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프라하" 라고 하니 언뜻 생각나는게 있다. 한창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거 안하고 있으면 소외감을 느낄정도로 인기 있었던 싸이월드에서, 조아무개 배우의 프라하로 여행가는 광고.. 이데올로기와는 별 상관없는 세대인 나에겐 프라하는 낭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무언의 도시였는데 요네하라 마리의 이 책을 보고 나니 당시 “프라하의 봄” 시대상황에 대해서 한번 알아봐야겠다란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역시 논픽션의 힘이란건 이런거구나 싶게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일본인 요네하라 마리는 공산당 이론 정보지의 편집위원으로 부임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서 프라하로 건너가 소비에트 학교에 다니게 된다. 전세계 사회주의자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국제학교에서 마리는 그리스인 리차, 루마니아인 아냐, 유고슬라비아인 야스나와 특별한 시절의 기억들을 만든다. 10대 초반 아직은 어린 나이들이지만 그녀들에게는 조국에 대한 각별난 사명감 같은 것들이 있다. 그리스인 리차의 아버지는 군사정권의 탄압에서 벗어나 동유럽 곳곳을 전전하다 체코로 망명한 공산주의자였다. 부모님이 그리스를 망명한 뒤로 태어난 리차였지만, 한번도 본적이 없는 새파란 그리스 하늘을 항상 그리워하는 엉뚱한 리차, 그런 리차는 나중에 의사가 되어 독일땅에서, 그리스의 높다란 하늘대신 그리스 방송만을 들으면서 살아간다. 그리스인으로 태어났지만 한번도 그 땅에서 살지도, 특권을 누리지도 못한채 유럽인으로 큰 리차에게 조국은 무슨 의미로 다가가는 걸까.

태연하게 거짓말을 자아내며 자신을 포장하는 아냐, 그녀의 집은 부패와 싸워야할 권력의 중심계층이지만 일반 루마니아인들의 비참한 삶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한다. 몰락해가는 공산주의 체제의 뒤안에서 한땐 끝없는 투쟁과 투옥으로 다리까지 잃어가며 싸우기도 했던 아냐의 아버지는 딸의 안락한 삶을 위해서 자본의 나라 영국으로 딸을 유학까지 시켜가며 자신을 포장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문제가 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아냐의 모습은 요즘시대의 자본의 논리와 비슷하다. 자신의 안위와 안전이 최고인 경쟁사회를 떠올리게 했다.

나에겐 제일 인상 깊었던 등장인물, 야스냐는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다. 뭐든지 월등하게 잘해내고 예술적인 분야에도 뛰어난 야스냐는 힘없는 민족을 깔아뭉개는 권위적인 교장과 맞대응하다 학교까지 나오고 커서는 무슬림이라는 멸시와 해체된 조국 사이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사이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게 된다.

수년만에 재회하는 모습들은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한채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어릴적 격정의 시대를 함께 했던 친구들.. 국적은 다 다르지만, 우정이라는 추억이라는 한가지 끈으로도 참으로 아름다운 관계들.. 안타깝게도 이 책의 저자 요네하라 마리는 올해 6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싶다.

멀게만 느껴졌던 동유럽 현대사.. 그러고보니 우리의 현대사와 많이 닮은꼴을 하고 있었다.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그들의 현실이 좌우 흑백대립이 아직도 난무하고 이데올로기에 의해 나눠진 조국을 갖고 있는 우리네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성장소설을 특히나 좋아하는 내게 오랜만에 마음을 흠뻑적신 책 한권 만난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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