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바다 쭈꾸미 통신 - 꼴까닥 침 넘어가는 고향이야기
박형진 지음 / 소나무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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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너무 재미있어 단숨에 읽게 되는 책이 있다.

하지만 작가 박형진의 글은 너무 재미있어 야금야금 찬찬히 읽을 수밖에 없었다.

오팔 개띠에 자식을 넷을 두고 예전에도 촌놈이었고 지금도 촌놈으로 살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타임머신을 타고 코흘리개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을을 지나 겨울, 봄, 여름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 맛있는 것을 먹을 때 그릇바닥이 보이기 시작하면 서운하고 섭섭해지는 것처럼 몇 장 안 남은 책을 보며 마음이 울렁거리고 코끝마저 찡해져 남은 장수를 확인해 보곤 했다.

내 고향은 지금은 포구가 막혀버렸지만 강 길을 따라 배가 들어왔다는 영산포가 가까워서 농촌이었지만 젓갈이나 생선들이 흔했던 곳이었다.

밥상에는 매번 젓갈이 올라왔고 위도 크내기가 그 맛을 못 잊어 다른 데로 시집을 못 가게 했다는 굵은 갈치도 수시로 올라 왔다.

그래서 인지 나이도 내 연배가 아니고 지역도 내 고향과 멀지만 박형진의 이야기는 사는 게 팍팍해 잊고 있었던 내 기억들을 살살 건드려 오래전 일이 아닌 엊그제 일처럼 내 앞에 펼쳐 놓았다.


지금쯤 늙고 까칠한 내 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에서는 더 추워지기 전에 고추 대를 뽑고 배추를 짚으로 묶고 햇살이 좋은 오후에는 콩 타작을 하고 계실 것이다.

바람벽 흙을 뜯어 먹고 자라진 않았지만 고구마가 겨울 양식이었고 명절에나 하얀 쌀밥을 먹었지만 나는 한번도 우리 집이 다른 집보다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오십호가 넘었던 마을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던 가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모두 고만 고만하게 살았고 속 썩이는 자식 때문에 가슴치고 술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속상해 했기에 내 맘이 네 맘 같고 네 맘이 내 맘 같아 함께 울고 함께 웃었던 것 같다.


흔히들 전라도 사투리를 걸쭉하다고 한다.

눈으로 읽는 사투리와 소리 내어 있는 사투리는 그 느낌이 다르다.

나는 책을 읽으며 맛깔스러운 글이 나오면 눈으로 한번 입으로 한번 읽었다.

<칼자루만씩한 모쟁이는 비늘을 긁고 배를 갈라 창자를 들어낸 다음 몸뚱이는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뼈째 막 썰어 놓는다. 그리고는 김장배추 뽑아낸 텃밭의 폭이 덜 차서 이른 봄에 봄동으로 먹으려고 남겨놓은 배추 몇 포기 도려다가 함께 씻는다.

...............................................................................................................

배추 이파리 한두 장에다가 모쟁이 몇 점 초장 찍고 마늘 한 조각 곁들여서 알맞게 싸들고는 옆의 친구에게 “어이, 자네 지금 한가허지? 헐 일 없으면 술 한잔 쳐봐” 어쩌구 하면서 소주 한잔 받아 입에 떨어넣고 고놈 한 입 씹노라면 모쟁이 몇 마리 잡으려고 고생했던 친구가 새삼 고마워지는 것이다.>(본문 176쪽에서)

이 대목을 읽을 때는 고이는 군침을 삼키느라 애 좀 썼다.


솔가지로 병마개 해 두었던 부뚜막이 새콤한 식초병도.

정월이면 온 동네를 울리던 풍물소리가 내 기억 저편으로 다 사라졌듯이 함께 수박밭을 서리하고 가을이면 갈퀴 둘러메고  산으로 올라갔던 내 귀한 동무들도 모두 기억 속에 묻혀 버렸다.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동안 나는 내가 아플 때면 잔반을 먹이고 밤새 머리맡을 떠나지 않았던 할머니의 모습마저 희미해지게 만들었다.

할머니는 딸래집 나들이라도 할라치면 잔병치레 많던 내가 눈에 밟혀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하셨다.

자손들 생일이면 아무리 추워도 전날 깨끗하게 목욕재계 하셨고 엄마는 새벽어스름에 일어나 미역국에 나물 몇 가지로 상을 차려 들였다.

알아듣기 어려운 말씀으로 손을 싹싹 빌었고 그 굳은 살 박힌 손에서 나는 썩썩거리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다시 잠이 들곤 했다.

어려서 오래 못 살터이니 호적에 나중에 올리라는 말을 들었던  내가 지금 건강하게 자식 낳고 사는 건 우리 할머니 내 생일마다 드린 치성 덕분이 아닌가 싶다.


구식이여서 다 버렸던 것들이 이제는 기억해주는 사람도 지켜나가는 사람도 없어져 버려 입으로 글로만 전해지는 이 시대에 글만으로도 군침이 돌고 어린 시절을 기억해 내고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는 우리는 그래도 행복한 세대다.

떠올릴 기억도 맛도 없는 내 아이들의  추억은 어찌할 것인가?

컴퓨터 게임과 학원, 피자와 햄버거 맛만을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남길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추억과 맛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은 우리뿐이다.

내 부모는 가난했지만 가난한지 모르고 거칠 음식이었지만 최고의 맛으로 기억하는 위대한 보물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가 제대로 된 추억하나 내 아이에게 주는 건 그 큰 사랑을 받고 자랐던 우리들의 당연한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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빰빠라밤! 빤스맨 1 - 최면반지의 비밀 빰빠라밤! 빤스맨
대브 필키 지음, 이명연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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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수 있으면 만화를 잘 안 사주는데도 아이는 친구에게 빌려서도 보고 제 용돈을 모아 대여해서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점점 동화책보다는 만화에 먼저 손이 가고 만화 읽는 시간이 길어진다.
뭐 세상 만화가 다 나쁜 건 아니지만 엄마 욕심에 만화보다 동화에 눈길을 주기를 바라는 게 당연할 것이다.
재미있는 책으로 만화에 빼앗긴 아이 마음을 되돌릴 생각에 진짜 유쾌하고 신나는 책을 찾다가 제목부터 참 거시기한 책을 만났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많고 많은 맨들을 봐 왔지만 빤스맨이라니....
이름부터 웃기다.
책은 더 재밌고 웃기다.
엄마가 먼저 읽고 아이 앞에 슬그머니 내밀었더니 그 유치하기 짝이 없는 빤스맨의 복장에서부터 대단한 관심을 갖는 다.
대머리에 하얀 면 빤스 차림에 빨간 망토를 펄럭이며 온갖 폼을 다 잡고 있는 남자가 바로 빤스맨이다.
'신나는 액션' '요절복통 유머' '웃음 속의 교훈들'들이 들어 있다는 책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무궁무진하다.
유쾌한 캐릭터들이 포진해 있고 만화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애니메이션처럼 보이는 파라락 극장, 최면, 거기다 덤으로 악당 기저귀 박사도 등장한다.

샬랄라 초등학교의 두 악동 깜씨와 꼬불이는 빤스맨이라는 만화를 그려 친구들에게 팔기도 하고 미식축구 시합 날에는 치어 리더의 꽃술에는 후춧가루를 넣고 고적대의 악기 속에는 비누 거품을 넣기도 한다.
거기다 선수들이 쓰는  로션에는 가려움 연고를 담아두고 주스 석에는 벌레를 화장실 문에는 접착제를 발라 두어 미식 축구 경기가 취소되는 사태가 일어나고 만다.
하지만 두 악도의 만행은 교장 선생님이 설치해둔 감시 카메라에 찍히게 되고 교장 선생님은 테이프를 미식 축구 선수들에게 건네겠다는 협박을 한다.
깜시와 꼬불이는 교장 선생님께 잘못을 빌고 테이프를 축구팀에 보내지 않는 다는 조건으로

.......1.앞으로는 장난을 치지 않는 다.
2. 절대로 웃지 않는 다.
3. 절대로 놀리지 않는다.
4.앞으로 빤스맨 만화를 그리지 않는다.
5.매일 내 차를 닦는다.
6.우리를 잔디를 깎는다.

라는 어마어마한 약속을 하게 된다.
매일 매일 고난에 연속이던 두 개구쟁이는 최면 반지를 구입해 교장 선생님에게 최면을 걸게 된다.
장난 끼가 발동한 두 아이는 교장 선생님을 빤스맨으로 만들어 버린다.
자신을 빤스맨이라고 생각한 교장 선생님은 얼떨결에 은행 강도를 붙잡기도 하고 지구 정복을 꿈꾸는 악당 기저귀 박사를 물리치기도 한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은 최면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딱 소리와 함께 언제든지 빤스맨으로 변신하게 된다.

2학년 아들은 아직도 스스로 읽는 것보다 자기 전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누워 듣기를 더 좋아한다.
읽어주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들기 일쑤였는데 이 책은 혼자서 단숨에 읽은 책이다.
뒷정리를 하고 아이 방에 들어갔을 때 엄마를 기다리기 못하고 읽기 시작한 책은  늦게까지 아이를 잠 못 들게 했다.
그리고 다음 편은 언제 나오느냐고 매일 물어보는 책이 돼 버렸다.
엄마 자신이 읽는 책은 재미있냐 없느냐가 선택의 기준이 되지만 아이가 읽을 책은 한가지라도 배우길 바라며 책을 고른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엄마가 골라준 책은 재미없는 책이 돼버리고 책읽기에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나중에 독서를 재미없는 것이 돼버리기도 한다.
가끔씩은 아이가 원하는 만화를 마음껏 읽게 해 주고 싶다가도 그러다가 혹시 만화만 읽게 되지 않을까 싶어 망설이게 된다.
말리다 보면 더 하고 싶은 게 인간에 심리인데 자식 문제에서만큼은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이 안 되는 것 같다.
동화책을 읽으면서도 만화처럼 배꼽이 빠지도록 웃어 보고 싶은 아이에 소망과 만화를 피하고 싶은 부모 입맛에 딱 맞는 책을 찾는다면 이 책은 모두를 충족시켜줄 것이다.
교훈이 없어도 지식이 없어도 아이의 행복한 웃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값을 제대로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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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없는 날 동화 보물창고 3
A. 노르덴 지음, 정진희 그림, 배정희 옮김 / 보물창고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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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관심 없이도 잔소리를 할 수 있을까? 아침부터 남편을 깨우며 ""그러게, 저녁에 좀 일찍 들어와서 자면 좀 좋아""라는 잔소리부터 시작해서 출근하는 뒤통수에 대고는 ""오늘은 제발 일찍 좀 들어와서 애들하고 놀아주고 운전 조심해"" 라고 했다. 남편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일찍 들어오고 싶을 것이고 출근길에도 조심해서 운전했을 것이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아이들을 깨운다. ""방학이라고 이렇게 늦잠이야? 얼른 일어나. 이 깨끗이 닦고, 세수도 이쪽 저쪽 목도 좀 닦고, 밥 흘리지마. 반찬도 골고루……. ""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난 하루 종일 아이들 뒤를 따라 다니며 텔레비전 좀 그만 봐라. 컴퓨터 게임 또 하는 거야? 피아노학원에서 까불지 말아라. 동생하고 싸우지 마라. 장난감 좀 치워라…….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작된 잔소리는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계속된다. 습관처럼 하는 내 잔소리에 아이들도 지쳤는지 잔소리 좀 그만 하라고 한다. 난 기다렸다는 듯 제발 엄마도 잔소리 안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응수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잔소리가 없어진다면 모두의 바람대로 행복해 질까?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지긋지긋한 잔소리가 하루쯤 없어진다면 상상만 해도 신나는 일일 것이다.

일요일 저녁 푸셀은 용감하게도 부모님께 이젠 잔소리는 더 이상 듣기 싫다고 잔소리 없는 날을 제안한다. 한편으론 놀라지만 엄마 아빠도 푸셀의 의견을 받아들여 8월11일 월요일 하루 동안하고 싶은 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잔소리 없는 날'로 정한다.

일어나자마자 이도 닦지 않고 세수도 하지 않고 아침으로는 자두잼을 마음껏 퍼먹기도 한다. 하지만 잔소리를 하지 않기로 약속한 부모는 그냥 지켜 볼 수밖에 없다. 학교에도 안 갈까 하다가 친구 올레에게 이 놀라운 사실을 자랑하기 위해 간다. 부모님이 잔소리를 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지키는가 테스트해 보기 위해 무단으로 조퇴하고는 오디오를 사러간다. 하지만 그 일은 나이가 너무 어려서 실패하고 집으로 일찍 돌아 온 푸셀에게 엄마 아빠는 한마디의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잔소리 없는 날을 만끽하고 싶은 푸셀은 파티를 계획하고 친구들을 초대하려 하지만 약속되어 있지 않던 파티에는 한 명도 올 수 없게 된다. 직접 거리로 나가 보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에 파티에 참석할 사람은 없었다. 단 한 명 술주정뱅이 아우구스트씨만이 참석하게 되지만 그는 곧바로 잠들어 버리고 만다. 푸셀에 파티에는 엄마만이 유일한 손님이 된다. 집에 돌아오신 아빠도 잔소리 없이 술주정뱅이 아저씨를 친절히 대하고 집에까지 바래다준다.

저녁이 되자 엄마 아빠는 잔소리 없는 날이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푸셀은 마지막으로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단짝 올레와 자정까지 시간을 보내겠다고 한다. 올레와 함께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밤을 보내기는 쉽지 않고 점점 무서움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벤치에 앉아 있는 그림자가 귀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용기를 내서 다가가 보니 아이들의 야영이 걱정되어서 따라 왔지만 잔소리를 할 수도 없고 방해를 할 수도 없어 아이들 모르게 지키고 있었던 푸셀의 아빠였던 것이다.

잔소리 못하게 된 부모는 잔소리를 할 때보다 보이지는 않지만 더 조심스러운 눈길로 아이를 살펴야 하고 잔소리가 없어진 아이도 자유 뒤에 오는 책임 때문에 즐겁지 만은 않은 모양이다. 잔소리는 사랑하고 있고 널 항상 지켜보고 있어 라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이 책 한 권으로 한순간 잔소리를 안 하는 엄마나 엄마 잔소리를 사랑에 외침으로 좋게 들어주는 아이로 변하지는 않겠지만 잔소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과연 나도 잔소리를 멈추고 지켜볼 수만 있을까? 아이는 잔소리 없는 날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며 보내는 하루를 원 했던 것이 아닐까? 한없는 아량으로 푸셀을 지켜보는 부모에게 존경에 박수를 보내본다. 나도 어린 시절 엄마에게 많은 잔소리를 듣고 컸다.

""동네 어른들 보면 인사해라.""
""학교 갔다 오자마자 숙제해라.""
""맛있는 것 생기면 할머니 먼저 드려라.""
""형제간엔 우애가 최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잔소리는 나도 모르는 새 내 인생의 지침서가 되 버린 듯 하다. 그때는 엄마 잔소리 좀 안 듣게 얼른 자라서 엄마 그늘을 벗어나고 싶었는데 요즘은 그 잔소리가 그리워진다.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라도 하면 엄마는 여전히 잔소리를 하신다. 하지만 그 잔소리는 더 이상 이 딸을 향한 잔소리가 아니라 사위 걱정, 손자 걱정에서 하시는 잔소리로 변해 있다. 잔소리를 듣는 입장이 아닌 하는 입장의 엄마와 아내의 이름으로 살다 보니 어린 시절의 엄마 딸이 되어 엄마의 잔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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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감옥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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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엔데의 8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내가 이야기 잘하는 이야기꾼의 입만 바라보며 다음이야기를 기다리는 착한 아이가 돼버린 듯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해보기도 하지만 어느새 깊은 사색을 할 수 밖에 없는 마력이 있는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더 많이 생각했고 여러 번 같은 구절을 반복해서 읽곤 했다.

미하엘 엔데와의 첫 만남은 <모모>를 통해서고 그 뒤로 아이들이 읽은 그림책과 동화책에서도 그의 이름은 심심찮게 목격되곤 했다.

그의 이름을 발견할 때 마다 반가웠고 환상적인 그에 이야기에 찬사를 보냈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작가라고 생각했던 그가 <자유의 감옥>과 함께 철학자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첫 번째 단편이라고 하기엔 다소 긴 <긴 여행의 목표>는 진정한 의미의 집을 갖지 못한 부유한 시릴이라는 남자의 인생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보로메오 콜미의 통로>는 전반부를 읽으며 가상이 아닌 존재하는 공간을 다룬 듯한 착각이 들었다.

로마의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 같은 그 곳은 원근법이 실제로 적용되는 곳으로 그들의 모험이 성공하여 그 끝을 가 볼 수 있을지 과연 그 끝은 어디인지 궁금해진다.


<교외ㅢ 집>은 전편의 이야기의 기사를 보고 독자가 보낸 편지 형식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자신이 경험했던 내부가 없는 집을 소개하며 그 집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통해 역사 속에 있었던 사실인 나치 전범들의 증발을 이야기한다.

<추신; 아마도 악의 모든 비밀은..........오로지, 그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데에 그 본질이 있나 봅니다.>라는 끝맺음과 함께 긴 여운을 남긴다.


작은 차 속에 완벽하게 갖추어진 공간들에서 그의 무한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던 <조금 작지만 괜찮아>는 가장 유쾌하면서도 엽기적이다.


<미스라임의 동굴>을 읽으면서 나는 갈대처럼 흔들리는 나를 발견했다.

이브리와 베히모트의 설전을 들으며 누구에 말이 옳고 어떤 선택이 해야 할지 동굴 속의 그림자들만큼이나 많은 고민을 했었다.

<여행가 막스 무토의 비망록>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목적 때문에 꿈의 세계를 여행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우리 인생도 처음에는 작은 문제엣 시작해서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또 다른 문제를 만드는 인간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자유와 감옥이라는 상반도 단어로 이루어진 제목의 <자유의 감옥>은  자유롭게 자신이 선택할 수는 있지만 선택 뒤에 찾아오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결과를 두려워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매일 우리 자신은 눈먼 거지가 되어 어떤 문을 선택할지 고민하며 고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자유의 감옥에 갇혀 있기에 현실같이 않은 이야기가 가장 현실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이야기인 <길잡이의 전설>을 읽으며 신비로운 마술의 세계와 신비로움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엔데의 이야기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정리해가며 읽다보면 그의 이야기 곳곳에 등장하는 모든 장소와 인물이 실제처럼 다가옴을 느꼈다.

지금 살고 있는 공간에서 살짝만 비껴간다면 그와 같은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지곤 했다.

8편의 이야기가 따로 존재하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된 듯한 느낌은 그의 생각의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다.

올해는 미하엘 엔데의 10주기가 되는 해이다.

그래서인지 여러 출판사에서 그의 여러 권의 책들이 출간되었고 내가 10년도 전에 읽었던 <모모>는 TV드라마덕분에 다시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판타지소설의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듣는 작가였지만 내가 모모를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찾아 읽으며 그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만을 위한 조잡한 판타지물이 아님을 깨달게 되었고 진즉 그의 가치를 못 알아본 내 무식을 탓하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의 가치를 이제야 알아본 것도 억울한데 수염이 하얀 천진스러운 이야기꾼의 새로운 이야기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더 가슴 아프고 억울하다.

다행인 건 그에 부재엔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골수팬들이 지금도 세상엔 가득하고 앞으로 자랄 우리 아이들도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자라리라는 생각에 아쉬움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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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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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김부남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사건이 있었다.

9살 어린 나이에 이웃집 아저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던 여자가 20년이 지나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를 살해했던 사건은 그 당시 세상을 들끓게 했다.

그때는 <성폭력>이라는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던 시절이라 피해여성들은 운 나쁜 여자거나 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성들이라는  생각들이 팽배했던 시기였다.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라는 말에 대중들은 경악했고 그 사건을 통해 어린이 성폭력이 피해자의 일생을 얼마나 깊은 수렁으로 빠뜨릴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사실 요즘은 모든 사람들이 성범죄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으로부터 부지불식간에 당하는 성폭행, 아니면 평소에 교류가 있던 소이 친한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지속적인 성폭력이 있다.

어떤 성폭력이  피해자에게 더 깊은 상처를 입히는 지는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평상시 믿고 따르던 사람으로부터 받은 성폭력은 그 믿음만큼이나 깊은 상처를 낼 것이다.

특히나 어린 시절 믿고 따르던 주변사람들로부터 입은 상처의 깊이는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가늠할 수조차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성범죄지만 아직까지도 입에 올리기를 꺼려하는 현실에서 “성장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이 책은 성범죄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어린 시절 유치원 원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같은 이름의 두 유진은 사건을 어떻게 대처하는 가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정해지는 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큰 유진은 사건 당시의 기억을 평소보다 더 많이 안아주고 배려해주는 부모 덕분에 자신이 가장 사랑받았던 시기로 기억하는 반면 작은 유진은 목욕타월로 자신을 몸을 거칠게 미는 엄마와 우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절규하는 엄마의 모습만을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었다.

큰 유진의 의해 자신이 잊고 있었던 기억을 찾아낸 작은 유진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찾아내고 방황하게 된다.

다행인 건 함께 아픔을 경험했던 큰 유진과의 여행을 통해 자신들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찾아온 엄마와의 여행을 통해 새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는 중학교 2학년이 된 두 소녀의 입을 통해 어둡게도 밝게도 진행된다.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이의 입을 통해 어린시절에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부모를 둔 큰 유진과 주위 어른들에게 깨진 그릇이라는 말과 그 일을 입에 올리면 너 죽고 나죽는 다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자란 작은 유진은 꿈 많고 밝기만 한 시절을 아픔과 문득 문득 느끼는 절망감으로 보낸다.

어찌 그 절망의 상처가 아이만이 짊어져야할 상처겠는가?

현실에서의 부모는 큰 유진의 엄마처럼 담대하게 아이의 상처를 바라보며 어루만져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모두에게 거는 주문처럼 “아무 일도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돌아서서는 피눈물을 쏟으며 작은 유진의 엄마가 되어 딸이 가져가야할 상처를 기억에서 도려내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피해자를 도울 수는 있었지만 정작 내 아들의 여자친구가 될 때는 “그런 일을 당한 애“라는 낙인과 함께 문제가 예고된 애쯤으로 취급하는 건우엄마의 이중적인 행동에도 마냥 야유를 보낼 수만은 없었다.


책 속의 두 아이의 모습을 보며 어른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의 작은 가닥이 잡히는 듯했다.

특히 작은 유진의 외할머니가 손녀에게 해 주었던 말은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니가 그 일을 기억 못 해서, 느이 식구들을 영영 그러길 바랬지만 나는 내내 걱정이었다. 늙어서 노망난 것도 아닌데 파릇파릇하니 자라는 것이 지가 겪은 일을 기억 못해서는 안 된다구 생각했단다. 다 알구, 그러구선 이겨내야지. 나무의 옹이가 뭐더냐? 몸둥이에 난 생채기가 아문 흉터여. 그런 옹이를 가슴에 안구 사는 한이 있어두 다 기억해야 한다구 생각했단다.”

하물며 우리 몸에 난 상처도 꽁꽁 싸매어 덧나게 하는 것보다는 조금 아프고 쓰리더라도 바람이 잘 들게 하고 약도 말라야 낫는 것을 마음에 입은 상처 또한 덮어두고 묻어두기보다는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는 진리를 일깨워주시는 것 같았다.


결혼해서 아들 둘을 키우면서 나는 언제나 성폭력의 문제에서는 방관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밀양 여중생 성폭력 사건>을 보며 내 자신 더 이상 성범죄에 안심할 수 없는 현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고 어느 순간 내 아이들이 자신의 일생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에 일생에 나락으로 빠뜨릴 수 있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일었다.

이제는 개인의 일이 아닌 사회구성원 모두의 일이 되어 버린 성폭력이라는 조금은 껄끄러운 문제를 햇살 밝은 곳으로 끄집어내어 우리 모두의 힘으로 그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하고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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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10-25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두빛나무님, 축하드려요..! 좋은서평 이벤트 2등이네요..^^

울보 2005-10-26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두빛나무님 서평읽고 참좋았는데
축하드려요,,

초록콩 2005-10-27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울보님...축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