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정치의 약속>, 김선욱 옮김, 푸른숲 

1장 소크라테스 요약


철학과 정치의 관계는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차이에서 잘 드러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철학과 정치 사이의 간극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 인해 폴리스에 절망한 플라톤이 설득의 타당성을 의심함에서 시작된다. 플라톤에게 설득의 타당성에 대한 의심과 의견에 대한 비난은 연관되어 있다. 그가 보기에 설득은 다수에 대한 것으로, 진리가 아닌 의견에서 오는 것이다. 플라톤은 인간사의 영역에 이데아라는 초월적 기준을 도입하고 설득이 아닌 변증술을 내세우면서, 좋음의 이데아를 볼 수 있는 철학자가 도시의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설득을 통한 일시적인 좋음이 아닌 영원한 진리가 도시를 지배해야한다는 ‘진리의 폭정’을 기획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와 의견의 대립은 ‘無知의 知’를 말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가멸적 인간에게 지혜가 가능한 것인지 의심했다. 소크라테스에게 의견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공적 공간인 정치영역과 관계한다. 소크라테스는 시민들을 철학적 진리로 계몽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 각자의 도크사를 개선시키기를, 즉 ‘등에’로서의 철학자가 되기를 원했다. 가멸적 인간에게 절대적 진리는 단지 드러남을 통해서 제한될 뿐이지만, 의견은 단순한 환상이나 억견이 아니라 항상 일정한 진리성을 지닌 것이다. 따라서 한 사람이 가진 의견의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소통의 과정이 중요해진다. 이때 인간은 복수로 존재할 뿐 아니라 자신 속에도 복수성의 지표를 갖고 있기에,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과의 일치, 즉 무모순성을 요구한다. 한편 인간의 말하는 능력과 인간의 복수성 역시 서로 조응하는 것이다. 로고스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인간은 바로 말을 통해 생각을 드러내는 이성적 동물이자 복수의 인간들과 의견을 나누는 정치적 동물이다. 그리스의 경쟁적 정신을 극복하기 위해, 폴리스는 이와 같은 정치적 우정의 과정을 통해 공동체의 유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기획은 실패했고, 철학과 정치의 갈등은 결국 철학의 패배로 끝났다. 소크라테스적 성찰의 상실과 더불어 철학자가 정치와 거리를 두는 시대가 개시되었고, 사유와 행위의 분리라는 귀결이 생겨났다. 플라톤이 고안해낸 몸과 영혼의 갈등 역시 이러한 사유와 행위의 분리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철학으로써 정치를 지배하려는 시도에서 비롯한다. 가령 플라톤이 드는 동굴의 우화는 진리를 본 철학자와 동굴의 우매한 시민들을 다룬다. 그러나 이 우화에서는 정치적으로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두 표현인 말과 행위가 완전히 빠져있기에, 동굴 거주자들은 오직 벽면을 보는 일 밖에 하지 않는다. 여기서 플라톤은 왜 철학자는 진리의 세계인 동굴 밖으로 나가자고 동료 시민들을 설득할 수 없는지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 비유는 철학은 의견의 형성과는 거리가 먼 말없는 경이라는 감정에서 시작하고 말없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철학자의 궁극적인 경험이 말없음이 될 때, 그는 말하기가 인간의 최고 능력이 되는 정치 영역 외부에 위치하게 된다. 이 말없는 경이 속에서 철학자는 자신의 단수성 위에 자신을 수립하며 인간 조건의 복수성을 파괴하게 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 홉스, 마르크스 등의 정치철학도 역시 이러한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오늘날 철학과 정치의 관계는 다시 모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도래할 새로운 정치철학은 모든 인간사가 벌어지는 근거인 인간의 복수성을 경이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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