려주진 못한다. 이 두 값은 서로 다른 값을 의미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 p.161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5장 다이애나 실베스터 사건에서 검사가 주장한 110만분의 1과 변호사가 주장한 3분의 1은 모두 틀린 확률이라고 합니다. 둘 다 용의자와 범죄 현장에 남겨진 DNA가 일치할 확률로 보기는 어렵다고 하네요. 164~167페이지에는 좀 더 정확하고 다양한 요소를 분석한 확률이 실려 있습니다. DNA 유전자 자리가 일치할 확률+그 사람이 백인일 확률+캘리포니아(범죄현장)에 거주하거나 출신일 확률+65세 이상의 성범죄자일 확률 등등을 모두 고려해서 계산을 해요. 누군가는 반드시 범인이 될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저자는 반대로 이 조건을 만족하는 또 다른 진범이 있을 확률을 계산해봅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70분의 1이라는 확률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건 말하자면 지금 잡힌 용의자가 범인이 아닐 확률이 최대 70분의 1이라는 거죠. 


 존 푸켓이 범인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가 받을 판결이 어떤 것이건 그가 무죄일 확률 이외의 다른 확률에 근거해서 판결이 내려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재판에서 수학이 활용된다면 올바르게 쓰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재판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셈 밖에는 되지 않는다. - p.167


 재판 과정에 쓰이는 수학을 대하는 저자의 대표는 시종일관 이렇습니다. 과학의 시대에 수학을 적극적으로 재판에 끌여들여야 한다면, 분명하고 정확한 계산과 확률과 숫자만 근거로 내세워야 한다는 것. 맞는 말이죠. 어떤 사람이 무죄일 확률이 110만분의 1이라는 것과 3분의 1이라는 것과 70분의 1이라는 건, 정말이지 하늘과 땅 차이잖아요. 우리는 좀 더 훈련받은, 섬세한, 정확한 분석을 할 줄 아는 눈을 필요로 해요! 




 사람들은 복잡해보이는 수식이 나오면 '그래서 결국 마지막에 나오는 숫자가 뭐야?' 하고 그 과정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기 마련입니다. 책에서도 그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간 확률론이 굉장히 많이 나와요. 아예 대놓고 증거 조작을 했던 드레퓌스 사건은 제외하더라도, '범인처럼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성일 확률이 10분의 1이다' 같은 말도 안 되는 전제를 놓고 계산하는 콜린스 부부 사건 같은 케이스도 있습니다. 도대체 저 10분의 1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알 수조차 없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재판 당시에는 저기에 딴지를 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게 놀랍죠;;; 아마 다들 복잡해보이니까 일단 결론만 듣자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어요;;;


 책을 읽으면서 반성을 좀 했습니다. 전문가가 나와서 (사실은 수학 쪽 전문가가 아닐 확률이 상당히 높음) 이러이러할 확률은 몇분의 몇입니다~ 하고 선언하는 순간, 배심원들이나 법조계 사람들은 그 숫자를 의심없이 믿어버린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뭔가 복잡해보이고, 전문가가 계산했으니 어련히 맞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한다는 거죠. 만약 저도 책에 나오는 사건들 중 하나에 배심원으로 들어갔다면 아마 똑같은 실수를 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어서 섬뜩했습니다. 좀 더 주의깊게 살피고, 특히! 특히! 특히! 전제가 되는 기본 확률이 어떤 식으로 선정되고 산출되었는지, 거기서 빠진 요소 혹은 인위적으로 더해진 요소는 없는지 다시 한번 내 머리로 생각해보는 과정을 꼭 훈련해야겠다 싶었어요.


 대중이 알아듣기 쉬우면서도 중요한 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자가 법과 수학의 연계에 엄청나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앞으로도 꾸준히 책을 내줄 것 같은데, 앞으로 나올 다른 저서도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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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과 마르가리따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75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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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고전문학 중 하나인 <거장과 마르가리따>. 저는 미하일 불가꼬프라는 작가를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는데 작가 소개를 읽어보니 굉장히 유명한 작가더라구요. 무려 솔제니친에 버금가는 작가라는 평이! 살아생전에도 유명했지만 <거장과 마르가리따>가 사후 26년만에 발표되면서 러시아 문학권은 물론이고 서구권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대요. 그런데 그런 소개가 없었어도 충분히 통할 만큼 소설 자체가 엄청 재밌었어요!


 소설은 1) 악마 볼란드가 그 수하들과 함께 모스크바에 나타나서 사회를 혼란시킨다, 2)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를 만나고 심판하고 고뇌한다, 3) 본디오 빌라도를 가지고 소설을 쓴 '거장'이 위기에 처하자 그의 연인 마르가리따가 악마와 거래를 해서 거장을 구한다, 이 세 가지 큰 줄기가 서로 교차하면서 진행됩니다. 이 과정에서 1·2·3이 서로 겹쳐지면서 당대 러시아의 사회문제를 은근슬쩍 드러내요. 하지만 이 소설이 살아생전 발표되지 못했던 이유는 그게 아닐 겁니다. 아마 이 소설 전체가 어쨌거나 '악마', '사탄'의 존재를 인정하고 시작한다는 게 결정적이었겠구나 싶어요. 초반부터 누누히 얘기하지만, 당시 러시아는 유물론적인 가치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무신론만이 정답으로 여겨졌으니까요. 불가꼬프와, 누가 봐도 불가꼬프를 나타내고 있는 거장 캐릭터가 엄청나게 공격을 받았던 것도 이해가 됩니다. 교회만이 정답인 세계에서 '신은 없다!'고 외치는 거나 매한가지였겠죠. 이건 누가 봐도 '신앙인'의 원고거든요.


 역사 속에서 예수와 본디오 빌라도를 불러와 현대 러시아의 모습을 풍자했다- 이렇게만 말하면 엄청 딱딱할 것 같은데, 은근히 웃기고 캐릭터성이 강해서 금방 스르륵 읽혀요! 상·하 두 권으로 나누어져 분량이 꽤 있는 편인데 마음 먹고 읽기 시작하니까 하루도 안 걸렸어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거장과 마르가리따지만, 의외로 둘의 비중은 크지 않고 오히려 악마인 볼란드와 그의 수하 꼬로비요프-아자젤로-베게모뜨 3인방의 비중이 큽니다. 악마 쪽 캐릭터가 워낙 확실하고 매력적이라 이쪽이 진주인공 같기도 해요. 표지에 나오는 고양이가 바로 베게모뜨입니다. 고양이 주제에 악마의 하수인 노릇을 톡톡히 하고 다니는 녀석이에요. 상권에서는 그냥 평범한 악마구나 싶은데 하권 가면 악마들 언제 나오나 계속 기다리게 된다니까요~ (아자젤로랑 베게모뜨랑 둘이 사격실력 가지고 내기하는 장면 정말 뭔가 기묘하고 웃기고 귀엽습니다.) 실제로 불가꼬프도 제목을 붙일 때 <대제상>이나 <사탄>, <검은 사도, 그가 나타나다> 같은 후보를 고려했다는 걸 보면 처음에는 분명 이쪽을 더 부각시키려고 했던 것 같아요.


 특히 환상문학 특유의 '외부인이 볼 때는 전혀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되지만, 내부인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플롯이 좋았습니다. 예를 들어 정신병동에 환자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각자의 헛소리를 지껄이는데,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게 무슨 일인가 싶겠지만 독자는 약간의 힌트만으로도 그 사람이 누구이고, 앞서 무슨 일을 겪었다는 걸 다 알게 되는 식으로 전개되거든요. 다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진실을 말하는데 제3자가 들으면 미친 놈의 헛소리가 따로 없죠! 등장인물은 다들 어리둥절 혼란 속에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독자는 안다는 것. 이게 은근히 매력포인트에요. 게다가 "오늘 저녁에 회의는 열리지 않을 겁니다. 안누쉬까가 벌써 해바라기 기름을 샀고 그것을 쏟았거든요" 이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툭 던진 것들이 나중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건, SF나 시간여행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는 장치라 더 흥미롭고요.


 완결이 되서 책으로까지 나왔는데 '미완성'이라고 해서 의아했는데, 작가가 수정을 하던 중에 사망했대요. 그래서 곳곳에서 앞뒤가 안 맞는 문장이나 상황들이 발견되곤 합니다. 각주로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서 바로 알 수 있어요. 한낮이랬다가 오전 10시도 안 된 시간이랬다가, 창문으로 날아갔다고 했다가 문을 닫고 바깥으로 나왔다고 했다가, 각자 자기 안식처에서 조용히 죽었다고 했다가 뒤에는 사라졌다고 했다가, 심지어는 악마 쪽 주요 캐릭터 하나가 앞에서는 활약하다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사라져요. 이야기의 완결성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지만 진짜로 작가가 제대로 끝까지 다 손봤다면 어떤 작품이 나왔을까 궁금해집니다. 


 각주가 꽤 많아요. 저 같은 경우는 무심코 흘려버릴 수도 있었던 포인트를 번역자가 세세하게 짚어주는 느낌이라 각주를 좋아하는데, 흐름이 끊겨서 싫으신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지명이나 이름 같은 건 그냥 넘기셔도 무방할 듯 해요! 각주가 많다는 건 반대로 말하자면 글을 읽는 데 그만큼 필요한 배경지식이 많다는 말이잖아요. 그래서 확실히 러시아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이 읽으면 저보다 훨씬 많은 게 보이겠구나, 싶어서 좀 아쉽기도 했습니다. 고전 번역을 읽다보면 꼭 이렇게 깔려있는 문화적 코드들이 궁금해진다니까요! 각주로는 따로 설명되지 않은 부분인데, 소설 속에서 (악마가 주인공인 걸 감안해도) "알 게 뭐야? 악마나 알겠지!" 하는 식의 표현이 엄청나게 자주 등장하거든요. 볼란드가 악마인 걸 모를 때도 그냥 사람들이 숨쉬듯이 저렇게 말해서, 러시아에서는 일종의 관용구인가보다 하고 막연하게 짐작하고 있어요. 무신론이 대세였던 시절에도 언어에 남아있는 종교의 흔적이라니, 재밌지 않아요?!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사탄의 무도회 장면에서 약간의 인종차별적인 부분입니다. 러시아 작가가 만들어낸 사탄은 러시아의 문화와 역사의 영향을 받는다는 증명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죽은 자들이 찾아오는 무도회에, 온갖 인종이 다 있다고 묘사가 분명히 되고는 있지만, 이름을 가지고 중요도 있게 등장하는 건 전부 유럽-러시아 백인뿐이에요. 흑인들은 그저 까만색 피부를 가지고 스쳐지나간다고 나오거나 혹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름도 없이 그저 시중이나 들고 칵테일이나 나르고 있어요;;; 차라리 하인의 인종을 말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흑인이라고 명시가 되어 있어서 흠칫했습니다. 소설 통틀어 흑인이라고 제대로 나오는 게 딱 그 장면뿐이라니.. 너무했어요 따흑..


 러시아권 이름이 워낙에 헷갈려서 중간중간 혼란이 오는 것만 빼면, 굉장히 빠르게 쑥쑥 읽히는 책입니다. 저는 무신론자인데도 중간에 삽입된 거장의 소설도 성경 읽는 느낌으로 재밌게 잘 읽었어요. 오히려 이 소설 속 소설 부분은 성경과 다른 점이 많아 독실한 종교인이 읽으면 어떤 감상일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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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가든 - 초판본 비밀의 화원 - 1911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박혜원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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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의 화원>은 굉장히 유명한 고전 아동문학이긴 하지만,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소공자>와 <소공녀>에 비해 덜 알려진 편인 것 같아요.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이라는 작가 이름도 안데르센이나 여타 다른 세계적인 아동문학 작가에 비해 좀 덜 익숙하고요. 하지만 덜 알려졌다고 해서 그 작품이 덜 좋다는 뜻은 아니죠! 지금 읽어보면 다소 부적절한 인종차별적 내용이 조금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당시 시대상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작가가 담고자 하는 메시지는 충분히 재미있게 잘 전달되는 작품입니다.


 메리 레녹스는 인도에 살던 영국 부잣집 아가씨로, 아~~~~주 버릇이 없고 제멋대로에 무뚝뚝하고 심술궂은 10살짜리 꼬맹이입니다. 보통 아동문학 주인공은 어른의 눈으로 봤을 때 좀 이상해보여도 어린이들 세계에선 정말 선하고 매력적이기 마련인데, 메리는 아예 대놓고 성격이 나빠서 주변 아이들이 따돌리고 놀려먹는 것으로 나와요. 그리고 묘사를 봐도 전형적으로 '부모에게 방치되어 오냐오냐 키워진' 상류층 소황제입니다. 아무도 메리를 신경쓰지 않고, 메리 역시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아요. 이런 메리가 부모를 잃고 낯선 고모부네로 보내져, 서서히 변화한다는 게 주요 내용입니다. 메리는 처음에 영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누가 옷을 입혀주고 신발을 신겨주는 게 너무 당연해서 '마치 손발이 없는 사람처럼' 가만히 서서 누군가 시중을 들긴 기다리는 아이였지만, 하녀 마사의 솔직하면서도 능청스런 반응("즈 옷붙이도 혼차서 못 두르나요!")에 힘입어 점점 자기만의 세계를 깨고 나오게 돼요.


 동화다운 매력이 곳곳에 살아있습니다. 특히 식물을 키우시거나 정원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책 속에 펼쳐지는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묘사가 마음에 쏙 드실 거예요! 메리는 아무 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였는데, 혼자 방치된 채로 정원을 거닐면서 점점 이 신비한 세계 속으로 빠져들거든요. 그 와중에 정원을 돌보는 노인 벤 웨더스태프를 만나 이 무뚝뚝한 노인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점을 발견하고 친근함을 느끼기도 하고, 자연의 마법사나 마찬가지인 마사의 동생 디콘을 만나 동물과 식물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가기도 합니다. 인도에서는 늘 집 안에 처박혀 있기만 했는데 영국에서는 밖에 나와서 걷고 뛰고 놀고 먹으니 점점 더 건강해질 수 밖에요! 게다가 이 비밀 많은 집에서 '비밀의 화원'과 '비밀의 주인공', 그리고 '비밀의 방'을 탐구하면서 '비밀'을 쌓아가기고 하고요ㅋㅋㅋ


 마음이 병들어있던 크레이븐 백작가 부자(父子)가 정원을 가꾸고 자연을 거닐면서 점점 치유되고 덩달아 몸도 건강해지는 그 과정이 잘 그려져있어요. 다만 아들인 콜린이 치유되는 과정은 매우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메리와 디콘과 벤 노인과 함께 서서히 일어난다는 느낌인데 반해 아버지인 크레이븐 백작은 그렇게 어둠 속을 헤매다 어느 날 갑자기 문득 스스로 치유되어 돌아온다는 묘사가 좀 뜬금없긴 했어요. 저는 당연히 돌아와서 되살아난 콜린과 정원을 보고서 마음을 돌릴 줄 알았는데, 이미 그 전에 하루아침에 변한 채로 돌아온 거잖아요. '아내의 꿈을 꿨는데 그날 아침에 편지가 왔더라' 해서 돌아온 건 있을 법한 일 같긴 한데 말이에요. 그래도 봄의 물결 속에서 마침내 서로를 끌어안은 부모자식의 이야기는 여전히 참 달콤합니다.


 글을 읽다 보면 곳곳에 아주 인종차별적이고 계급주의적인 언사들이 녹아있어서, 만약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시는 부모님이라면 주의하셔야 할 것 같아요. '아주 오래전에는 이렇게 나쁜 생각이 당연하다고 사람들이 믿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납득시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예 대놓고 인도인을 노예로 부리는 영국인이 나오고, 흑인은 다 이상하니까 아가씨도 흑인인 줄 알았다는 차별적인 얘기를 하고, 거기에 또 발끈해서 화를 내는 주인공에, 곧 죽을 거라는 이유로 거의 집안에서 폭군으로 군림하던 도련님도 등장하거든요. 아동문학을 읽을 때 보통 아이가 주인공에 이입하는 걸 생각해보면, 이런 문제적인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주의를 기울이는 게 보호자가 해야할 일 같아요!


 꽃과, 새와, 정원과, 녹음과, 바람과, 햇살과, 초록과, 정원으로 가득차 있는 이야기입니다. 읽다보면 저도 녹음을 거닐면서 꽃향기를 맡고 싶어지는데, 저에게는 거닐만한 정원이 없다는 게 애석할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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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여자들 -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
로런 엘킨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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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를 걷는 여자들>은 제목부터 내용까지, 기대했던 바로 그 주제를 관통하는 책입니다.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도시에 살았던, 그리고 집 안에 머무르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와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던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여성들에 대해 설명하는 게 주된 목적은 아닙니다. 그들에 대한 단상이 들어가 있을 뿐, 어디까지나 작가 본인의 인생과 사상과 고민과 철학을 담고 있거든요. 물론 거기에는 앞서 걸었던 여성 선배들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긴 하죠.


 에세이가 으레 그렇듯, 특별하게 가지는 줄거리나 명확한 갈등이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끊임없는 사유가 둥둥 떠다녀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공감'하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닙니다. 꽤나 많은 여성 예술가의 작품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쏟아지기 때문에, 한 줄 한 줄 신경써서 읽지 않으면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에요. 책 뒤편에 소개된 참조문헌/이미지 출처만 30페이지가 넘어갈 정도거든요. 개인적으로 출처표기가 이렇게 잘 되어있는 책 오랜만에 봐서 좋았습니다. (한국은 이 부분에 엄청 소홀해서 번역하면서 일부러 삭제하는 곳도 있대요. 인용출처 뺀다고 부피에 별 차이도 없는데 그러지 말았으면..) 아무튼 설명을 꽤 열심히 해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르주 상드'나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 같은 예술가에 대해 잘 모르면 쏟아지는 사유의 폭격에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거예요. 알면 읽는 속도가 훨씬 빨라질 거구요.


 이 책은 어떤 면에서는 걷기에 대한 예찬입니다. '정처 없이 걸으면서 사유하는 자'라는 뜻의 프랑스 단어 '플라뇌르'를 여성형으로 바꾼 '플라뇌즈'에 대한 책이거든요. 산책자, 산보자, 걷는 사람. 플라뇌르는 길에서 대중에게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19세기 어느 순간까지는 길에서 여성은 너무 눈에 띄는 존재였고 동시에 보이지 않는 존재여서 플라뇌르가 될 수 없다고 배제당했습니다. 그렇지만 꾸준히 방에서 뛰쳐나와 걷기 시작하는 여성들이 있어왔고, 저자는 자신의 인생을 쭈욱 연장시켜 그들의 인생까지 가 닿게 만듭니다. 걷는 것에 대한 가치를 굉장히 높게 치는데, 이건 약간의 지리적 특권이 포함된 미학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프랑스처럼 산책하기 딱 좋은 기후에 자리잡은 나라가 아니라면, 플라뇌르가 되기는 쉽지 않겠다 싶거든요. 영하 30도에 가까운 추운 나라이거나 반대로 영상 40도에 가까운 더운 나라라면, 정처없이 쏘다니면서 인생과 철학에 대해 사유하는 게 자연스러운 선택지가 되지는 않겠죠. 이 부분에 대한 언급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없어서 좀 아쉬웠어요.


 로런 엘킨이 걷고 싶어하는 도시는, 과거를 품고 역사를 드러내는 도시입니다. 읽다보면 이 사람이 왜 파리와 사랑에 빠졌는지 확실히 알겠어요. 어떤 도시를 원하는지도요. 단순히 풍광이 예쁘고, 깨끗하고, 깔끔한 도시를 원하는 게 아니에요. 저자는 거리를 걸으면서 100년 전, 200년 전에 여기서 살고 저항하고 걷고 싸우고 외치고 죽어갔던 수많은 유령들의 흔적을 생생하게 느껴지는 도시를 원하거든요. 그게 바로 도시와 사랑에 빠지는 제1조건입니다. 그래서 본인이 태어나고 자란 미국 뉴욕이나, 천편일률적인 현대식 건물들로만 가득한 일본 도쿄에는 결코 만족할 수가 없어요. 천상 파리나 베네치아 같은 유럽의 도시에서 살아야 할 운명입니다. 파리를 걸으면서 68혁명을, 코뮈나르를, 1848년 혁명을 생각하고 그 흔적을 찾는 사람에게 모든 것이 그저 빠르게 현대화되고 흘러가는 도시는 별 매력이 없지 않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로런 엘킨이 서울에 왔으면 도쿄만큼이나, 아니 도쿄보다도 더 학을 떼고 싫어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서울도 딱히 걷기 좋은 도시가 아닐 뿐더러, 세계 어느 도시를 가도 비슷비슷한 빌딩숲으로 가득찬 느낌이 강하잖아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로런 엘킨의 눈으로 봤을 때입니다. 한국의 남쪽에서 태어나 성인이 되면서 서울로 흘러들어온 저 같은 사람이 보는 서울은 또 다르겠죠. 심리적 지리로만 따지면, 서울은 뉴욕과 비슷한 구석이 있어요. '모두가 무언가 야망을 품고 도망쳐오는 도시'. 그리고 외부에서 여기에 '살러' 왔지만 속한다고 느끼지는 못하는 인간이 걸으면서 체감하는 도시는 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꾸 운동화를 신고 거리로 뛰쳐나가서 이 획일화되고 무기질한 동네를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어졌어요. 로런 엘킨이 바라보는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절대로 바라볼 수 없는 방식으로, 나의 역사를 가진 채 둘러보는 서울은 어떨까? 그게 궁금해지더라고요. 


 요즘처럼 산책하기 딱 좋은 기온과 날씨일 때 이 책을 읽게 되어서 행운이었습니다. 자꾸 중간에 책을 덮고 '지금 동네 한 바퀴 돌고 올까' 하는 충동에 시달렸거든요. 실제로 몇 번 나갔다 오기도 했고요. 이 도시는 나에게 무엇인지,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내가 여기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떠날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분명히 로런 엘킨에 대해 읽었는데, '내'가 새삼스레 궁금해지다니 정말 어떻게 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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