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명의 작가가 한 가지 키워드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앤솔로지는 흔히 종합선물세트라는 말로 표현되는 소설집으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읽을 수는 장점이 있다.모두 6명의 작가가 ‘요괴’라는 키워드만으로 형식에 구분없이 각자의 스타일로 자유롭게 써내려간 ‘요괴사설’은 제목만큼이나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운 이야기 6편이 들어있다.첫 번째 위래 작가의 <무시소리 이야기>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인공이 소설가라는 사실과 그에게 글감을 제공하는 김치교자가 트친이라는 이유로 더 현실감있게 느껴진다.거기다 소개된 3편의 이야기 역시 누군가가 경험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 기분이라 더 오싹하다.비티 작가의 <도깨비불>은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처음부터 고전을 읽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하지만 마지막 진실은 어두운 숲길에서 도깨비를 만나는 것보다 더 크게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다.전혜진 작가의 <나의 제이드 선생님:득옥 이야기>는 아침 드라마급 막장으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역시 인간이 맞는 것 같다.김봉석 작가의 <호숫가의 집>은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을 재구성해 놓은 듯한 이야기다.홍락훈 작가의 <그렘린 시스템>은 투자자의 예상과 다른 널뛰기 등락을 하던 주식과 코인의 비밀을 알아버린 느낌이다. 역시 음모론은 언제나 재미있지만 그만큼 뒷맛이 씁쓸하다.다른 작품으로도 여러번 만났던 배명은 작가의 <문신>은 여성이라는 약자에게 사랑이라는 탈을 쓰고 가하는 남자의 폭력과 그들의 최후가 너무 끔찍하다.왜 피해자인 여자에게 그런 선택을 하게 했는지 마음이 아프다.지금도 세상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문신을 새기려는 자가 있을지니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닐 것이다.봤다는 사람은 많지만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요괴보다 더 악독한 인간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호러.공포소설이 무서운 이유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속에 현실을 녹이고 있기때문이다.흉기를 들고 덤비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 귀신을 만나는 게 더 나은 세상이니 소설 속 가장 무서운 존재 역시 내 주위에 있음직한 사람 이야기다.공포.호러 소설을 읽기엔 가장 적당한 계절은 여름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가을에 읽는 공포는 서늘한 날씨만큼 오싹해서 좋았다.<도서는 출판사에서 진행한 서평 이벤트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
이주란 작가의 이야기는 심각한데 심각하지 않아 좋다.그리고 조용해서 좋다.어린 시절 엄마에 의해 이모집에 버려진 듯 살아야 했던 ‘수인’은 결혼을 앞두고 3년 전 절연한 엄마를 ‘선용’의 부모님과 만나게 해야하나 고민한다.갑자기 찾아온 ’선용’의 옛 연인은 늙고 아픈 개인 ‘앵두‘를 맡기고 떠나고수인과 선용은 여자가 부탁한데로 개를 돌본다.선용과 함께 살면서도 수인은 “내가 아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 같고 내가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 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이모에게 사랑 받았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도 사랑이 뭔지 모르던 수인은 앵두를 돌보며 서서히 마음을 열어간다.나를 힘들게 하는 누군가와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그래서 마지막 수인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림은 말없는 시이고,시는 말하는 그림이다.‘동주와 빈센트’를 이어 ‘백석과 모네’의 시화집이 출간되었습니다.백석의 시를 처음 읽은 건 <개구리한솥밥> <준치가시> <여우난골족> 같은 그림책을 통해서 입니다.그런 까닭에 얼마동안 동시 작가로 알고 있었습니다.그러던 중 그의 시 <#나와나타샤와흰당나귀 >를 읽었고 다른 시들도 궁금해졌습니다.도서관에서 빌린 시집은 서둘러 읽었고 시는 예상과 달리 어렵고 별감흥이 없었습니다.그래서 한동안 백석 시는 재미없고 어렵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저에게 시집은 기분에 따라 한두편씩 읽고 마음 내키면 필사해 보는 책인데 거기에 가장 적합한 시집이 바로 이 시화집입니다.아무 페이지나 열어서 보아도 좋은 ‘백석과 모네’는 백석의 시 100편과 모네의 그림 125점이 수록돼 있습니다.인상파를 창시한 모네를 잘 몰라도 상관없고 그의 그림을 사랑한다면 더더욱 좋은 시화집입니다.백석의 시와 어우러진 그림은 시를 더 돋보이게 하고 시는 모네의 그림을 더 아름답게 합니다.한 편씩 읽어도 좋고 가끔씩 필사를 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입니다.현실에서는 만난 적 없는 두 거장이 시화집으로 만나 서로의 작품에 아름다움을 더합니다.<멋진 시화집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저녁달출판사감사합니다.>
가부장적인 남편과 45년 동안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데루코’는 부엌에 있는 원목 스툴이 동료이자 유일한 내 편이라 생각한다.다른 가족없이 시니어 레지던스에 살고 있는 ‘루이’는 입주민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왕따를 당하며 살고 있다.닮은 것 하나없는 데루코와 루이는 중학교 동창회에서 우연히 만나 사십 년동안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칠십 세의 동갑내기 할머니들이다.어느 날 도와 달라는 루이의 전화를 받고 데루코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남편의 차를 훔쳐 함께 떠나게 된다.특별한 계획도 없고 갖고 있는 돈도 넉넉하지 않았던 둘은 비어있는 별장에 무단 침입해 살게 되지만 함께 한다는 것만으도 모든 것이 즐겁다.<데루코와 루이>라는 제목을 보고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떠올렸는데 역시나 옮긴이의 말이 영화를 오마주한 작품이라고 한다.두 여성의 일탈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영화보다 휠씬 더 경쾌하고 즐거운 소설이다.흔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지만 실제 우리는 나이답게 살라고 강요한다.그러나 두 할머니가 우정을 나누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삶에 즐거움을 찾는 모습을 보면 나이듦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전혀 다른 성격의 두 할머니가 펼치는 모험과 우정이 어떤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않고 집착하지 않는 평온함과 함께라서 좋다.루이의 비밀과 데루코의 과감함이 어우러진 이야기는 <델마와 루이스>와 같은 스팩타클함은 없지만 진짜 나이든 어른의 모습을 충분히 즐길 수 있어 재미있다.<본 도서는 필름출판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정말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프롤로그부터 얼얼하다.눈앞에서 갑가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의 모든 것이 터져 나오는 것으로 시작한다.정신과 의사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기사야마는 “배우로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한 아내,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큰딸, 그리고 지병에도 아랑곳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작은딸” 까지 무엇하나 빠질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어린 시절 마술사였던 아버지의 죽음과 뒤따른 어머니의 죽음으로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누구나 존경하는 의사가 됐고 환자가 상담 중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은 덕에 범죄자를 잡는 공을 세우기도 한다.그런 기사야마의 삶에 작은 균열이 생기고 완벽한 가정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해야만 한다.특수 설정의 소설인 줄 알고 읽어도 읽는내내 머리가 어질어질하다.피가 낭자하고 속 불편한 설정이 연속되고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의 심성을 갖지 못한 인물들이 등장한다.그리고 이유없이 사람들이 죽어나간다.작가의 특수 설정 미스터리는 #명탐정의창자 로 이미 한번 만났지만 그보다 몇 십배는 더 매운 듯하다.잔인한 고어 영화를 화면이 아닌 활자로 보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는 비위가 상하고 읽는 내내 불쾌하기까지한 설정의 연속이지만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이야기가 계속될 수록 악의 무한 증식을 보여주지만 중간에 책을 덮을 수가 없다.어쩜 나의 내면에도 등장인물들과 닮은 잔인함이 똬리를 틀고 있는지 모르겠다.혀가 얼얼해지도록 매운 음식을 먹고 난 후 느끼는 통각에서 오는 비슷한 짜릿함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본 도서는 내친구의서재 출판사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