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는 굳이 안걸겠지만 이코노미스트 잡지의 유튭 채널에서 전직 MI6 수장에게 미국과 이란 중 누가 이기고 있냐고 물어봤다.
전직 MI6 수장: (당연하다는 듯이) 이란이죠. (너무 쉽게 단언하듯 말한 것 같다고 느꼈는지 다음 말을 덧붙인다) 나도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말이죠...
미국의 이란 침공은 유가와 주가를 박살내어 우리의 삶과 정신을 궁핍하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전쟁 발발때부터 이것이 미국 패권의 종말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 되지 않을까 하여 눈과 귀를 뉴스에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사태는 정확히 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은 전쟁 시작도 전에 이미 졌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세계는 다층적 접근을 허용한다. 혹은 달리 말해 우리는 세계를 다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쉽게 말해 사건을 그것을 품고 있는 지층과의 관련 하에서 파악해야 한다. 물론 층위들의 분류와 구조는 어느 정도 자의적이다. 이를 감안하여 설득력이나 설명력 정도만 따져보면 될 듯 하다.
지금 지구 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개의 커다란 전쟁의 전장을 보자. 러시아-우크라이나, 그리고 중동. 여기에 공통점이 있을까? 있다. 100년도 더 옛날에 영국에서 개발된 해양 세력 대 대륙 세력이라는 지정학 이론, 그 자기 실현적 예언의 구도에 따라 이 전쟁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대륙 세력은 러시아와 중국이고 해양 세력은 영국과 미국이다. 그러므로 이 이론에 따른다면 앞으로 대만 앞바다에서도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또 이 이론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나토의 동진 정책과 더불어 러시아의 힘을 빼기 위해 일어난 전쟁이 맞다. 그리고 다시 이 이론에 따르면 이번 중동 전쟁은, 이 이론에서 말하는 핵심 지역인 페르시아만 지역을 해양 세력이 계속 장악하기 위해 벌어진 전쟁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전쟁들은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부딪히는 지역에서 해양 세력이 대륙 세력의 팽창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말 놀랍도록 정확한 이론 아닌가?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이론이 정확한 것은 영국과 미국의 지도자들이 이 이론을 신주 단지처럼 모시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전통적으로 러시아 세력이 나타나는 곳에는 항상 영국 해군이 출몰했다. 거의 강박관념처럼. 이 이론에 따라서.
이 이론에 따라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중동은 최고로 중요한 에너지 공급처이면서 서구와 전혀 다른 이슬람 문명권이다. 이 문명권을 어떻게 조정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이라는 프락시 국가를 창설함으로써! 그러므로 우리는 유대인-이스라엘과 관련된 서구 국가들의 강력한 터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페르시아만에서의 서구의 강력한 이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해양 세력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그 이익을 서구 세력들이 나눠먹기 위한 기제의 중요한 축이고, 유대-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터부는 이를 가리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이다. 그러므로 서구 세력은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에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서구 세력 대신 온갖 욕을 먹어가면서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이스라엘이 벌어온 더러운 돈으로 서구 세력들은 우아하게 샴페인을 마시면서 철학과 예술과 인권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 세력 전체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에서 이득을 취한 공범이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서구 문명 자체가 종말을 고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서구 문명 전체가 공모에 참여했다. 그러므로 서구 문명 전체가 모랄적으로 파산했다. 그래봤자 나 스스로 소심하게 이스라엘산 무화과에 대한 불매 운동을 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지만 말이다.
저 지정학 이론은 더 이상 숭앙되어서는 안된다. 저 이론이 유지된다는 것은, 예컨대 중동에서 이스라엘이 모사드 등의 온갖 술책을 통해 중동 국가들을 이간질하여 갈등을 부추기고 전쟁을 하게 하여 중동 국가들의 힘을 빼고 서방 국가들, 서방 기업들에 의존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서구 세력이 저 이론에 따라 중동을 계속 장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기적으로 제2의 가자, 제3의 가자를 만들어내는 것 뿐이다. 이런 갈등론에 입각한 행동 양태들의 수준에서 인류는 이제 그만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