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신처에서 보낸 날들
장길수 지음 / 열아홉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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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가? 탈북민에 대해서는 또 얼마나 아는가? 생각해보면 정말 아는 게 없어서 부끄러울 지경이에요. '한국판 안네의 일기'라는 홍보문구를 보고, <안네의 일기>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다들 읽는데 정작 현대판 안네인 탈북민의 일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구나 반성이 되서 펼쳐들게 된 책이었습니다. 장길수라는 청소년 탈북민의 일기인데, 정확한 날짜는 적혀있지 않고, 그날 그날의 제목만 달아놓았더라고요. 너무 솔직하게 써놔서 좀 놀랐습니다. 저라면 이렇게까지 못 썼을 것 같거든요. 애초에 이 일기는 세상에 공개될 목적으로 씌여졌는데, 이렇게까지 자기 치부를 드러낸다고? 싶은 부분이 많았어요.


 구체적인 탈북 여정 같은 건 나오지 않습니다. 이 책은 탈북을 하고 나서, 장길수네 가족이 '큰아버지'라고 부르는 한국 남성을 만난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큰어머니'라고 부르는 조선족 여성 역시 나오는데 사실 이 두 사람이 장길수 가족의 망명의 핵심입니다. 탈북민은 중국 공안에게 잡히면 바로 북한으로 이송되어 버리기 때문에 정작 탈북하고 나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그저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대요. 당연히 돈도 벌 수 없고, 뭘 배우거나 주변과 교류하기도 어렵죠. 그냥 잡힐 때까지 숨어 사는 거예요. 숨을 곳을 못 찾으면 일자리 구하다가 몇달 치 월급 못 받고 내쫓기고 그러는 경우도 많다네요;;; 그러다보니 큰아버지, 큰어머니처럼 탈북민을 돕는 제3자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사람들이 없으면 탈북민들은 그냥 잡혀갈 날을 받아놓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탈북 직후에 운 좋게 (모든 탈북자가 이런 조력자를 만나는 것은 아니니, 천운이라고 봐야겠죠?)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를 만났고, 두 사람의 비호 아래 여기저기 은신처에서 숨어 사는 생활을 했는데 이 때의 일기가 정말 솔직합니다. 이제 슬슬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먹을 수 있게 되니 반찬 투정이라는 것도 하고, 바깥에 나가고 싶은데 위험하다고 못 나가게 감독하는 사람이 짜증스럽고, 당장 한국으로 튀어가고 싶은데 계속 기다리라고만 하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벼랑 끝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아무래도 의심이 많아지기 마련이라, 15명이나 되는 대인원 사이에서 몇 번이나 싸움도 나고 이탈자도 생기고 여하튼 우여곡절이 많았던 모양이에요. 그런 심리를 굉장히 솔직하게 써놔서, 읽으면서 약간 질리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람은 입체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보니, 으레 이렇게 되겠거니 싶어요. 우릴 도와주네? 고마운 사람이다! 하는 것도 처음 잠깐이고, 원하는대로 안 되면 원망부터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도 장길수 일행은 거의 기적처럼 모두가 함께 한국 망명에 성공한 케이스이고, 그걸 처음부터 아는 상태로 읽으니까 좀 마음이 편했습니다.  


 처음에 서두를 읽을 때만 해도 큰아버지, 큰어머니 두 사람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좀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사업을 했다는 큰어머니 쪽은 예전에 꽤 잘 살았던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탈북민을 돕고 그들을 지원하는 데 돈이 무한정 들어가다 보니, 현재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것 같았습니다. 큰아버지 자식들이 학비가 없어서 힘들어한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몇 번 나오거든요.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특히 도움 받는 탈북민 쪽에서 적반하장 식으로 나오는 경우도 굉장히 많은 것 같은데, 사람이 선의로 하는 희생을 상대가 당연히 여기고 그걸 멸시하기까지 하면 당연히 마음이 안 좋을 수밖에 없잖아요. 저라면 진작에 포기해버렸을 것 같은데... 이런 사람 덕분에 그래도 세상이 조금씩 더 나아지는 거겠지 싶어요.


 책을 읽고나서 자꾸 생각이 많아집니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탈북민들은 정말 다들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요? 제가 모든 걸 다 버리고 외국으로 급하게 몸만 탈출한 상황인데, 거기서 경찰에 걸리면 안 되는 처지라면 도대체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아는 사람도 없고, 먼 친척을 찾아가봐도 남보다 못하다면요? 그리고 다시 잡혀가면 죽음 뿐이라면... 도대체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걸까요? 다들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을 뿐일 텐데, 잘못된 나라에 잘못된 순간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이렇게까지 고통받아야 한다는 게 너무 부당하게 느껴집니다. 저를 비롯한 한국인들이 좀 더 북한의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 저자인 장길수는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 유학 생활 중이라고 해요. 사실 한국이 탈북민에게 그다지 호의적인 나라라는 걸 알기에, 한국에서 마음을 다쳐 해외로 간 건 아닐까 싶어서 그 소식에도 마음이 좋진 않았습니다. 현재 시점의 장길수 본인의 글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 부분이 좀 아쉽네요. 본인의 목소리를 들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 그리고 이건 정말 덧붙임이지만, 앞서 서두에서 여러 사람의 글이 등장하는데 정말 사람 그릇이 딱 보입니다. 탈북민의 인권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들은 관심 안 가지는데 나는! 관심 가졌다!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고! 나는!!! 내 당은!!! 내가 모시던 분은!!! 이렇게 좋은 일을 했다!!! 이렇게 자기 홍보하는 게 목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 어쩜 그렇게 이런 책에서조차 자기 자랑만 늘어놓을 수 있는지;;; 어휴;;; 그 서두 읽고 책 그냥 덮을 뻔 했네요ㅋㅋㅋ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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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산모 수첩
야기 에미 지음, 윤지나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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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흥미진진한 소설입니다. 거대한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데도, 이렇게나 긴장되다니! 주인공의 운명(?)이 결국 어떻게 될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아찔해서 멈출 수가 없었어요. 사무실의 온갖 잡일을 당연하다는 듯이 떠맡기는 남자 직원들에게 질려서 담배꽁초 치우기를 거부하다가 엉겹결에 "저 임신했어요"를 시전한 여직원이 있다? 나중에 거짓말이 들통나면 이거 거의 사회적 매장이잖아요? 주인공이 음습한 기운을 뿜어내는 거대한 늪으로 묘사한 소설 속 회사라면...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의 운명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났다니까요;;


 저는 일본과 한국, 둘 중에 여성 인권이 어디가 더 극악하냐? 묻는다면 둘 다 다른 방식으로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소설 속 분위기로 미루어봤을 떄, 일본은 적어도 '임산부'와 '비혼 임신'에 대해서 한국보다 제도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너그러워서, 그런 부분은 부러웠어요. 예를 들어 주인공이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두가 다 알고 있는데도, 임신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주인공에게 대놓고 "애 아빠는 누구냐?"거나 "결혼을 하는 거냐?" 같은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그전까지는 마치 회사의 모든 잡일을 맡겨두었던 것처럼 굴었으면서도 (으으;) 임산부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당연히' 주인공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자기들끼리 이리저리 조정을 해요.


 가장 최근에 들어온 남자 신입이 믹스 커피를 내가는 것으로 바뀌는 장면은 완전 코미디 그 자체입니다. 이미 몇년 전에 그렇게 바뀌었어야 하거든요. 주인공 연차가 몇인데요! 뭐, 어쨌거나 임산부에 대한 배려는 여기저기서 충분히 보여집니다. 한국이었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아마 세계에서 임산부에게 가장 적대적인 나라일 거예요. 지하철 노약자석 임산부 표식에 X자 표시를 하고 다니는 놈들이 활개를 치는 나라잖아요. 어휴.


 그러다보니 읽어가면서 기본적으로 이건 한국이 아니라서 가능한 얘기겠구나, 싶었던 부분이 꽤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설령 주인공이 기혼이었어도 임신했다고 하면 훨씬 더 안 좋은 상황에 놓이게 될 텐데 (임신한 직원에게 불이익을 주는 건 아직도 흔한 기업 문화죠) 여기서는 막 일찍 퇴근도 시켜줘서 주인공이 드디어 '정시퇴근'이라는 걸 해본다니까요!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여성이 이미 하지 않았어야 마땅한, 하지 않았어도 되는 일을 진짜로 하지 않게 사회가 허락해주는 데에는 임신이라는 요소가 필요한 거죠. 제3의 생명을 가져야만 존중해준다니, 정말 얼척이 없습니다만... 조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유구무언입니다ㅠ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이 상상임신 비슷하게 변하는 것도 긴장되는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은 다 속을 수 있어요. 아무도 이 사람 배를 까보자고 덤비지 않잖아요. 너 진짜 임신한 거 맞아? 배 좀 보여줘! 이런 말을 어떻게 해요. 그러니 점점 살도 오르고, 배도 불러오는 여성을 보면 임신했다고 당연히 생각할 밖에요. 그렇지만 본인은 알잖아요. 성모마리아도 아니고! 어떻게 혼자서 임신을 합니까! 그런데 정말 자신이 임신한 것처럼 행동하니까 몸도 그렇게 변해가는 듯 하고, 그러니 정신도 점점 더 그쪽으로 쏠리는 것 같아서 너무 불안했어요. 이러다 정줄을 놓는 거 아냐? 싶었다니까요.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어서 좋았습니다. 이후의 삶을 상상해보기도 좋아요. 어떻게 끝맺을까 궁금했는데, 다 읽고 나니 이렇게 끝내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드 엔딩이 아닌, 그렇다고 해피 엔딩도 아닌, 그런 엔딩으로요. 담담하고 일상적인 톤으로 뻔뻔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그 속에서 숨쉴 구멍을 찾는,  일촉즉발 흔들거리는 직장 여성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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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 트리플 10
심너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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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항상 '꿈'을 꾸라고 말합니다. 꿈이라고 하기도 하고, 목표라고 하기도 하고, 야망이라고 하기도 해요. 아무튼 뭔가 지금보다 훨씬 나은, 훨씬 만족스러운 상태를 상상하고 거기에 도달하라고 해요. 그렇지만 막상 꿈을 이루는 사람은 적고, 그 꿈을 이뤄서 행복한 사람은 더 적죠. 보통 너무 높은 이상을 잡기도 하거니와, 상상만 하는 것과 그 안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요. 


 <꿈만 꾸는 게 나았어요>는 그렇게 꿈을 이루고 난 뒤의 이야기를 담은 세 개의 단편입니다. 줄곧 꿈꾸던 일이 이루어졌는데, 막상 내가 상상한 거랑 영 다른 겁니다. 물론 이상과 현실은 다르고, 기대는 언제나 실제와 일치하지 않는 법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너무 별로인 거죠. 심지어 이루기 전으로 돌아갈 수조차 없어요. 제목 그대로 "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하고 말하는 주인공들이 배부른 투정을 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 건, 독자 역시 주인공과 비슷한 소회를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리자들] 같은 경우는 근시일에 있을 법한 미래라서 어쩐지 제가 다 긴장이 되더라고요. 일반 대중에게 연에인들은 사실상 2D나 마찬가지니까요. 평생 살면서 그 사람의 실물은 한 번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그 배우가, 그 가수가, 그 모델이, 알고 보니 실존하지 않더라!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딥페이크 인공지능 빅데이터 영상 조합이더라! 이런 일이 가까운 시일 내에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실존하는 누군가를 모델로 썼다? 백퍼 가능한 얘기 같아요. 그리고 그 사람이 하는 무대를 제가 사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존재는 이제 2D와 3D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팬덤을 갖게 되겠죠. 그 존재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이건 잘 모르겠어요. 저라면 진실이 밝혀졌을 때 안 좋아할 것 같긴 한데, 그건 처음에 속였기 때문이고 나중이 되면 나름의 존재감을 가지지 않을까요? 


 [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는 평생 우주를 꿈꾸었던 주인공이 우주에 대해서 거창하게 떠드는 기술을 가지고서 사람들을 교묘히 속이는 스캠 회사에 취직합니다. 오랜 취준생활로 힘들던 와중에 어쩐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선배에게 홀려 취직을 하게 된 주인공은, 막상 통장에 돈이 꼬박꼬박 꽂히고 어느 정도로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하니 자기가 하는 일에 회의가 듭니다. 자기가 꿈꾸었던 '우주인'은 당연히 이런 모습이 아니거든요.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설령 존재한다고 해서 의미있지도 않은 기술을 팔아먹으면서 멋모르는 사람들 등쳐먹는다는 자각이 있으니까요. 이것 역시 '기대가 깨지는' 과정이겠죠. 물론 그 뒤에 더 큰 박살 과정이 있기도 하고요~.


 [문명의 사도]는 평생 자신에게 정의를 가르쳐왔던 세계가 그동안 주장해왔던 정의나 이상을 포기하는 순간을 목도하는 이야기입니다. SF에다 제국주의 양념을 좀 쳐서 그렇지, 지금도 하루에 수천수백 만 명이 겪고 있는 과정 같은 거예요. 우리는 모두 불합리하거나 부조리한,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을 끊임없이 만나잖아요. 높으신 분들의 청탁 같은 뉴스에는 분개하면서, 잘 사는 친구나 친척에게 내 자식 좀 잘 봐달라고 부탁하는 어르신 같은 거죠. 제국은 지적 생명체를 포용해 발전한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지적 생명체가 너무 똑똑해지면 안 되니까 지금 당장 없애버리자고 결정하는 식으로요. 이 얘기에서 재밌는 지점은 주인공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묘연하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주인공의 선택은 알지만 운명은 알지 못해요. 해석의 여지가 풍부해서 각자 상상하고 싶은 대로 상상하면 될 것 같아요. 뭘 상상하든 그 상상대로 되지는 않겠지만요ㅋㅋㅋ


 셋 다 술술 잘 읽히고 재밌어요! 지금 우리 고민들을 다른 세계의 존재나 기술에 어떻게 접목시켜 말하는지 보는 것도 흥미롭고요. 아무리 대단한 상상력을 가진 창작물도 결국 작가에게서, 작가의 현실에서 나온다는 당연한 사실이 때론 너무 신기하고 즐겁습니다. 산뜻하고 속도감 있는, 그러면서도 적절한 주제의식이 돋보여서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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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 - 중국의 문화와 민족성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
스위즈 지음, 박지민 옮김 / 애플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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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가 다르면 문화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면 사고방식이 다르게 마련이지요. 스스로는 미처 모르고 있다가,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에야 비로소 '너는 그렇구나! 나는 이런데!' 하고 알게 되는 지점은 언제 봐도 재미있어요. 중국-한국-일본은 같은 동양 한자문화권에 속해서 서양과 비교하면 비슷하지만, 정작 그 안에서 각각 들여다보면 너무 달라서 신기하잖아요. <중국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역시 중국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비판하고 있다길래, 재밌을 것 같아서 집어들었습니다.


 저자는 중국인인데, 비교 대상이 주로 (자신이 활동한) 서양이라서 그런지 아무래도 중국의 문제점이 한국이랑 비슷한 점이 많더라고요. 한국인이 읽다보면 '어? 이거 우리나라도 똑같이 문제인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예를 들어 특정 지역에 흙탕물을 뒤집어씌우고, 그 지역 사람들을 비하하는 문화 같은 거요. 우리나라도 호남-광주에 대해 그런 식으로 아무 생각 없이 차별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권위와 체면을 중시하고, 윗사람에게 거역하거나 그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문화 때문에 사람들이 획일화되어 개성이 죽어버린다는 것도 완전 딱 한국이잖아요! 그래서 중국인이 중국을 비판하고 있는데 괜히 옆에 서 있다 뼈 맞은 한국인이 된 기분이에요ㅋㅋㅋ


전반적으로 책의 내용이 


 1) 중국인은 A가 문제다

 2) A는 중국인의 B 문화 때문이다 

 3) A의 문제도 고치려면 B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전개가 되는데 2번 항목에서 공감이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중국과 한국은 같으면서도 다른 나라인 지점이 책을 읽을 때 굉장히 비판적 독서가 가능하게 해주더라고요. 중국인은 예로부터 이랬다! 그래서 이런 문제가 생겨났다! 하는 식으로 주장하는데, 글쎄? 아닌데? 싶은 부분이 꽤 많아요. 중국은 표의문자가 발달했기 때문에 수학이 약했다고 주장하는데, 저자가 표의문자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수학적 의식의 부족'이나 '세계적인 과학자가 나오지 못하는 상황' 같은 건 한국도 똑같거든요. 한국은 세종 이래로 표음문자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인데도요! 창의력이 부족해 세계적인 대기업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면, 똑같이 창의력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왜 글로벌 기업이 존재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지 않겠어요?


 그렇다보니 전체적으로 인상비평 같은 느낌이 강했습니다. 명확한 근거가 있고 그걸 가지고서 책을 쓴 게 아니라, 자기가 몇몇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만난 중국인을 보니까 대개 이렇더라, 아마 유교문화 때문이 아닐까? 뭐 이런 식으로 쓴 것 같아요. 물론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경험으로 무언가에 대해 판단하게 마련이고, 이 정도 깊이의 분석에서도 충분히 유의미한 통찰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이 중국에서 엄청나게 화제였다고 해서 기대가 좀 높았던 게 문제인 것 같아요. SNS에서 흔히 보던 국가/문화 비교글 같은 느낌이 있어요. 나름대로 재밌긴 했지만 조금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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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e the Cat! 나의 첫 소설 쓰기 - 아이디어를 소설로 빚어내기 위한 15가지 법칙
제시카 브로디 지음, 정지현 옮김 / 타인의사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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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만든 이야기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이건 창작자뿐만 아니라 소비자로서도 아주 명확하게 보이는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법칙을 규정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같은 규칙을 받아들이는 감각도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작법에 대한 책을 읽는 게 아주 재미있습니다. 꼭 창작자가 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어떤 장르의 소비자잖아요~ 내가 소비자로서 발견한 어떤 법칙들을 어떤 창작자가 다른 이름을 붙이고 접근하는 걸 바라보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에를 들면 이런 겁니다. '중간점'이라는 개념 같은 거요. 중간까지 모든 게 다 잘 되고 있다면, 갑자기 상황은 악화됩니다. 반대로 중간까지 모든 게 계속 나빠지기만 한다면, 그 다음 순간에는 좋아지게 마련이죠. 이건 기승전결과는 다른, 이야기의 리듬 같은 거예요. 관객/독자/시청자들의 예상을 깨뜨리는 작은 반전을 주는 거죠. 처음 예상이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는 사실 재미없잖아요. 어? 도대체 일이 어떻게 되는 거야? 으악! 안돼! 주인공이 행복해져야 되는데! 하면서 쫄리는 맛이 있어줘야 집중력을 유지하고 끝까지 볼 수 있어요.


 이 책은 그런 법칙들이 꼼꼼하게 분석된 책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성공한) 이야기는 이 법칙에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이게 이야기를 너무 뻔하게 만드는 걸까봐 걱정하는 창작자도 있다고 하던데, 작가는 이 법칙들을 '재료'에다 비유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밀가루 몇그램, 계란 몇개, 설탕 얼마, 토마토 몇 개 뭐 이 정도의 재료를 가지고도 만들 수 있는 요리는 무궁무진하잖아요? 저는 읽으면서 '레고'를 떠올렸어요. 그냥 작은 몇 가지 모양의 블럭일 뿐이지만 완성품은 수천수십만 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요.


 아마도 소설을 쓰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이 책을 많이 집으실 것 같은데, 반대로 저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엄청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내가 좋아하는 작품 하나를 조각조각 잘라서 이 법칙의 어디에 해당하는지 분석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홈>과 웹툰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 연극 <마우스피스>를 봤어요. 이 세 작품이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제각각의 장르인데도 이 책에서 제시한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더라고요. 작법이 눈에 들어오니까 작품이 더 잘 보여서 재밌었어요!


 아무래도 법칙에 대해 쓰다보니 여러 가지 소설의 반전이나 결말 부분에 대한 스포를 안 할 수가 없는데, 각 장의 앞부분마다 친절하게 해당 장에서 어떤 작품에 대해 스포일러가 있는지 알려주는 구성이 맘에 들어요. 법칙에 대해 얘기하고 나서, 그 법칙이 잘 지켜지는지 보려면 어떤 식이어야 하는지 체크리스트를 제공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창작자라면 자신의 이야기가 그 체크리스트를 만족하는지 점검할 수 있고, 소비자라면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그 체크리스트를 어떤 식으로 만족하는지 보기가 쉬울 것 같아요. 


 세상에 이렇게나 다른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는데, 사실 그 모든 이야기들에는 궤를 같이하는 하나의 큰 틀이 있다는 게, 여전히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법칙을 빨리 녹여내서, 더 완성도 있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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