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1). 역사에 주재자는 없다. 음모 이론들은 전부 쓰레기다. 각 행위자가 저마다의 이해에 따라 행위하면서 그것들이 점차 일정 방향성을 갖는 쪽으로 수렴할 뿐이다. 미국은 최강국으로서 자원과 힘과 다양한 선택지를 갖는다. 예컨대 키신저의 페드로달러 아이디어가 아니었더라도 미국은 다른 방법을 고안해내어 위기를 잘 극복했을 것이다. 미국은 그렇게 성공적으로 패권을 유지해왔다. 혹은 미국은 패권을 유지할 조건들을 잘 갖추고 있었다. 트럼프님은 다 계획이 있다~가 아니라 말이다. 


2). 트럼프주의: 미국에게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그럴 권리가 있다. 미국이 이 힘을 자제한다면 나머지 국가들은 미국의 자비와 관대함에 감사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린란드든 베네주엘라든 이란이든 큐바든... 이것이 적나라한 현실이다.


3). 트럼프주의는 전사를 대표한다. 그런데 이전과는 다른 현대의 조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먼저 세계는 극도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또, 중국이나 브릭스 등 어느 정도 대체재 역할을 할 수 있는 블럭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조만간 AI와 로봇의 시대가 본격화하여 생산력이 사실상 무한이 된다. 이러한 조건에서도 각 나라들은 여전히 패권주의에 순응하게 될까? 권력은 자원에 대한 접근을 배제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그런데 예컨대 페트로달러의 강제력은 이제 분명히 줄어들고 있다. 그러면 미국은 달러 패권을 지키기 위해 예컨대 미국의 AI 시스템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달러를 사용해야 한다든지 하는 다른 방법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은 이런 것들을 강제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다만 미국은 과거의 미국과 같은 정도의 압도적 최강국은 아닌 것 같다. 트럼프의 '마가'가 바로 이에 대한 고백이다. 바라건대 '마가'가 하나의 노스텔지아로 끝나기를... 지금이 인류의 전사가 막을 내리는 황혼이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링크는 굳이 안걸겠지만 이코노미스트 잡지의 유튭 채널에서 전직 MI6 수장에게 미국과 이란 중 누가 이기고 있냐고 물어봤다.


전직 MI6 수장: (당연하다는 듯이) 이란이죠. (너무 쉽게 단언하듯 말한 것 같다고 느꼈는지 다음 말을 덧붙인다) 나도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말이죠...


미국의 이란 침공은 유가와 주가를 박살내어 우리의 삶과 정신을 궁핍하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전쟁 발발때부터 이것이 미국 패권의 종말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 되지 않을까 하여 눈과 귀를 뉴스에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사태는 정확히 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은 전쟁 시작도 전에 이미 졌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세계는 다층적 접근을 허용한다. 혹은 달리 말해 우리는 세계를 다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쉽게 말해 사건을 그것을 품고 있는 지층과의 관련 하에서 파악해야 한다. 물론 층위들의 분류와 구조는 어느 정도 자의적이다. 이를 감안하여 설득력이나 설명력 정도만 따져보면 될 듯 하다.


지금 지구 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개의 커다란 전쟁의 전장을 보자. 러시아-우크라이나, 그리고 중동. 여기에 공통점이 있을까? 있다. 100년도 더 옛날에 영국에서 개발된 해양 세력 대 대륙 세력이라는 지정학 이론, 그 자기 실현적 예언의 구도에 따라 이 전쟁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대륙 세력은 러시아와 중국이고 해양 세력은 영국과 미국이다. 그러므로 이 이론에 따른다면 앞으로 대만 앞바다에서도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또 이 이론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나토의 동진 정책과 더불어 러시아의 힘을 빼기 위해 일어난 전쟁이 맞다. 그리고 다시 이 이론에 따르면 이번 중동 전쟁은, 이 이론에서 말하는 핵심 지역인 페르시아만 지역을 해양 세력이 계속 장악하기 위해 벌어진 전쟁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전쟁들은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부딪히는 지역에서 해양 세력이 대륙 세력의 팽창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말 놀랍도록 정확한 이론 아닌가?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이론이 정확한 것은 영국과 미국의 지도자들이 이 이론을 신주 단지처럼 모시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전통적으로 러시아 세력이 나타나는 곳에는 항상 영국 해군이 출몰했다. 거의 강박관념처럼. 이 이론에 따라서.


이 이론에 따라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중동은 최고로 중요한 에너지 공급처이면서 서구와 전혀 다른 이슬람 문명권이다. 이 문명권을 어떻게 조정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이라는 프락시 국가를 창설함으로써! 그러므로 우리는 유대인-이스라엘과 관련된 서구 국가들의 강력한 터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페르시아만에서의 서구의 강력한 이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해양 세력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그 이익을 서구 세력들이 나눠먹기 위한 기제의 중요한 축이고, 유대-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터부는 이를 가리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이다. 그러므로 서구 세력은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에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서구 세력 대신 온갖 욕을 먹어가면서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이스라엘이 벌어온 더러운 돈으로 서구 세력들은 우아하게 샴페인을 마시면서 철학과 예술과 인권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 세력 전체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에서 이득을 취한 공범이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서구 문명 자체가 종말을 고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서구 문명 전체가 공모에 참여했다. 그러므로 서구 문명 전체가 모랄적으로 파산했다. 그래봤자 나 스스로 소심하게 이스라엘산 무화과에 대한 불매 운동을 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지만 말이다.


저 지정학 이론은 더 이상 숭앙되어서는 안된다. 저 이론이 유지된다는 것은, 예컨대 중동에서 이스라엘이 모사드 등의 온갖 술책을 통해 중동 국가들을 이간질하여 갈등을 부추기고 전쟁을 하게 하여 중동 국가들의 힘을 빼고 서방 국가들, 서방 기업들에 의존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서구 세력이 저 이론에 따라 중동을 계속 장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기적으로 제2의 가자, 제3의 가자를 만들어내는 것 뿐이다. 이런 갈등론에 입각한 행동 양태들의 수준에서 인류는 이제 그만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스라엘은 폭력으로 남의 땅을 빼앗으며 건국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7, 80년 전 옛날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금도 계속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정착촌. 남의 것을 빼앗아 그것을 누리고 사는 것에 마음 편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래도 어떻게든 스스로를 정당화하려 한다. 나는 단지 자식을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신이 이 땅을 점지해주신 것이다, 유대인은 계속 핍박받고 살아왔다, 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악마들이다, 등등. 그러나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시도들... 


(전쟁이 끝나면 중동에서 모든 미군이 철수하고 중동에 새로운 질서가 짜여질 것이다. 중동은 항구적 평화가 보장되지 않으면 석유 시대 이후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새로운 체계 안에서 이스라엘은 도대체 어찌 해야 하는가?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전쟁을 해야만 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장 피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상대를 함부로 대상화하는 것이다.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가루가 되어 버린 가자 지구 사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아니 들 수 없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그럴 군사적, 정치적, 실용적 어떤 이유가 있었나? 이에 대한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윽고 심리학적인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이스라엘은 병리적인 상태가 아닐까?


삶은 하나의 여정이다. 처음에 우리는 완전히 무능한 상태로 세계에 던져진다. 그리고 점차 세계와 친밀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과정은 변증법적이다. 요약해 말한다면 세계와 친밀해지는 과정은 자신을 알고 자신에 친밀해지는 과정과 동등하다. 동일한 논리로 말하면 세계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존재에 심각한 불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대상에 대해서든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만족 이상의 불만족을 느낄 수 없다.


이 분노의 극한은 무엇일까? 예컨대 살인일까? 아니다. 단순히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넘어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지우는 것이다.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흔적을 지우는 것이다. 그 사람이 살았던 흔적 자체를 지우는 것이다. 이를 다시 변증법적으로 돌아보자. 그래서 결국 무엇을 지우는 것일까? 그것은 곧 나의 존재, 내가 한 행위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이스라엘 사회가 스스로의 원죄를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 건국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원죄를 사는 방법에 대한 이스라엘의 선택은 스스로를 파쇼화하는 것이었다. 이 선택이 필연적이지는 않았겠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매우 높았을 것이다. 가자 지구의 황폐함 앞에서 나는 이스라엘의 존재의 황폐함, 그 병리적 황폐함을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서방 진영에서라면 이런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서방 언론은 유대인을 가해자로 묘사할 수 없다. 설령 그것이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더라도 말이다. 유대인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이란 사람들의 절규와 분노를 그대로 방영할 수도 없다. 그것이 반-유대주의의 '핑계'가 될 수 있고, 그런 사태가 예견되는 데도 그런 장면들을 방영한다면 그 역시 반-유대주의로 몰리게 된다. 예를 들면 BBC는 생방송 뉴스에서 가자 지구 현장 특파원이 이스라엘군의 백린탄 사용을 언급하는 순간 방송을 끊어버렸다. 유대인, 이스라엘, 시온주의 등에 대한 언급은 그냥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것은 서방 사회에서 하나의 굳건한 터부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어떤 특정한 행동이 토라에 맞는지 안맞는지를 결정할 허다한 논리들을 개발해내었고 그런 판례들을 엄청나게 쌓아놓고 있다. 조선 시대에 간혹 문제가 되었던, 왕이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는가 등의 문제는 그저 애교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런 쓸데없이 정교한 이론화와 문제화가 유대인이 존재하는 곳에는 항상 따라 다닌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반-유대주의에 속하는가?


현대의 사상가들은 대상화, 소외, 정체성 등에 관한 어머어마하게 복잡한 이론들을 개발해내었다. 아마 하이데거같은 사람이라면 학문의 유대화라 불렀음직한 현상이다. 이런 복잡한 이론들을 전적으로 쓸모없는 것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분명 그렇다. 그것은 어머어마하게 복잡한 현대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체성과 관련된 복잡한 이론들이 비싼 비용을 들여 개발되고 있는 동안, 한쪽에서는 너무도 명백한 소외의 현상들이 외면되고 있다.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긴급 음식 구조를 제공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이스라엘의 젊은 여성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요. 그들은 그런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들은 사람으로 헤아릴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sub-human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반박하는데 무슨 정교한 철학이 필요한가? 조심하라. 서구에서는 그러한 반박이 가능한지를 조사하기 위한 정교한 철학이 필요하다. 그것이 유대인과 관련되는 한에서 말이다. 이쯤에서 서구 철학에 조종을 쳐주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서구 문명에 있어 이 유대인 문제는 참으로 답이 없다. 온갖 것들이 긴 역사를 두고 온갖 것들과 엮여 있어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알 수 없다. 게다가 그것은 커다란 파급력을 갖는다. 예컨대, 이번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의 경우가 그렇다. 그것은 유가를 올리고 주가를 떨어뜨린다. 제국주의 시절 영국의 이권 문제, 미국의 패권 문제 등이 하부 구조를 형성하고 있어서 인류는 지질학적 연대를 살듯 이 시대를 살 수 밖에 없다. 


이 유대인 문제는 서구 문명에 있어 커다란 위기를 구성한다. 나는 몇 년 전 로저 워터스의 공연을 보러 미국 뉴욕에 간 적이 있었다. 택시를 탔더니 운전사가, 우리가 관광객인 것을 알아보고는, "여기는 자유의 나라요. 누구도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요. 일하고 싶으면 차를 몰고 나오고 일하고 싶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고 그래요..." 좋게 맞장구를 해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렇게 과도하게 이념적인 데에는 필시 뭔가가 있기 마련이다. (자유라? 일하고 싶으면 차를 몰고 나온다고? 집세를 내야하고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까 차를 몰고 나오는 것은 아니고?) 로저 워터스의 공연장 앞에서는 열 명쯤 되어 보이는 유대인들이 로저 워터스가 반-유대주의자라며 피켓을 들고 데모를 하고 있었다. 자유라 했나? 자 이제 서구 문명에 있어 자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서구에서 유대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학교에서 퇴학당할 수도, 입사를 거부당할 수도, 회사에서 해고될 수도, 출판 계약이 취소될 수도, 교직 임용이 영원히 좌절될 수도, 영화 출연 계약이 취소될 수도, 공연장 계약이 취소될 수도, 입주 계역이 취소될 수도 있고, 하버드 대학같은 기관은 정부 지원금을 토해내야 할 수도 있다. 다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거나 벌어졌던 일들이다. 그리고 유대주의 기관에서는 반유대주의자로 낙인 찍힌 사람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인생을 망가뜨려버리겠다고 지속적으로 공언하고 있다. 자 다시 서구 사회에서의 자유와 관용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서구 문명은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터부를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라 했나? 그렇다면 가자는 또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에 눈감으면서 자신들을 어떻게 문명이라 부를 수 있는가? 한 마디로 말해서 서구 문명은 끝났다. 도덕적 역량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회복불능이다. 이런 문명이 어떻게 지구의 지도 문명이 될 수 있는가? 트럼프같은 사람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트럼프를 배출할 만한 문명에서 트럼프를 배출한 것 뿐이다. 그런 문명이 다음 세대를 책임지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서구 문명의 단일 패권은 저물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 다음에 무엇이 올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의 미국 패권보다 나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 다음의 다중심 세계에 있어 한국도 분명 기여분이 클 것이기 때문에 한국도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요컨대 한국이 제국주의라는 시궁창 경력 없이 지도국 중 하나가 된다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다음의 다중심 세계가 지금보다 확실히 나은 세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제 아내가 BBC로 페르시아 문명에 대한 다큐먼터리를 보길래 BBC 따위는 보지 말라고 야단을 했다. 나는 이스라엘산 무화과에 대해서만 소심한 불매 운동을 했었는데 이번 사태로 품목이 좀 늘었다. 첫째, 스타벅스, 둘째, 미국산 히어로물(예컨대 이제 더 이상 스파이더맨은 안보는 걸로...)... 우리의 기대는 이렇다. 지구상의 패권이 바뀌고, 더 이상 전쟁이 정책 수단 중 하나가 아니게 될 때, 앞으로 5년 후, 10년 후, 그때 꼭 이란에 가보자는 것이다. 철학도로서 가슴 아픈 것은 내가 읽는 책에 나오는 지명들이 죄다 미국의 폭격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스파한. 바라건대 참으로! 인류가 승리하기를...  


(누군가 하이데거에게 물었다. 현대의 문제에 대한 해결은 어디서 올까? 많은 사람들이 그 해결이 동양에서 온다고 말한다. 당신도 그에 동의하는가? 하이데거가 말했다. 동의하지 않는다. 문제가 처음 시작된 곳에서 해결도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하이데거에 동의하지 않는다. 서구 문명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산출했다. 그리고 문명 자체가 이미 매너리즘의 문명이 되었다. 해결이 어디서 오든 서구에서는 아닐 것이다. 우리도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weekly 2026-03-24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음... 하루 자고 나니 너무 억지스러운 부분이 눈에 많이 보여 지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유태인들의 어떤 특성을 현대 철학들의 좀스러움, 무능력함과 연결시키고 하이데거까지 끼워넣은 부분 등등. 당장은 그냥 놔두기로 한다. 본문은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사태를 목도하면서 내가 많이 화가 나 있는 상태라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