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광우병 촛불집회에 가보았다. 청계광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몰리지는 않았다. 이명박이 만들어놓은 청계천가에 모인 사람들이 광우병반대를 외쳤다. 사람 수에 비해서 청계광장의 구조가 집회하기에 별로 좋은 공간은 아니다.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이승환, 김장훈, 윤도현 등의 공연이 주를 이뤄서 과연 촛불'문화제'라는 말이 적절할 것 같다. 무언가 산만하고, 비조직적이고, 어색한 분위기이다. 기존의 집회 문화에서 보자면, 확실히 그렇게 보인다. 그동안 집회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촛불집회에서는 주로 애국가나 아리랑, 심지어는 오필승코리아나 독도는 우리땅 등의 노래가 불리고, 노무현이나 문국현 지지자들의 수도 상당하다고 했다. 다함께나 민노당, 전국학생행진 등의 단위가 보이기도 했는데,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발언들은 대개 수입 관련 재협상 요구와 미친소 수입 반대 정도에 제한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쟁점이 협소화되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요새의 촛불집회는 여러 모로 04년도의 탄핵 정국을 떠올리게 한다. (아주 모호한 말이긴 하지만) 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대다수가 '자생적'으로, 특정한 조직의 동원이 아니라 인터넷이나 방송 등을 보고 나온 사람들이고, 이른바 쌩대중이다(가족 단위, 인터넷 카페 회원, 학생들). 일련의 집회들에서 특히 부각되는 것이 중고생들의 두드러진 참여인데, 조중동에서는 전교조가 배후에 있다느니 떠들며 쇼를 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참여가 단순히 배후조종이나 몰지각의 산물이 아님은 명백하다. 415학교자율화 조치, 0교시 부활, 우열반 편성 등이 직접적으로 중고생들을 자극했을 것이고, 쇠고기 문제를 통해 그 불만이 폭발하게 되었다.(대학생의 경우-등록금 문제, 직장인-대운하, 의료보험, 수도, 가스, 전기 등의 공공서비스 민영화 등) "우리는 이명박 안 뽑았다. 당신들은 왜 이명박 뽑았느냐, 어른들은 왜 우리에게 나쁜 미국산 쇠고기를 먹게 하는가? 왜 아직 살 날도 많이 남은 우리를 죽이려드는가? 우리는 그 과정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이는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물론 학생들 모두가 이명박 정권과 광우병 문제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토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물론 언론에서 떠드는 것보다 중고생들이 훨씬 똑똑하다). 여러 연예인들의 발언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연예인들을 통한, 그리고 당연히 학생들 사이에서, 집회 내에서 무수한 '정서들의 모방'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대운하니, 의료보험 민영화니 이명박이 대중들을 계속 자극해왔지만 왜 유독 쇠고기 문제가 이토록 폭발적인 대중들의 분노를 일으켰을까? 그것이 생존과 직결되는 먹거리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만약 이것이 단지 정부에서 주장하는대로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되는 일이라면 그저 선택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광우병의 경로가 단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광범위하게 걸쳐있고(알약, 조미료, 라면스프, 화장품 등등), 광우병 자체에 대한 연구 자체가 매우 부족하며, 이 병의 치사율은 백프로로 알려져있고 예방약, 치료약 등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 문제에 대해 지금 침묵하면, 이제는 이명박이 말하는 소비자로서의 선택이 전혀 작용할 수 없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상황이 온다.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한다면, 그걸 어떤 식으로든 먹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래도 된다고 누가 결정했는가? 누가 그 쇠고기를 수입해도 좋다고, 식량에 대한 통제권은 몇몇 관료들에게 있다고 말하는가? 의문과, 더 나아가 분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주권을 가진 자는 누구인가? 누가 그것을 부여했고 행사하는가? 단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허구성에 대한 어떤 감각, 그리고 '더 많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이다. 그걸 주제적으로 명료하게 의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촛불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이러한 이데올로기들 속에 있다. 아마도 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행 국면일 것이다. 모호하고 양가적인 상태. 더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뿔뿔이 흩어져 패배할 것인가?
거기서 어떻게 개입이 가능할까?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이른바 운동주체와 대중들의 확연한 분리일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대중들이 기존의 집회문화에 대해 갖는 거부감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이다. 그런데 실제 최근의 촛불집회에서는 스스로 급진성과 비판성을 지우려는 시도들이 보인다고 한다. 구호를 외치고 노무현정권을 비판하고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운동이 억제됨으로써 그 집회의 의미는 그야말로 촛불들고, 침묵하고, 문화제를 관람하는 행사로 축소된다. 운동주체들은 때로 경찰에서 고용한 알바로까지 몰린다고 한다.(폭력 선동, 정치적 구호, 청와대로 나가자는 말을 일삼는 사람들) 이들 소수세력이야말로 순진무구한 대중들을 조종하는 배후이고 폭력집단이고 친북좌익세력이다라는 식으로 분리가 되면, 저들의 공격은 쉬워진다. 하지만 어차피 침묵 시위를 한다고, 발언과 구호를 억제하는 식으로 한다고 해도 경찰이 집회를 억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미 경찰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 결사의 자유를 부정하고, 사법처리로 협박하고, 심지어 고등학교에까지 찾아가 추태를 부리고 있지 않는가? 새롭게 등장한 자발적 대중들과 그러나 그 대중들을 획일적으로 선도하고 하는 것이 아닌 운동의 결합. 집회에 모인 사람들 하나하나가 이명박 정권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식량주권, 인민주권을 주장한다면? 이른바 대중들과 운동주체들이 구분될 수 없도록 융합된다면? 쇠고기 수입에 불만을 가진 대중들에게 정치적 언어를 돌려주고 주체화시키는 계기로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대중들의 단발성 모임을 넘어서 그 열망을 실질적으로 견인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와 장치일 것이다.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을 때, 현재의 광우병 정세에 개입하고 이들을 저항주체로 호명하기 위해서는 04년도 총선 때 이야기되었던 국민발의권, 국민소환권 운동이 그 적절한 방식 중 하나일 수 있을 것 같다. 탄핵이 아니라 국민소환, 국회의원이 아닌 국민들의 청문회. FTA에 대한 국민투표. 단순한 쇠고기 수입반대는 어쩌면 부차적이며, 오히려 문제는 현재 대통령만이 발의할 수 있는 국민투표에 대한 권리를 대중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아직은 너무 추상적이다.
잊지말아야 하고 끝까지 알려나가야 할 것은, 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한미FTA의 선결 조건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미 노무현 정부 때의 FTA 협상의 일환이 광우병 쇠고기인데, 이 문제가 제대로 쟁점화가 되지 않는 현 상황이다. 지금 촛불집회에서처럼 단순히 안전한 소고기를 먹을 수 있는 조치나 굴욕적이지 않은 재협상을 요구하는데 그친다면 결국 아무 성과도 남기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전 정부에서 협상을 마무리한 야당은 이명박 정부에 쇠고기 협상을 빌미삼아 대중들의 분노를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쇠고기는 수입하면 안되지만 FTA는 맞는 것 같다?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특별법 등을 제정해 보완해서 사태가 마무리된다고 해도 미국 기업에서는 FTA가 보장하는 투자자-국가 제소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또 FTA는 공공서비스 민영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물, 가스, 전기, 의료, 교육, 교통 등. 단순히 광우병에 대한 우려와 분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 FTA 자체에 대한 반대로 급진화될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을 또 넘어서는 권리에 대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에 현 정세의 사활이 걸려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