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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 ㅣ 트리플 10
심너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항상 '꿈'을 꾸라고 말합니다. 꿈이라고 하기도 하고, 목표라고 하기도 하고, 야망이라고 하기도 해요. 아무튼 뭔가 지금보다 훨씬 나은, 훨씬 만족스러운 상태를 상상하고 거기에 도달하라고 해요. 그렇지만 막상 꿈을 이루는 사람은 적고, 그 꿈을 이뤄서 행복한 사람은 더 적죠. 보통 너무 높은 이상을 잡기도 하거니와, 상상만 하는 것과 그 안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요.
<꿈만 꾸는 게 나았어요>는 그렇게 꿈을 이루고 난 뒤의 이야기를 담은 세 개의 단편입니다. 줄곧 꿈꾸던 일이 이루어졌는데, 막상 내가 상상한 거랑 영 다른 겁니다. 물론 이상과 현실은 다르고, 기대는 언제나 실제와 일치하지 않는 법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너무 별로인 거죠. 심지어 이루기 전으로 돌아갈 수조차 없어요. 제목 그대로 "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하고 말하는 주인공들이 배부른 투정을 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 건, 독자 역시 주인공과 비슷한 소회를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리자들] 같은 경우는 근시일에 있을 법한 미래라서 어쩐지 제가 다 긴장이 되더라고요. 일반 대중에게 연에인들은 사실상 2D나 마찬가지니까요. 평생 살면서 그 사람의 실물은 한 번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그 배우가, 그 가수가, 그 모델이, 알고 보니 실존하지 않더라!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딥페이크 인공지능 빅데이터 영상 조합이더라! 이런 일이 가까운 시일 내에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실존하는 누군가를 모델로 썼다? 백퍼 가능한 얘기 같아요. 그리고 그 사람이 하는 무대를 제가 사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존재는 이제 2D와 3D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팬덤을 갖게 되겠죠. 그 존재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이건 잘 모르겠어요. 저라면 진실이 밝혀졌을 때 안 좋아할 것 같긴 한데, 그건 처음에 속였기 때문이고 나중이 되면 나름의 존재감을 가지지 않을까요?
[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는 평생 우주를 꿈꾸었던 주인공이 우주에 대해서 거창하게 떠드는 기술을 가지고서 사람들을 교묘히 속이는 스캠 회사에 취직합니다. 오랜 취준생활로 힘들던 와중에 어쩐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선배에게 홀려 취직을 하게 된 주인공은, 막상 통장에 돈이 꼬박꼬박 꽂히고 어느 정도로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하니 자기가 하는 일에 회의가 듭니다. 자기가 꿈꾸었던 '우주인'은 당연히 이런 모습이 아니거든요.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설령 존재한다고 해서 의미있지도 않은 기술을 팔아먹으면서 멋모르는 사람들 등쳐먹는다는 자각이 있으니까요. 이것 역시 '기대가 깨지는' 과정이겠죠. 물론 그 뒤에 더 큰 박살 과정이 있기도 하고요~.
[문명의 사도]는 평생 자신에게 정의를 가르쳐왔던 세계가 그동안 주장해왔던 정의나 이상을 포기하는 순간을 목도하는 이야기입니다. SF에다 제국주의 양념을 좀 쳐서 그렇지, 지금도 하루에 수천수백 만 명이 겪고 있는 과정 같은 거예요. 우리는 모두 불합리하거나 부조리한,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을 끊임없이 만나잖아요. 높으신 분들의 청탁 같은 뉴스에는 분개하면서, 잘 사는 친구나 친척에게 내 자식 좀 잘 봐달라고 부탁하는 어르신 같은 거죠. 제국은 지적 생명체를 포용해 발전한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지적 생명체가 너무 똑똑해지면 안 되니까 지금 당장 없애버리자고 결정하는 식으로요. 이 얘기에서 재밌는 지점은 주인공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묘연하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주인공의 선택은 알지만 운명은 알지 못해요. 해석의 여지가 풍부해서 각자 상상하고 싶은 대로 상상하면 될 것 같아요. 뭘 상상하든 그 상상대로 되지는 않겠지만요ㅋㅋㅋ
셋 다 술술 잘 읽히고 재밌어요! 지금 우리 고민들을 다른 세계의 존재나 기술에 어떻게 접목시켜 말하는지 보는 것도 흥미롭고요. 아무리 대단한 상상력을 가진 창작물도 결국 작가에게서, 작가의 현실에서 나온다는 당연한 사실이 때론 너무 신기하고 즐겁습니다. 산뜻하고 속도감 있는, 그러면서도 적절한 주제의식이 돋보여서 좋았어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