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저녁 먹고 아내와 나란히 앉아 한국 뉴스를 체크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유튭으로 JTBC 등을 틀어놓고, 사모 펀드 자금 흐름도를 설명하는 대목이면 중간 중간 멈춤을 하고 토론을 벌인다. 엊그제 JTBC 보도를 보고 우리가 내린 결론은, 사실 내역이야 어떻든 검찰이 정경심씨를 펀드 운영사의 실소유주로 판단할 충분한 정황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김어준의 방송을 보고 --- 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검찰이 사모 펀드와 관련하여 조국 일가를 엮는 것은 불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관점'이라 함은 김어준과 나의 아내 등은 검찰이 거기서 포기할 자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아마 일반적인 관점일 것 같기 때문이다.


정경심씨를 사모 펀드와 관련하여 기소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정경심씨가 펀드 운영사의 소유주임을 검찰이 증명해내는 것 뿐인 것 같다. 그러나 등기부에 설립 자본을 댄 자는 익성이라는 회사로 나와 있기 때문에 정경심씨가 단독으로 소유자가 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고, 검찰에게 남은 방법은 정경심씨와 익성이 사실상 공동 소유 관계에 있다는 점을 밝히는 것 뿐인 것 같다. 그러니까 검찰은 동양대 영문학 여자 교수와 현대차에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 회사 경영진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만들어 내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검찰에게 뼈저리게 필요한 것은 사실 관계보다는 창의성인 것으로 보인다. 


여튼 검찰은 펀드 운영사가 익성의 우회 상장을 추진하면서 벌인 이상한 일들(영어 교재 회사가 갑자기 배터리 회사가 되어 버린다든지 하는)을 불법 거래죄 등으로 처단하기 위해 또다시 대규모로 수사단을 보강했다고 한다. 이 사안은 분명 구속 기소가 떨어질 사안일 것이고, 범죄 사실을 밝혀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여기에 정경심씨만 엮어넣는다면 검찰은 조국발 검찰 개혁을 좌초시킬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이 정경심씨를 어떻게든 엮어서 구속 기소를 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엮는 것이 무리한 부분을 포함하는 이상 법원은 범죄 사실에 대한 다툼의 여지를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검찰이 정경심씨를 구속시키지 못하는 한 조국은 사퇴할 리가 없을 것이다. 정경심씨에 대한 소환과 기소는 이미 예정된 것으로 국민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구속 영장 기각은 대중에게 유죄 심증보다는 오히려 검찰의 무리한 수사라는 심증을 형성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이상이 나의 관점이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나도 한국의 언론 현황에 대해 염려를 하게 되었다. 나만 해도 더 이상 기존 방송을 볼 생각이 없다. 적어도 당분간은. (박사모 할아버지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언론이 조국 일가를 범죄자로 몰고 김어준만이 조국 일가를 변호한다. 여론은 문재인 지지자와 반대자로 나뉘어 치열하게 진영 싸움을 하고 있지만 언론은 진영 논리 없이 일치하여 조국 일가를 비판한다. 그렇다면 진영 논리에 빠져 조국 일가를 옹호하고 있는 내가 문제인 것은 아닐까? 그러나 보자. 명확한 사실에 기초해 판단해 보자. 등기부상으로 펀드 운용사의 소유주는 익성으로 확인되어 있고, 오촌조카가 횡령한 돈의 최종 도착지도, 녹취록에 의해서나 오촌조카의 검찰 진술에 의해서나, 익성인 것으로 되어 있다. 또 개인 정경심과 한 해 천억대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기업과는 동원한 수 있는 자본의 크기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김어준을 제외한 모든 언론들은 익성에 대한 언급 없이 정경심씨를 펀드 운용사의 핵심 행위자로 모는 보도만을 쏟아내고 있다. 이는 합리적 상식에 너무도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보도들을 보는 것이 너무도 괴롭고, 결국 시청을 포기하게 된다. 옳은 것은 김어준이고 틀린 것은 그를 제외한 모든 언론사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고 마는 것이다. --- 어쨌거나 기쁘다. 시대의 거대한 사태를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목격할 수 있어서. 한국 언론의 집단적 광기와 그로 인한 자멸의 현장을.


이번 한국 언론 사태는 사회학적으로 대단히 흥미로운 주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사태는 한국의 전체 언론이 진영 논리를 뛰어 넘어 일치된 목소리를 내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독특한 일이 아닌가? 예컨대 반일 이슈에 대해 언론이 이토록 단결된 입장을 보였는가? 나는 이 대단한 결속을 이해해 보고 싶다! --- 그러나 퍼뜩 그 답이 대단히 허망할 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스쳐 지나간다. 한국의 언론인들이 이런 독특한 모습을 보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한국의 언론인들이 진영 논리를 넘어서서 절대적으로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던 장면들... 대표적으로는 한국에서 열린 어떤 컨퍼런스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호스트 역할을 잘 해준 한국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한국 기자에게 먼저 질문 기회를 주겠다고 했는데도 질문 하는 한국 기자가 단 한명도 없었던 장면. --- 어쩌면 그때의 장면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장면이 크게 다른 것이 아니고, 그렇다면 현재 한국 언론의 이 광기를 해명해보고자 하는 작업의 결론은 매우 허망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여튼 그것도 한국이라는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추). 국정농단 사태 등에서도 이런 일치된 목소리가 있었을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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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9-2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의성, 집단광기, 결속이라는 키워드가 돋보입니다.

저는 여기에 사실 확인이라는 언론의 기능을 상실한
미디어 밴드왜건이라는 키워드를 추가하고 싶네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선이해를 바탕으로 자신
들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을 저돌적으로 유포한
언론의 모습에 그저 아연할 따름입니다.

weekly 2019-09-21 01:52   좋아요 0 | URL
예 같은 생각입니다. 이 폭풍이 지나고 나서 언론에 대해서든 검찰에 대해서든 깊이 있는 성찰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