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image.aladin.co.kr/product/106/57/cover150/1565842782_1.jpg)
그러나 진짜 마르크스에 이르기 위해 아직 다른 철학자들이 필요했다. 「아미엥에서의 주장」에서 이미 밝힌 대로 우선 내가 그 당시 국가박사 논문에서 다루려고 계획했던 17~18세기 정치철학자들이다. 홉스에서 루소까지 나는 동일한 심오한 착상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갈등적 세계라는 착상으로 그런 세계에는 국가라는 유일한 절대적 권력만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홉스)을 종식시킴으로써 재산과 개인의 안전을 문제없이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계급투쟁과 국가의 구실에 대한 생각은 이미 예견된 것으로, 우리는 마르크스가 이런 생각을 자기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 선임자들, 특히 조금도 ‘진보주의자들’이 아니었던 왕정복고 하의 프랑스 역사가들과 영국 경제학자들, 특히 리카도에게서 차용한 것이라고 말했음을 알고 있다. 내가 인용한 학자 말고도 마르크스는 더 멀리 ‘로마 법학자’들과 ‘게르만 연구가들’의 그 유명한 논쟁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계급투쟁이 수면을 방해하고 있는 그 유명한 라친저 추기경은 잠을 자는 대신 교양을 좀 쌓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진보된’ 자연 상태에서도 동일한 사회적 갈등 상태를 본 루소는 또 다른 해결책을 제시했다. 즉 ‘결코 사멸되지 않는’ 보편적 의지를 표현하는 ‘계약’에 의한 직접 민주주의 안에서 국가 형태의 종식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것은 어느 날엔가 공산주의가 꿈꾸게 / 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루소에게 있어서 또한 나를 사로잡은 것은 「인간불평등기원론」, 그리고 가난한 자들의 정신을 굴복시키기 위해 부유한 자들의 사악한 상상력 속에서 나온 술책과 간교에 불과한 불평등계약론이었다. 여전히 이데올로기 이론이기는 하지만 그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원인과 기능, 다시 말하자면 계급투쟁에서 하는 헤게모니적 기능에 관련된 것이었다. 나는 루소를 마키아벨리 이후 최초의 헤게모니 이론가로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코르시카와 폴란드에 대한 개혁 계획에서 루소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와는 정반대로, 상황과 전통의 복합적인 모든 여건들을 참착할 줄 알고 시간의 리듬을 존중할 줄 아는 현실주의자로 나타난다. 에밀의 교육이론, 즉 개인의 자연스런 발전 단계를 절대 앞지르지 말고 존중해야 하며 어린아이의 성장에서 시간의 작용을 존중해야한다는(시간을 벌기 위해 시간을 잃을 줄 알아야 한다는) 그 놀라운 교육이론에 대해서도 루소는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결국 나는 『고백록』에서 티끌만큼도 자기만족이 없는 일종의 ‘자아분석’의 유일한 예를 보았다. 그 책에서 루소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자기 삶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성性에 대해, 그리고 나중에 데리다가 거세의 상징으로 훌륭하게 설명한 성적 ‘대체supplément’의 그 놀라운 이론에 대해 글을 쓰고 숙고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결국 내가 루소를 좋아한 것은 계몽주의자들의 합리주의적이며 종말론적인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반대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철학자들’은 루소를 무척 증오했으며(적어도 이 영원히 박해받는 자, 루소는 그렇게 믿었다), 민중의 화합은 지적 개혁으로 개혁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모든 이데올로기가 현실에 대해 갖는 엄청난 착각이다! 그런데 이것에 반대한 루소의 태도를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엄격한 명철성 속에서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또 내가 좋아한 것은 부와 권력의 모든 유혹 앞에서 루소가 보여준 철저한 독립성, 그리고 독학 교육에 대한 열광이었다.
루이 알튀세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권은미 옮김, 2008, 289~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