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두 가지 <<담론>>(1750년과 1754년)에서 루소는 "문화의 야누스적 성격"(minima moralia 37), 즉 "자유의 잠재력과 억압의 현실을 항상 동시에 발전시켰던 진보의 이중성"(mm 84)을 최초로 인식했다. 루소는 "상호 무관한 기능들로 인해 인간이 분화되는 사회적으로 필연적인 현상"(mm 96)을 최초로 탄핵했으며, 그 대립물로서 잃어버린, "왜곡되지 않은 자연의 형상" (mm 59)을 환기시켰다. 이 모든 것으로써 나중에 아도르노가 (이러한 표현들은 그의 <<한줌의 도덕>>에서 차용한 것이다) 독재적 이성의 "현혹적 연관관계(Verblendungszusammenhang)"라고 부르게 될 그 어떤 것의 정곡을 찌른 것이다. 아도르노는 루소를 자신의 현대성 이론을 지지하는 증인으로 소환했을 법도 한데, <<계몽의 변증법>>에서나 <<한줌의 도덕>>에서 그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나의 세대에 있어 루소의 두 가지 <<담론>>에 필적할 만한 영향을 불러일으켰던 그 두 저작에서 말이다." (94쪽)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진행되었던 사물화를 통한 '세계의 탈주술화'를 최초로 인식한 사람은 루소엿다. (...) 루소는 세상의 재앙의 의미에 대해 묻지 않고, 당대 사회에 있는 그 원인, 그것의 역사적 기원, 새로운 사회에서 재앙을 제거할 방도에 대해 물었던 것이다. 첫번째 <<담론>>에서 행한 자기 시대에 대한 진단에서 그는 현대세계에서 나타난 사물화를 자연과 문명의 완전한 분리로부터 설명한다. 즉, 과학과 예술이 계몽주의의 현재적 정점으로 진보함에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사회적 삶의 풍속과 도덕은 더 나빠졌다는 사실로부터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담론>>에서는 인류사의 가설적인 시원으로 설정된 자연상태(Etat de nature)를 회고하면서 인간의 본성(Natur)에 두었던 혐의는 풀고, 사회 전체에 죄를 돌린다. 사회는 자기가 만들어낸 제도들 - 소유, 지배, 분업, 전통 - 등을 통해 현대에 사는 인간을 그의 진정한 본성에서 소외시켰으며, 그리하여 인간은 - 또다시 역설적으로 - 자기 자신의 창조물, 즉 자기 역사의 결과물을 마치 낯선 작품을 대하듯이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실로 획기적인 루소의 질문이 생겨나는데, 수많은 변형들을 하나로 집약해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현대적 세계에 사는 인간은 시민(homme civil)으로서의 분열된 실존에 직면하여 어떻게 자연인간(homme naturel)의 잃어버린 전체성을 되찾음과 아울러 자신의 행복의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루소는 세 가지 상이한 해결책을 모색했다. <<에밀>>(1762)에서는 사회에서 벗어난 개인들과 관련하여 자연적 교육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사회계약론>>에서는 일반의지에 헌신하는 주체와 관련하여 평등이 실현된 국가 헌법의 기획을 통해서, 그리고 <<누벨 엘로이즈>>에서는 다감한 소규모 집단과 관련하여 또다시 최초의 부부를 중심으로 생겨나는 사랑의 공동체를 통해서 해결책을 모색했던 것이다. (10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