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읽어본 소설. 밑줄긋기 

 

 

 

 

 

 

 

 

(...)그러므로 사랑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사랑가'를 부르며 바지 지퍼를 내리거나 브래지어 호크를 푸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일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 있게 드러낼 수 있어야만 상대방이 수많은 양반 자제 중에서 자신을 알아볼 게 아닌가? 그러므로 다시한번, "사랑해"라고 말한다는 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냈다는 뜻이다. 사랑의 대상보다 자신을 먼저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기형도는 '그집 앞'이라는 시를 이렇게 끝냈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비가 2'에서는 이렇게 끝을 냈다. "세상은 온통 크레졸 냄새로 자리잡는다. 누가 떠나든 죽든/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왜 기형도는 이 세상 누구와도 닮지 않은 위대한 혼자에 대한 얘기로 시를 끝맺었을까? 사랑이 끝나면 자신에 대한 사랑만이 남게 되기 때문이다. 애당초 "사랑해"라고 말하기 위해 거울을 보며 연습할 때 봤던 그 얼굴을 향한 사랑만이. 1982년 8월 28일, 기형도는 일기장에 "언제나 나는 진실로 연애다운 사랑을 할 것인가" 라고 썼지만, 그런점에서 그는 늘 연애중이었다.

꽃에는 입술이 없지만 자신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사랑에는 혀가 없지만 네가 누구인지 먼저 알아내라고 종용한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저마다 위대한 개인으로 자란다. 거울에 비친 그 위대한 개인을 사랑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향해 단호한 어조로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지구에서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느냐는 미 우주항공국의 업무지만, 우리가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느냐는 스스로 대답할 문제다. 그건 우리가 얼마나 자신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느냐, 혹은 우리가 얼마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사랑은 우리의 평생교육기관이다.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성인 인증을 거쳐야만 입학할 수 있는 성인들의 학교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낼 때까지 우리는 계속 낙제할 수 밖에 없다. 죽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할테니, 결국 우리가 그 학교에서 졸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사랑해"라고 말한다는 건 자신을 먼저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만 '진실로 연애다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추구하는 것....자신의 자아를 저 밑바닥까지 찾아 헤매는 것이다."라고 말한 사람은 울리히 벡과 엘리자베트 벡-게른샤임 부부다. (...) 90~2쪽

...어떤 사람을 향해 "사랑해"라고 말한다면 그건 이미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봤다는 것이다. 사랑을 고백하는 일은 아무도 없는 나이트 클럽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춤을 추는 일과 흡사하다. 이때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한눈에 드러날 수 밖에 없는데, 애정이 없다면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사랑해", 그 대담한 말을 통해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나는 네가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먼저 누구인지 보여주겠다. 이번에는 네가 너를 보여줄 차례다. 그래서 "사랑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둘 중하나다. 기꺼이 자신을 드러내거나 못 들은 걸로 치거나. 못 들은 걸로 치겠다, 그건 '나한테 네가 누구인지 설명하지 마라, 우리 사이는 사회적인 관계다'라는 뜻이다... 87~8.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라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뿐이다. 사람도 없는 막차버스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집에까지 가는 동안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한없이 웃었던 기억, 아파트 근처 으슥한 벤치에 어깨를 붙이고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말을 멈추고 어색한 마음에 둘이서 처음 입맞췄던 기억, 자존심 때문에 공연히 투정을 부리다가 되려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어 그만 혼자서 울어버린 기억, 사랑이 끝난 뒤 지도에 나오는 길과 지도에 나오지 않는 길과, 차가 다니는 길과 차가 다니지 않는 길과, 가로수가 드리워진 길과 어두운 하늘만 보이던 길을 하염없이 걸어다니던 기억, 모든 게 끝나면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처럼 사랑했던 마음은 반품시켜야만 하지만, 사랑했던 기억만은 영수증처럼 우리에게 남는다. 한때 우리는 뭔가를 소유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물. 질투가 없는 사람은 사랑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이 없는 사람은 사랑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가 없다.

지난 초가을 두 번째 만나던 날, 진우는 선영에게 자신을 좋아했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함께 저녁으로 홍합솥밥을 먹고 국무총리 공관을 지나 삼청동 골짜기 쪽으로 걸어 올라가노라니 진우는 13년 전의 어느 가을 저녁으로 돌아간 듯했다. 삶의 순간 순간이 어떤 무늬와 결로 이뤄졌는지 똑똑하게 보여주는 저녁바람이 선영의 귀밑머리로 나부꼈고 그 순간 진우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살아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당장 죽어도 좋다는 느낌이 들 때다. 그때 삶은 죽음을 뛰어넘는다. 삶이 죽음이라는 엄청난 장애물을 뛰어넘는 데 지렛대로 사용하는 게 바로 사랑이다. 139~141쪽

 

"아까 자다가 니 전화 받고 밖으로 나오려는데, 비가 오더라. 비가 오네. 혼잣말하면서 차를 몰고 나오다 보니까 문득 이제 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나무의 뿌리들도 이제 빗물을 모아야 하겠지. 다시 자라려면,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까 갑자기 지난 겨울이 떠오르는 거야. 선영아, 지난 겨울에 눈 많이 내렸잖아. 그지? 골목길에 쌓이기도 하고, 그냥 녹아서 질퍽거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지금은 다 녹아버렸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 눈이 녹으면 그 하얀빛은 과연 어디로 가는 걸까? 선영아, 너는 아니? 눈이 녹으면 그 하얀빛은 과연 어디로 가는지?"

선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광수가 돌아보니 선영은 잠들어 있었다. 광수는 잠시 선영을 흔들어보다가 손을 뻗어 라디오를 켰다. 여윈 몸을 떠올리게 하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그만큼이나 마른 목소리로 한 여자가 이별 노래를 불렀다. 빗줄기 사이로 줄지어 멈춰선 검은 윤곽의 자동차들 위로 신호등의 붉은 불빛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우산을 쓴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그 어두운 풍경을 내다보며 광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눈이 녹으면 그 하얀빛은 과연 어디로 가는 걸까? 16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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