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세탁실에서였다. 어느 조용한 봄날, 아침나절이었다. 빨래가 돌아가는 걸 보면서 앉아 있는데, 사뭇 놀라운 젊은 여 자가 걸어 들어왔다. 놀랍다고 하는 것은 그런 출현을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녀가 입고 있던 토마토색 시프트 드레스가 너무짧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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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짓들 - 현상학 시론
빌렘 플루서 지음, 안규철 옮김, 김남시 감수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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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 다시 빼어든 책.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읽기 시작. 생각을 따라 가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준다. 개념들이 떠오르고 자리 잡는다. 글쓰기의 몸짓 챕터는 몇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생각은 몸짓을 통해서 실현된다. 엄밀히말해서 우리는 몸짓을 하기 전에는 생각할 수 없다. 글쓰기의몸짓은, 생각을 텍스트의 형태로 실현시키는 일의 몸짓이다. 글로쓰이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행위이고, 그 밖의 모든 것은 불가사의하다. 글을 쓰는 몸짓에서 이른바 문체의 문제는 덤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이다. 나의문체는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고, 다시 말해서 그것은 내 글쓰기의몸짓이다. "스타일, 그것이 그 사람이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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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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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는 지루했다. 하지만 지유씨와는 그렇게 오래 알아왔는데도 단 한순간도 무료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녀와는 말이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태껏 그 어떤 관계에서도 감각하지 못했던경험이었다. 지유씨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녀가 내뱉는 말의 호흡과 나의 호흡이 잘 어우러져 특유의 리듬감 같은 게 생겼다. 우리는 존대와 반말, 유쾌와 재치, 다정함과 짓궂음을 카드 패처럼 번갈아 내놓으며 놀았다. 그녀는 잘 웃었고 또 잘 놀렸다. 공수에 모두 강했다. 정말이지 지루할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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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영혼 Dear 그림책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올가 토카르추크 글,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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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얀은 그의 영혼이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조그드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제 안은 그의 여호이 다시하어요. 또 다른 이도 했습니다. 정원에 구덩이를 파고 시계와 트렁크 따위를 전부 파묻어 버린 거예요. 시계에서는 조 모양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자라났습니다. 꽃은 모두 다른 색깔이었지요. 트렁크에서는 커다란 호 박들이 얼려, 몇 해 겨울을 조용히 지내기에 충분한 식량이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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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쓰고 엮음, 김원영, 남다은, 정희진, 최은영, 앨리슨 벡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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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먼저 읽었다. 시나리오도 비평과 인터뷰도 매력적이네. 영상의 채도나 배우의 눈빛, 영지의 노래 같은 건 내가 그린 이미지와 어떻게 다를까 궁금. 카메라 워크나 씬의 길이도 궁금해졌다. 감독 스스로 경험을 영화화하며 겪은 변화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그 마법이 책의 에필로그 내지는 엔딩 크레딧처럼 한참 남았다. 이해는 화해랑 다른 일이고 그렇게 알아차리는 일, 시간, 시선이 드러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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