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 공백에 대한 집합적 불안은 파멸적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파시즘에 근접해 가고 있다. 자신들이 무기력하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국가의 무기력을 두려워하는 시민들은 국가에 대해 그들이 항상 “좋은 쪽”에 있고, 희생자, 전형적인 불쌍한 사람들 - 나는 “열등 인간”라는 말까지 쓰려 했었다 - 는 자신들이 아니라 다른 이들라는 점이 확실히 보장될 수 있도록 가시적인 안전 중심적 조치들을 취하고 아파르트헤이트와 같은 것 - 이것이 어떤 형태 아래 어떤 이름(국민우선은 그런 이름들 중 하나다)을 달고 나타나든 간에 - 을 제도화할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암묵적으로 다음과 같은 종류의 질문을 제기한다. 국가는 누구를 우선시하는가? 곧 국가는 누구 편인가?그리고 국가의 결정들은 누가 내리고, 누가 국가로부터 정확히 우선이라는 답변을 얻을 수 있는가?누가 선택된 이들이고 누가 버려진 이들인가?”
발리바르, <국민 우선에서 정치의 발명으로>, 146-7.
어제는 일베가 광장에 나온, 기억할 만한 날이었다. 비단 일베만이 문제일까? 세월호 유가족들을 유귀족, 노숙자 등으로 부르며 경멸하는 이들도 어쩌면 이렇게 자신들이 국가로부터 선택받은 이이고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믿고 싶은 것이 아닐까? 운동으로서의 일베. 인종주의, 인종전쟁으로서 정치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