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인식하는 <성숙의 시기jam maturis annis>(철학원리 1부 72항)는 정신이 과거로부터 꾸준히 탈출하는 성장의 시대 뒤에 온다. 그러나 성장은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신은 자신에 걸맞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계도하고 훈련시켜야 한다. 이 계도와 훈련은 방법의 규칙들을 따라야 한다. 방법론은 성장하고 있는 정신이 따라야 하는 진리 인식의 길이다. 여기서 데카르트의 방법론은 정신의 존재론적 조건에 대한 반성과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데카르트는 보편수리학을 제안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깨달아서at ego, tenuitas meae conscius 진리의 탐구에서 꾸준히 어떤 순서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 순서를 따를 때, 정신은 <항상 제일 단순하고 제일 쉬운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AT Ⅹ, 378-9).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데카르트는 성찰에서 사물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사유의 순서를 따랐다. 그리고 이 사유의 순서는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a facilioribus ad difficiliora>라는 간단한 말로 설명되기도 한다. 이는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적 탐구가 방법론적 격률을 따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라는 이 격률은 위의 인용문이 말하고 있듯이 정신의 취약성에 대한 반성에서 연유한다.
인간이 <신적인 구석>을 가지고 있는 한에서 학문은 진리의 자연스러운 가지틀기이고 열매맺음이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인 한에서, 또는 원죄의 무게를 아직 감당하고 있는 한에서, 학문은 인간 나름의 순서에 따라, 정신의 방법적 수고에 의하여 하나하나 그려가야 할 점묘화이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한 번의 붓질로 그림을 완성할 수 없다.” 김상환, 「스으라의 점묘화: 김수영 시에서 데카르트의 백색 존재론으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