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깊은 목재 회사인 만하임 그룹의 경영인인 페르 귄터 모트가 자신의 휴대폰에 찍힌 한 장의 사진의 비밀을 풀기 위해 탐정인 율리아에게 사건을 의뢰한다.술을 마시면 기억을 잃곤 하는 페르는 자신의 핸드폰에 누군지 모를 시신의 모습이 찍혀 있자 혹시 자신이 사건의 범인이 아닌가 두려워 한다.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율리아는 경찰인 전남편 시드니와 함께 페르의 저택에 도착해 가족들을 한 사람씩 면담하기 시작한다.범행 현장도 알 수 없고 정체도 알 수 없는 시신의 사진은 만하임 그룹의 지분을 갖고 있는 가족들의 모임이 있던 시각에 찍힌 사진이라는 사실때문에 그 곳에 함께 읽던 육촌 형제들이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기 시작한다.육촌 중 막내동생인 시리의 의해 사진 속 인물이 모트가의 장남인 베르테르임이 밝혀지지만 가족의 골치거리였던 그의 죽음을 누구도 슬퍼하지 않는다.사건이 점점 미궁으로 빠져가는 찰나 호수에서 베르테르의 시체가 떠오르고 율리아는 점점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탐정의 성별은 대부분 남자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율리아는 여자 탐정인데다 신체적인 약점과 정신적인 약점을 모두 갖고 있는 주인공이다.어린 시절 겪은 사고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탓에 다른 사람과 신체 접촉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또한 헤어진 전남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기도 하고 성급하게 범인을 단정짓기도 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스웨덴의 경찰 소설 ‘마르틴 베크’시리즈처럼 부부 작가가 쓴 <아이가 없는 집>은 탐정 ‘율리아 스타르크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다.누가 범인인지 찾아가는 “고전 후더닛 미스터리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작품‘인 까닭엔 한정된 장소에서의 추리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소설은 4대째 내려오는 목재 재벌 가문의 대대로 내려오는 추악한 모습 파헤져 간다.가장 힘없는 누군가의 희생과 그 위에 군림하는 악의 모습은 보여줌으로써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모습을 들여다보게 한 소설은 시리즈의 포문을 연 소설답게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를 궁금하게 한다.과연 율리아는 소설 끝에 예고된 다음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지 전 남편인 시드니와의 관계는 어떤 변화가 있을 지 기대가 된다.대단한 추격신이나 기발한 추리가 없이 용의선상의 인물들을 만나 사건에 대해 청취하는 것만으로도 뒷이야기가 궁금했던 소설은 넥플릭스 영상화가 확정됐다고 한다.과연 율리아가 수사를 진행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세상이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이는 장면을 어떻게 구현할 지 기대된다.물론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도 어떻게 펼쳐질 지 궁금하다.<본 도서는 필름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다자이 오사무x청춘>은 서른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작가의 파란만장한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설 열한 편과 2년에 걸쳐 쓴 에세이를 모은 작품집입니다.직접 경험한 일을 소재로 쓴 ‘사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로 알려진 탓에 그의 소설을 읽는내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궁금해하며 읽게 됩니다.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의 소설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는 집주인인 ‘나’는 무엇에 홀린 듯 일 년이 지나도록 세입자인 세이센에게 월세를 한 푼도 받지 못합니다.매번 결연한 결심을 하고 찾아가지만 빈손으로 돌아오는 ’나‘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지만 읽는 내내 자신의 무능을 탓하고 고뇌하는 세이센이 다자이 오사무 본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요조‘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어릿광대의 꽃>은 동반 자살을 기도했다 여자는 죽고 본인만 살아남은 다자이 오사무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특히나 주인공 이름이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유명한 작가의 대표작 <인간 실격>의 주인공과 이름이 같아 프리퀼 느낌의 작품입니다.<등롱>, <여학생>, <부끄러움>은 여성 화자가 주인공으로 여성 심리를 잘 다룬 작품들입니다.<여학생>은 열네 살 여학생의 하루의 일상을 서술한 이야기로 독자였던 아리아케 시즈가 보낸 일기를 토대로 한 작품이라 발표 당시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특히 <부끄러움>은 사소설 형식의 이야기를 읽으며 모든 이야기가 작가의 실제 이야기로 착각하여 벌어진 해프닝을 다루고 있어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독자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마지막으로 실린 다자이 오사무의 에세이 <생각하는 갈대>를 읽으며 작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느낌과 함께 그가 그토록 발간되는 걸 탐탁지 않아하던 서간집 이야기는 왠지 마음이 아팠습니다.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하고 궁핍하게 살면서 아쿠타가와 상을 받기 위해 청탁 편지를 보내고 여러 사람에게 비굴하게 돈을 융통하기 위해 보냈던 편지가 서간집으로 나오고 나는 그 서간집을 읽고 소설을 더 찾아 읽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청춘”의 사전적 의미는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네이버에서)입니다.대부분 나처럼 청춘을 한참 지나온 나이의 사람은 지나간 청춘을 그리워하고 좋았던 시절로 기억하지만 청춘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젊은이들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현실과 불안한 미래때문에 한없이 힘든 시절입니다.짧은 생을 살다간 다자이 오사무의 청춘을 읽으며 여러 번의 자살 시도까지 옹호할 수는 없지만 불안의 시대를 어렵게 살았던 그의 청춘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우울한 다자이 오사무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청춘을 읽으며 그래도 즐거웠던 이유는 죽음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한켠에 유쾌함을 간직한 탓이었습니다.두 작가의 청춘을 이해하고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소설집이었습니다.<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에서 진행한 서평이벤트에 당첨돼 북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나에게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라쇼몽 효과라는 말의 유래가 된 소설 ’라쇼몽‘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가 그토록 받고 싶어하던 ’아쿠타가와 상‘의 장본인 정도가 다였습니다.물론 그의 소설은 이번에 처음으로 읽게 되었구요.모두 12편의 중,단편이 실린 소설집은 서른다섯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간 작가가 쓴 ’청춘‘을 테마로 한 소설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지만 청춘만을 살다간 작가의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이미 작가의 짧은 생을 알고 있던 까닭인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느껴집니다.첫 이야기 ’짝사랑‘은 친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 형식의 소설로 짧은 소설이지만 그 시대만의 운치가 느껴집니다.친구가 짝사랑했던 여자가 이름도 모르는 영화배우를 짝사랑했다는 이야기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지금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아 우습기도 하네요.’귤‘ 역시 짧은 이야기로 기차를 타고 이동하던 ’나‘는 초라한 모습의 소녀를 보게 됩니다.소녀는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창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쓰다 건널목의 철조망 너머의 소년 셋에게 귤을 던져줍니다.’나’는 아마도 그들이 고용살이 가는 누나를 배웅하러 나온 동생들이라는 생각을 하며 환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열두 편의 소설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중편인 ‘갓파’입니다.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자신이 갔던 갓파 나라에게 겪은 일들을 들려주는 형식의 이야기로 사는 모습은 인간과 비슷하기도 하면서 전혀 다른 문화와 사상 등을 가진 갓파 나라를 빗대 당시의 사회를 비판하고 있습니다.지진이 일어나고 폐허가 된 집터에서 들리는 ‘피아노’ 소리, 그림 ’늪지‘를 보며 걸작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신기루‘를 보기 위해 간 구게누마 해변를 걷는 모습 등 소설을 읽다보면 그 상황이 손에 잡힐 듯하고 풍경 또한 눈에 보이는 듯 그려집니다.소설을 읽고 왜 그토록 다자이 오사무가 그를 기린 아쿠타가와 상을 받고 싶어 심사위원인 사토 하루오에게 청탁의 편지를 쓰게 됐는 지가 공감하게 됩니다.100년을 건너 이제야 읽은 이야기지만 전혀 촌스럽지 않은 그의 이야기는 그 시절 청춘들이 느꼈을 불안과 암울함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작가의 다른 소설 특히 ’라쇼몽‘을 꼭 읽어보고 싶네요.<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에서 진행한 서평이벤트에 당첨돼 북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사고로 잃고 친척집에 살던 ‘슈’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할머니 집으로 오게 된다.처음 온 할머니댁은 “2층 목조 가옥의 지붕은 기와가 여기저기 빠져 있고 외벽도 표면의 회반죽이 벗겨져 흙벽이 그대로 드러난” 아야시 장이라는 민박집이었다.며칠이 지나도록 할머니를 만나지 못하던 슈는 금지된 장소에 들어가게 되고 민박집 뒤쪽에서 전혀 다른 세상을 발견한다.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민박집의 비밀을 알려주며 자신의 꿈이 “사람과 요괴의 구분 없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민박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슈‘는 민박집에 찾아온 요괴들의 사연을 듣게 되고 그들을 돕기 위해 힘을 보태고 하나 하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무한 증식하는 머리카락 요괴 ’마통보‘를 비롯 눈알이 백 개나 달린 안경원 주인 요괴, 비를 오게 하는 여자 요괴 등 소설을 읽는 내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요괴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또 언제나 ’슈‘의 곁을 지키며 자유자제로 변신할 수 있는 말하는 햄스터 요괴 ’코노스케‘의 우정과 요괴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미노리‘ 선배와 아야시 장을 지켜주는 수호신 손츠루님까지 모두 민박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이형의 존재를 보는 ’저주의 눈’을 가진 탓에 누구하고도 어울리지 않았던‘슈’는 민박집에 머무는 존재들과 교류해 나가며 성장해 간다.단순한 판타지 소설이 아닌 ‘슈’가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도우며 민박집에서 중요한 존재가 되기까지의 성장 소설이다.낯선 일본의 요괴들과 한바탕 놀고 난 뒤에는 사람과 요괴뿐만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공존을 꿈꾸게 된다.‘슈’가 꾸려가는 민박집을 찾아오는 요괴 손님들의 사연과 아직 ‘슈’의 몸에 있는 73마리의 요괴의 뒷 이야기가 남아 있는 듯해 다음 이야기가 나오길 기다려본다.<본 도서는 서사원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지금 가장 새로운 이야기로의 가뿐한 귀환, 턴(TURN)은 한겨레출판과 리디가 공동 기획한 장르 소설 시리즈입니다. SF, 스릴러, 미스터리 등 다채로운 소설을 통해 이야기 본래의 재미와 가능성을 꿈꿉니다. 이야기의 불빛이 켜지면 새로운 세계에 도착합니다. 한계 없는 턴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만난 경주의 목소리에 반해 그 목소리로 부를 노래를 만들고 싶어 밴드까지 결성했던 선형은 이제는 공시생이다.9급 교육행정 국가직 최종 면접을 마친 저녁 삼촌의 부고 소식을 듣고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특별히 왕래가 없던 삼촌이 선형에게 오래된 건물을 물려 줬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선형이 삼촌의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찾아간 건물의 지하에서 뜻밖의 존재와 마주친다.사랑했던 이가 어느 순간 진짜 본인의 찌질한 모습을 드러낼 때의 절망은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선형은 공시생이 되면서 꿈을 버렸지만 ‘파니’를 만나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어쩜 선형은 경주라는 꿈에서 파니라는 꿈으로 옮겨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문득 꿈과 사랑이라는 단어가 같은 뜻이구나 싶다.조예은 작가의 이야기는 여름에 읽어야 더 좋은 것 같다.일찍 시작한 올 여름의 더위를 잠시 잊을 만큼 오싹한 이야기는 괴이하지만 아름답고 아름답지만 괴이하다.소설을 읽는 내내 바다의 물비린 내와 함께 찰박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