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사회 - 말해지지 않은 무궁무진한 여자들의 관계에 대하여
권김현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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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생각해왔던 부분을 명료하게 정돈된 문장으로 다시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여자들의 사회>가 딱 그래요.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고 접근성이 높은 컨텐츠를 중심으로 여성, 그리고 여러 여성들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걸 보고 있자면 '맞아 이 생각 나도 했었는데! 단어나 표현은 다르지만!' 하게 된다니까요. 그렇다고 전문적이고 어려운 이론이나 용어를 쓰는 것도 아니고요. 아마 지금 이 시대의 수많은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을 어떤 사고방식이나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것 같은 책입니다.


 흔히 '여성 서사'라고 불리는, 여성이 주인공이거나 혹은 여성의 관계성이 주로 부각되는 여러 작품들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아마 책을 읽는 독자마다 접한 경험이 다 다를 것 같아요. <빨간 머리 앤>이나 <작은 아씨들>처럼 어떤 장르로든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만한 작품도 있지만, 반대로 웹툰이나 예능 같은 경우는 아무리 화제성이 높다 해도 접해 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 사실 제 얘기입니다. 웹툰이나 TV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작품이 많았어요. 하지만 제가 모르는 작품도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대략 '이런 여자가 나오는구나. 이런 관계성을 다루고 있구나. 이런 부분을 짚어주는구나.' 하고 알 수 있을 정도로 다뤄주기 때문에, 오히려 책을 보고 나니까 해당 작품에 대해서 찾아보고 싶어지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스트리트 우먼 파이트>를 다룬 챕터가 정말 인상깊어서, 그동안 아무리 주변에서 보라고~ 보라고~ 영업이 들어와도 귀찮아서 찾아보지 않았던 게 후회가 되더라고요. 뒤늦게라도 꼭 봐야겠다 결심했어요. 특히 저자가 자신은 자매애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억압받는 자들은 저항하는 것보다 순응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에 저항은 아주 드물게 이루어진다고, 여자들이 여기에도 저기에도, 위에도 아래에도 다양하게 포진해 있어야 서로 반목하다가도 연대하고 저항할 수 있다고 말한 부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흔히 '알리바이 여성'이라고 하죠? 요즘 시대에 차별이라는 건 아니까, 남자들 사이에 대충 구색 갖추려고 한두명 끼워넣는 여성 말이에요. 너무 과대표되고 있고, 그래서 뭘 해볼 수가 없잖아요. 여자들만 실컷 나와서 A 스타일의 리더쉽도 보여주고, B 스타일의 리더쉽도 보여주고, C 스타일의 패기 넘치는 뉴페이스가 되기도 하고... 그런 '판'을 보고 자란 세대들은 또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롭겠죠. 그런 생각을 하니까 너무 보고 싶어졌어요ㅋㅋㅋ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서사를, 작품을 소비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안에는 의도된 혹은 의도하지 않았어도 반영된 사회의 욕망이나 규범이 담겨 있어요. 똑같은 상황도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읽을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똑같은 각도라도 시대에 따라 더 긍정적으로 읽힐 수도 있고요. 책에 실린 13개의 작품들은 유명세는 각자 다르지만, 지금 2021년 현재 한국 여성에게 분명히 의미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각자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그 깊이나 정도가 다르겠지만, 이 작품들에 힘입어 더 나은 다음이 올 거라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여요! 그리고 이런 멋진 작품들에 대해 정확하고 간결하게 포인트를 딱딱 짚어주시는 권김현영 작가님의 필력도 너무 멋집니다. 추천해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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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마련하는 법 - 21세기 버지니아 울프를 위한 금융 공부
볼리(박보현) 지음 / 참새책방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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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정말 엄청난 작품이죠. 독립적이고 존엄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데는 '침해받지 않는 시공간'과 '경제적 자유'가 꼭 필요하다는, 굉장히 세속적이지만 그래서 더 뼛속 깊이 와닿는 진리를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설파하잖아요. 심지어 그 진리를 '자기만의 방'이라는 용어로 아예 고유 명사화 시켜버리면서 말이죠. 아주 복잡하고 구구절절한 설명들을 한 문장이나 한 단어로 압축시키는 걸 보면 역시 위대한 작가는 다르구나, 싶어져요. 사설이 길었네요. 어쨌거나, 핵심은 경제적 자유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침해받지 않는 시간과 공간 역시 경제적 자유 아래에서 나오니까요.


 제목부터 노골적으로 버지니아 울프를 차용하고 있는 이 책은, 21세기 여성을 위한 금융 공부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사실 성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기초적인 금융 지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생애 주기나 평균 수입을 여성, 그것도 20~30대 여성에 맞추고 있기 때문에 제목을 저렇게 짓지 않았나 싶어요. 예를 들면 아이가 있는 여성의 경우 소득에 돌봄노동을 포함해서 계산한다든가, 사회 초년생의 월급 기준을 여성의 평균 임금으로 계산해서 투자 비율을 맞춘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후반부로 갈수록 그런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잔뜩 나오긴 하지만, 사실 전반적으로 기초를 탄탄히! 같은 느낌이라 다른 성별이나 다른 연령대가 읽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가져다주는 복리의 힘을 믿고, 매일 꾸준히 금융 지식을 쌓아라' 하는 조언은 사실 대부분의 경제 관련 서적에서 등장하는 말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다 하는 건 아니라서 문제일 뿐이죠ㅠ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좋았던 점은, 본인도 계속 강조하고 있듯 저자 역시 대단한 자산가가 아니고, 금융 초보자들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이야기를 늘어놓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정도면 나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싶은 정도의 이야기만 해요. 그게 어떤 분에게는 너무 쉬운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매번 경제 관련 도서를 읽고도 책을 덮고나면 뒤돌아서서 까먹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당장 옆에 노트를 펴놓고 제 수준을 체크할 수 있는 정도라 좋더라고요ㅋㅋㅋ


 저한테 제일 도움이 됐던 건 '머니로그' 관련한 내용이었습니다. 머니로그라는 건 옛날 옛적에 쓰던 용돈기입장이랑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데, 돈을 쓸 때 단순히 금액만 쓰는 게 아니라 그 소비에 대한 감정을 함께 쓰라는 거예요. 항목도 수입/지출 2분류가 아니라 수입/지출/투자/기부/위시리스트의 5분류로 나눠서 전반적으로 돈에 대한 나의 감정이나 감각을 인정하고 점검하는 데 의의를 두는 겁니다. 용돈기입장 형식은 아무래도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만 생각이 뻗어나가게 되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소비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잖아요? 제가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게 뭔지 확인한다는 의미에서 머니로그가 도움이 됐어요. 


 한참 땅에서 붕 떠서 정신없이 소비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 슬슬 부모님 노후도 생각하고 제 노후도 생각하고 그런 시기가 와서... 당장 뭐라도 해야겠다 싶을 때 이 책을 잡았는데, 지금의 저에게 필요한 책을 잘 만난 것 같아요. 너무 복잡한 건 잘 모르겠고, 그래서 지금 내가 뭐부터 하면 된다고? 뭘 하면 된다고? 뭘 시작하라고? 정도의 기초적인 내용을 기대하시는 분에게 딱 좋습니다. 재밌게 술술 잘 읽혀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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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소크라테스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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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소설가 중에 손꼽히게 좋아하는 이사카 코타로의 신작! 역시나 그의 장기로 가득한 멋진 작품입니다.


 총 5개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늘 그렇듯 이번에도 서로의 세계관이 공유되고 있어서 앞에서 나왔던 인물이 뒤에서 또 나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정말 좋아요. '상황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상황을 아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연출됩니다. 그리고 이사카 코타로의 이야기를 성실히 따라간 독자들이라면 당연히 그 의미들을 모두 알 수밖에 없죠! 이렇게 곳곳에 이스터 에그가 넘쳐나니 어떻게 찾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특히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거꾸로 소크라테스>를 관통하며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을 그대로 담고 있는 명장면이라고 생각해요!


 교육에 대해, 처벌에 대해, 그리고 죄인의 사회적 복귀에 대해 작가가 고민한 흔적이 여실히 엿보입니다.


 '잘못을 한 사람을 어디까지, 어떻게 벌을 주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 말이에요. 작게는 누군가를 이유 없이 왕따시키거나, 크게는 칼을 들고 어린 아이를 해치려 했던 폭력범과 이후에 사회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요? 보통은 누구누구가 알고보니 그런 나쁜 짓을 한 나쁜 사람이래~ 하고 선을 긋고 멀리 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작가는 이런 태도 자체가 그 사람들을 점점 더 고립시키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더 나쁜 짓을 하게끔 극단적으로 내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모두 사형을 시키지 않는 이상, 벌을 받아도 결국 사회로 나와 우리 곁에서 살아가게 될 테니, 그 사람들을 따돌리거나 배제하는 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곳곳에서 엿보여요.


 사실 가해자 혹은 원인 제공자가 멀쩡한 얼굴로 뻔뻔하게 잘 살고 있으면 화가 날 수밖에 없어요. 내 일이 아니라도 일단 감정적으로는 그래요.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이 잘 살면 안된다고 욕하고 저주하면서 압박을 가한다고 해서, 피해자들이 피해 입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잘못이 '죽음으로 사죄해라'로 해결될 수는 없죠.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어느 선에서는 피해자가 용서를 하고, 그로 인해 가해자나 원인 제공자가 반성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해요. 어려운 문제죠. 그걸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저는 이사카 코타로가 '평판'이라는 형태로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놨다고 생각합니다. [비非 옵티머스]에서 담임선생님의 입을 빌어 아주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도 하고, 그 외에도 신랄하게 선생님을 비판하는 학생의 태도나, 같은 반 여학생의 태도를 묘사하는 주인공 그룹 등을 통해서 작품 전체에서 꾸준히 말하고 있어요. 이 사람은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야, 이 사람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야, 이 사람은 타인의 지위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이야...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타인 속에서 자신의 평판을 쌓아가게 마련이고, 그것은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게 영향을 줍니다. 좋건 나쁘건 말이죠. 다만 눈치채기에는 아주 천천히,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진행될 뿐이에요.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답게 재밌고 스피디하게 술술 읽히면서도, 이전에 생각해보지 않았던 지점들을 고민하게 해줘서 좋았습니다. 특히 '아이에게 화풀이하려 칼을 들고 덤빈 남성' 같은 경우, 아무래도 저 미친놈은 뭐야 당장 감옥에 보내! 같은 반응을 보이게 되곤 하거든요. 하지만 그 사람이 나중에 사회에 돌아왔을 때, 정말 진심으로 반성하고 후회하고 새 삶을 살고 싶어한다면, 그래서 그 후에 범법을 저지르지 않는 동료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 게 더 급선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아직 저의 마음 속에는 '그렇게 진심으로 반성하는 사람은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데...' 하고 끊임없이 반박하는 목소리가 들리긴 하지만요ㅋㅋㅋ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좋아하시는 독자라면, 이번에도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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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터 아이 - A child born with algorithms=Test Ⅰ
김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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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는 후기입니다. 스포일러가 싫으신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 주세요


 어찌보면 좀 뻔한 이야기입니다. 오류가 없는 멋진 신세계를 꿈꾸는 인간이 기술을 발전시키면, 거기에는 늘 생각지도 못했던 기묘한 독재와 전체주의의 감각이 따라오기 마련이니까요. 중간에 규석이 오류가 없는 세상 운운할 때 '아아 그 대사가 나와버렸군' 하고 생각한 사람이 저 뿐만은 아닐 거예요ㅋㅋㅋ 그건 이제 곧 펼쳐질 새로운 지옥도를 향한 복선이잖아요. 이런 클리셰가 어떻게 해결이 될지 구경하는 것도 재미죠.


 오류 없는 완벽한 세상에 대한 묘사가 확실히 예전에 비해서 더 구체적으로 와 닿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디에나 있을 수 있고 동시에 수천 수백 수만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뭔가를 조작하는 데 크게 시간이 들지 않는다는 묘사 같은 게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는 지점 같은 것? 만약에 정말로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크에 알파 같은 인공지능이 붙는다? 이건 뭐, 우리가 눈치채기도 전에 이미 모든 것은 알파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을 거예요.


 책 속에서 '알고리즘'이라는 워딩이 계속 등장하는데, 읽으면서 묘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특히 '기사를 읽는 생체를 분석해서 오래 머문 기사에 따라 자동적으로 투표가 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동작하는 알고리즘은 그 자체로 너무 모순적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러니까 알고리즘으로 인해 끊임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나에게 익숙한 것만을 추천받고 받아들이게 된다면... 당연히 사람이 편향적으로 변하지 않겠어요? 취향이나 경험 혹은 인식이 폭넓어질 가능성이 제로가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심지어 이런 알고리즘이 미루어 짐작으로 (물론 꽤 정확도가 높겠지만요) 투표권 같은 중요한 권리를 행사한다? 으악. 상상만 해도 너무 싫어요.


 막판에 신에 대한 얘기도 잠깐 나오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신이 자유의지 없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하는 가정과 잘 어울리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오로지 신(인공지능)이 정한 '옳은 길'로만 갈 수 있고, 그 외의 방향은 전부 차단된다면, 인간은 그냥 지금 20세기의 로봇과 마찬가지의 신세로 전락합니다. 그냥 시키는 대로, 시키는 일만, 시키는 만큼 하는 존재. 뭔가 소리내거나 움직이거나 다른 사람과 만나거나 할 필요가 없는 존재. 세계를 굴러가게 하는 부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


 그런 완벽하게 엉망진창인 세계를 벗어나려면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오류를 저지를 것. 오류를 저지르게 할 것. 그러고보면 인간이란 여전히 오류투성이이기 때문에 세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동시에 세상을 한결 아름답게 만들기도 하는 괴상한 종족 같아요. 부디 제가 후자에 속하는, 아니 적어도 전자이면서 동시에 후자인 인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오류를 저지르지만, 저지르기 때문에, 그래서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동성이 그랬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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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버드
밥 스택 지음, 이정아 옮김 / 우리동네책공장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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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는 후기입니다. 스포일러가 싫으신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 주세요


 자신이 느낀 바를 정확히 표현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마음은 문장으로만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기도 하고, 어떤 마음은 이미지로만 전달할 수 있는가 하면, 어떤 마음은 몸짓이나 행위로만 표현할 수 있기도 해요. 각각의 마음이 꼭 맞는 방법이 있다는 게 참 신기하면서도 멋지죠. 그래서 예술이 점점 더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나봐요.


 <블루버드>는 일러스트로만 이루어진 동화책으로, 언어보다는 이미지로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품입니다. 물론 스토리 흐름이라는 게 있으니, 독자들이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같은 장면을 보면서도 모든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자기만의 목소리를 불어넣게 될 겁니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은 원치 않게 혼자였던 순간이 있었을 테니까요. 온통 흑백인 세상에 교실에서, 길에서, 거리에서 혼자인 주인공에게 나를 투영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흑백인 세상에 어느 날 갑자기 파랑새가 나타나요. 그 파랑새는 이상하게도 '나'를 자꾸 따라다닙니다. 그게 참 기분이 좋다가도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숨어서 정말 파랑새가 '나'를 따라오는 게 맞는지 확인해요. 파랑새가 없어지자 자기도 모르게 실망하고, 다시 나타나자 괜시리 행복해집니다. 이 파랑새는 정말 여러 가지가 될 수 있겠죠? 저는 '누군가가 보내는 작은 관심'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SNS에 찍히는 좋아요 한 번일 수도 있고, 친구의 대단하다는 칭찬 한 마디일 수도 있고, 아님 그냥 지나가던 낯선 어른의 다정한 배려일 수도 있는... 그런 작은 날갯짓 하나가 우리를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는지!


 하지만 행복도 잠시, '나'는 무서운 곳에 잘못 들어가 곤경에 빠지고 그 와중에 파랑새는 그만 다쳐서 죽어버리고 말아요. 그리고 '나'는 그것을 하염없이 슬퍼하고요. 하지만 그 파랑새가 떠났다고 해서 상실만이 남는 것은 아닙니다. 그 자리에는 노랑, 빨강, 하양, 갈색 등 온갖 형형색색의 새가 날아들고 그 덕에 '나'는 하늘로 두둥실 떠오를 수 있게 돼요. 그리고 하늘로 떠오른 '나'의 손을 떠난 파랑새는 다시 생명을 얻어 돌아오고요. 이 부분이 얼마나 아름답고 시적인 일러스트로 가득 차 있는지 정말 감탄에 감탄이 나와요. 혼자였던 '나'를 위로하고 성장시키고 지켜줬던 그 모든 존재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가득 느껴진달까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읽기에도 좋은 동화입니다. 괜히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모든 어른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작은 아이였던 때를, 혼자였던 순간을 기억한다면 세상이 더 풍요롭게 다정하고 아름다워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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