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의 힘 - 독자는 모르는 작가의 비밀 도구 내 글이 작품이 되는 법
샌드라 거스 지음, 지여울 옮김 / 윌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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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점의 힘>은 얼마 전 발간했던 <묘사의 힘>의 후속작입니다. 워낙 호평을 받았던 책이었어서 언젠간 꼭 읽어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그 후속작을 먼저 읽게 됐네요. 확실히 글을 잘 쓰는 사람 특유의 간결함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건 소설이 아니라 실용서잖아요?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 예시도 알기 쉽게 써놓고,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연습 과제도 내줍니다. 만약 작가 지망생이거나 작가라면 확실히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글을 잘 쓰고 싶다, 하는 작가로서의 욕망이 아니더라도 재미있는 책입니다. 서사를 많이 접하다보면 자기 나름대로의 법칙 같은 게 쌓이게 되는데, 작법서를 보면 다른 사람들이 내가 생각한 규칙에 대해서 꼼꼼하게 정리해서 보여주니까 그게 좋더라고요. 이거 나도 생각했는데! 아, 그걸 이론화시키면 이런 식으로 되는구나! 하는 부분이 많아서 책 진도도 엄청 쑥쑥 잘 나갑니다. 물론 진짜로 내가 글을 쓰려고 덤벼드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으면 하나하나 읽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좀 소요될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그 정도의 욕심은 없기 때문에(ㅋㅋ) 가볍게 쓱 읽으면서 요즘 제가 읽었던 작품들은 어디에 속할지 가늠해보고 있었어요.


 여기서 지적하는 사항이 몇 가지 있는데, 많은 작가들이 실수한다는 '머리 넘나들기'가 인상깊었습니다. 여러 시점을 작품 속에서 의도적으로 녹여낼 때는, 독자들이 혼란스럽지 않게 해주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장이 바뀔 때, 아무리 빨라도 최소한 장면이 바뀔 때 시점을 바꿔줘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지적 작가 시점'과 '머리 넘나들기'를 구분하지 못하고 마구 섞어서 쓴다는 거예요. 전지적작가 시점은 등장인물들의 속마음을 모두 알 수 있지만, 대신 등장인물 본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서술하지는 않거든요. 외부에 아주 분명한 화자가 있는 거죠. 그런데 머리 넘나들기에 사용하는 시점은 등장인물 본인이 되어서 속마음을 생각하는 게 독자에게 그대로 문장으로 노출되는 거예요. 그게 A였다 B였다 하면 독자들은 도대체 누구에 이입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죠!


 의외였던 게, 책 속에서는 로맨스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쓰는 걸 별로 추천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체감상 요즘 웹소설에서 로맨스 장르는 대개 1인칭 시점으로 많이 쓰이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이 좀 신기했습니다. 사실 1인칭 시점이야말로 주인공 몰입의 최강자이니까,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어하는 판타지나 로맨스 장르에서 많이들 선호하잖아요. 그런데 정보량의 제한 때문에 오히려 3인칭 깊은 시점을 더 추천하더라고요. 같은 장면이나 서사를 여러 시점으로 써 보는 연습도 작가들에게 엄청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책이 맘에 쏙 들어서, 시리즈인 <묘사의 힘>과 <첫문장의 힘>도 사려고요! 셋 다 나란히 놓고 읽으면 넘넘 재밌을 것 같아요ㅎㅎ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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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 있습니다 - 대책 없이 부족하지만 어처구니없이 치열한 책방 미스터버티고 생존 분투기
신현훈 지음 / 책과이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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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에세이를 읽다 보니 느끼는 건데, 작가들이 하나같이 '나는 사실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내 글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읽고 공감해주시면 감사합니다'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유명한 작가가 아니어도 책을 낼 수 있고, 다들 책 한 권쯤은 내고 싶어하는 시대라 그런 걸까요? <버티고 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인데, 어쨌거나 책을 집어든 독자로서는 앞에서 그런 식으로 방어기제를 발동하는 걸 보고 있으면 살짝 괴롭습니다.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당신의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니니, 걱정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라고 얘기하고 싶어요ㅋㅋㅋ


 본문 자체는 굉장히 흥미진진하고 재밌었어요! 왜냐면 저도 다독가는 아니지만 종이책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책에 대해서 얘기하는 걸 좋아하고, 그래서 독서모임이나 동네 책방에도 관심이 많거든요. 도서정가제와 대형 인터넷 서점의 시대에 동네의 책방 혹은 헌책방들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너무 궁금했는데, 이런저런 뒷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엄청 현실적인 얘기들이 잔뜩 나오더라고요. 

 제 생각에 동네 책방 주인장이 되는 길은 작가가 되는 길보다 더 험난한 것 같아요. 굉장히, 매우, 아주, 극히 드물지만 어쨌거나 작가는 대형 스타가 되어 큰 돈을 벌 가능성이 0.0001%라도 있잖아요. 그렇지만 동네 책방이 갑자기 인기가 미친듯이 폭발해서 갑자기 큰 돈을 벌 가능성은... 음... 아무리 생각해도 없어요. 로또를 연속으로 막 20번 맞고 그런 확률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ㅋㅋㅋ 그런 직업을 선택하면서 낭만이 없기는 힘들잖아요? 현실에 아무리 치여도 책과, 독자와, 책방에 대한 애정은 숨겨지지가 않아요. 읽다보면 저도 저절로 평온하게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나날이 그리워지는 힘이 있어요. 

 '누가 더 잘 버는가보다 누가 더 많이 버는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라는 문구를 읽다가 저도 모르게 소스라쳤습니다. 아니 글쎄 제가 순간적으로 '똑같은 거 아닌가?' 하고 있지 뭐예요! 머리 한 쪽은 이해를 했는데 다른 한 쪽은 이해를 못해서 어리둥절 하고 있었던 거죠. 그럼 많이 버는 거 말고 제대로, 좋은 돈을 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싶었는데, 바로 답변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남을 도우면서 버는 돈? 하지만 액수도 어느 정도는 되어야지 아니면 잘 번다고 하긴 좀 그렇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제가 사회에 너무 찌들어서 오염된 언어를 쓰는 것 같아 입이 쓰네요. 휴, 돈은 잘 벌면서 많이 벌면 좋을 텐데!

 저도 어쩔 수 없는 종이책 인간이라서, 항상 읽고 좋았던 책들은 꼭 반드시 사서 소장하는 편이거든요. 그러다보니 집이 책으로 꽉꽉 들어차는 바람에 산처럼 쌓아놓고 그 속에서 자곤 합니다. 그 책들이 차지하는 공간을 비용으로 환산해본 적은 없었는데, 10억짜리 30평 아파트에 3평 크기 서재를 꾸미면, 책에만 1억을 쓰는 거라는 말에 새삼 '와 공간이 정말 비싸구나' 싶었어요. 부동산이 너무 비싸니까, 집은 좁고 책은 무겁고 부피도 크니까, 다들 전자책으로 갈아타더라고요. 하지만 종이책이 주는 그 질감, 그 냄새, 그 무게감이 너무 좋은 걸 어떡합니까ㅠ 저도 언젠가는 사고 싶은 책을 다 사서, 원하는 책은 전부 소장해 서재에 두는 호사를 누리고 싶네요ㅋㅋㅋ

 주인장 본인도 동네 책방을 대형 쇼핑몰로 옮긴 걸 후회스럽게 생각하던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전의 버티고 책방이 아직 있었다면, 꼭 한번쯤 방문해보고 싶거든요. 들러서 별 얘기 안 하더라도 ("책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정도는 했을 것 같아요) 그냥 거기서 책 사서 읽으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그럼 너무 좋을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독립적인 느낌이 사라졌다니 괜히 제가 더 아쉬워요. 동네에 있는 그런 자그마한 가게들만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 그리고 로망이 있는데 말이에요ㅠ

 그래도 동네 책방을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신 그 의지와 애정에 박수를!!! 언젠가 슬쩍 한 번 들러서 주인장이 추천하는 책을 집어들고 찬찬히 읽다 오고 싶네요. 그 날까지 화이팅입니다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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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이유를 찾아 살아간다
아사이 료 지음, 곽세라 옮김 / 비에이블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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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 중에 <키리시마가 동아리 그만둔대>라는 영화가 있어요. 이 영화 속에서 그려내는 각양각색의 청춘들이 너무나 매력적이면서도 결말이 현실적이라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영화에는 원작 소설이 있었지 뭐예요! 당장 사서 읽어봤죠! 역시 원작도 영화만큼이나 좋더라고요. <죽을 이유를 찾아 살아간다>는 그 영화의 원작 소설가, 아사이 료가 새롭게 내놓은 헤이세이 시대의 청춘물입니다.


 일본은 우리와 다르게 아직도 왕이 있는 국가라, 연호를 쓴대요. 우리가 조선시대에 세종 12년, 정조 3년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어떤 시대를 기억할 때 우리처럼 90년대 같은 식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연호로 기억한다고 하네요. <죽을 이유를 찾아 살아간다>는 여러 소설가가 '산족과 바다족의 대립'이라는 주제와 아이디어만을 가지고 각자 다른 장르, 각자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풀어나간 연작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1989년에서 2019년까지 이어진 헤이세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헤이세이 시대의 청춘물인 셈이죠. 어떻게 쪼개어 이름을 붙이냐에 따라 같은 것도 얼마든지 다르게 묶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우리로 치면 90년대, 00년대, 10년대 이렇게 서로 완전히 다른 특징으로 나누는 긴 세월이 하나로 묶인 거잖아요. '선'을 어디에 긋느냐가 중요한 문제라는 것. 소설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이게 결국 서로 너무나도 다른 성향과 특질을 가진 두 친구가 평생 아슬아슬한(!) 우정을 이어나가는 이야기인데, 보면서 마음이 참 미묘해지더라고요. 이 둘의 우정은 결국 한 쪽이 일방적으로 참고 견디고 희생하고 받아줘서 유지가 되는 거거든요. 사실 건강한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는 게 맞다고 그냥 인간관계를 끊어버리면, 또 서로 같은 사람을 더 경계하고 배척하게 되어버리겠죠. 그렇게 서로 '다름'을 찾아볼 수 없는 사회가 되는 것도 영 마뜩찮고... 이런 고민을 소설 속 인물도 끊임없이 하고 있답니다.


 이 작가가 청춘을 잘 묘사한 것 중 하나는, 자기를 부풀리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사실 이건 청춘만의 특징도 아니죠. 모두들 자기를 좀 더 대단한 사람으로, 괜찮은 사람으로 포장하고 싶어하잖아요. '너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야. 넌 멋져, 대단해!' 같은 사회적 주문을 끊임없이 들었던 세대는 그게 좀 더 심하게 나타날 뿐입니다. 자기가 빈 깡통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더더욱 남들이 자신을 좀 그럴싸한 사람으로 봐줬으면 하는 거예요. 남을 위해서 살아갈 자신은 없다. 인생을 걸 정도로 좋아하는 것도 없다. 남들 위에 설 만큼 대단한 재능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뭐지? 나는 왜 사는 거지? 내가 이렇다는 걸 사람들이 알면 어떡하지?


 그렇게 자존심은 높고 자존감은 낮은 상태에서 자의식만 비대해진,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건네는 공감의 디톡스입니다. 마지막에는 작가의 메세지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살짝 교장님 훈화 말씀처럼 되긴 했지만, 그래도 모범답안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이렇게 '산족'처럼 굴 때가 있었던 인간으로서 마음 한 켠이 콕콕 쑤시더라고요ㅋㅋㅋ


 우리가 미움의 연쇄를 끊는 '다음 세대'가 될 수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겠어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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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 기분은 철학으로 할래 - 디즈니는 귀엽고 코기토는 필요하니까
마리안 샤이앙 지음, 소서영 옮김 / 책세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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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어려운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괜히 나랑은 상관 없는 문제 같고? 그렇지만 사실 사는 동안 철학적 고민 한 번 안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질풍노도라는 청소년 시절부터 새내기 대학생 때까지는, 끊임없이 '현실에 별 도움 안 되는'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하는 시절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남들과 다른,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꿈을 꾸는 때니까요. 그럴 때 너무 현학적이고 어려운 말 말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상황과 언어로 얘기해주는 책을 만나면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오늘 내 기분은 철학으로 할래>는 그럴 때 입문용으로 딱 좋은 철학책입니다.


 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도 (진짜로!) 보니까 이 책에 나온 작품들을 거의 다 봤더라고요. 그만큼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대중성 하나만큼은 확실하다는 의미겠죠? <겨울왕국>부터 <알라딘>, <정글북>, <라이온킹>, <인어공주>, <백설공주>, <라푼젤>, <피터팬>, <업>, <인사이드 아웃>, <주토피아> 등등... 물론 안 본 작품도 몇 개 있긴 했는데, 그것도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내용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렵진 않았어요. 그리고 보통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의 갈등 상황은 굉장히 드라마틱해 보이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일상에서도 많이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은근 잘 맞아 떨어지더라고요.


 예를 들어 디즈니 악역이 왜 악해지게 되었나? 책에서는 그걸 4가지 정도의 이유로 분류합니다. 르상티망, 슬픔의 정념, 반 플라톤적인 오만, 죽음에 대한 저항이 바로 그거죠. 말이 조금 어렵나요? 하지만 읽다보면 다 이해가 된답니다.

 우선 르상티망은 '내가 불행한 건 바로 너 때문이야!' 하고 남을 지목해 증오와 원한을 퍼붓는 겁니다. 사실 자신이 불행한 건 다른 이유 때문인데, 그것을 찾아 고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 탓하는 게 쉽기 때문에 생겨나요.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요? 한(恨)을 잘못 처먹고 흑화하는 사람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 많이 볼 수 있죠;;; 르상티망에 대해 설명하는데 너무 익숙해서 소름이 돋더라고요;;;

 슬픔의 정념은 '네가 나를 배신하다니!' 하는 배신감으로 복수에 집착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대의 상황이나 입장은 생각지 못하고 불쌍한 자기 자신에게만 매몰되는 것이 특징이랄까요? 상대 입장에서 선택권이 없었던 문제라고 해도 그건 아무 고려 대상이 아니래요. 그런데 사실 저는 이 부분은 이해가 되는 게, 상대 입장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내가 배신당하거나 상처입은 건 맞잖아요. 비록 그게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사회의 압박이 있었다 해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똑같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나 싶어요. 물론 그 사정까지 헤아려 마음의 고통이 줄어든다면 그쪽이 더 낫긴 하겠지만, 피해자의 의무는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반 플라토적인 오만은 아름다운 육체에 대한 욕망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나르키소스처럼요. 외적인 아름다움, 육체적인 아름다움에 멈춰 그 이상 나아가지 않는 것. 플라톤은 우리가 육체를 넘어서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거든요. 백설공주에 대한 질투에 눈이 먼 새엄마 같은 빌런에게 딱 맞는 예시죠. 언젠가는 반드시 사그러질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는 것. 이건 마지막 이유인 죽음에 대한 저항과도 맞닿아 있다고 봐요.

 살아있는 사람은 모두 언젠가는 반드시 죽습니다. 누구나 그 진실을 알아요. 하지만 우리는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하면서 살죠. 하지만 우리가 죽음을 외면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할수록, 죽음을 거부하기 위해 발버둥칠수록, 매순간 진정으로 살아갈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테니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는 걸 잊게 된다는 거죠. 이건 삶을 진정으로 산다고 할 수가 없어요. 라푼젤을 납치해 가둬놓고 끊임없이 그녀를 착취했던 마더 고델처럼요.


 해주는 이야기들이 기본적으로 쉽고 재밌었습니다. 다만 좀 아쉬웠던 건,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그때그때 상황을 가져오다 보니 비슷한 혹은 비슷해보이는 상황에서 앞뒤가 다른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에 대해서 볼까요? <겨울왕국>의 안나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사랑의 진실성에 대해 좀 부정적입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지 알기도 전부터 이미 사랑에 빠지기를 원하는 상태'라고 표현했어요. 그런데 뒤에서 백설공주 이야기를 하면서는 '그녀의 소원은 변하지 않는 진실한 사랑을 보는 것이고, 그 대상이 어서 나타나기를 바란다'는 표현과 함께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긍정적인 면모를 얘기해요. 제가 보기엔 안나나 백설공주나 누군가를 만나기 전부터 '사랑'을 먼저 꿈꿨다는 점에서 똑같아 보이는데 말이죠. 복잡한 이야기를 압축해서 하다 보니, 그리고 사실 철학자들이 같은 상황에 대해서 서로 다른 말을 하다보니, 이렇게 좀 꼬이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가볍게 읽기 좋습니다. 챕터의 마지막에 항상 관련된 철학자의 책을 표기해 주는 것도 마음에 들어요. 설령 그 책을 다 찾아보지는 않더라도, 어떤 철학자의 개념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잖아요. 그 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은근 권선징악을 추구하면서 깊게 들어가면 깊게 들어가는 대로 말이 되는지라 (대기업의 기획력이란!) 애니메이션 보면서 찬찬히 내용 연관시키면 그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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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잘 놀다 가는 70가지 방법 - 가끔 바보 같아도 행복하게
로버트 풀검 지음, 최정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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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유머감각이 없는 편입니다. 제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지구에서 잘 놀다 가는 70가지 방법> 속에 나오는 '놀 줄 모르는 사람' 같아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그 반짝거리는 재치가 너무 부러워서 질투가 날 지경이에요. 저도 그렇게 반짝거리는 순간을 상대에게 선물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대부분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다 지나가 버리거든요. 이 책의 저자 로버트 풀검은 열심히 그런 순간을 상대에게 선물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작가의 유머감각을 시샘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절망하고... 암튼 그랬습니다ㅋㅋㅋㅋ


 가끔 미국인 저자의 책을 읽으면, 미국 특유의 '아이와 약자에게 다정한 문화'가 너무 사무치게 와닿을 때가 있어요. 특히 한국은 요즘 '노키즈존'이니 '잼민이'니 뭐니 하면서 아이들을 경멸하거나 배척하는 문화잖아요? 그러다가 미국의 상식적인 어른, 그것도 유머감각 있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다정하게 어울려줄 줄 아는 어른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집니다. 미래의 남편이 트럭에 치일까봐 걱정하는 손녀딸에 맞장구쳐주는 에피소드와, 침대 밑의 괴물이 무서워서 겁을 먹은 아이의 고민을 진지하게 듣고 해결(?)해주는 에피소드가 정말 좋았어요. 저도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책 구성도 독특했어요. 거의 일기 같은 느낌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씌여있다는 느낌? 한 단락에서 소개한 내용이 바로 뒷 단락으로 이어지는 게 많았습니다. 바로 앞에서 소개한 인물이나 장소, 사건이 뒤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하고요. 그 중에서 크레타 섬에서 저자의 집을 청소하던 일을 하던 가정부에 대한 글이 참 좋았습니다. 작가가 얼마나 이 사람을 (이성적으로 말고 인간적으로!) 사랑하는지 느껴지고, 본인의 일을 성실히 함으로써 타인을 감동시키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그리고 그 누군가를 글로 남기는 사람이 있다는 게 왠지 감동적이었어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이오아눌라라는 여성분을 저도 같이 사랑하게 되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일기 같은 에피소드가 많은데, 읽으면서 작가는 역시 다르구나 했습니다. 제가 똑같은 일을 겪었다 해도,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이렇게 그때의 감정이나 상황을 생생하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까 영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나이가 꽤 있으신 양반인지라(ㅋㅋ) 삶에 대한 통찰력 같은 게 글에서 묻어나는 것도 좋았습니다. 돈 있고 여유 있고 글도 잘 쓰면, 이렇게 몇 개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곳곳에 뿌리내리고 살아도 참 좋겠다 싶어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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