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개봉한다는 소리 듣고, 보고싶긴 했지만 여느 때처럼 혼자서 보는 일이 자신이 없어 망설이던 차에 한 친구가 마침 이 영화를 보잔다. 왜 보고싶냐니까 그냥 의무감에 본다는 그 친구는 고등학교까지 광주에서 살았다. 부끄럽게도 난 여태 광주 근처까지만 가 봤다. 치약 같은 건 따로 준비하지 않았는데 영화는 최루성이었고, 그 탓에 영화를 보면서 거의 울어본 적이 없는 나도 (펑펑 통곡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자꾸만 눈물이 흐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에어콘 때문이기도 했지만 몸은 계속 부들부들 떨렸고 잠시도 등 대고 편안히 앉아서 볼 수가 없었다.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시민들이 총격을 받는 장면, 잠시의 평화가 찾아왔을 때, 실은 광주 전체가 고립된 후 서로 음식을 만들어먹고 김상경과 이요원이 사과를 나눠먹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영혼결혼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지는 장면들이 인상깊었다. 화생방 훈련을 받았을 때처럼 눈, 코에서 물이 자꾸 나와서 마치 훈련 때 가스실에서 갓 나왔을 때처럼 극장 밖으로 두 팔 벌린 채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몽둥이질과 총탄과 피칠갑이 난무하는 영화 내내 겁도 나고 화도 나고 나중엔 멍해졌다.
감독이 말하는 것처럼 영화에서 특정한 정치색이 드러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임진곡도 가사는 나오지 않는다. 이유없이 총격을 당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그것만으로도 싸울 이유는 충분할지도 모른다.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는, 우리를 기억해달라는 말 한마디에서 모든 것이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안성기는 "총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100억이 넘는 자본의 스펙타클이 두 시간동안 사람들을 뒤흔들어놓은 뒤, 그 감정들의 출구는 어디일까? 한 편의 액션활극, 전쟁영화를 감상하는 듯, 쉴 새없이 떠들던 뒷 자리에 누군가는 둘째치고, 불과 몇 시간만에 점점 둔해지는 나의 신경과 가슴이 더욱 가증스러워 던지게 되는 질문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총 든 군인이 눈 앞에서 쏘아대는 총알에는 누구나 쉽게 분노하고 시민들에 동일화할 수 있지만, 그보다 중대하고 더욱 분별하기 어려운 폭력들이 27년이 흐른 오늘날에는 과연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에 대해서는 또 27년이, 100억이, 그 이상의 시간과 돈이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팝콘과 콜라를 들고 영화관에서 회고조로, 저마다의 참회를, 고해를... 다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불편한 현실인만큼 쉽게 잊고 억누르고 일상에 젖어들어가는 이 망각증을 어떻게 넘어설까? 어쨌거나 이건 단지 영화일 뿐이라 보람없는 질문일 뿐인가? (데리야마 슈지를 살짝 비틀어) '영화'를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
김상경은 좋았는데 거의 10등신인 거 같은 간호사 이요원과 퇴역 후 택시회사 사장을 하고 있는 왕년의 별 네 개짜리 안성기는 좀 현실감이 떨어지긴 했다. 친구나 조폭마누라 따위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