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스캔들 때문에 요즘 한국 뉴스를 많이 찾아 본다. 한국에 사시는 분들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무척 우울하고 마음 아픈 일이겠지만, 바다 건너 딴 나라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나는 별 감정 없이 이 중대한 역사적 사건을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치뤄나가는지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된다. 한국이 한 단계 올라서기 위한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는 생각...

 

국민의 절대 다수가 박근혜의 퇴진을 원한다. 그리고 아무 근거 없는 내 단순 느낌에 보수적으로 잡아서 6:4 정도로 국민들은 정권교체를 원하는 것 같다. 여권, 그리고 단독으로는 정권을 잡을 수 없는 국민의 당은 어떻게든 6:4의 판을 뒤집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러쿵 저러쿵을 해본다. 예를 들어 박근혜의 삼차 담화 후 박지원이 "우리 모두는 대통령이 던진 덫에 빠졌다" 며 우왕좌왕하는 척 하는 것을 본다. 박근혜와 박지원은 국민들을 정치 공학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더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나서 스스로가 대상이 아니라 주체임을 실력으로 증명해 보였다. 참으로 멋진 장면이었다.

 

여기서 일단 정권교체까지 가야 한다. 이런 아웅다웅 끝에 엉뚱한 세력이 정권을 잡는 것은 프랑스 대혁명 때부터 유서 깊은 패턴이었다. 한국도 그런 일을 많이 겪었다. 박정희의 쿠데타부터 시작해서 수도 없이 많은 예들이 있다. 그러나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그런 패턴을 부순 예이기도 하다. 정권 교체까지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한국의 시민들은 이기는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힘으로 총선을 이겼고, 그 승리로 지금의 탄핵 정국의 주도권을 휘잡아갈 수 있었다. 내일 탄핵을 가결시킨다면 온갖 정치 공학을 무찌르고 또 다시 승리를 맛보게 되는 셈이다. 누가 말한 대로 성공의 비결은 성공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현대사는 시민들의 힘으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사례들로 점철되어 있다. 사실 우리의 혈관에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야성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 이제 좀 지혜롭게 단지 무너뜨림 뿐 아니라 이룩함에도 성공할 때가 오지 않았을까? 그렇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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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CNN을 켜보았다. 놀랍지는 않았다. 이미 브렉싯을 겪어봤기 때문에. 그러나 정말 실망스럽기는 하더라. 당분간 뉴스를 보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적인 것을 먼저 말하자면 힐러리 클린턴이 너무나 약점이 많은 후보였다. 미국의 양당 구도가 참으로 깝깝하게 여겨졌다. 한국 같으면 제3의 후보가 튀어나와 얼마든지 양당 후보 정도의 경쟁력을 보일 수 있었으련만... 

 

거기서 어떤 흐름이나 의미를 말하자면 아마도 서구 자본주의의 수축기에 있어 백인 노동자 계급의 선택의 경향성을 가장 먼저 들어야 할 것 같다. 브렉싯에서와 똑같이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자신들이 'left behind'하다고 느끼는 계급의 선택이 투표의 최종적인 결론이 되었다. 기득권에 대한 반발, 변화에 대한 갈망...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의 최종적 양상은 영국에 있어서나 미국에 있어서나 공히 영국-성, 미국-성의 회복이라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예를 들어 영국 브렉싯 투표에서 영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인 선더랜드에 사는 사람들, 그러므로 실업률도 높고, 그러므로 이민자도 거의 없고, 그러므로 EU 보조금의 혜택을 많이 받는 지역의 사람들의 다수가 "영국의 자주권을 다시 회복한다"라는 말로 표현된 브렉싯을 선택했다. 아마 기득권을 증오하고 변화를 바라는 미국 백인 노동자 계급 사람들이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고 상속세를 폐지하고 법인세 감면에 찬성하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 모순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것이 총괄적으로 미국-성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 선택에는 아무런 모순도 없다. 그러므로 그 선택에서 단지 경제적인 의미만을 읽어내려 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모순들이 너무 빈번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국-성과 같은 가치적인 면에만 주의를 기울여서도 안된다. 거기에는 분명 자기기만이 놓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은 쉽지만 실제는 어려운 일인, 총체적 관점을 구축하는 이론적 작업이 먼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론화 작업 없이도 매우 명백해 보이는 사실이 있다. 이제 유럽의 중심 국가들에서 똑같은 일들이 연쇄적으로 벌어지리라는 것을 과연 누가 반박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다시 이론적인 측면, 혹은 철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나는 최근 료타르의 "포스트모던의 조건"을 다시 읽었기 때문에, 거대서사에 대한 종말 선언은 정말 섣부른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은 언제나 관념의 관념성을, 즉 그 무능성을 드러낸다...      

 

(나는 피쉬앤칲스를 좋아한다. 피쉬앤칲스 가게에 가서 주문을 하고 의자에 앉아 기다리면서 거기 비치되어 있는 썬과 같은 황색 저널을 본다. 선정적이고 재미있다. 브렉싯 전에 나는 이민자를 공격할 요령으로 써제낀 기사들을 킥킥 대며 읽었다. 어이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브렉싯 이후 나는 더 이상 그 저질 신문들을 보며 킥킥 댈 수 없다. 나 외에는 모두 영국 로컬 사람들이고, 후즐근한 복장의 워킹 클라스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이 그 선정적 신문 기사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분위기다. 그 분위기는 내가 지금 체험하고 있는 것이지만, 단지 주관적인 것일 수만은 없다. 설사 사실은 피쉬앤잎스 가게의 영국인 손님들 전부가 썬의 논조에 반대하는 사람들일 지라도... 불행하게도 이런 부정적, 퇴행적 분위기가 점점 더 많은 지구 면적을 덮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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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한국에서 사고 얻고 해서 가져온 다기류. 찻잔에 담긴 것은 전남 제석사 스님이 주신 발효차. 아주 순하고 맛있다.)

 

이곳 뉴스들에도 한국의 박근혜 스캔들이 계속 나온다. 오늘 아침엔 박근혜가 사과하면서 자신은 컬트의 일원이 아니라고 부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통령의 입에서, 컬트니 컬트 세레머니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 자체가 무척 기묘한 상황이라는 것을 서울 특파원이 계속 강조하더라. 티브이 자료 화면 속의 최순실에게서 한 나라의 국정을 좌지우지할 만한 카리스마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외부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는 그것이 이번 사태를 더욱 기묘하게 하는 것 같다.

 

나는 이번 사태를 한국 현대사의 한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아주 젊은 나라로 온갖 역사적 경험들이 압축되어 혼재해 있다. 그러다 보니 무려 2016년에 박근혜 사태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일들도 튀어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 현대사의 에피소드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2016년의 한국 일반이 그런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사태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가를 반성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물론 사리분별도 못하는 사람이 대통령을 한다고 나선 박근혜의 책임이다. 그리고 정부, 집권당, 언론 등등의 책임인 것도 맞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책임은 국민들에게 있다고 말해야 한다. 예를 들어 누가 이 사태를 들어 권력에 대한 감시를 제대로 못한 언론을 비판할 수 있을까? 박근혜에 밉보이면 직장을 잃거나 감옥에 가거나 회사가 망하거나 공천에서 떨어지거나 패가망신하거나 하는데 누가 감히 박근혜에 대적할 수 있었을까? 그럼 그런 박근혜의 권능의 근원은 어디였을까? 물론 국민들이다. 박근혜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의 단단함 정도가 이 스캔들의 어이없음의 수준과 일치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애초부터 박근혜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사태를 겪고서야 뒤통수를 맞았다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면 정말로 문제일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사람들의 목소리는 이제 낮아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한나라당은 참 오래 버텼다. 한나라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려 할 때, 아니 영남 지역당으로 쪼그라들려 할 때마다 나타나 한나라당을 구원해 준 인물이 박근혜였다. 이제 특정 지역과 세대에 역행적으로 자기동일감을 제공해주는 인물은 사라졌다. 박근혜가 이런 식으로 퇴장하지 않았어도 어짜피 오늘날의 한국에 박근혜식의 인물은 오래 맞춰갈 수 없었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민주주의에 크나큰 기회라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지름길이 될지, 혹은 또 한번 우회길을 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권, 언론 등등이 아니라 집합적으로 봐서 바로 우리에 달린 문제라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그것은 언제나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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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여만에 아버지 생신에 맞추어 한국에 다녀왔다. 아마 그 4년 동안 한국도 변했겠지만 나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들을 발견한 것 같았다. 아내의 고향 마을에 있는 제석사를 찾았다. 스님이 방문객들에게 차를 끓여주며 한담을 나누는 절이었다. 스님의 이야기가 인상 깊은 것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 분위기만은 참 좋았다. 서울에 올라와서 인사동 골목의 한 찻집을 찾았다. 좁은 곳이었다. 우리의 말소리는 낮춰지고 조곤해졌다. 그 분위기가 너무도 좋아서 꼭 영국까지 가져가고 싶었다. 그래서 인사동에서 다기 몇 가지를 샀다. 인사동 거리에는 여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며 셀카를 찍고 있었다. 너무나 예뻤다. 그래서 아내도 한복을 샀다. 한복의 색상과, 거기에 수놓아진 패턴은, 화려하지만 단아함을 놓지 않고 있었다. 거기에서 어떤 고유한 문화를 발견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나는 그런 문화를 새로 발견한 것 같았다. 말하자면 이렇다. 예전에는 한국의 문화를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하며, 다소는 방어적으로 치켜세우곤 했었다. 대학가에서 풍물 등이 유행한 것에도, 서구 문화에 대항하여 우리 고유의 것도 있다는, 말하자면 운동적인, 혹은 의지적인 요소들이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지방에서는, 예컨대 전라도 지방에서는 사람들이 나면서 국악 등에 익숙해지고 그렇게 그것을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켜내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소멸하고 말 것이라는 인식이 상당히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 피상적인 느낌에 이런 우려는 이제 별 근거가 없는 것으로 귀결된 것 같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방어적 의식없이 이런 문화들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성북구에서는 한옥 짓는 강의를 한다고 포스터를 붙여 놨다. 한옥, 국악, 한복, 차... 이런 것들은 아마도 웰빙의 문화로, 다시 말하면 정신적 고양을 추구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양상의 전개가 가능한 문화를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행운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해보았다. 한국은 문화적으로 상당히 고양된 사회인 것 같다. 한국은 정말 다양하고 깊이 있는 문화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정치가 무척 낙후되어 있지만, 정치와 문화와의 간격이 이처럼 한정없이 멀어진 채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곧 정치적 수준도 상당히 고양될 수 있지 않을까? 예닐곱 명의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모두가 동의한 것은 한국의 문화적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이었고, 단 한 명도 동의하지 않은 것은 정치적 수준도 곧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낙관론이었다. 내 동생의 말에 의하면 한국은 이미 시기를 놓쳤다는 것... 글쎄 좀 더 지켜보아야 겠다.

서울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흔하게 발견하게 되는 것이 중장년들의 천편일률적인 등산복 패션과 중고 여학생들의 가부끼 화장이었다. 후자는 그렇다치고 전자들을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은 저 세대는 아직 자신의 늙음을 관리할 자신감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50대 후반의 대기업 임원 한 분과 저녁을 같이 했었다. 그 분의 화두는 은퇴 후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분은 재산도 이미 상당하다. 그러나 은퇴 이후를 겁내고 있었다. 그 분의 결론은 어떻든 돈을 버는 일을 계속해야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현상으로서 은퇴 이후를 고민하는 첫 세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동생은 사십대 초반의 남자다. 은퇴 이후에 자영업을 한다든지 하는 계획은 전혀 없다. 지출을 줄이면서 여가를 충분히 활용할 생각을 하고 있다. 단 두 명과 대화하고서 은퇴에 대한 세대 차이를 논하는 것은 정말로 망발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거기서 한국 사회의 빠른 변화 양상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부모님 댁에서 먹고 잤다.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에서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면, 특히 저녁에 집을 나서면 즐비한 다양한 종류의 술집에서 온갖 종류의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구수한 목소리가 전해져 온다. 나는 유흥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 유혹은 나같은 사람에게도 정말 컸다. 나는 짧은 한국 체류 기간 동안 중앙동 곱창 동네를 두 번이나 갔다. 나는 이제야 영국이 심심한 동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서울의 거리에는 온갖 종류의 술집, 음식점, 커피 가게들이 즐비하다. 소비자로서는 천국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물론 그 이면은 어마어마한 경쟁일 것이다. 어떤 작은 커피점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셨다. 정말 맛이었다. 두 번을 찾아갔다. 내가 여태까지 먹어본 에스프레소 중에서 최고라고 진심으로 말해주었다. 커피점 주인은 젊은 청년이었다. 여자 친구와 함께 가게를 냈다고 했다. 그 거리에는 이 커피점 말고도 작은 커피점들이 많았다. 다섯 중 서넛은 몇 년 안에 망하겠지 싶었다. 나는 다만 내가 다음에 한국에 올 때 이 커피점은 망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물론 그 집 에스프레소가 맛이어서만은 아니다...

어젯밤에 영국으로 돌아왔다. 택시를 타고 주차장을 나가는데, 앞에 차 한 대가 정차해 있었다. 차주인이 뒤늦게 주차비를 끊느라 차를 그렇게 방치해 놓은 것이었다. 내가 탄 택시 주인이 크락숀을 한 번 울렸다. 차주인이 나타나서는 이렇게 공간이 많은데 안지나가고 뭐하느냐고 화를 냈다. 아내와 나는 웃었다. 영국에서 흔하게 보게 되는 장면은 아닌 것이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고 한다면 그 말도 맞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이번 주 내내 해를 볼 날은 없다. 나는 처음으로 영국의 날씨에 갑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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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전 세팅. 공연 중에는 감히 사진을 찍지 못하겠더라...)

 

몇 칠 전 한 친구가 K-Music Festival 2016이 열린다고 문자로 알려주었다. 나는 바로 웹 검색을 하였고 공연 리스트에 잠비나이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예약을 해버렸다. -입장료가 쌌다. (아내도 잠비나이 공연을 너무 보고 싶어했고, 처음에 내게 문자를 준 친구는 제삼자에 불편함을 느끼는 성격이라 결국 함께 하지 못했...) 런던 해크니라는 동네의 오슬로라는 바 안에 있는 아담한 공연장. 사람들로 꽉꽉 들어 찼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정말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잠비나이는 헤비메탈 밴드와 경쟁하듯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었다. 끝 곡이 끝나자마자 터져나온 우뢰와 같은 함성이 내 느낌에는 이 공연의 하일라이트였다. 실망스러운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실험적이고 프로젝트적인 밴드가 7년 이상 생존하며 꾸준히 공연을 하고 앨범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리라. 최근에 나왔다는 Hermitage라는 앨범을 샀다. 내적, 자기 파열의 음악과, 밴드의 리더인 이일우의 땅꼬마같은 얼굴이 겹친다. 이들은 왜 이런 음악을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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