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 中,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수록
각 개인은 자신의 개인적인 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일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대체로 자신의 사업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전반적인 정치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데 이점이 바로 우리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을 자신의 일에만 몰두한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호감의 문제에서 우리와 대다수의 다른 국민들 사이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선행을 받으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선행을 함으로서 친구를 만듭니다. 이 점이 우리의 우정을 더욱더 신뢰 있게 만드는데 왜냐하면 계속적인 호의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임으로써 우리의 호의를 받은 사람들의 감사가 계속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에게 어떤 빚을 진 사람의 감정은 우리와 동일한 열정을 가질 수가 없는데 이는 그가 우리의 호의에 보답할 때에 어떤 것을 자발적으로 주려하기 보다는 빚을 갚으려는 의무감이 앞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점에서 유일무이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때에 어떤 이익이나 손해를 계산해서 행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자유로운 관대성에 입각해서 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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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中
(시에예스, "제 3신분이란 무엇인가", 1788)
이 책의 목차는 대단히 단순하다. 우리는 세 가지 문제를 제시할 것이다.
1.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전부(Tout)이다.
2. 지금까지의 정치에서 제3신분은 무엇이었나? 아무것도 아니었다(Rien).
3. 그렇다면 무엇을 요구하는가? 무언가(Quelque chose)가 되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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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스피에르, 정치도덕의 원리에 관한 보고서 中, 1794년 2월 5일
(Ricahrd T. Bienvenu ed., The Ninth of Thermidor: The Fall of Robespierre, Oxford: Oxford Univ. Press, 1968에 수록)
그러나 우리 안에 민주정의 기초를 닦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강화하기 위해서, 헌법의 평화로운 지배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폭정에 대한 자유의 전쟁을 끝내야만 하고 혁명의 폭풍울 뚫고 나가야만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여러분이 세운 혁명체제의 목적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공화국이 처한 폭풍 같은 상황에 여러분의 행동을 기초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행정적 계획은 혁명 정부의 정신의 귀결이어야 하며 그것은 민주정의 일반 원리와 결합되어야 합니다.
인민의 또는 민주정부의 근본 원리는 무엇입니까? 다시 말해 정부를 움직이게 하고 부양하는 본질적인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미덕입니다. 나는 그리스와 로마의 경이로운 인물들이 연구했던, 그리고 공화국 프랑스에서 더욱 더 놀랄만한 결과를 야기한 공적인 미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미덕은 국민과 그 법에 대한 사랑,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공화국 또는 민주정의 본질은 평등이므로, 조국에 대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평등에 대한 사랑을 포함합니다.
(.........)평화시, 인민 정부의 동력이 미덕이라면, 혁명의 와중에 그것은 미덕이자 동시에 공포입니다. 미덕을 결여한 공포는 치명적이고, 공포를 결여한 미덕은 무기력합니다. 공포란 신속하고, 엄정하며 결코 굽히지 않는 정의에 다름 아닙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미덕의 소산입니다. 그것은 어떤 특별한 원리라기보다는 우리 조국이 가장 시급하게 필요로 하는 민주정의 일반 원리의 귀결입니다.
공포는 전제정부의 동력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정부가 전제정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자유의 영웅들의 손에 들려 빛나고 있는 검이 폭군의 추종자들이 무장하는 검과 닮았듯이 말입니다. 전제군주가 그의 잔인해진 신하들을 공포로 다스리도록 합시다. 그는 전제군주로서 그렇게 처신하는 게 정당합니다. 자유의 적들을 공포로 정복한다면 공화국의 창건자인 여러분은 정당합니다. 혁명정부는 폭군에 대한 자유의 전제정입니다. 오직 범죄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힘이 사용됩니까? 그것은 벼락 맞을 거만한 자들의 머리에 일격을 가하는 것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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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네스트 르낭(E. Renan)의 <민족이란 무엇인가>(Qu'est-ce qu'une nation?)(1882) 中
과거에는 함께 나누어야 할 영광과 미련의 유산이 있고, 미래에는 이루어야 할 공통의 계획이 있습니다. 함께 고통받았고, 함께 즐겼고, 함께 기대했다는 것, 바로 이것이 공통 관세나 전략적인 사고에 맞춘 국경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인종과 언어의 다양성을 넘어서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조금 전에 ‘함께 고통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함께 하는 고통은 기쁨보다 훨씬 더 사람들을 단결시킵니다. 실제로 국민적인 기억들 가운데 애도가 승리보다 낫습니다. 애도의 기억은 의무를 부과하며 공통의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이란 이미 치른 희생과 여전히 치르고자 하는 희생에 대한 의식(意識)에 의해 구성된 위대한 결속입니다. 그것은 과거를 전제로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날 하나의 명백한 사실, 즉 동의, 공동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명확하게 표명된 욕구로 요약됩니다. 한 민족의 존재는 개인의 존재가 삶의 영속적인 확인인 것과 마찬가지로 매일매일의 국민투표(plébiscite)입니다(이런 은유를 사용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랍니다).
(..........)인간은 자기 인종의 노예도, 자기 언어의 노예도, 자기 종교의 노예도, 강물의 흐름의 노예도, 산맥의 방향의 노예도 아닙니다. 건전한 정신과 뜨거운 심장으로 뭉친, 인간들의 대결집이야말로 국민이라 불리는 도덕적 양심을 만들어 냅니다. 이 도덕적 양심이 공동체를 위해 개인을 버리는 그 희생에 의해 자신의 힘을 증명하는 한, 그것은 정당하고 또 존재할 권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