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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렇게 창작한다!
황의웅 지음 / 시공사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은 무수한 일본 애니메이션들 중에서 특별히 나를 사로잡는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원령공주> 이 두 편이다. <바람게곡의 나우시카>를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황폐해진 세상의 공기를 정화하는 생명의 부해를 파괴하려는 토르메키아 군대를 막아서던 나우시카의 모습은 그 어떤 생태주의의 설교보다 박진감 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인간의 파괴에 맞서 밤이면 숲에 생명력을 되돌려주던 거대한 사슴신 시시가미의 이미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숲을 파괴하는 인간의 거친 욕망에 대한 이미지화된 묵시록이었다. 이 작품들을 보며 도대체 이 거대한, 이 숭고하기조차 한 이미지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을까 궁금했다.
일본 애니나 미야자키에 대한 개론적 지식 정도라면 인터넷을 통해서도 충분히 접할 수 있지만 그것 이상을 원하는 이들에겐 책밖엔 없다.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렇게 창작한다!>라는 약간 날렵한 제목의 책을 구했다. 도판이 많이 들어 있는 책이라 가격은 좀 비싼 편이지만, 평소 접할 수 없었던 도판들이 많이 들어가 있고 미야자키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들어가 있는 편이라 자료적 가치는 충분한 책이다.
미야자키의 작품들을 보면 캐릭터나 상황 설정 면에서 익숙하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이 책에 의하면 그건 미야자키가 기존의 작품들을 통해 표현한 것들을 끊임없이 변용하거나 확장하는 방식의 작업 스타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야자키 작품 속의 캐릭터, 배경, 장면, 상황들이 작품 사이에서 변형되는 과정, 미야자키의 것이 아닌 다른 작품들이 자신의 작품으로 차용되는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보다는 미야자키 활동 초기 시절의 작품이 예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아 실감은 부족하지만 그의 작업 스타일을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통념처럼 미야자키의 작품 경향이 유럽적인 것에서 일본적인 것으로 변화했다는 단정은 가능하지 않을 것같다. <원령공주>는 가장 일본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이긴 하지만 아시타카나 야클의 캐릭터에는 일본 아닌 것의 영향이 적지 않게 묻어나고, 궁극적으로 인간과 자연의 대립을 넘어선 상생 사상이 이미지의 배면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의 매력은 모험, 판타지, 동화와 같은 인간 보편의 욕망과 경험을 훌륭하게 결합시킨 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그의 경험, 욕망, 작업에 대해 조금 알 수 있었지만, 미야자키에 대한 내 갈증은 여전하다. 내가 지금 원하는 건 그의 말, 삶, 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