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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 기분은 철학으로 할래 - 디즈니는 귀엽고 코기토는 필요하니까
마리안 샤이앙 지음, 소서영 옮김 / 책세상 / 2022년 3월
평점 :
철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어려운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괜히 나랑은 상관 없는 문제 같고? 그렇지만 사실 사는 동안 철학적 고민 한 번 안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질풍노도라는 청소년 시절부터 새내기 대학생 때까지는, 끊임없이 '현실에 별 도움 안 되는'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하는 시절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남들과 다른,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꿈을 꾸는 때니까요. 그럴 때 너무 현학적이고 어려운 말 말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상황과 언어로 얘기해주는 책을 만나면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오늘 내 기분은 철학으로 할래>는 그럴 때 입문용으로 딱 좋은 철학책입니다.
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도 (진짜로!) 보니까 이 책에 나온 작품들을 거의 다 봤더라고요. 그만큼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대중성 하나만큼은 확실하다는 의미겠죠? <겨울왕국>부터 <알라딘>, <정글북>, <라이온킹>, <인어공주>, <백설공주>, <라푼젤>, <피터팬>, <업>, <인사이드 아웃>, <주토피아> 등등... 물론 안 본 작품도 몇 개 있긴 했는데, 그것도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내용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렵진 않았어요. 그리고 보통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의 갈등 상황은 굉장히 드라마틱해 보이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일상에서도 많이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은근 잘 맞아 떨어지더라고요.
예를 들어 디즈니 악역이 왜 악해지게 되었나? 책에서는 그걸 4가지 정도의 이유로 분류합니다. 르상티망, 슬픔의 정념, 반 플라톤적인 오만, 죽음에 대한 저항이 바로 그거죠. 말이 조금 어렵나요? 하지만 읽다보면 다 이해가 된답니다.
우선 르상티망은 '내가 불행한 건 바로 너 때문이야!' 하고 남을 지목해 증오와 원한을 퍼붓는 겁니다. 사실 자신이 불행한 건 다른 이유 때문인데, 그것을 찾아 고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 탓하는 게 쉽기 때문에 생겨나요.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요? 한(恨)을 잘못 처먹고 흑화하는 사람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 많이 볼 수 있죠;;; 르상티망에 대해 설명하는데 너무 익숙해서 소름이 돋더라고요;;;
슬픔의 정념은 '네가 나를 배신하다니!' 하는 배신감으로 복수에 집착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대의 상황이나 입장은 생각지 못하고 불쌍한 자기 자신에게만 매몰되는 것이 특징이랄까요? 상대 입장에서 선택권이 없었던 문제라고 해도 그건 아무 고려 대상이 아니래요. 그런데 사실 저는 이 부분은 이해가 되는 게, 상대 입장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내가 배신당하거나 상처입은 건 맞잖아요. 비록 그게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사회의 압박이 있었다 해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똑같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나 싶어요. 물론 그 사정까지 헤아려 마음의 고통이 줄어든다면 그쪽이 더 낫긴 하겠지만, 피해자의 의무는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반 플라토적인 오만은 아름다운 육체에 대한 욕망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나르키소스처럼요. 외적인 아름다움, 육체적인 아름다움에 멈춰 그 이상 나아가지 않는 것. 플라톤은 우리가 육체를 넘어서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거든요. 백설공주에 대한 질투에 눈이 먼 새엄마 같은 빌런에게 딱 맞는 예시죠. 언젠가는 반드시 사그러질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는 것. 이건 마지막 이유인 죽음에 대한 저항과도 맞닿아 있다고 봐요.
살아있는 사람은 모두 언젠가는 반드시 죽습니다. 누구나 그 진실을 알아요. 하지만 우리는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하면서 살죠. 하지만 우리가 죽음을 외면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할수록, 죽음을 거부하기 위해 발버둥칠수록, 매순간 진정으로 살아갈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테니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는 걸 잊게 된다는 거죠. 이건 삶을 진정으로 산다고 할 수가 없어요. 라푼젤을 납치해 가둬놓고 끊임없이 그녀를 착취했던 마더 고델처럼요.
해주는 이야기들이 기본적으로 쉽고 재밌었습니다. 다만 좀 아쉬웠던 건,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그때그때 상황을 가져오다 보니 비슷한 혹은 비슷해보이는 상황에서 앞뒤가 다른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에 대해서 볼까요? <겨울왕국>의 안나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사랑의 진실성에 대해 좀 부정적입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지 알기도 전부터 이미 사랑에 빠지기를 원하는 상태'라고 표현했어요. 그런데 뒤에서 백설공주 이야기를 하면서는 '그녀의 소원은 변하지 않는 진실한 사랑을 보는 것이고, 그 대상이 어서 나타나기를 바란다'는 표현과 함께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긍정적인 면모를 얘기해요. 제가 보기엔 안나나 백설공주나 누군가를 만나기 전부터 '사랑'을 먼저 꿈꿨다는 점에서 똑같아 보이는데 말이죠. 복잡한 이야기를 압축해서 하다 보니, 그리고 사실 철학자들이 같은 상황에 대해서 서로 다른 말을 하다보니, 이렇게 좀 꼬이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가볍게 읽기 좋습니다. 챕터의 마지막에 항상 관련된 철학자의 책을 표기해 주는 것도 마음에 들어요. 설령 그 책을 다 찾아보지는 않더라도, 어떤 철학자의 개념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잖아요. 그 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은근 권선징악을 추구하면서 깊게 들어가면 깊게 들어가는 대로 말이 되는지라 (대기업의 기획력이란!) 애니메이션 보면서 찬찬히 내용 연관시키면 그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