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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죽지 않은 밤 -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한 응급실 의사의 투명한 시선
프랭크 하일러 지음, 권혜림 옮김 / 지식서가 / 2022년 2월
평점 :
최근 ‘소년심판’ 이라는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그들이 표현하려는 정의는 너무 미화되어 외면하고 싶었으나 그들이 표현하려는 악의는 어느정도 미화되었기에 그나마 봐줄 수가 있었습니다. 현실은 더 끔찍하니까요.
응급실에서 20여년을 근무한 의사의 담담한 기록도 그런 이유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상황은 적어도 책속에서는 고요해보였으니까요. 그가 총상환자와 이야기할 때 그 옆에는 숨을 못쉬는 천식환자가, 구토를 해대는 환자가, 간질빌작을 하는 환자가 동시에 있었을 것입니다. 커튼 뒤에는 이미 사망한 환자가 시트를 덮고 있었을 지도 모르지요. 그가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느끼는 곳은 은은한 불빛아래의 책상앞도, 하루를 회상하는 포근한 이불속도 아닌 그렇게 야단스럽고 법석인 공간이었기에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10분 후 그녀는 깊고 조용한 눈을 하고는 돌아왔다. 나는 그녀가 울었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저렇게나 어린데. 앞으로 보게 될 것들이 아주 많이 남아 있는데..
나는 기계를 믿지 않았었다. 기계는 값만 비싼 또 하나의 가짜 발전이자 우리가 마지막 순간에 흔드는 지팡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경험들에 둘러싸여 그런 생각을 했고, 내가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혁명도, 위대한 발견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똑같이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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