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도 서문문고 164
프리드리히 실러 / 서문당 / 197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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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시나 소설 같은 문학 작품은 왠지 잘 읽게 되지 않는다. 문학 작품에서 바라는 거라면 감동인데, 어떤 작품을 봐도 선뜻 이걸 읽으면 감동이 오겠구나! 싶은 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비평적 관심에서 읽어볼 수도 있겠지만 은희경, 신경숙, 성석제, 김영하 등 잘 나가는 젊은 작가의 작품에 당장 큰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기껏해야 재치나 유머, 글재주 정도로 버무려 놓은 글을 읽는 건 심심 파적이 되기가 십상이다.

남들에 비해 넘치는 게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내 시간 관념은 경제적이어서 그 무수한 시간의 어느 한 자락이라도 허투루 지나치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난 참 결벽증적인 데가 있다.

이렇긴 하지만 종종 희곡 작품을 즐겨 읽는다. 인생은 에로스, 에토스도 필요하지만 파토스를 빼놓고 인생의 실감을 논할 수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희곡은 연극을 통해 상연될 때 실감은 두 배, 세 배로 증폭되지만 굳이 그런 기회를 접하지 않더라도 읽으면 분열과 대립, 증오와 분노, 위선과 죄악의 들판을 헤치는 것같은 파토스를 전해준다. 현대 작품들은 세속화되어 그 느낌이 덜한데, 고대 비극이나 하다 못해 셰익스피어의 작품만 들춰도 내게 전해져오는 파토스는 당연 신적인 경지에 달한다.

프리드리히 쉴러. 헤겔이나 아도르노의 책에서 제목을 봐왔고, 당대 괴테와 쌍벽을 이룬 사람이라는 그의 <군도>가 올해 번역되어 나왔다. 그의 작품이 앞서 몇 편 번역되었지만 실제로 접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프랑스대혁명의 기운을 이어받은 독일 질풍노도 시기의 작품으로 작품은 전체적인 톤은 상당히 거칠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오델로>를 연상시키는 플롯에다 신의 운명적 저주로 파멸하는 궁정가의 파멸 이야기에는 채 비극으로 승화되지 못한 기운이 감돈다.

익히 알려진 독일 쪽 고전이긴 하지만 요즘 시각으로 보면 다소 읽기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다. 도적 무리들의 악행 묘사나 유일한 여성인 아말리아의 소극적이고 잠자는 공주같은 이미지, 끝내 자신의 여인을 죽이고 미쳐 가는 주인공 칼의 모습은 그 어떤 고상함, 숭고함에 대한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쉴러는 <인간의 미적 감정에 대한 서한>이라는 책자를 통해 문학이 인간의 미적 감정을 고양시키는 숭고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기실 <군도>를 통해 숭고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천상의 기운이 쇠한 시대 탓일까? 비기독교도인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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