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마다 빠르고 느린 정도는 있지만 요즘은 보통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깨칩니다.한글을 가르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희 아이들의 경우 그림책이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이상교 작가님이 글을 쓰고 밤코 작가님이 그림을 그린 <가나다 글자놀이>는 이제 막 글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어린이에게 권해주고 싶은 그림책입니다.단순한 단어의 나열이 아닌 한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글에서 오랜 기간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신 이상교 작가님의 내공이 느껴집니다.“가랑가랑 가랑비가 가만가만 내려요.나비 나비 노랑나비가 나풀나풀 나들이 가요.다닥다닥 다슬기다닥다닥 대추“흉내 내는 말이 많아 어른이 읽어주기에도 좋고 글을 읽기 시작하는 아이 혼자 읽기에도 신명 납니다.특히 글과 어울리는 밤코 작가의 그림은 재미있고 발랄해 그림만 보는 것도 재미납니다.여러 번 읽다 보니 사계절의 변화가 눈에 들어옵니다.봄을 알리는 가랑비에서 시작한 그림책은 하늘하늘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로 마무리되네요.이 그림책으로 한글을 단번에 깨칠 수 있다는 장담을 할 수는 없지만 읽다 보면 한글과 친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부록으로 함께 있는 ‘가나다 글자 놀이’ 낱말 카드는 글자 놀이를 즐기기에도 좋습니다.
버릴 게 하나 없는 작물인 콩은 가을이 되면 수확하는 시기가 옵니다.잘 말린 콩을 타작해 콩은 콩대로 콩깍지는 깍지대로 모아놓고 콩대도 버리지 않고 잘 정리해 둡니다.콩은 종류에 따라 밥에 넣어먹기도 하고 콩고물을 만들기도 하고 두부는 물론 된장, 간장 등을 만듭니다.콩깍지는 소죽을 끓일 때 짚과 함께 넣어 구수한 특식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콩대는 불이 잘 붙어 불쏘시개로 안성맞춤입니다.이렇게 귀한 작물인 콩 중에서 특히 노란 메주콩은 한국 음식에서 꼭 필요한 조미료이자 양념인 장을 만드는 꼭 필요한 재료입니다.<장 도감>은 제목 그대로 우리 음식에 가장 중요한 양념인 장을 만드는 원리와 방법을 소개해 주는 그림책입니다.1,2 부로 나눠 1부에서는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막장을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지역마다 집집마다 다 다른 장 담그는 방법을 누구나 시도해 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리법으로 소개하고 있어요.2부에서는 다양한 쌈장과 장으로 맛을 낸 맛있는 음식 아홉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겨울이 되면 할머니와 엄마는 메주콩의 쭉정이는 골라내고 실한 알곡만 커다란 가마솥에 삶으셨는데 삶아진 콩을 얻어먹는 재미가 쏠쏠했지요.아버지가 잘 삶아진 콩을 절구에 찧어주시면 할머니와 엄마는 네모 반듯한 메주를 만들어 따듯한 방에 한참을 두셨는데 그 냄새가 쿰쿰하니 고약했던 기억이 납니다.세계는 “K”가 붙은 영화, 드라마, 노래는 물론 음식에도 환호하고 있지만 우리 밥상에 알게 모르게 매일 오르는 장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습니다.장 담그기가 2018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137호로 지정됐고 202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저녁 준비하던 엄마가 간장이나 된장 심부름을 시키면 커다란 항아리에 출렁이던 까만 간장 떠오고 겉을 걷어내고 노랗게 익은 된장을 퍼오던 게 엊그제 같습니다.지금은 고향 집에서도 더 이상 장을 담그지 않지만 집 뒤란의 장독대는 여전히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텅 빈 항아리를 볼 때면 젊고 건강하던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장 도감>은 어른에게는 요리책이기도 하고 추억을 불러오는 책이기도 합니다.어린이에게는 읽기에 부담 없는 그림책으로 보는 재미는 물론 장 담그기 전통을 알려주기에 적격입니다.책에 소개된 장 만들기는 옛날 어른들의 주먹 구구식 계량이 아니라 들어가는 재료들의 정확한 양을 소개하고 있어 실패의 부담을 덜어줍니다.아예 모르고 못 만들어 먹는 것과 알지만 편해서 사 먹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일 겁니다.요즘은 ‘장 만드는 키트’를 판매하기도 하고 된장과 간장보다 손이 덜 가는 고추장과 막장은 한 번 시도해 볼만합니다.<본 도서는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돼 현암주니어에서 제공받았습니다.>
<문학동네 해문클럽 활동 중 제공받은 도서입니다.>“라오스계 캐나다 시인이자 소설가. 1978년 태국 농카이에 있는 라오스 난민촌에서 태어났다. 한 살에 부모가 정부의 도움으로 캐나다로 이주해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 자랐다.”‘수탐캄 탐마봉사’라는 작가의 소개 글 중 일부이다.2020년 캐나다 최고 영예의 문학상인 ’스코샤뱅크 길러상’을 수상한 작가의 첫 소설집인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은 200페이지가 조금 넘은 분량의 책으로 모두 14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각 단편 소설은 대부분 초단편이라 할 만큼의 짧은 이야기지만 이민자, 아동, 여성, 노인 등의 사회 소수자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첫 번째로 수록된 표제작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에 등장하는 이민자들의 어려움을 언어 소통을 통해 전하고 있다.학교에서 가져온 쪽지를 읽을 수 없고 ”knife”의 발음을 제대로 알려줄 수 없었던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 아이의 모습이 마음 아프다.<파리>에 등장하는 이민자 여성들은 코 성형수술로 자신의 인생이 변화할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스쿨버스 기사> 속 남자는 아내의 부정을 짐작하면서도 아내의 말을 믿는 척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절망한다.딸을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 <당신은 너무 창피해> 속 딸도 그런 딸을 그리워하는 엄마도 이해가 돼 마음이 아프다.문학동네 해외 전담 마케터가 큐레이션 한 소설은 마케터의 추천 평만으로도 소설의 매력을 짐작할 수 있다.“14편의 소설이 한 편도 빠짐없이 고른 작품성을 자랑합니다.후루룩 읽히면서도 ‘소수의 다층성‘에 대한 메시지를 단단하게 전달해요!” 고국을 떠나 본 적 없는 독자인 나는 난민으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정작한 이민자들의 고충을 다 알 수는 없다.하지만 ‘knife”에서 묵음으로 처리되는 ‘k’처럼 존재하지만 결코 불리지 않은 그들의 심정은 동감하며 읽게 된다.소설을 읽는 내내 얼마 전 읽은 노 작가의 시가 떠올랐다.”디아스포라는 밖으로 나가 있는 이름만이 아니다지금은 우리 곁에도 친숙하게 때로는 조금은 낯설게 다가오는 이름들베트남과 우즈베크의 여인들필리핀과 네팔에서 온 손님들주인과 나그네가 뒤바뀌어 살아가는디아스포라더 이상 팔레스타인 바깥에서 유랑하는유대인만도 아니고 만주 벌판 헤매는 헐벗은 우리 조상의 역사만도 아니다옛 고향집의 객사에 드리운 남모르는 그림자의 창백한 이마아, 모두가 한 모습의 디아스포라인 것을“ ’문학과사상사‘ 강원도의 눈 김주연 시집 중 <디아스포라>일부 우리의 선조들도 잃어버린 조국을 찾기 위해 세상을 헤맸고 현재도 타국에 사는 이들이 많지만 우리 안에 들어온 이방인들에게 우리는 어떤 눈빛을 보내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에 마음 아파하지만 내 주위의 낯선 이들의 진짜 모습은 살피지 않는 이중성은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도서는 빈페이지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돼 제공받았습니다.바닷가 마을의 고양이 식당은 세상을 떠난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신비로운 장소입니다.식당을 운영하던 엄마가 돌아가시자 아들인 가이가 물려받은 고양이 식당은 손님이 망자와의 추억이 깃든 음식을 주문하면 그리운 이를 만날 수 있는 식당입니다.단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주문한 음식의 마지막 김이 사라지기 전까지입니다.고양이 식당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인 <고양이 고양이 식당 사랑을 요리합니다>에는 네 명의 손님이 각자의 사연을 간직하고 찾아옵니다.사소한 말타툼으로 출근하는 남편에게 모진 말을 던진 아내 히마리는 남편이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게 됩니다.꿈을 좇아 고등학교도 중퇴하고 가수가 되기 위해 도쿄에 올라온 지도 10년 째인 미나토는 관객도 없는 공원에서 버스킹을 하던 중 팬이라 자청하는 리코를 만나게 됩니다.짧은 기간이지만 둘은 가까워지고 함께 할 미래까지 생각할 즈음 리코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립니다.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갑자기 변한 어머니는 함께 살자는 아들 신지에게 독설을 퍼부으며 쫓아내다시피 합니다.얼마 후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집을 정리하던 신지는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오랜 세월 안경점을 운영하던 시게루는 젊은 나이에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며 혼자 살고 있습니다.모든 것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고양이 식당을 찾아갑니다.고양이 식당에는 남편의 죽음이 자신의 탓 같아 괴로워하는 아내가 찾아오지만 음식이 차려지고 나타난 남편은 아내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습니다.어린 아내에게 정을 때려는 듯 차가운 말을 내뱉는 남편의 모습에는 평생 죄책감을 안고 자신만을 그리워하며 살지도 모르는 아내가 자신을 잊고 ㅣ다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속 마음이 담겨있어 그 어떤 따듯한 말보다 진심을 품고 있습니다.미나토와 리코의 사연은 사랑은 얼마나 오랜 시간 함께 했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그리고 저 역시 치매를 앓는 엄마가 계셔서인지 신지의 마음이 어떠할지 가늠이 돼 가장 공감하며 읽었습니다.육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사람을 그리워한 시게루 할아버지의 순애보도 긴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곤 합니다.그 사람과의 추억이 정말 아름다워서이기도 하지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의 아쉬움과 미안함이 남아서이기도 합니다.소중한 사연을 안고 고양이 식당을 찾아온 이들은 살아서는 전하지 못했던 진실을 전하고 상대의 진심도 알게 됩니다.“인생을 몇 번 거듭하든, 반드시 끝은 찾아온다. 죽음은 다가온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지 않고 끝나는 인생 따위는 없다.”(p282)현실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고양이 식당의 기적은 지금에 충실하라는 말을 전합니다.재고 따지지 말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미안한 사람에게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나중에 후회를 남기지 말라고 합니다.복잡하지 않은 소설이라 금방 읽게 되지만 인생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나이 성별 무관, 같이 피자 먹고 재미있게 노실 분.‘두 달간의 유럽 여행 중인 선화는 나폴리에 머무는 동안 유럽 여행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을 보고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그곳에서 최고의 피자를 먹으러 나폴리에 왔다가 피자이올로가 되기 위해 피자를 배우고 있다는 ‘한‘과 만나게 된다.일행들과 헤어진 선화와 한은 같은 방향이라는 이유로 함께 걷게 되고 선화는 한에게 먼저 한잔을 청한다.함께 술을 마시게 된 둘은 서로의 마음을 터 놓고 한은 자신은 여자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남자라고 말한다.로마로 떠날 계획이던 선화는 철도 파업으로 나폴리에 남게 되면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한과의 만남을 이어가며 호감을 쌓아간다.6년 전 낯선 여행지에서 짧게 만난 ’한’과 선화의 인연을 보며 한순간의 선택이 우리 인생의 궤도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만약에 선화가 적극적으로 한에게 다가갔다면 둘은 어떻게 됐을까.그래도 결과는 똑같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한이 비밀을 이야기한 것은 자신의 호감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큰 용기가 아니었을 까 생각돼 아쉽기도 하다.지난 시절의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답게 기억되고 현실의 고단함이 없는 인연이기에 아름답기도 하다.짧은 소설은 젊은 날 스쳐간 인연과 잡지 못한 순간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폴리의 풍경과 그곳의 마르게리타 피자의 맛이 궁금해지게 한다.🍕”부오니시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