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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분석가로서의 푸코:
미셀 푸코의 통치성과 반정치적 정치의 회로 - 서동진


 


권력의 시인이라는 푸코의 초상

최근 우리 눈에 부쩍 자주 띄는 푸코의 초상이 있다. 그것은 자유주의 나아가 신자유주의 분석가로서의 미셀 푸코이다. 그런데 어딘지 낯설게 들리고 또 얼마간 느닷없기까지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푸코는 실존의 미학자로서의 서정적인 어느 철학자의 모습에 가깝다. 혹은 훈육사회와 미시권력의 세계를 고발한 그 어느 자유주의자보다 더 극한적인 자유주의자의 모습을 한 푸코야 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푸코의 형상에 훨씬 근접해 보인다. 그런 우리에게 자유주의 분석가로서의 푸코, 나아가 그것의 현재 형태인 신자유주의를 면밀하게 탐색하고 그것을 우회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곤구하는 푸코는, 낯설고 또 어쩐지 어색하여 보이기까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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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 그렇지만 푸코가 1970년대 후반에 진행했던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세미나들이 거의 공개되고 또 출판이 이뤄지면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섬세하고 또 집요하게 자유주의를 분석했던 이론가로서의 푸코와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때마침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상대하고 비판할 것인가가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 화급한 주제로 부상한 때이기도 하다. 푸코는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내가 푸코의 자유주의 세미나 3부작이라고 부를 세미나를 연속적으로 진행하였고, 이 세미나에서 이뤄진 강의와 대화가 묶여,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영토, 안전, 인구󰡕, 그리고 󰡔생정치의 탄생󰡕이란 제목으로 공간되었다. 이는 󰡔감시와 처벌󰡕(1975), 󰡔성의 역사1󰡕(1976)을 출판하고 난 이후 오랜 침묵 끝에 그의 때 이른 죽음을 전후하여 나온 󰡔성의 역사󰡕 2, 3권(1984) 사이에, 과연 푸코의 관심과 작업은 무엇이었는지 헤아리는데 큰 도움을 준다. 특히 ‘지배(domination)의 분석’으로부터 갑자기 윤리의 문제, 그 스스로 즐겨 사용한 표현을 빌자면 “자기의 돌봄”이란 “주체성의 계보학”에 대한 분석으로 이론적 관심을 전환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에 답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푸코를 둘러싸고 흔히 퍼져있는 미신적인 혐의에서 벗어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혐의란 푸코가 모든 곳에 권력이 있다는 현혹적인 자신의 주장으로부터 반드시 따라 나올 수밖에 없는 수행적인(performative) 효과라고 할 그 것, 즉 ‘권력의 바깥’은 없다, 누구도 그 곳에 있을 수 없다는 허무주의적인 결론으로 인해 그 스스로 궁지에 다다르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극히 퇴행적이고 심지어 유치해보이기까지 하는 ‘실존의 미학’이란 주장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소개된 세미나 일부 자료와 인터뷰, 강의를 제외하면 오디오 테이프 형태로만 존재하던 푸코의 세미나가 마침내 출판되면서 이런 혐의는 거의 푸코와 무관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이 시기 푸코가 진행했던 세미나의 내용 가운데 일부와 그의 강연, 인터뷰 등과 그의 세미나에 참여했던 제자들의 연구 프로젝트가 영어권 독자들에 소개되기도 하고 또 책으로 묶이기도 하였다. 특히 푸코의 강의 요약 가운데 일부인 “통치성”을 비롯한 몇 편의 논문과 제자들의 글 가운데 일부가 영국의 포스트 알튀세르주의자들의 저널이었던 <이데올로기와 의식 Ideology and Consciousness> 그리고 <경제와 사회 Economy and Society>를 통해 영어권에 잇달아 소개되고 그것이 다시 묶여 책으로 출간되었다. 또 이를 주도했던 영국의 몇몇 이론가들은 “통치성 governmentality”이란 개념에서 비롯된 새로운 분석적 접근을 하나의 이론적 학파로까지 조직하게 되면서, 훗날 다수 경멸적인 이름이라 할 수 있을, ‘통치성 학파’로 불리게 된다.


통치, 통치성 그리고 자유주의라는 정치적 이성

통치성이란 개념이 푸코가 진행했던 자유주의의 형성과 변모를 이해할 수 있는 주요한 개념적 탐침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하나의 완결적이고 정합적인 ‘이론’으로 규정하기엔 억지스러운 점이 있다 할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통치성은 외려 푸코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근대 국가의 계보학”적 분석을 위해 도입한 잠정적인 방법 혹은 그의 접근 방식을 요약하는 이론적인 도구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물론 푸코 스스로 언급하듯이 그가 착수했던 이론적인 기획은 통치, 통치성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현저한 변화를 겪는다. 그것은 󰡔감시와 처벌󰡕을 출간하고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란 이름으로 묶인 세미나가 진행될 때까지 푸코가 지속했던 권력 분석에 일종의 전환이 이뤄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즈음까지 푸코의 권력에 대한 접근은 권력에 관한 사법-정치적 담론 혹은 권력에 관한 주권적 모델로부터 벗어나려는 끈질긴 노력이라 볼 수 있다. 󰡔감시와 처벌󰡕을 전후하여 푸코가 전개한 권력에 대한 ‘바깥으로부터의 사고’라는 접근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세미나를 전후하여 이른바 “니체의 가설(Nietzsche's hypothesis)” 혹은 정복과 전쟁의 모델이란 관점으로 모아진다. 푸코가 “역사-정치적 담론”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런 관점은, 주권(혹은 권리)과 법이란 관점에서 권력을 인식하는 자유주의적 정치철학(“리바이어던의 모델”)과도 거리를 두는 한편 권력의 기원적인 중심으로서 경제를 가정하고 계급지배란 관점에서 사고하는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이를 푸코는 “왕의 목을 자르기”라는 유명한 경구로 푸코가 표현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의 왕이란 봉건적 군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군주이든 아니면 사법적으로 권리의 평등을 보장받은 근대적 시민이든 법률을 통해 코드화되고 또한 그를 통해 보장되거나 제재받는 권리의 주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왕이란 사법-정치적 담론을 압축하는, 다시 말해 권력을 사고하기 위해 언제나 선험적으로 가정되는 권력의 모델이자 정치적 주체의 이상(理想)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푸코는 기울 권력(disciplinary power)과 “정상화(규격화) 사회(society of normalization)”란 모델에 따라 사법-정치적 담론이 가정하는 주권적인 권력/주체의 모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하였다. 그는 18세기를 전후하여 서유럽사회는 시민의 권리를 성문화, 조직화하는 법률적인 코드와 사회적 신체를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훈육 메커니즘을 결합사킨, “주권적 권력”과 “훈육적 권력의 복합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즈음 푸코의 입장은 렘케같은 이가 지적하듯이 사법-정치적 담론 혹은 그에 바탕한 권력 모델을 단순히 뒤집은 것, 혹은 그것의 반사적인 역상 속에서 권력을 사고하려는 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통치(성)이란 관점에 서면서 푸코는 이런 모델과도 결별할 수 있는 이론적 전환을 이룰 수 있게 된다.
통치(government)란 개념은 자유주의의 등장을 이해하는 데 관건적일 뿐 아니라 푸코의 권력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통치는 앞서 간단히 말하였듯이 사법-정치적 담론에 속박된 권력론으로부터 거리를 둘 뿐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선택하였던 훈육 권력이란 담론으로부터도 역시 벗어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통치란 개념은 자유주의의 역사적 변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큰 가치를 지닌다. 통치란 권력의 전략적 게임과 지배(domincation)이란 권력의 작용을 둘러싼 성층적인 형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할 뿐 아니라 아울러 사법적-주권적 권력과 훈육 권력과 경합하거나 혹은 그것을 흡수하고 변형시키면서 18세기를 전후하여 서유럽 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자유주의적 지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의의를 차지한다. 푸코는 근대 사회에서 권력이 작용하는 방식을 세 가지의 성층적인 형태의 도식을 통해 설명하는데, 이 때 기존에 미시권력이라고 불렸던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에서 행해지는 권력의 작용을 전략적 게임이라고 풀이한다. 개인이 관계 맺는 자기 자신이든 타인(들)이든, 아니면 기관, 제도, 기업같은 것이든 그 무엇이든 인간관계 안에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 힘의 관계를 푸코는 전략적 게임이라고 부른다. 반면 그것이 상대적으로 경직되고 또 고정되면서 관계를 맺고 있는 항들 사이에 비가역적인 관계가 수립될 때 푸코는 이를 ‘지배’라고 부르고 이것이 우리가 흔히 권력이라 일컫는 그것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푸코는 ‘통치’(혹은 통치 테크놀로지)를 이 사이에 놓는다.
그렇다면 통치란 무엇일까. 여기에서 통치성이란 개념은 통치가 차지하는 푸코의 권력 분석 안에서의 위치를 가늠하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의 역사적 특성을 분별하는 데 결적인 역할을 한다. 통치성(governmentality)이란 개념은 푸코 스스로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그것은 그 용어 자체가 보여주듯이 통치(govern/gourvener)와 사고양식(mentality/mentalite)란 두 가지 낱말을 결합한 것이다. 굳이 요약하자면 특정한 사고양식을 통한 통치를 가리킬 것이고 푸코 자신의 간결한 정의를 쫓자면 행동방식 혹은 행실에 대한 통솔(conduct of conduct)을 통한 권력의 작용을 가리킬 것이다. 그리고 이 용어는 정치 이성(political reason), 정치적 합리성(political rationality) 혹은 통치 합리성(governmental rationality)같은 개념들과 맞바꿔 쓸 수 있고 푸코는 자신의 강의와 글에서 이러한 개념들을 혼용하여 쓰고 있기도 하다.
통치성이란 개념을 통해 푸코는 크게 두 가지의 차원을 겹쳐놓는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지식과 권력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주체화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지식과 권력은 권력이 행사되고 작용하는 표면, 즉 그 대상을 구성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구체적인 장치, 절차, 계산의 형식 등을 두루 망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매우 특정하면서도 복합적인 형태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 과정, 분석과 반성, 계산과 전술들로 구성되는 전체(ensemble). 이러한 권력의 표적은 인구이며, 그 중요한 지식의 형태는 정치경제학이고 또한 그 본질적인 기술적인 수단은 안전기구들이다.”라고 푸코가 말할 때 가리키는 것이 바로 그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푸코는 근대 사회의 통치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테크놀로지로서 안전기구(apparus of security), 그것이 작용하는 대상으로서 생물학적인 종으로서 다시 말해 생명을 가지고 자신의 욕망(desire)을 실현하고 보장하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human species) 즉 인구, 그리고 이를 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적인 지식의 형태로서 정치경제학을 꼽는다.
다음으로 우리는 통치성을 주체화의 원리, 혹은 푸코적인 의미에서의 윤리, 개인이 자신을 권력에 예속된 주체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변형하는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주체로서 살아가도록 이끄는 힘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을 푸코는 통치하다는 것(governing)이 엄밀하게 가리키는 바로 정의하면서 상당히 꼼꼼하게 분석을 시도한다. 이것은 바로 히브리적인 전통에서 비롯되어 중세의 기독교적 서구를 경유하고 다시 근대 국가에서 통치란 형태로 변용된, 사목권력(pastoral power)이다. 이는 군주와 신민이란 관계를 목자-양떼란 관계와 결합시키면서 개인, 가족, 공동체를 비롯한 다양한 삶의 현실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갈 것인지를 배려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특히 푸코는 사목권력이 훗날 국가에 의한 통치, 그가 경제적 통치, 정치적 통치, 혹은 줄여 그냥 통치라고 부를, 국가를 통한 권력의 작용을 설명하는데 결정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도시, 영토, 주권’같은 지고한 대상이 아니라 다수적 삶, 그가 ‘전부이면서 각자(all and each/omnes et singulatim)’라고 부르는 대상을 상정하고 또 그에 적합한 지식과 기술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런 점에서 푸코가 통치성을 통치 합리성 혹은 정치 이성으로서 분절할 수 있도록 하는 이론적 계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것이 거칠게 말해 근대 국가의 맹아라고 할 수 있는 16세기를 전후하여 서유럽에서 형성된 절대주의 국가에서의 “국가이성(raison d'Etat/ratio status/the reason of state)”과 그것을 실현하는 장치로서 “행정관리(police)”에 대한 분석이다. 국가이성이란 기존에 국가가 권력을 행사할 때 의존하던 추상적이고 선험적인 원리나 이상(이를테면 천국의 지복, 내세에서의 구원 등)과 단절하여 국가가 자기의식적으로 자신의 힘이 작용하는 대상을 분별, 조사, 관찰, 반성하면서 어떻게 작동할지를 정의하고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권력 행사 방식 혹은 그것을 구체화하는 과학, 지식을 말한다. 다시 말해 마침내 국가는 엄밀한 의미에서 추론(reasoning)을 통해 혹은 합리성(rationality)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이는 중세의 봉건적 군주나 초기 절대주의 국가가 상정했던 목표와 그것을 실현하려는 기술, 이를테면 영토와 부(wealth)의 관리를 위해 행사하던 테크놀로지와는 전연 다른 새로운 것을 고안한다. 이것이 행정, 관리, 국책(國策) 등으로 부를 수 있을 폴리스(police)라고 할 수 있다. 시민이면서 동시에 인구인 대상을 지배하기 위해 발달한 폴리스에 관한 과학(Polizeiwissenshaft)은 푸코가 꾸준히 강조하듯이 전체화하면서(totalizing)하면서 동시에 개인화하는(individualizing) 권력으로서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한다. 건강, 장수, 안전, 행복 등을 비롯한 다양한 목표를 위해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 즉 인구를 돌보는 국가는 바로 행정관리를 통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푸코는 국가이성이 한계에 부딪치며 18세기를 전후하여 새로운 통치성이 등장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훗날 자유주의라고 부르게 될 정치적 합리성으로의 전환이 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국가이성이 가진 목표, 즉 국가와 그것의 부의 증대를 “사회”와 그것의 경제적 진보라는 목표로 대체하는 새로운 통치성이라 할 수 있다. 푸코는 이런 통치성의 등장을 선도하고 조직한 것이 중농주의자로 대표되는 정치경제학자들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푸코는 “국가이성은 새롭게 부상하던 영역인 경제에 의해 개조되었으며, 경제 이성(economic reason)은 국가이성을 대체하지는 않았지만 국가의 합리성에 새로운 내용과 새로운 형태를 제공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치경제학을 통해 마련된 통치성의 핵심적인 특성을 푸코는 크게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자연스러움(naturalness)”의 대상으로서 “사회”가 고안되고 자유주의의 핵심적인 가정인 사회, 시민사회 대 국가란 이분법이 형성된 것이다. 이제 국가는 시민사회를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며 국가는 또한 그 시민사회가 만들어내는 움직임, 중상주의가 상정하는 교환(exchange)이란 관점에서 파악된 부가 아니라 생산하고 소비하며 그를 통해 구체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이루는 인구들의 삶, 즉 사회를 상대하게 된다. 두 번째로 이러한 자연스러움으로서의 사회라는 가정으로부터 통치성의 핵심적 구성요소인 지식과 권력의 관계 역시 변용되지 않을 수 없음을 푸코는 지적한다. 이제 좋은 통치를 위해 국가는 국가이성에서와 같이 외교적인 계산이나 역학관계에 대한 고려가 아니라 자연적 대상으로서의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으로부터 과학적 지식을 뽑아내게 된다. 그리하여 통치 기예와 지식은 세부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세 번째의 것, 인구란 관점에서의 혁신적인 변화가 이뤄지게 된다. 국가이성이 인구란 관념을 끌어들이고 이를 통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순전히 양적 다수, 머리 숫자로만 고려된 것이었다. 국가이성에 이끌렸던 중상주의적 국가에서 관심은 군주의 부를 좌우하는 것이 인구의 숫자, 그리고 그것의 일과 순종성(docility)이었기 때문에 절대적 가치를 지닌 상품과 수량화할 수 있는 부였다면 새로운 통치성 즉 자유주의는 최대의 가치가 아니라 너무 많지도 않고 너무 적지도 않은 최적의 가치, 균형적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네 번째는 국가가 개입하는 방식이 변화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앞서 보았듯이 새로운 통치성이 가진 전제는 국가이성에서처럼 군주 혹은 국가의 의지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대상으로서의 사회의 운동을 보장하고 촉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다시 말해 단순히 규칙이나 규제를 통해 사람들의 움직임을 제약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국가의 개입 방식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리하여 푸코는 다섯 번째로 자유주의가 문자 그대로 자유(liberty)에 기반을 둔 통치라고 할 수 있게 하는 그것, 즉 좋은 통치란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란 점을 꼽는다. 이는 중농주의자들이 인구란 서로 다른 개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나의 전체처럼 다룰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모두가 하나의 행위의 동인(mainspring), 즉 “욕망(desire)”을 통해 움직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구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규제나 명령이 아닌 바로 이런 욕망의 법칙, 즉 정치경제학이 상대하는 경제적 인간 혹은 욕망을 쫓으며 살아가는 개별적이면서도 또한 전체인 인구=시민이 가진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지 않을 수 없다.


........(중략)...........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인가 사회주의적 통치성인가 혹은 그것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자유주의적 통치성이 등장한 이후 그것은 어떤 변천을 겪어왔을까. 푸코가 󰡔영토, 안전, 인구󰡕 이후에 진행한 󰡔생정치의 탄생󰡕이 직접적으로 관심을 둔 것이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라고 할 만한 것을 상세하게 분석한다. 특히 푸코는 제3공화국, 나치즘의 등장을 전후하여 독일에서 등장한 프라이부르크 학파, 혹은 그들이 발간했던 저널의 이름을 따서 질서자유주의자(the Ordo-liberals)라고 불리는 초기의 신자유주의와 우리가 흔히 시카고 학파라고 부르는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소개하고 이에 대한 비판적 분절을 시도한다. 여기에서 이를 상세하게 소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서는 푸코의 분석을 참조하면서 극히 간략하게 신자유주의가 기존의 자유주의의 ‘실패’를 어떻게 표상하였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새로운 통치성을 고안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이에 놓인 거리를 설명하기 위한 손쉬운 방편 가운데 하나는 자유주의적 통치성을 사회적 신체의 지형학(topography of social body)을 생각해 보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앞에서 간단히 지적했듯이 자유주의의 정치적 합리성의 핵심적인 특징은 경제적 삶의 세계와 거의 동일한 것이라고 할 ‘사회(the social)’를 고안하고 이를 국가가 상대해야 하는 대상으로 규정한다. 그런 점에서 사회와 국가의 관계, 나아가 경제 혹은 시장과 사회, 국가의 관계는 근대적 통치성, 자유주의가 변용되는 방식을 이해하는데 있어 관건적인 역할을 한다. 이는 푸코가 신자유주의로 꼽는 질서자유주의와 시카고 학파의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고 변형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결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경제)과 국가, 나아가 경제, 사회, 국가라는 항들을 어떻게 설정하고 또 각각을 어떻게 분절하고 연관시키는가를 보면서 푸코가 시도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분석을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질서자유주의는 독일적 문제인 나치즘이라는 국가사회주의에서 출발하여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정초한다. 푸코가 흥미롭게 설명하듯이 “자본주의의 비합리적 합리성”이란 베버주의적 질문에서 출발한 두 가지의 베버주의적 경향 혹은 학파가 있다. 그것은 먼저 질서자유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크푸르트학파라고 할 수 있다. 푸코는 양자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자본주의의 경제적 비합리성을 폐절할 수 있는(nullifying) ‘사회적 합리성’을 모색하려 했던 반면, 질서자유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사회적 비합리성을 폐절할 수 있는 경제적 합리성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동일한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였지만 정반대의 해결책을 찾아 나아간 것이다. 그리고 질서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관점을 전개하면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국가를 조망하고 분석하는 매우 독특한 관점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질서자유주의가 제시했던 자유주의를 재구성하는 틀 혹은 정식은 지금 우리에게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왜냐면 그들이 정식화한 자유주의의 핵심적인 질문, 즉 국가의 지나친 성장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제 거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치즘 그리고 그것에 조응하는 현상이라고 할 케인즈주의, 소비에트사회주의, 심지어 자유주의의 원산지인 영국에서의 베버리지 계획(Beveridge plan)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자본주의적 체제의 시도를 대조하고 이를 독일적 문제인 나치즘에 대응시키면서 질서자유주의는 기왕의 자유주의가 지닌 “소박한 자연주의(naive naturalism)”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들의 주장을 내놓았다. 푸코는 이를 자유방임주의에 대한 자유질서주의자들의 비판을 통해 압축적으로 설명하는데 자유방임주의의 핵심적인 주장은 시장 경제에 내재한 자연적 법칙이 있고 국가는 그것에 가능한 간섭하지 않아야 하며 그것이 실패하거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였을 때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질서자유주의자는 그런 자연적 대상으로서의 시장 혹은 경제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정치적 조절을 통해 창출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이라고 역설한다. 그것이 바로 질서자유주의자들이 “사회적 시장경제”의 요체임은 물론이다. 따라서 그들은 경제와 사회 혹은 국가가 대립적인 항으로서 상정하고 전자를 자연화시키면서 어떤 내재적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하길 거부한다. 그들은 자본주의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정치적 선택과 행위, 특히 제도나 정책과 같은 것을 통해 다양한 자본주의적 ‘질서’가 역사적, 우연적으로 존재할 따름이라고 강변한다. 그들을 질서자유주의자로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자본주의 법칙 혹은 논리란 인식을 대신하여 정치적 선택의 소산으로서의 질서란 관점을 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발 신자유주의는 질서자유주의와 무엇이 다를까. 이는 역시 사회와 국가 혹은 (시장)경제와 국가 사이의 관계를 표상하고 둘 사이를 관계지우는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질서자유주의자들 가운데 대표적 이론가 가운데 한 명인 뤼스토우(Alexander Rüstow)가 제안한 “생명정책(정치)(Vitalpolitik)”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사회의 모든 단위, 그것이 개인, 가족이든 아니면 이웃공동체같은 지역사회이든 모두를 기업체(enterprise)로 가정하고 사회가 경제의 이름 안에서 통치될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을 일컫는다. 여기에서 상기되듯이 질서자유주의자들은 사회적 영역과 경제를 구분하고 전자를 후자의 원리(경쟁)에 관점에 따라 구성하고 관리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경주한다. 이를 질서자유주의들은 사회정책(social policy)라고 부른다. 단순화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듣는 경구, 이를테면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그물을 짜는 법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접근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경쟁’이란 경제적 원리에 따라 ‘사회’를 관리하고 그를 위해 사회적 삶의 세계를 모두 기업체적인 정체성을 가진 대상처럼 다루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모두에게 평등한 불평등(inequality equal for all)이란 질서자유주의자의 핵심적인 명제가 압축적으로 반향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질서자유주의자들의 문하생이었던 미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질서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흡족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엇보다 방금 말했던 사회와 경제 사이의 구분을 거부한다. 그들은 사회적 삶의 세계가 곧 경제적인 삶의 세계이며 사회 안에서 펼쳐지는 모든 활동을 경제적 행위로서 받아들여야 함을 역설한다. 푸코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게리 백커의 인적 자본(human capital)과 범죄에 관한 신자유주의적 접근을 다룬다. 그러나 푸코의 미국 신자유주의에 대한 설명을 굳이 상세하게 서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펼쳐지는 거의 모든 것 속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경제개발계획이라는 개발독재 기간 동안 한국 경제를 주도했던 국가의 경제적 개입 방식이 종결되고 국가인적자원개발계획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경제기획원같은 부처를 대신하여 지식경제부같은 부처가 그 자리를 메우게 되었을 때, 학교사회에 속박된 획일적인 학생이 아니라 자기 학습권을 행사하며 자기주도적인 학습자가 되어야 한다는 교육정책이 들어설 때, 실업(자) 대신에 고용가능성(employability)란 담론이 대신할 때, 근로자나 종업원이란 말 대신에 역량을 갖춘 인재란 용어가 그 자리를 메울 때, 소득의 분배를 통해 자기의 경제적 생존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재태크’를 통해 자신의 경제적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관리할 때, 이력서가 아니라 스펙을 완비한 포트폴리오를 준비할 때, 이 모두는 미국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 어떻게 구체적인 지식, 제도, 정책, 법률, 행위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직접적인 경제적 삶의 세계는 물론 교육, 보건, 복지와 같은 종래 사회적 삶의 세계로 생각되었던 영역을 모두 기업화(enterprising)하는 것이며 그 안에서 활동하고 살아가는 주체를 기업가적 주체(entrepreneur) 혹은 기업가적 정신(entrepreneurial spirit)에 따라 살아가는 개인, 집단, 조직, 사회체로 주체화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경제와 사회 사이에 놓인 거리는 사라진다.
우리는 지금까지 푸코가 자신의 오랜 권력 분석의 기획을 통치성에 관한 분석, 그 가운데서도 자유주의에 관한 분석으로 전환하며 권력의 테크놀로지와 주체화의 윤리, 그리고 이를 구성하고 중재하는 지식의 관계를 탐색한 푸코의 이론적 궤적을 극히 간략하게 짚어보았다. 이러한 푸코의 자유주의 분석으로부터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난적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데 얻을 수 있는 이론적 정치적 교훈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신자유주의를 특정한 이념이나 좁은 의미에서의 이데올로기로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고전파경제학이나 합리적 선택론이나 게임이론, 위험관리론 같은 다양한 ‘학술적’ 담론을 망라하고 심지어는 일상생활에서의 자기계발 담론과 그에 연관된 구체적인 언어적 생태계를 포괄한다. 그러나 이렇게 신자유주의를 단정할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신자유주의가 제출하는 편향적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오염된 현실에 대한 표상을 넘어 진보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을 제출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한편 두 번째의 함정 역시 피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를 언제부턴가의 역사적 시점부터 조성된 객관적이고 불가역적인 현실로서 사고하는 것이다. 그것이 세계화이든 아니면 자본의 고삐풀린 움직임이든 혹은 20 대 80의 세계이든, 신자유주의를 이러한 맹목적인 자본주의의 현실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으로 간주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이런 잘못을 바로잡는 즉 더 많은 사회적 연대의 가치, 더 많은 공공성, 더 많은 국가의 개입 같은 것에 머물고 말 것이다. 물론 이는 희극적인 결과를 낳기 일쑤이다. 이를테면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악몽을 물리칠 수 있는 유력한 진보적 대안으로 널리 선전되었고 급기야 그를 주도했던 인물을 대통령 후보로 나서게 까지 만들었던 ‘4조2교대 일자리 나누기’라는 캠페인을 생각해보자. 이는 마치 신자유주의적 폐단을 극복할 대안처럼 여겨졌지만 그것은 노동자의 자기책임부여와 권한강화를 통해 생산적 주체를 형성하려는 지극히 신자유주의적인 실천의 한 갈래 일 뿐이다. 이는 이른바 사회운동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90년대 이후 활약했던 한국의 소문난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이 공공성의 기치 아래 벌여온 일들은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인 ‘협치(governance)’, 국가가 시민사회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를 활성화하고 이를 자율화시킴으로써 시민사회가 자기 스스로 책임을 부여받고 자신의 문제를 관리하게 하는 새로운 통치 전략과 기술의 일부일 뿐이다. 따라서 ‘아름다운재단’같은 시민사회운동단체야말로 가장 탁월한 형태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구성하는 직물의 한 씨줄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푸코의 자유주의 분석, 정치적 합리성의 계보적 분석은 신자유주의의 정치학을 비판적으로 분절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던져준다. 그것은 관념이나 지식으로서의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경험적이고 실정적인 현실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라 통치가능한(governable) 혹은 지배할 있는 현실을 구성하고 그와 관계 맺는 주체의 행위의 조건 혹은 행위 방식을 유도하고 평가하며 보상하는 지식과 테크놀로지, 윤리의 복합적인 결합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를 가리키는 이름은 통치성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란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혹은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통치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미테랑 정권의 등장을 전후하여 푸코가 개탄했던 것처럼 우리는 사회주의적 통치성이라 할 만한 것을 고안하고 구상하는 데 착수해야 할까. 그러나 이 물음 앞에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지난 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그러나 거의 믿기 어려우리만치 실종하여 버린 희귀한 정치적 사태를 생각해 보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산 수입쇠고기를 둘러싼 검역 문제에서 출발한 이른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는 어쩌면 푸코의 통치성의 정치를 둘러싼 의구를 풀어볼 수 있는 제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사법-정치적 문제설정 혹은 주권 담론의 주술적 유혹으로부터 벗어난 생정치적 주체를 통한 변혁의 전망을 내세우는 푸코의 끈질긴 주장을 되짚어 보는 데 아주 의미심장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자. 우리는 촛불 시위에서 두 개의 대립적인 혹은 그것이 지나친 것이라면 두 개의 얼굴을 가진 하나의 정치적 주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외치며 “헌법1조가”를 부른 사법적-주권적 주체이자 동시에 시민의 생명과 안녕을 보호하고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인구-주민으로서의 주체이다. 물론 이 두 주체는 동일한 공간에서 출현하였고 어쩌면 둘은 다르지 않은 인격체 속에 깃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둘은 전연 다른 주체의 모습이다. 이는 사회적 삶의 운명 속에 살아가는 계급 혹은 주민과 어떤 사회적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나 문자 그대로의 엄밀한 의미에서 무조건적으로 평등을 주장하는 인민 혹은 민중이라는 두 가지의 이질적인 정치적 주체이다. 그렇기에 푸코보다 더 푸코적인 자크 동즐로로의 표현, “주권을 가지고서 혁명을 할 수 있지만 하나의 사회를 만들 수는 없다”는 유려하고 충격적인 단언에 대하여 이런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사회를 끝낼 수 있는 혁명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실은 사회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러한 사회를 형성하지 않을 수 없도록 이끈 그 결렬의 순간, 그 심연을 알 수 없는 공백이 더 결정적인 것 아닐까. 이를테면 동즐로 스스로 서술하듯이 프랑스 민주주의 혁명이 만들어낸 견딜 수 없는 민주주의적 평등을 자본주의 ‘사회’의 체계 속으로 길들이기 위하여 사회의 형성과 관리로 정치를 환원하는 것, 정의와 행복 사이에 거리를 만들고 정치를 안녕과 진보란 목표 속에 유폐시키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극복해야 할 일 아닐까.
그렇다면 푸코가 말한 사회주의적 통치성이란 것도 혹은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이후의 통치성이란 것도 결국은 푸코의 통치성이란 기획 속에서는 결국 발원할 수 없는 무엇이 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푸코가 근대 국가의 계보학이란 이름으로 진행한 장기적인 이론적인 기획은 놀랍게도 권력의 분석이란 이름 아래에서 권력의 영도(零度)를 끊임없이 회피하려는 몸짓으로 둔갑하게 된다. 그 권력의 영도는 인민과 인구 사이에 구분이 사라지는, 푸코의 표현을 다시 빌자면 생정치적 주체와 주권적 주체가 결합하면서 만들어내는 희귀한 정치적 계기를 가리킨다. 물론 이를 우리는 투박하게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혹은 바디우같은 철학자의 시정적인 표현을 빌어 ‘사건’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빵과 토지를 달라는 사회적 요구는 평등한 세계를 달라는 정치적 주장과 떼어놓을 수 없다. 둘 가운데 어느 하나 없이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없다. 그러나 푸코는 이 둘 사이의 거리를 가능한 멀리 벌여 놓는다. 그것은 혁명이라는 광란적 사태, 민주주의라는 미증유의 계기가 삭제된 즉 ‘본연의 정치’가 없는 정치의 세계를 꿈꾸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우리는 푸코를 기꺼이 반정치적 정치의 이론가로 규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푸코의 이론적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푸코로 인하여 우리는 거꾸로 다시금 민주주의적 정치의 근본적인 아포리아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에 관한 급진적 사유를 이끄는 주요한 사상가들이 드러나게 혹은 드러나지 않게 푸코와의 거리 속에서 사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랑시에르의 불화의 정치학은 푸코의 ‘행정관리(police)’란 개념을 정치의 존재론으로 사고함으로써 출발하지 않던가. 발리바르의 자유-평등의 정치학은 정치의 타율성을 사고한 마르크스-푸코의 짝으로부터 정치의 자율성과 정치의 타율성의 타율성을 준별하는 작업에서 비롯되지 않던가. 하물며 바디우는 어떠한가. ■

- 문화과학 2009년 봄 호에 기고한 글의 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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