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렌스 하셀틴 Florence Haseline 박사는 로런스와 와인하우스에게 "나는 이 현상이 악의적이거나 고의적인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사들에게 각자 관심 주제에 대해 연구하라고 하면, 50대이고 남성인 의사라면 모두 심장질환을 연구할 것다."라고 말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의학 연구에서 연구자가 관심 있는 주제는 연구자 자신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주제이기 마련이다. 1990년에 슈뢰더 대변인이 "사람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에 자금을 쓴다. 남성이 대다수인 의학 연구 집단은 유방암보다는 전립선암을 더 걱정하기 마련이다."라고 언급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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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썰록
김성희 외 지음 / 시공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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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명의 작가들이 그려내는 다섯 가지 이야기들은 제각각이지만 <좀비썰록>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자아를 잃은, 인육을 먹는, 사람을 공격하는, 우리가 흔히 좀비라고 부르는, 어떤 존재가 등장한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고전과 판타지와 호러의 결합이랄까요? 


 제 마음에 쏙 들었던 건 <사랑손님과 어머니, 그리고 죽은 아버지> 였습니다. 원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도 특유의 서울사투리가 아주 맛깔나게 그려져 있잖아요? 그 말투를 잘 살렸더라구요. 그러면서도 시집살이에 시달리고, 마을 사람들의 잔혹한 뒷담에 시달리고, 끊임없는 남편의 육체적&정신적 학대에 시달리고, 온갖 노동에 시달리다... 결국엔 못 참겠다! 하고 뚜껑이 열려버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어쩜 그리 시원하던지! 그렇잖아요. 아직도 그렇게 사는 여성들이 많다는 걸 아는 입장에서, 더 이상은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는 말 그대로 자기를 괴롭혀왔던 모든 속박을 다 깨부수는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으면서 어찌 짜릿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ㅎㅎ 로맨스의 기운이 살짝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사실은 '지옥'을 탈출하려는 수단이었을 뿐이고, 결국 사랑방 손님은 옥희와 옥희 어머니를 두고 혼자서 도망가버리는 사람으로 그려지는 것도 엄청 웃겼어요. 두 사람이 기차를 타고 떠나 도달할 곳이 어디든, 이 지옥보다는 행복했겠지요. 역시 해피엔딩이 좋네요.


 <관동행> 같은 경우에는 약간 애매한 것이, 관동별곡을 소재로 하고 있는 게 분명하고 관동별곡의 내용을 따라가는 것을 보니 정철이 주인공인 것 같은데 또 읽다보면 정철은 주인공이 될 수가 없고 정 대감이라는 별개의 인물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정 대감이 정철이 아니라면, 어째서 그렇게까지 정철과 꼭 닮은 인생역정을 겪고 '관동별곡에서 다시 벼슬하는 부분까지 왜 그렇게 생략되어 있는 줄 너네 아니?' 같은 의문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걸까 잘 모르겠어요. 현대 국어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인데, 워낙에 직접 본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를 하셔서 저는 선생님이 사실은 이야기 속에서 벌어진 일들을 직접 겪었던 사람이 아닐까 의심했었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영원히 죽지 않는? 좀비 같은? 그런 인간이라는 암시가 마지막에 나오지 않을까 했었는데- 저는 지나친 생각이었던 걸로^^ 하지만 단순히 수업 시간에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한 썰 치고는 너무 장황하고 본격적이라서 이런 숨겨진 요소가 하나쯤 들어있었어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만복사 좀비기>는 읽는 내내 으악! 으악! 하는 고통스런 비명이 저절로 나오는 작품이었어요. 무서워서? 아니요. 슬퍼서? 아니요. 남자 주인공의 비호감을 견딜 수가 없어서요.. 어쩌다 보니 만복사라는 절에 갇히게 된 청년이 너무나도 혼인이 하고 싶어서(;;) 여자만 보면 안달복달한다는 내용이 그려져있는데, 여자 독자 입장에서는 단지 '치마를 둘렀단 이유만으로' 자기 혼인 상대가 될지도 모른다면서 침을 질질 흘리는 남자를 보고서 불쾌함을 느끼지 않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상대방 의사는 생각도 않고 김칫국부터 마시면서 상대를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그저 '여자'로 여기는 그 사고방식 자체가 현실에서도 아주 흔하기 때문에.. 정말 주인공이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엔딩에서도 웬만하면 안타까움을 느끼고 싶은데 전혀 그럴 수가 없더라구요ㅠ 학창시절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술술 잘 읽었던 것 같은데, 지금 다시 읽어보면 역시 똑같은 불쾌감을 느끼게 될까 궁금해졌어요. 시대가 변했고 제가 변했으니 역시 마찬가지이려나요?


 <운수 좋은 날>은 유일하게 현대 배경으로 펼치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작품들은 전부 다 원래의 고전, 원래의 시간대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데 비해서 이 작품만 유일하게 지금 인터넷도 되고 스마트폰도 되는 시대에서 이야기가 진행돼요. 제가 <관동행>에서 기대했던 요소가 바로 이 작품에서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 육식과 채식이라는 현대적인 쟁점을 좀비와 결합시켜서 극에 녹여낸 게 재밌었어요. 뒷이야기가 좀 더 이어졌어도 좋았을 텐데, 진실이 밝혀지고 세 사람이 모두 상황파악을 완료한 순간 이야기가 끝나버려서 아쉬웠습니다. 저는 이 뒤에 해환이 어떤 선택을 했을지 그래서 결국 어떤 삶을 살지가 궁금하거든요! 정말로 엄격한 비건으로 살면, 비극을 피할 수 있을까요?


 <피, 소나기>는 절절한 멜로드라마죠. <소나기>는 첫사랑의 아이콘 같은 작품인데, 거기서 죽은 소녀가 다시 돌아왔다는 아이디어 정말 천재적이에요! 소년이 소녀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고 여전히 함께한다는 사실이 어쩐지 위안이 됩니다. 실제로는 누구라도 그러기 힘들다는 걸 알아서 더 그래요. 자신을 공격할 수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선뜻 등을 내어주는 소년과, 자아를 잃고 피에 굶주려 미쳐 날뛰면서도 소년이 막아서면 얌전해지면서 등에 업히는 소녀.. 이 둘이 찐사랑이 아니면 뭐겠어요? 결국 원작의 마지막과 겹쳐지는 엔딩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처음 <소나기>를 읽었던 그 날처럼 마음이 아릿해집니다. 흑흑 얘들아.. 어른들이 아무것도 못 해줘서 미안하다..


 익숙한 고전을 재해석해서 새로운 작품으로 만나는 일은 작가나 독자 양쪽 모두에게 위험부담이 적은, 재미있는 놀이 같은 경험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아서 그냥 무심코 지나쳐버리기 쉬운 부분들을 찾아내서 발견하고 거기에 문학적 상상력을 불어넣은 작품 특유의 신선하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그 느낌이 정말 좋아요~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시도 환영합니다! 앞으로 꾸준히 다른 소재들로도 작업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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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안 2021-02-10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만복사 좀비기>가 자기 혼자만 사랑이라는 착각에 빠져서 여자라면 연애 상대, 결혼 상대로 보는 사람들의 환상을 산산이 깨 주는 작품이라고 봤어요. 여주인공은 한 번도 양생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어준 적이 없고, 결국 양생은 퇴치 대상에 불과했으니까요.
 

소년이 주먹으로 소녀 입술을 닦아주었다.
소녀는 소년의 냄새를 맡았다. 소녀는 자신이 입고 있는소년의 옷 냄새도 맡았다.
소년은 신고 있던 고무신을 벗었다.
소년은 무릎을 꿇고 앉아 소녀의 짓무른 발을 잡았다. 그런 다음 소녀 발바닥에 묻은 재를 정성스레 털고 신을 곱게신겨주었다.
소년이 올려다보며 웃었다.
"우리, 산 너머에 갈까?"
소녀는 살기를 게우며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송곳니를 드러낸 채 소년을 보기만 했다.
"자."
소년은 소녀에게 등을 보였다.
소녀가 업혔다.
소년은 소녀를 업고 불가로 걸어갔다.
소녀는 소년 등에 아기처럼 볼을 댄 채 잠잠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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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해서 집안이 이 꼴이 되는 거라고, 엄마는 그 소리들을다 들어왔단다. 엄마는 참을 만큼 참았어. 참을 만큼 참았다.
고, 우리 옥희도 잘 알지? 옥희 때문에라도 이 엄마가 참아왔단 걸. 하지만 이젠 아니 참을 테야. 엄마는 참는 여자가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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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인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을까? -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2가지 충격 실화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지음, 이지윤 옮김 / 갤리온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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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사법 시스템에 대해 관심이 굉장히 높은 편인데, 그래서 이 책의 제목에 끌렸습니다. <왜 살인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을까?> 언뜻 말도 안 되어 보이는 판결들도 막상 속을 까 뒤집어 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잖아요. 물론 법조인들이 부패해서 말도 안되는 판결을 내린 케이스는 제외하고요! 여기 쓰여있는 12가지 실화들 역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그럴 만한 사건들이어서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12가지 사건이 전부 살인죄인 건 아니고, 경중이 다른 죄가 몇 가지 섞여있어요.



우리를 보호하는 그 시스템이 가끔 우리를 배신한다

 제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에피소드는 아마 <변호인>일 겁니다. 이 사건은 일단 1) 피고가 법정에 섰습니다. 2) 피고가 실제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3) 피고는 다른 누구도 아닌 피해자를 살해했습니다 4) 피고의 변호인조차 피고의 유죄를 확신합니다 5) 그럼에도 피고는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 다섯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고 있는 유일한 에피소드거든요. 다른 에피소드들은 의외로 한두 요건이 빠져있어요. 살인을 저질렀는데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아 법정에 서지 않았다거나, 저지르지 않은 죄로 법정에 섰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변호인>의 경우 정말 빼도박도 못하는 유죄 피고인,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인신매매 강간범 조직 우두머리인데도 결국 무죄를 선고받은 케이스라 보는 내내 탄식이 나왔어요ㅠ 그것도 재판의 절차상 문제 한 부분 때문에요!!!


 인신매매 조직을 잡기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확실한 증거도 많지 않고, 증인들은 대개 범인들을 무서워해서 증언을 하지 않아요. 그런 와중에 용기내어 한 여성이 자기 인생을 걸고 증언을 했고, 9회에 걸친 지리멸렬한 공판 끝에 드디어 잡아넣을 기회가 왔는데.. 그런데.. 갑자기 판사가 작은 실수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혹시나 다시 증언을 해줄 수 있을까 해서 증인을 찾아봤더니, 증인은 이미 실종된 후고 뒷골목에는 온통 '그녀는 증언하고 나오는 길에 살해당했다'는 소문만 무성한 거죠. 이게 무슨 일입니까.  


 물론 절차상 문제를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사법 절차가 그렇게 정해진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대체로 보호받고 있어요. 우리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진 거니까요. 하지만 가끔은 우리를 보호하는 바로 그 시스템이 우리를 배신하기도 합니다. 변호사까지도 유죄라고 확신하고 재판을 맡기 싫어했던 죄인을, 세상 만천하에 다시 풀어주기도 하는 거예요. 그렇게 자유의 몸이 된 악당은 더 똑똑하고 교묘하게 나쁜 짓을 하면서 세상에 해악을 끼칩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법 절차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절차가 없으면, 악당들뿐만 아니라 선량한 시민들도 모두 피해를 입게 되는데요? 여기서 우리는 오랜 사법의 고민을 마주합니다. 99명의 악당을 잡아넣기 위해 1명의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켜야 하나요?



우리가 언제나 사람을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1명의 무고한 사람이 정말 1명이기만 하겠냐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억울해질 거라고,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고 반박하는 게 <화창한 날>이죠. 여자는 자기 자식를 살해한 죄로 이미 유죄를 선고받고 죄값을 치른 케이스입니다. 하지만 알고보면..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뒤집어 씌운 거예요. "나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 아이가 죽어 있었어! 근데 자기야 알잖아. 나는 전과가 있어. 나는 종신형을 선고받을 거야. 자기는 아마 잠깐만 들어갔다 나오면 될거야. 여자 교도소 나쁘지 않대~" 무슨 이런 호랑말코같은 놈이 있나, 이런 말에 정말로 넘어가는 여자가 있나 싶겠지만, 세상은 요지경이니까요. 아무튼 그녀는 대신 법정에 서게 되고 대신 유죄를 선고받게 됩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그녀는 아이가 잔혹하게 학대되었음을 알게 되고, 결국 출소 후에 다시 남편을 살해하게 되기에 이릅니다. 


 아이러니한 건, 그녀가 정작 저지르지 않은 죄 때문에 유죄를 판결받았으면서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판결받았다는 겁니다. 이건 법의학자-형사-검사-판사가 무능해서일까요? 글쎄요. 소설 형식으로 씌여져 범인이 그녀라고 독자들이 미리 알 수 있게 그려지지 않았다면, 이 케이스에서 여자의 사연과 정확히 일어난 일을 짚어낼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우리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고, 증거를 고려해 최대한 일어났음직한 일을 짐작해볼 수 있을 뿐이에요. 거기엔 당연히 오차가 발생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실제와는 다른 판결이 내려질 수 있고, 그걸 막기 위해서 여러가지 절차와 권리가 필요해요.


 변호를 받을 권리 같은 경우만 해도 그렇죠. 악당에게 변호인 따위를 붙여주다니, 악당을 변호해야 하다니, 하고 화를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증거> 같은 케이스를 생각해봐요. 변호인조차도 유죄라고 생각하고 돌파구를 찾지 못했던 사건에서, 뒷골목 폭력배가 지적한 요소 하나 덕분에 억울하게 살인범이 될 뻔한 여자가 결국 무죄로 풀려났잖아요. 실제로 무죄였구요. 시스템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됩니다. 때론 보호하고, 때론 배신하면서요. 그건 우리가 우리 자체적인 판단으로 무죄인 누군가를 유죄로, 유죄인 누군가를 무죄로 단정지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일 거예요. 그런 편견과 단정으로부터 피고인들을 보호하는 거죠.




  소설은 아닌데 소설 형식처럼 씌여 있어서 엄청나게 술술 잘 읽히는 것과 별개로, 하나하나의 케이스에 생각이 많아져요. 어떤 케이스는 다 읽고 나니 책을 덮고 쉬지 않으면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구요. 화가 나기도 하고, 억울한 기분도 들고, 답답하고.. 그렇지만 딱히 답은 보이지 않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 역시 독일과 별다르지 않을 텐데, 그 한계와 모순을 극단적인 케이스들도 맛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법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을 수 있는지, 죄와 벌이란 게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멋진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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