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www.nationalgallery.org.uk/paintings/salvator-rosa-philosophy)
어제 오전에 일이 잘 안되길래 털고 일어나 내셔널 갤러리에 갔다. 가볍게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런던이 이런 게 좋다. 가까운 거리에 있고 또 무료다. 다빈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건 유료다. 신경을 자극받고 싶지 않아서 그냥 넘겼다. 내년 이월까지라는 것만 확인해 두었다.
이 방 저 방 거닐면서 그림들을 둘러 보았다. 내 요즘 취향은 방에다 걸어두면 어울릴 만한 그림이라서... 추상화가 더 구미에 당긴다. 그래서 고전 작품들로 가득한 벽들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적당한 주의만을 기울이며 그림들을 둘러 보았다.
그러다 이 그림이 눈에 딱 들어왔다. 왜냐고? 스피노자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제목을 확인해 보니 "Philosophy"다. 게다가 저 손에 들린 라틴 문구는, "Be quiet, unless your speech be better than silence"란다...-.-
그대의 말이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닥치고 있으라. 말할 가치가 없는 것임에도 말하기를 고집한다는 것은 그대가 비윤리적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럿셀은 판단 이론에 대한 비트겐쉬타인의 비판을, 몇 년이 지난 후 호된(severe) 비판이었다고 회고한다. 비트겐쉬타인의 비판에 좌절하여 심지어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비트겐쉬타인의 비판을 받고는 학문함에 있어 처음으로 자신이 정직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비트겐쉬타인의 비판을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이 모든 기록들은 그의 개인적 기록이나 서신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공적인 기록에 있어서는, 심지어 그의 자서전에도 이 사건이 제대로 기술되어 있지 않다. 럿셀은 자신의 약점이나 실수를 드러내고 인정하는 데 전혀 게의치 않는 사람임에도 말이다. 럿셀이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을까... 이런 걸 생각하다보면 내 가슴도 아프다.
비트겐쉬타인의 비판은 정확히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이 비판의 학적인 측면을 매우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비판의 윤리적 측면도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추측할 수 있다. 비트겐쉬타인의 비판은 아마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이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선생님에게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만일, 이 문제를 이해하고도 책을 계속 쓰겠다고 고집한다면 그건 선생님이 사악하다는 뜻입니다." 럿셀의 상처는 자신이 사악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음에서 오는 상처였으리라고 나는 추측한다. 이런 상처는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
비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철학은 철학함 자체가 항상 문제시된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보라, 저 그림이 무엇으로 보이는가? 모세의 십계명이다. 젠장, 보지 말았어야 할 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