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쯤 왔을까  
얼만큼 걸었을까   
  
옮겨진 발걸음을
또 다시 옮길까
     

서러움 애써 달래보려고      
이만큼 걸었건만  
이제는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닌   
다시 처음이라오   
    

어디쯤 왔을까      
얼만큼 걸었을까  
옮겨진 발걸음을
또 다시 옮길까 

서러움 애써 달래보려고 
이만큼 걸었건만   
  
이제는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닌
    
다시 처음이라오 
      
  
서러움 애써 달래보려고
이만큼 걸었건만
이제는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닌 
다시 처음이라오
 

 

작사,곡 이승희 

노래가 안 나오면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10147562

 며칠 동안 지독히도 우울했다. 대기가 차가워지고 11월이 다가오면 조금은 습관적으로 앓는다. 그것은 일종의 의례이기도 하고 나로서는 예의이기도 하며 한편 오래 묵은 진심이기도 하다. 1990년의 11월 1일, 아니 정확히 그의 죽음을 알게 된 건 그 다음 날의 점심 시간이었다. 구설에 자주 오르던 한 가수의 이른 죽음이기도 했지만, 내게는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첫 죽음'이었다. 사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모든 죽음을 유난스레 두려워하고 아파했던 나는, 이미 망자인 누군가와의 때늦은 조우에도 미처 몰랐던 그 죽음이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어느 날 거짓말처럼 그가 죽었다.

 이듬해 2월 강바람이 무척 시렸던 날, 그를 추모하는 공연이 열렸다. 어쩐지 비장한 마음이 되어 63빌딩을 빙 두른 인파 속에 묻히기까지, 나는 몇 달을 울기도 하고 스스로를 달래기도 하고 그의 꿈까지 꿔가며 시달리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무대에 올랐고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자, 3시간 여 동안 한 사람의 죽음을 애달파하던 무리들이 뿜어내는 더할 수 없는 비통함이 극에 달했다. 그예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고, 그 목소리는 마치 이제 마음껏 울어도 좋다는 신호탄 같았다. 좀은 진부한 드라마 같았고 좀은 아름다운 광경 같기도 했던 그 날은, 백 일쯤 구천을 떠돌다 다른 세상으로 가는 그를 위한 극진한 배웅이었다. 찬 바람과 긴장과 몰입으로 제 정신이 아닌 채 돌아와서는 지쳐 잠이 들었고, 신비체험이라도 되는 듯 꿈에서 그와 만났다. 

 고등학교 때, 뭘 어째야 좋을지 알 수 없도록 마음이 웅웅거리고 초조한 날이면 최후의 보루처럼 45번 좌석버스를 떠올리곤 했다. 집으로 가는 136번이나 46번을 기다릴 때면, 서울을 벗어나는 그 번호가 유혹처럼 시선을 잡아채곤 했다. 밤 늦은 시각일 때가 많아 귀가 걱정으로 차마 올라타지는 못했지만, 가끔은 의도된 착각을 바라기도 했고 또 가끔은 충동적으로 올라탔다가 고속터미널쯤에서 소심하게 내리기도 했었다. 기껏해야 성남까지였건만, 시경계를 넘는다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다른 세계를 향하고 있는 듯한 해방의 기대를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침내 45번 종점에 닿았던 어느 날, 사위가 깜깜해진 밤 낯선 도시에서 무척이나 막막하고 아득하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성남은 집에서 넘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시경계에 면해 있는 곳이었다. 한 번 해보니 별 것도 아니어서, 이후에는 제법 성남의 어디 어디를 주워섬겨가며 복작스런 대학로나 명동이 싫어질 때면 45번 버스에 훌쩍 올라타곤 했다. 그리고 실은 그 성마르게 비탈진 도시 어딘가에, 그가 잠들어 있다는 것을 나는 내내 생각했다.

 물론 요절한 당대 최고의 가객에게 걸맞는 예우이기도 했지만, 그의 추모 공연은 생의 첫 죽음이라는 가치전복적인 경험에 무방비상태가 되어버렸던 나를 위한 일종의 정화의식이기도 했다. 생전에 단 한 번 직접 본 일도 없으면서, 그의 죽음에 내가 왜 그리 광적으로 반응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이른 죽음에 따라붙는 비극적 운명의 해석들과 전설 만들기에 전혀 휘둘리지 않았을 리는 물론 없다. 가장 예민한 시기에 열광하고 탐닉할 무엇으로 삼기에, 그가 맞춤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려나. 그의 죽음을 넘어서면서 나는, 생동하되 변절하고 외면하는 많은 것들보다 언제까지고 변하지 않는 망자와 그들이 남긴 유물이 주는 안온함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몇 해가 흐르는 동안, 나를 포함해 온갖 살아있는 것들에 진저리가 날 때마다 그가 잠들어있는 곳을 찾아 헤매다녔다. 황막한 벌판에는 신도시가 생겨나는 중이었고, 야탑이니 이매니 하는 이정표만을 가지고 남서울공원묘지를 찾는 일은 만만치가 않았다. 언젠가부터는 그저 헤매고 싶어서, 이따금 소풍처럼 산책처럼 가끔은 필사적으로. 그리고 수능이 끝난 다음 날 작정하고 나선 길에서 외롭지 않게 잠들어 있는 그를 만났다. 그 날은, 고맙게도 언제나 있는 듯 없는 듯 곁을 지켜주는 친구와 함께였다. 생경하고 쑥스러웠지만 김현식 아저씨를 위해서는 꽃다발을 준비하고 혹시나 묘지기 아저씨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인적 드문 곳에 세워진 트럭에서 귤도 한 봉지 샀다.

 상상 속에서는 그렇게나 자연스럽던 일인데 막상 현실이 되니, 낯선 이물감이 온 몸을 휘감은 듯 비현실적인 기분이 되어버렸다. 어렵사리 찾아 간 남서울공원묘지는 생각했던 것만큼 스산하지도 황량하지도 않았다. 관리사무소를 지키던 할아버지가 쭈삣거리는 우리를 보시더니 대뜸, "김현식이 찾아왔어?" 말을 건네 긴장된 마음이 풀어졌다. 그는 기독교인 묘역인 에덴동산에 있었다. '당신의 모습'이 새겨진 비석, 가지런히 놓인 종이학들과 꽃들 그리고 그렇게 좋아했다는 소주병도 주변에 널부러져 있었다. 마음의 대화라는 게 정말 있다면, 한 시간쯤은 나눈 것 같다. 마침 한 해를 꼬박 마음으로 수소문했던 아저씨가 새 음반을 내고 작은 공연을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 날로부터도 벌써 십여 년이 지났다. 11월 1일, 그리고 16년. 얼핏 그의 아들이 가수로 데뷔한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그만큼의 세월이 흘러버렸다. 일방적이지만, 그렇게 회포를 풀고나서 나의 그리움은 정기적이고 주기적으로, 10월과 11월을 관통하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가끔은 훈련된 무의식인지, 십 년 넘게 흐르며 마음이 익힌 버릇인지 곰곰히 생각을 해본다. 당연히 이제는 예전만큼 아프지 않고, 망자인 그가 내게 훨씬 더 자연스러우며, 때로 그가 추한 모습으로 늙어가며 '망가지지' 않아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를 이야기하고 그의 노래가 의미없이 아무렇게나 울려퍼지는 것이 그렇게도 못 견딜 일이었던 한때는 길지 않았고, 지독히도 이기적으로 내 안에 가뒀던 그의 죽음을 이제는 저자에서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래저래 부산하고 우울한 10월, 포틀랜드니 아이다호는 언감생심. 이번에는 오랜만에 성남에 다녀올 생각으로 심기일전하려 애쓰는 중이다. 여전히 거기에 계시는지, 가족들이 있으니 이런 청승이 뭐 굳이 필요할까마는. 그의 죽음에 기대어 마음껏 침잠해 엄살을 떨어대며 넘긴 가을들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가벼운 목례 수준이다. 남은 가을, 비빌 언덕 고마운 줄 알고 생활 갖고 장난치지 말 것.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6-10-25 0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10-25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님도 좋아하시는군요. 하필 쓸쓸한 때 가셔서 더 애틋한 것 같아요.
네, 저도 새기고 정신 차리려고 꾸역꾸역 썼답니다. 따스한 말씀 감사해요. ^^

에로이카 2006-10-26 0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압권입니다. 마치 저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아요.. 우리 모두 열심히 삽시다... ^^

로드무비 2006-10-26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님 말씀에 동감.
그리고 평택, 나어릴때 님처럼 열정적이고 치열한 분 저 아직 못 봤어요.
세상의 공식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rainy 2006-10-26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장에 밑줄을 긋는 기분으로 님의 글을 읽습니다. 이런 느낌의 글 아래 댓글들은 또한 내가 쓴 것과 다름없는 그런 끄덕임이 있구요.. 화요일에 두드러기가 온 몸에 돋더니 , 또 오늘은 두어달 먹었던 독한 약들 때문인지 식도염이 왔고.. 어떤 날은 지겹다고 조금 징징거리기도 했지만, 오늘처럼 허리가 펴지지 않을 정도로 아픈 날은 , 딱 그걸 견뎌내는 힘만 남아 징징거림이 멈추는 걸 느낍니다. 저절로요.. 그렇게 사는 걸 거예요. 오늘은 내 남은 인생의 날들중에.. 제일 젊은날. 그리고 어쩌면 제일 건강한 날일지도.. 몸을 추스리고 마음도 추스려야죠.. 이제 곧 11월인걸요.. 제가 사랑하는 겨울날엔..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어요.. ^^

waits 2006-10-26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님, 마지막 말은 제게 하는 말이었어요. 하지만 떨치고, 정신을 차려야겠지요. 혹시 에로이카님도 부유하고 계셨나요? '우리 모두 열심히 삽시다'ㅎㅎ

로드무비님, 격려 감사해요. 치열,이란 말을 너무 엄한 데서 또 만나니 순간 몽롱해지네요. 엄살이고 핑계라는 건 알지만, 도무지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억이 잠시 나가서. 그래도 뭐 살아야지요, 바람도 불고. 흡.

rainy님, 오랜만이예요. 아프지 말아야하는데... 근데, 어지간해서는 이겨낼 힘만큼만 아픔이 오는 것도 같지요? 제일 젊은 날, 그럴싸한 걸요. 젊어서 그게 뭐? 하는 마음도 한 구석에서 스멀대지만요.^^;;
저 지금 'honey' 듣고 있어요. 아, 이럴 거면 '가요가요'를 다시 부르시지... 원망하며, 감격하며, 따라하며, 괜히 혼자 격정에 젖어서... 거의 미친년.ㅎㅎ 11월이네요. 저 다음 주에 김현식 아저씨한테 가보려구요, 세레머니가 필요한 때라서. 안부 전해드릴까요? 행복이라는 말에 꽤나 냉소적인 편인데, 너무 원해서 그런 건 아니었나 문득 생각이 드네요. 추워지는데, 아프지마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