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ts are in the belfry
the dew is on the moor
where are the arms that held me
and pledged her love before
and pledged her love before

It's such a sad old feeling
the fields are soft and green
it's memories that I'm stealing
but you're innocent when you dream
when you dream
you're innocent when you dream

I made a golden promise
that we would never part
I gave my love a locket
and then I broke her heart
and then I broke her heart

It's such a sad old feeling
the fields are soft and green
it's memories that I'm stealing
but you're innocent when you dream
when you dream
you're innocent when you dream

Running through the graveyard
we laughed my friends and I
we swore we'd be together
until the day we died
until the day we died

It's such a sad old feeling
the fields are soft and green
it's memories that I'm stealing
but you're innocent when you dream
when you dream
you're innocent when you dream

 

tom waits


 노래가 안 나오면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10220436     

 

 춥다, 그래서 따뜻하고. 언젠가 공기 대신 숨 쉬었던 물의 기억 같은 것도 슬며시 떠오르는 밤. 다 포기한 듯 멍한 채 있다가도 몸이 물을 만나면, 흐리멍텅하던 감각들이 생생해지고 난마처럼 얽혀 머릿속을 묵지근하게 채우던 것들이 제법 선명한 단어로 떠오르곤 한다. 몇 번은 조각조각 정연하게 나뉘어 떠도는 말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잡아낼 수 있을까 꼼수를 부려봤지만. 딴 생각을 먹는 그 순간, 번번이 거품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물이 흐르는 곳이어서일까. 잠시나마 굴곡진 매듭이 풀어지고 순리 속에 있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나의 로망은 언제나 빨강 혹은 회색빛. 너무 뜨겁게 오래 가는 혹은 너무 깊이 가라앉은 사이에 회적색 같은 게 있다면 그건 11월을 바라보는 10월 즈음의 마음이 아닐까. 미적지근한 거리를 만들어내며 한 켠의 무거움을 감출 수 없지만... 이즈음에는 내 한숨도 너무 깊으니, 하고 격랑처럼 흘러가는 바깥 세상에 잠시 격조한 눈길을 보낸다. 핏대를 올리던 신경의 스위치를 내리고 살아갈 날의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 세차게 몰아칠 찬 바람에 잔뜩 웅크릴 마음의 여백을 만드는 시간. 그리고 착한 거짓말 같은, 눈물나는 흑백영화 같은 꿈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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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y 2006-10-28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한때는 이 영화와 , 이 책 <오기렌의 크리스마스>만을 선물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변덕은 죽끓듯 하지만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많고 많으니.. 잠시 잊고 있었어요.. 그 거리 , 한장의 사진.. 착한 거짓말.. 가만 가만 그것들이 떠올라서.. 좋아요..

waits 2006-10-29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좋은 게 너무 많아서... 어떻게 그랬나 싶을 정도로 까맣게 잊고 지내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좋은 사람들은 많고 많지만 모두가 아저씨가 될 수는 없다는...ㅎㅎ
 

 



어디쯤 왔을까  
얼만큼 걸었을까   
  
옮겨진 발걸음을
또 다시 옮길까
     

서러움 애써 달래보려고      
이만큼 걸었건만  
이제는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닌   
다시 처음이라오   
    

어디쯤 왔을까      
얼만큼 걸었을까  
옮겨진 발걸음을
또 다시 옮길까 

서러움 애써 달래보려고 
이만큼 걸었건만   
  
이제는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닌
    
다시 처음이라오 
      
  
서러움 애써 달래보려고
이만큼 걸었건만
이제는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닌 
다시 처음이라오
 

 

작사,곡 이승희 

노래가 안 나오면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10147562

 며칠 동안 지독히도 우울했다. 대기가 차가워지고 11월이 다가오면 조금은 습관적으로 앓는다. 그것은 일종의 의례이기도 하고 나로서는 예의이기도 하며 한편 오래 묵은 진심이기도 하다. 1990년의 11월 1일, 아니 정확히 그의 죽음을 알게 된 건 그 다음 날의 점심 시간이었다. 구설에 자주 오르던 한 가수의 이른 죽음이기도 했지만, 내게는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첫 죽음'이었다. 사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모든 죽음을 유난스레 두려워하고 아파했던 나는, 이미 망자인 누군가와의 때늦은 조우에도 미처 몰랐던 그 죽음이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어느 날 거짓말처럼 그가 죽었다.

 이듬해 2월 강바람이 무척 시렸던 날, 그를 추모하는 공연이 열렸다. 어쩐지 비장한 마음이 되어 63빌딩을 빙 두른 인파 속에 묻히기까지, 나는 몇 달을 울기도 하고 스스로를 달래기도 하고 그의 꿈까지 꿔가며 시달리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무대에 올랐고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자, 3시간 여 동안 한 사람의 죽음을 애달파하던 무리들이 뿜어내는 더할 수 없는 비통함이 극에 달했다. 그예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고, 그 목소리는 마치 이제 마음껏 울어도 좋다는 신호탄 같았다. 좀은 진부한 드라마 같았고 좀은 아름다운 광경 같기도 했던 그 날은, 백 일쯤 구천을 떠돌다 다른 세상으로 가는 그를 위한 극진한 배웅이었다. 찬 바람과 긴장과 몰입으로 제 정신이 아닌 채 돌아와서는 지쳐 잠이 들었고, 신비체험이라도 되는 듯 꿈에서 그와 만났다. 

 고등학교 때, 뭘 어째야 좋을지 알 수 없도록 마음이 웅웅거리고 초조한 날이면 최후의 보루처럼 45번 좌석버스를 떠올리곤 했다. 집으로 가는 136번이나 46번을 기다릴 때면, 서울을 벗어나는 그 번호가 유혹처럼 시선을 잡아채곤 했다. 밤 늦은 시각일 때가 많아 귀가 걱정으로 차마 올라타지는 못했지만, 가끔은 의도된 착각을 바라기도 했고 또 가끔은 충동적으로 올라탔다가 고속터미널쯤에서 소심하게 내리기도 했었다. 기껏해야 성남까지였건만, 시경계를 넘는다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다른 세계를 향하고 있는 듯한 해방의 기대를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침내 45번 종점에 닿았던 어느 날, 사위가 깜깜해진 밤 낯선 도시에서 무척이나 막막하고 아득하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성남은 집에서 넘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시경계에 면해 있는 곳이었다. 한 번 해보니 별 것도 아니어서, 이후에는 제법 성남의 어디 어디를 주워섬겨가며 복작스런 대학로나 명동이 싫어질 때면 45번 버스에 훌쩍 올라타곤 했다. 그리고 실은 그 성마르게 비탈진 도시 어딘가에, 그가 잠들어 있다는 것을 나는 내내 생각했다.

 물론 요절한 당대 최고의 가객에게 걸맞는 예우이기도 했지만, 그의 추모 공연은 생의 첫 죽음이라는 가치전복적인 경험에 무방비상태가 되어버렸던 나를 위한 일종의 정화의식이기도 했다. 생전에 단 한 번 직접 본 일도 없으면서, 그의 죽음에 내가 왜 그리 광적으로 반응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이른 죽음에 따라붙는 비극적 운명의 해석들과 전설 만들기에 전혀 휘둘리지 않았을 리는 물론 없다. 가장 예민한 시기에 열광하고 탐닉할 무엇으로 삼기에, 그가 맞춤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려나. 그의 죽음을 넘어서면서 나는, 생동하되 변절하고 외면하는 많은 것들보다 언제까지고 변하지 않는 망자와 그들이 남긴 유물이 주는 안온함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몇 해가 흐르는 동안, 나를 포함해 온갖 살아있는 것들에 진저리가 날 때마다 그가 잠들어있는 곳을 찾아 헤매다녔다. 황막한 벌판에는 신도시가 생겨나는 중이었고, 야탑이니 이매니 하는 이정표만을 가지고 남서울공원묘지를 찾는 일은 만만치가 않았다. 언젠가부터는 그저 헤매고 싶어서, 이따금 소풍처럼 산책처럼 가끔은 필사적으로. 그리고 수능이 끝난 다음 날 작정하고 나선 길에서 외롭지 않게 잠들어 있는 그를 만났다. 그 날은, 고맙게도 언제나 있는 듯 없는 듯 곁을 지켜주는 친구와 함께였다. 생경하고 쑥스러웠지만 김현식 아저씨를 위해서는 꽃다발을 준비하고 혹시나 묘지기 아저씨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인적 드문 곳에 세워진 트럭에서 귤도 한 봉지 샀다.

 상상 속에서는 그렇게나 자연스럽던 일인데 막상 현실이 되니, 낯선 이물감이 온 몸을 휘감은 듯 비현실적인 기분이 되어버렸다. 어렵사리 찾아 간 남서울공원묘지는 생각했던 것만큼 스산하지도 황량하지도 않았다. 관리사무소를 지키던 할아버지가 쭈삣거리는 우리를 보시더니 대뜸, "김현식이 찾아왔어?" 말을 건네 긴장된 마음이 풀어졌다. 그는 기독교인 묘역인 에덴동산에 있었다. '당신의 모습'이 새겨진 비석, 가지런히 놓인 종이학들과 꽃들 그리고 그렇게 좋아했다는 소주병도 주변에 널부러져 있었다. 마음의 대화라는 게 정말 있다면, 한 시간쯤은 나눈 것 같다. 마침 한 해를 꼬박 마음으로 수소문했던 아저씨가 새 음반을 내고 작은 공연을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 날로부터도 벌써 십여 년이 지났다. 11월 1일, 그리고 16년. 얼핏 그의 아들이 가수로 데뷔한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그만큼의 세월이 흘러버렸다. 일방적이지만, 그렇게 회포를 풀고나서 나의 그리움은 정기적이고 주기적으로, 10월과 11월을 관통하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가끔은 훈련된 무의식인지, 십 년 넘게 흐르며 마음이 익힌 버릇인지 곰곰히 생각을 해본다. 당연히 이제는 예전만큼 아프지 않고, 망자인 그가 내게 훨씬 더 자연스러우며, 때로 그가 추한 모습으로 늙어가며 '망가지지' 않아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를 이야기하고 그의 노래가 의미없이 아무렇게나 울려퍼지는 것이 그렇게도 못 견딜 일이었던 한때는 길지 않았고, 지독히도 이기적으로 내 안에 가뒀던 그의 죽음을 이제는 저자에서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래저래 부산하고 우울한 10월, 포틀랜드니 아이다호는 언감생심. 이번에는 오랜만에 성남에 다녀올 생각으로 심기일전하려 애쓰는 중이다. 여전히 거기에 계시는지, 가족들이 있으니 이런 청승이 뭐 굳이 필요할까마는. 그의 죽음에 기대어 마음껏 침잠해 엄살을 떨어대며 넘긴 가을들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가벼운 목례 수준이다. 남은 가을, 비빌 언덕 고마운 줄 알고 생활 갖고 장난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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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5 0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10-25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님도 좋아하시는군요. 하필 쓸쓸한 때 가셔서 더 애틋한 것 같아요.
네, 저도 새기고 정신 차리려고 꾸역꾸역 썼답니다. 따스한 말씀 감사해요. ^^

에로이카 2006-10-26 0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압권입니다. 마치 저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아요.. 우리 모두 열심히 삽시다... ^^

로드무비 2006-10-26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님 말씀에 동감.
그리고 평택, 나어릴때 님처럼 열정적이고 치열한 분 저 아직 못 봤어요.
세상의 공식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rainy 2006-10-26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장에 밑줄을 긋는 기분으로 님의 글을 읽습니다. 이런 느낌의 글 아래 댓글들은 또한 내가 쓴 것과 다름없는 그런 끄덕임이 있구요.. 화요일에 두드러기가 온 몸에 돋더니 , 또 오늘은 두어달 먹었던 독한 약들 때문인지 식도염이 왔고.. 어떤 날은 지겹다고 조금 징징거리기도 했지만, 오늘처럼 허리가 펴지지 않을 정도로 아픈 날은 , 딱 그걸 견뎌내는 힘만 남아 징징거림이 멈추는 걸 느낍니다. 저절로요.. 그렇게 사는 걸 거예요. 오늘은 내 남은 인생의 날들중에.. 제일 젊은날. 그리고 어쩌면 제일 건강한 날일지도.. 몸을 추스리고 마음도 추스려야죠.. 이제 곧 11월인걸요.. 제가 사랑하는 겨울날엔..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어요.. ^^

waits 2006-10-26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님, 마지막 말은 제게 하는 말이었어요. 하지만 떨치고, 정신을 차려야겠지요. 혹시 에로이카님도 부유하고 계셨나요? '우리 모두 열심히 삽시다'ㅎㅎ

로드무비님, 격려 감사해요. 치열,이란 말을 너무 엄한 데서 또 만나니 순간 몽롱해지네요. 엄살이고 핑계라는 건 알지만, 도무지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억이 잠시 나가서. 그래도 뭐 살아야지요, 바람도 불고. 흡.

rainy님, 오랜만이예요. 아프지 말아야하는데... 근데, 어지간해서는 이겨낼 힘만큼만 아픔이 오는 것도 같지요? 제일 젊은 날, 그럴싸한 걸요. 젊어서 그게 뭐? 하는 마음도 한 구석에서 스멀대지만요.^^;;
저 지금 'honey' 듣고 있어요. 아, 이럴 거면 '가요가요'를 다시 부르시지... 원망하며, 감격하며, 따라하며, 괜히 혼자 격정에 젖어서... 거의 미친년.ㅎㅎ 11월이네요. 저 다음 주에 김현식 아저씨한테 가보려구요, 세레머니가 필요한 때라서. 안부 전해드릴까요? 행복이라는 말에 꽤나 냉소적인 편인데, 너무 원해서 그런 건 아니었나 문득 생각이 드네요. 추워지는데, 아프지마셔요.
 

 



아니야 아니야 
내가 아닐 걸   
  
아니야 아니야
바로 너일 걸
    
정 하나로 사람을 갖고 논건  
바로 너일 걸
     

무슨 소리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  
니가 하는 말   
정말이지 모르겠어   
니가 줬던 정 따위는   
다 필요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떠나버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떠나버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떠나버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떠나버려 

더 이상 너의 정은 
필요가 없어   

아니야 아니야 
내가 아닐 걸   
  
아니야 아니야
바로 너일 걸
    
정 하나로 금괴를 갖고 논건  
바로 너일 걸

무슨 소리 하는 건지      
답답해 미치겠네  
니가 하는 말

정말이지 모르겠어  
니가 줬던 정 따위는 
다 필요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떠나버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떠나버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떠나버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떠나버려 
  

더 이상 너의 정은 
필요가 없어  

 

작사,곡 백현진


노래가 안 나오면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6997509 

 

 문득, 너무 많은 것에 매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학교, 생활, 무엇보다 스스로에. 신명 없는 태생에, 수시로 자아분열하는 습성에, 허랑방탕하게 보낸 날들에 대한 반성까지 더해가며... 내가 기억하는 모습으로부터 너무 멀리 온 건 아닐까. 뭐 그리 큰 윤리, 거창한 도덕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면서, 일상을 구성하는 자잘한 것들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내 모습과 마주칠 때마다 가끔은 덜컥 숨이 막힌다. 한번 흐뜨러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될 거라는 불안감. 그마저도 없으면 한도 끝도 없을 거라고. 어쩌면 살 수도 없을 거라고 되뇌이는 일이 한 주기의 정점에 이르게 되면, 거의 모든 것에 무방비상태가 되어 푹 가라앉아버린다. 마침, 가을에. 스산하게 떠난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오르고. 아무리 따지고 들어봤자 결국은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르는 많은 것들을 비웃듯, 논리 없는 명쾌함으로 애원 같은 명령으로 그야말로 지랄하듯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도 함께 떠오른다. 내가 그를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게 한 가지 있다면, 그는 내가 본 최고의 미친 놈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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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10-1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아직 달라붙어 있는 아침 잠을 깨우는군요. 저 최고의 미친놈 목소리가.
아직 스산해지기엔 일러요.

waits 2006-10-18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과 밤은, 완전히 다른 세계 같아요. 일터에 나와 정신없다보니 어찌나 새삼스러운지.
빤딱한 햇살이 비추는 사무실에선 낯설어요. 정말, 아직 스산해지기엔 일러요.
빨랑 밤세계로 가고 싶어요. ㅎㅎ
 

 


 

네가 바라보는 세상이란  
성냥갑처럼 조그맣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허전한 맘으로 돈을 세도
    
네겐 아무 의미 없겠지   
날아오를 하늘이 있으니    
  

너는 알고 있지 구름의 숲      
우린 보지 않는 노을의 냄새  
바다 건너 편의 꽃의 이름    
옛 방랑자의 노래까지   
네겐 모두 의미 있겠지   
날아오를 하늘이 있으니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  
내려오지마
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       
내려오지마  

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

어느 날 네가 날개를 다쳐 
거리 가운데 동그랗게 서서   
  
사람들이라도 믿고 싶어
조용한 눈으로 바라보며
    
"내겐 아무 힘이 없어요   
날아오를 하늘이 멀어요"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  
내려오지마
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
가장 아름다운 하늘 속  
멋진 바람을 타는 
너는 눈부시게 높았고
  
    
그것만이 너 다워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
내려오지마 
    
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        
가야한다면     
어딘가 묻히고 싶다면 
우리가 없는  
평화로운 곳으로 가서    
마음을 놓고        
나무 아래서 쉬는 거야    

우리가 없는        
평화로운 섬으로 가서     

...    
     
우리가 없는
가야 한다면

 

작사,곡 이상은


노래가 안 나오면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9719104

 

 그 극장에 아직은 '라이브 2관'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었을 때, 이상은과 백현진이 함께 하는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담다디'가 세상을 뒤집었을 때, 나 역시 그녀를 향해 열광을 보내는 수많은 소녀들 중 하나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탬버린을 흔들어대며 허스키 보이스로 열창하는, 그러나 스폿라이트 속의 그녀가 조금은 안쓰럽고 어색하다 싶기도 했었다. 한 동안은 '상은언니에게' 라고 시작하는 일기를 열심히 썼었다. 그녀가 살던 집과 멀지 않았던 우리 학교 아이들은 무시로 그녀의 목격담을 전해왔다. 나는 그냥 열심히 전해지지도 않을 일기를 써댔을 뿐이다.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던 강인원의 노래를 열심히 부르던 그녀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미술을 하러 간다고 했던 것도 같은데, 그녀가 떠나기 전에 이미 나의 열광은 빛을 잃기 시작했다. 약간은, 나의 열광이 부끄러웠던 것도 같고 너무 빨리 식어버리는 마음이 당혹스럽기도 했던 것 같다. 이후에도 여전히 '포토뮤직'이니 '뮤직라이프'니 하는 잡지들을 탐독했지만, 소위 '동아기획표' 가수들에 관한 알량한 분량의 기사를 읽고 모으기 위해서였다. 물론 중간에 잠깐씩은 신해철에, 서태지 그리고 91년부터는 무엇보다 아저씨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스무 살 남짓까지 달마다 흘깃대던 대중음악 잡지들은 언젠가부터 '키노'와 '씨네21' 류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상은이라는 이름은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따금 일본에서 어쩌고 하는 소식과 함께 새 음반 소식이 들려왔지만, 무렵 내가 사랑하던 뮤지션들과 비교하며 너무 번드르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한 번 멎은 열광, 그것도 결단하듯이가 아니라 자연스레 사라져간 열광이 다시 불 붙는 일은 거의 없다. 2000년 무렵으로 기억되는 그 공연은 한편 소녀적 우상과의 재회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나는 백현진의 무대에 더 솔깃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나는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가 좀 거북스럽고 불편했다. '담다디' 시절을 떠올리는 게 민망할 만큼 그녀의 음악과 그녀의 위상은 달라졌지만, 이전의 열광이 무색할만큼 아무런 감회가 없었다. 또 한참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퍼슨웹에 실린 그녀의 인터뷰를 읽으며 한때의 팬으로서가 아니라 동시대 청자로서 응원의 마음 같은 게 든 적은 있다. 병적일 만큼 많은 노래들에 감정이입을 하고 그 기억을 오래 간직하는 나로서는 꽤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주 가끔이나마 떠올리게 되는 건, 그녀가 이 노래를 만들어 불렀기 때문이다. 까마득히 잊고 살던, 인간으로서의 반성을 상기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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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10-15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눌님이 좋아하시는 앨범만 봐도 그렇게 좋으신가요? ^^

waits 2006-10-17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흡. 뭐 굳이 대답까지...^^
 

 



아침에 보던 그 맑은 햇살과
당신의 고웁던 참 사랑이
 
푸른 나무 가지 사이사이로 
스며들던 날이 언제인가 
별들에게 물어요 나의 참 사랑을
    
뜰에 피던 봉선화와 같은 사랑을   
아무도 모른다네 우리의 추억을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해 놓고  
말은 한 마디도 못한 것은
당신의 그 모습이 깨어질까봐
슬픈 눈동자로 바라만 보았소 
별들에게 물어요 나의 참 사랑을   
뜰에 피던 봉선화와 같은 사랑을 
    
아무도 모른다네 우리의 추억을

낙엽이 지고 또 눈이 쌓이면  
아름답던 사랑 돌아오리라
언제보아도 변함없는
나의 고운 사랑 그대로를 
별들에게 물어요 나의 참 사랑을   
뜰에 피던 봉선화와 같은 사랑을

아무도 모른다네 우리의 추억을
  

 

작사,곡 이주호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09646646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 나는 할머니랑 한 방을 썼다. 1학년 봄부터 살았던 그 집은 소위 '미니이층'이라고 불리던, 아래층에는 셋집이 살고 외부의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구조였고 방이 세 개 있었다. 3학년때까지는 함께 방을 썼던 오빠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중간방에서 자취를 하던 누군가 대신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었다. 고작 4학년 주제에 나는 그게 무척 부러웠는데, 텔레비전도 없고 중학생이라고 혼자 자기를 강요당했던 오빠는 처음에 꽤나 징징대며 밤마다 할머니와 내가 있던 방으로 몸을 날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철없는 오빠도 어엿한 중학생, 사춘기가 찾아왔을테고 언젠가부터 그 방은 아주 비밀스러운 방이 되어버렸다. 아직은 심형래의 크리스마스캐롤(이건 4학년 겨울, 학교에서 튼다고 샀던 기억이 있다, "달릴까 마알까" 그 엄청난 센세이션..;;)이랑 구창모의 '희나리' 말고는 소장 테잎이랄 게 없었던 나와 달리, 오빠는 동네 레코드가게를 열심히 들락거리며 낡은 턴테이블에 올릴 lp들을 사모으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여나 천적싸가지 동생이 자기 물건을 어떻게 할까 싶었던지, 엄마 아빠가 없는 낮에는 오로지 자기 편인 할머니를 구슬려 방의 출입을 막았던 것 같기도 하다. 드럽고 치사해서, 그리고 실은 별로 관심도 없어서 무시하던 4학년때를 지나... 나는 자주 그 방을 찾았다.

 구창모의 '희나리'가 대히트를 기록했던 85년, 이제 나는 다 큰 5학년이었고 아직 내 라디오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수완 좋게 오빠가 돌아오기 전까지 왕영은의 '젊은이의 노래'며 장유진의 '가요산책' 같은 방송을 열심히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즈음 소도둑 된 심정으로, 이전에는 차마 건드리지 못했던 lp판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내 손으로 턴테이블에 lp를 얹고 노래를 들었다. 좀은 재미없었던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가 첫곡으로 흘러나온 그 음반은, 낙엽 가득한 산길을 걸어가는 두 남자의 뒷모습 사진이 박힌 해바라기의 2집 '그 날 이후'였다.

 이영훈과 이문세 콤비의 멜랑꼬리 발라드가 fm을 평정하던 시절이었다. 너무 어른의 노래같기도 했고 양보 없는 쓸쓸함 같은 게 느껴져서 좀은 지루했지만, 이상한 인내를 발휘해가며 뒷면의 '어허야 둥기둥기'까지 나는 열심히 들었다. 어쩐지 음악을 들으려면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성실하고 정직해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뒷면의 중간쯤 이 노래가 있었다. '사랑의 시'나 '갈 수 없는 나라'도 좋았지만, 주변 공기를 달리 만드는 것도 같고 나른한 슬픔을 담은 것도 같은 이주호의 목소리에 실린 이 노래가 나는 유독 좋았다. 그때도 대략 그늘지고 우울한 것들을 향한 어두운 연정을 자주 품고 지냈던 터라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어쩐지 우수에 찬 분위기에 젖어들었던 것도 같다.

 뜬금없이 며칠 전부터 이 노래가 맴돌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그렇게 좋아했던 이주호의 목소리 말고, 한영애의 읊조림으로. 나는 그녀의 공연에 가본 적이 없다. 그녀가 한창일 때는 내가 좀 어렸고, 이 버전이 실려있는 세번째 음반을 꽤 좋아해서 테잎이 늘어지도록 반복해 들었던 고1 때는 가야할 공연이 너무 많아서 여력이 없었다. 몇 년 전 옛노래들을 다시 부른 'behind time'의 '오동나무'를 꽤 좋아하기는 했었지만, 어쩐지 나는 그녀의 귀기어린 절규가 늘 약간 부담스러웠다. 생각해보면 '갈증'과 '여울목', '여인#3', '달', '따라가면 좋겠네' 같은 노래를 꽤나 좋아했음에도 말이다. 그러다 문득 한참 전 우연히 그녀를 마주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로 뒷골목에, 공연 뒤풀이가 자주 열렸던 '행운'이라는 식당에서였다. 한쪽 방에서는 무슨 공연의 뒤풀이가 흥청망청, 무슨 일 때문인지 잠시 플로어로 나왔다가 너무 귀여운 아가를 발견했다. 늦은 시각이었고 그 시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이래저래 긴장이 풀린 채 서로에게들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작고 예쁜 아가를 보러 다가갔는데, 그 아가가 한영애에게 안겨 있었다. 그녀 역시 나처럼, 누군가의 작은 아가가 너무 예뻐서 안아보고 얼러보는 중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익히 듣던 노래에서 뿜어져나오던 광기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해사한 얼굴이었다. 단지 아가 때문에 마주한 처지여서 순진한 웃음이 오갔고, 그 뿐이다. cbs인지 어디에서 문화정보 프로그램 dj로 앉은 그녀의 목소리에 좀 낯설어 했던 게 그 이전인지 이후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이 노래가 떠올랐을까. 북한핵이 어쩌고 하며 뒤숭숭하던 대낮, 사무실에서 문득이었다. '아무도 모른다네, 우리의 추억을...' 정말 쌩뚱맞게. cd를 갖고 있지 않아 bugs에서 다운을 받고 며칠 내내 듣는다. 그녀는 이 노래를 서너 번쯤 불렀을 것이다. 다짐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고 회한도 없이, 이렇게 숨죽이듯 그렇지만 담담하게 부르는 노래가 좋다.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눈물이 난다. 벼락치듯 갑자기 세상이 끝난다고 해도, 이렇게 읊조리고 있으면 세상이 고요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아마 아련하게 다정한 옛 일이 떠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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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2 0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10-12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선가 이 새벽에 이 노래를 같이 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괜히 짠하고 고마운걸요.
같은 노래가 사람에 따라, 또 톤에 따라 얼마나 달리 들리는가를 생각하면 참 신기해요.
한편 놀아나는 느낌이기도 하지만... 결국 듣는 귀의 기분 때문이겠죠.
노래처럼 착하고 아련한 꿈을 꾸면 좋을까요. ^^

2006-10-12 0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10-12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노래가 마음에 닿으면 굳이 말이 필요 없을 것도 같아요. 함께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