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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이유를 찾아 살아간다
아사이 료 지음, 곽세라 옮김 / 비에이블 / 2022년 3월
평점 :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 중에 <키리시마가 동아리 그만둔대>라는 영화가 있어요. 이 영화 속에서 그려내는 각양각색의 청춘들이 너무나 매력적이면서도 결말이 현실적이라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영화에는 원작 소설이 있었지 뭐예요! 당장 사서 읽어봤죠! 역시 원작도 영화만큼이나 좋더라고요. <죽을 이유를 찾아 살아간다>는 그 영화의 원작 소설가, 아사이 료가 새롭게 내놓은 헤이세이 시대의 청춘물입니다.
일본은 우리와 다르게 아직도 왕이 있는 국가라, 연호를 쓴대요. 우리가 조선시대에 세종 12년, 정조 3년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어떤 시대를 기억할 때 우리처럼 90년대 같은 식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연호로 기억한다고 하네요. <죽을 이유를 찾아 살아간다>는 여러 소설가가 '산족과 바다족의 대립'이라는 주제와 아이디어만을 가지고 각자 다른 장르, 각자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풀어나간 연작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1989년에서 2019년까지 이어진 헤이세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헤이세이 시대의 청춘물인 셈이죠. 어떻게 쪼개어 이름을 붙이냐에 따라 같은 것도 얼마든지 다르게 묶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우리로 치면 90년대, 00년대, 10년대 이렇게 서로 완전히 다른 특징으로 나누는 긴 세월이 하나로 묶인 거잖아요. '선'을 어디에 긋느냐가 중요한 문제라는 것. 소설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이게 결국 서로 너무나도 다른 성향과 특질을 가진 두 친구가 평생 아슬아슬한(!) 우정을 이어나가는 이야기인데, 보면서 마음이 참 미묘해지더라고요. 이 둘의 우정은 결국 한 쪽이 일방적으로 참고 견디고 희생하고 받아줘서 유지가 되는 거거든요. 사실 건강한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는 게 맞다고 그냥 인간관계를 끊어버리면, 또 서로 같은 사람을 더 경계하고 배척하게 되어버리겠죠. 그렇게 서로 '다름'을 찾아볼 수 없는 사회가 되는 것도 영 마뜩찮고... 이런 고민을 소설 속 인물도 끊임없이 하고 있답니다.
이 작가가 청춘을 잘 묘사한 것 중 하나는, 자기를 부풀리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사실 이건 청춘만의 특징도 아니죠. 모두들 자기를 좀 더 대단한 사람으로, 괜찮은 사람으로 포장하고 싶어하잖아요. '너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야. 넌 멋져, 대단해!' 같은 사회적 주문을 끊임없이 들었던 세대는 그게 좀 더 심하게 나타날 뿐입니다. 자기가 빈 깡통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더더욱 남들이 자신을 좀 그럴싸한 사람으로 봐줬으면 하는 거예요. 남을 위해서 살아갈 자신은 없다. 인생을 걸 정도로 좋아하는 것도 없다. 남들 위에 설 만큼 대단한 재능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뭐지? 나는 왜 사는 거지? 내가 이렇다는 걸 사람들이 알면 어떡하지?
그렇게 자존심은 높고 자존감은 낮은 상태에서 자의식만 비대해진,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건네는 공감의 디톡스입니다. 마지막에는 작가의 메세지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살짝 교장님 훈화 말씀처럼 되긴 했지만, 그래도 모범답안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이렇게 '산족'처럼 굴 때가 있었던 인간으로서 마음 한 켠이 콕콕 쑤시더라고요ㅋㅋㅋ
우리가 미움의 연쇄를 끊는 '다음 세대'가 될 수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겠어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