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산모 수첩
야기 에미 지음, 윤지나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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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말 흥미진진한 소설입니다. 거대한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데도, 이렇게나 긴장되다니! 주인공의 운명(?)이 결국 어떻게 될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아찔해서 멈출 수가 없었어요. 사무실의 온갖 잡일을 당연하다는 듯이 떠맡기는 남자 직원들에게 질려서 담배꽁초 치우기를 거부하다가 엉겹결에 "저 임신했어요"를 시전한 여직원이 있다? 나중에 거짓말이 들통나면 이거 거의 사회적 매장이잖아요? 주인공이 음습한 기운을 뿜어내는 거대한 늪으로 묘사한 소설 속 회사라면...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의 운명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났다니까요;;


 저는 일본과 한국, 둘 중에 여성 인권이 어디가 더 극악하냐? 묻는다면 둘 다 다른 방식으로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소설 속 분위기로 미루어봤을 떄, 일본은 적어도 '임산부'와 '비혼 임신'에 대해서 한국보다 제도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너그러워서, 그런 부분은 부러웠어요. 예를 들어 주인공이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두가 다 알고 있는데도, 임신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주인공에게 대놓고 "애 아빠는 누구냐?"거나 "결혼을 하는 거냐?" 같은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그전까지는 마치 회사의 모든 잡일을 맡겨두었던 것처럼 굴었으면서도 (으으;) 임산부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당연히' 주인공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자기들끼리 이리저리 조정을 해요.


 가장 최근에 들어온 남자 신입이 믹스 커피를 내가는 것으로 바뀌는 장면은 완전 코미디 그 자체입니다. 이미 몇년 전에 그렇게 바뀌었어야 하거든요. 주인공 연차가 몇인데요! 뭐, 어쨌거나 임산부에 대한 배려는 여기저기서 충분히 보여집니다. 한국이었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아마 세계에서 임산부에게 가장 적대적인 나라일 거예요. 지하철 노약자석 임산부 표식에 X자 표시를 하고 다니는 놈들이 활개를 치는 나라잖아요. 어휴.


 그러다보니 읽어가면서 기본적으로 이건 한국이 아니라서 가능한 얘기겠구나, 싶었던 부분이 꽤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설령 주인공이 기혼이었어도 임신했다고 하면 훨씬 더 안 좋은 상황에 놓이게 될 텐데 (임신한 직원에게 불이익을 주는 건 아직도 흔한 기업 문화죠) 여기서는 막 일찍 퇴근도 시켜줘서 주인공이 드디어 '정시퇴근'이라는 걸 해본다니까요!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여성이 이미 하지 않았어야 마땅한, 하지 않았어도 되는 일을 진짜로 하지 않게 사회가 허락해주는 데에는 임신이라는 요소가 필요한 거죠. 제3의 생명을 가져야만 존중해준다니, 정말 얼척이 없습니다만... 조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유구무언입니다ㅠ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이 상상임신 비슷하게 변하는 것도 긴장되는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은 다 속을 수 있어요. 아무도 이 사람 배를 까보자고 덤비지 않잖아요. 너 진짜 임신한 거 맞아? 배 좀 보여줘! 이런 말을 어떻게 해요. 그러니 점점 살도 오르고, 배도 불러오는 여성을 보면 임신했다고 당연히 생각할 밖에요. 그렇지만 본인은 알잖아요. 성모마리아도 아니고! 어떻게 혼자서 임신을 합니까! 그런데 정말 자신이 임신한 것처럼 행동하니까 몸도 그렇게 변해가는 듯 하고, 그러니 정신도 점점 더 그쪽으로 쏠리는 것 같아서 너무 불안했어요. 이러다 정줄을 놓는 거 아냐? 싶었다니까요.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어서 좋았습니다. 이후의 삶을 상상해보기도 좋아요. 어떻게 끝맺을까 궁금했는데, 다 읽고 나니 이렇게 끝내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드 엔딩이 아닌, 그렇다고 해피 엔딩도 아닌, 그런 엔딩으로요. 담담하고 일상적인 톤으로 뻔뻔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그 속에서 숨쉴 구멍을 찾는,  일촉즉발 흔들거리는 직장 여성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재밌어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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