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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는 착하다 ㅣ 나의 학급문고 7
조재훈 지음, 이호백 그림 / 재미마주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성가시고 귀찮은 데다가 병균까지 옮기는 해충인 "모기", 그리고 사랑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남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일이나 물건을 일컫는 불교 용어인 "보시"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합쳐진 책제목을 보며 언젠가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수행중 가장 괴로웠던 건 모기 때문이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살생을 금하는 교리 때문에 작은 모기일지라도 죽일 수가 없어 괴로움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에 아무 죄책감 없이 모기약을 뿌리고, 혹시나 해서 모기향까지 피우는 내게 그까짓 모기 때문에 달라이 라마가 괴로워했다는 게 우습기까지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모기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선뜻 동의 할 수는 없었지만 이 세상 만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9살 소년 명수는 남편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불공을 드리는 어머니를 따라 절에 오게 된다.
도깨비처럼 우락부락한 사천왕을 보고 잔뜩 겁을 먹은 명수는 절에 있는 모든 것이 공포에 대상이 돼버린다.
어머니가 불공을 드리는 사이 모기에 물리며 무서움에 떨고 있던 명수 앞에 동자스님이 나타나게 되고, 친절하게도 절 곳곳을 안내 받게 된다.
범종, 목어, 법고등 절에 있는 물건들의 숨은 뜻을 들으며 차츰 안정을 찾던 명수는 숲에서 웃옷을 벗고 앉자 있는 큰스님을 보게 된다.
작고 하찮은 미물인 모기를 위해 자신의 피를 보시하시는 모습이었다.
얼마 뒤 어머니가 아프게 되자 명수네 집을 찾아오신 큰스님은 모기 약병을 다 치우고 모기장을 가져다주신다.
그리고
" 이 세상에 있는 것은 귀하지 않은 것이 없어요. 그리고 모기가 얼마나 정직한데 그래. 사람을 물때도 반드시 소리를 지르고 와서 물지 않든?"
" 피만 빨아먹고 병균만 옮겨주는 데도요?"
" 그래도 언젠가는 부처님께서 모기도 귀하게 쓰실 때가 있을 거야."
라는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남기고 가신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니 때문에 더 이상 모기약을 뿌리지 않게 되자 극성스러운 모기는 가을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게 된다.
아버지가 하시던 야채장수를 계속하게 된 어머니 때문에 어린 동생들을 돌보던 명수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물을 끓이다 잠이 들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쓸모없고 귀찮기만 한 모기 때문에 화마의 위험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
일년에 한두 번 절에 다니는 게 고작인 우리 가족을 불교 신자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정말 독신한 불교 신자라도 모기까지 사랑하라는 큰스님의 말씀을 동의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독자들은 우리에게 해를 주는 모기쯤이야 죽여도 돼지 않나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곤충채집이라고 잡아 온 메뚜기들을 놓아주라고 했을 때 아이들 입에서 "메뚜기는 채소 같은 걸 먹고 사니까, 많이 잡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요?"라는 말에 놀랐던 적이 있다.
이분법적인 나눔에 익숙해 있던 내 모습 그대로를 따라 하는 아이들에게 적당하게 해 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익충과 해충으로 나누는 기준이 단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곤충과 해가 되는 곤충으로 나누어서 해 주었던 이야기를 정답으로 알고 있는 아이에게 모기보시는 이해할 수도 없고, 동의 할 수도 없는 이상한 이야기로 밖에는 안 들리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나도 모기에게까지 모시하는 스님의 뜻을 그대로 동의 할 수는 없지만 어떤 작은 생물도 그냥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씀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어렵고 난해한 이야기여서 아이들이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책보기를 더 좋아하는 2학년 아들도 적절한 그림과 길지 않는 글이라서 부담을 덜 느끼며 읽을 수 있어 좋아 한다
사고로 시력을 잃고도 학위를 받고, 점자 한자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여 중학교 점자 한문 교과서를 편찬하는 등의 쉼 없는 활동을 하고 계신 작가 조재훈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이들은 크게 감동한 모양이다.
벌써부터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두운 숲길을 걸어가는 모자의 무거워 보이는 어깨에서 명수가 느끼는 두려움과 슬픔이 그대로 전해져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절절해 졌는데 다행스럽게도 눈이 내리는 겨울 주인아저씨가 새로 설치해 준 보일러가 있는 집안에서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삼남매의 환한 미소 속에서 희망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